오늘은 날씨가 유난히 좋다.
일년 통털어 다섯 손가락에 꼽힐 날이다.
겨울인데도 봄날처럼 따뜻하다.
그리고 바람도 없고 시계도 유리처럼 맑다.
한라산 정상 부근과 5.16도로 길섶에는 아직도
많은 눈이 쌓여있는데
이곳 서귀포는 너무나도 따뜻하다.
올겨울 들어 참석인원이 대폭 줄었다.
늘 나오던 은하수와 강나루까지 빠져 단 다섯명
서귀포 감귤박물관 주차장에 모였다.
김립이 사는 곳과 가까워 김립이 이틀에 한 번꼴
로 아침 산책하는 곳이다.
감귤박물관을 돌아 보고 산에 오르기로 했다.
박물관은 전세계에 있는 귤나무 종류를 한데 모아
재배 전시하는 곳과 감귤재배의 역사를 알 수 있
는 유물전시실, 그리고 아열대식물원 등이 있다.
입장료는 1500원이나 65세 이상은 무료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탐방객은 거의 없어 우리 일행
과 신혼부부 한 쌍이 있을 뿐이다.
유리온실 안에는 진귀한 귤나무 종류들이 재배되
고 있었다. 콩알만한 작은 귤부터 어른 머리만한
커다란 귤이 달리는 나무까지 귤나무 종류도 아주
다양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부처의 손을 닮
았다는 불수감이다. 우리는 관광객이 되어 한가롭
게 그리고 꼼꼼하게 박물관을 둘러 보았다.
박물관 구경에 시간을 많이 써서 정오가 다 되었
다. 우리는 산에 올라 점심을 먹기로 했다.
월라산은 시내에 가까워 산책로와 정자 운동기구
등이 잘 되어있다.
동남쪽에서 보면 깎아지른 기암괴석으로 보이지
만 박물관 쪽에서는 소나무가 우거진 낮은 오름
에 불과하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 처음 만나는
정자 부근에는 기막힌 전망터가 있다.
바위에 오르면 아름다운 서귀포 앞 바다와 효돈
남원 등 서귀포 동부지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
다. 오늘은 시계도 맑아서 경치가 기가 막히게 좋
다. 김립이나 선달의 집까지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니 또 하나의 정자를 만날
수 있다. 이번에는 기와를 얹은 한옥 누각이다.
일단 우리는 여기서 베낭을 내려놓았다.
홍일점으로 참석한 임여사의 수고로 맛있는 점심
상이 차려졌다. 인원이 적으면 적은대로 가족같은
맛이 있어서 좋다. 흰눈을 뒤집어 쓴 한라영봉이
우리를 부러운듯이 내려다보고 있다.
오름을 내려오면 오름을 한 바퀴 도는 산책코스가
있다. 시간이 없어서 다 돌지는 못했지만 박물관
까지 오는 코스에는 다양한 운동기구, 옛날에 할
머니 집에서 보았던 신서란, 오백라한을 닮은 기
암괴석, 인공폭포 등이 있어서 재미있었다.
산행을 마치고 오는 길에 선달의 집에 들러서
감귤도 한 짐씩 얻어 왔다. 선달은 요즘 농장일로
바빠서 나올 수 없고 김립에게 전화해서 나누어
주도록 부탁한 것이다. 우리는 주인 없는 집에서
귤을 한 짐씩 들고 나왔다. 그의 환하게 웃는 얼
굴이 보고싶다.
오는 길에 참 오랫만에 아마 졸업 후 처음으로
동창 현수언을 만났다. 가끔 전화로 연락을 하던
꼴찌의 제안으로 성립된 일이다. 마침 현수언의
집이 감귤박물관 인근이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50년만의 상봉이지만 금방 그가 현수언임을 알
수 있었다. 학생때부터 후리후리한 키에 미남형
인 그는 아랫배가 나오고 이마가 벗어진 노인이
다 되었지만 눈 만은 옛날과 변함이 없었다.
사장과 교수 등 아들들이 다 성공하고 그 또한 2000여평의 하우스에서 신품종 감귤재배에 몰두하고 있는 그가 당당하게
보였지만 부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유유자족 오름에 놀러다니는 우리가 부러울 것이다. 2012.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