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안개 때문에 세 시간 반이나 늦게 우수영에 도착했다. 오늘 아침에도 진도대교를 지나 팽목항으로 달려가는 길은 안개가 짙게 깔렸다. 울돌목의 회오리바다는 오늘도 거센 물결을 일으키며 흘러간다. 이 회오리 물결이 명량해전(鳴梁海戰)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큰 공훈을 세운 물결이다. 물 흐르는 소리가 사람 우는소리처럼 들린다.
팽목항으로 가는 길목에는 벼는 거의 다 추수가 끝나고 김장용 배추와 무, 대파가 잘 자라고 있다. 팽목항이 가까워지자 언덕이 아닌데도 숨이 가빠오고 가슴이 답답하게 눌려온다.
나는 나의 달리기를 예술의 경지까지 승화(昇華)시키려 매일 최선을 다한다. 예술에는 아름다움이 있어야하고 진실이 묻어 나와야하고 영혼을 불사르는 신명이 있어야한다. 오늘의 나의 달리기는 어린 영혼들의 원혼을 달래는 탈종교적인 진혼제(鎭魂祭)이기도 하다. 영혼을 달래는 작두걸이를 하듯 최선을 다해 대지를 가볍게 밟는다. 못다 핀 꽃 같은 영혼을 달래는 것이기도 했지만 살아남은 유족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자신도 위로가 필요했다.
제단에 내 추모시를 적은 노랑 종이배를 올리고 향불을 붙여 묵념을 올린다음 나는 좌에서부터 우로 304 명의 아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고 얼굴을 일일이 눈으로 어루만져주었다. 그것마저 흐르는 눈물에 그 고운 아이들의 얼굴이 찌그러져 보였다. 그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 얘들아! 아이들 영정 앞에 과자가 잔뜩 쌓였는데 하나도 안 먹었다. 아이들이 화가 난 모양이다. 나는 다시 노랑 종이배를 들고 나와서 바다에 띄워보냈다. 노랑 종이배는 뒤집히지 않고 물결 따라 한참을 흘러갔다. 작은 종이배는 바람에도 뒤집히지 않고 떠갔다. 오늘은 사진에 내 얼굴을 담지 못했다. 아이들의 얼굴이 없는데 내 얼굴만 담은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흐르는 눈물조차 보이는 것이 위선(僞善)처럼 보일까봐 조심스러웠다.
임진왜란 때 우리 수군은 칠천량해전에(漆川梁海戰)서 대패를 하고 겨우 12 척만 도망쳐 나왔다. 이 때 조정에서는 수군이 미약하니 수군을 없애고 이순신은 육군에 종사하라고 명한다. 이순신은 “신에게는 12 척의 전선이 남아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싸우면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고 상서를 올리고 12 척의 배로 133척의 배를 맞아 싸워 승리로 이끈 해전이 명량해전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죽을힘을 다해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미국에서도 긴급뉴스로 세월호 침몰현장을 생생하게 TV로 보았다. 아나운서도 전원 구조할 수 있다는 뉴스를 내보내서 안타깝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전원 구조할 수 있었는데 아무도 구조하지 않았다. 탈출하라는 한 마디만 했어도, 구조하러간 해경이 한걸음 내딛다 미끄러워 포기만 안했어도 아이들은 구조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구조되기를 기다렸다.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있으라는 말만 믿고. 최초 신고는 아이들이 했는데 정작 구조된 건 선원들뿐이다. 교신을 통해 배 안에 400여 명의 인원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도 침몰 전 선내 구조를 하지 않았다. 정부의 콘트롤타워도 작동하지 않았다. 돈을 먼저 생각한 선주와 그 뒤를 봐주는 부정한 관료,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언론과 정부, 이를 방조한 사회 모두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 못할 일이란 없다. 하지 않아서 그렇지! ‘나에게 아직 두 다리가 튼튼하게 남아’ 있으니 세상 끝까지라도 달려가지 못하란 법이 있을 까?
하얀 목련
강명구
이렇게 많은 꽃들이 피지도 못하고
슬픔의 바다에 잦아드는구나!
그 고운 꽃잎 위에 통곡과 애절한 이름을 하나하나 얹는다.
종이배에 노란 리본 매달아 띄워본다.
어른 된 자 쥐구멍이라도 찾고 있을 때
구차한 오만 원 권은 햇볕에 말려지는데
꽃망울들은 심연으로 가라앉는구나!
살아난 꽃들은 처연해 소복으로 갈아입는다.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이렇게 가슴을 쥐어뜯는구나!
때 아닌 국화가 놓여진 자리에
햇볕 따스한 어느 봄날 목련으로 다시 피어나렴.
냄새나는 세상에 꽃향기로 머무르렴!
첫댓글 못다핀 꽃
그냥 물속에 보내고
이시간 부모된 가슴 얼마나 쓰리고 아릴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얼마나 쓰렸는지..
아린다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난 미국에서 못 데려옴 개도 가슴이 아린데 얼마나 아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