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오후 1시.
그럴싸한 시간이다. 오전에 볼일이 있어서 늦은 출근 중이었다 12시에 출근하는 느낌은 묘했다.
퇴근하기 위해 출근하는 느낌... 나가기 위해 들어가는 출입구...비상구 없는 계단.
늘 지나는 길이었는데 병원 앞에서 힘겹게 택시를 잡는 사람이 보였다.
이상하리 만치 작은 체구와 웬지 비 현실적인 모습으로 위태롭게 그는 택시들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멈춰주기-를. 그러나 택시들은 그가 그곳에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듯 했다.
그 앞에 내 차를 세웠다
"어디까지 가세요?"
나의 친절한 질문에 모자를 쓴 그가 말했다. -아주 약간만 가주세요 아주 약간-
조수석에 앉은 그가 모자를 벗었고 나는 약간 긴장하기 시작했다.
카프카 원숭이다.
다시는 나를 보지 않을 듯 떠난 그였고, 고독한 거위를 살해한 원숭이다.
인간보다는 원숭이 무리가 차라리 -순수한 실존- 이라며 나를 떠난 그 였다. 그가 모자를 쓴 채 내차를 히치하이크 했다. 오후 1시에 출근하는 내 현실 속으로 다시 그가 들어 왔다.
방금 빨간 城 속에서 튀어나와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한 음성으로 그가 입을 열었다.
- 근사하군 버디. 목도리도. 머리 모양도
: 고마워 잘 지낸거야?(콜트레인의 i'm old fasioned(BLUE TRAIN 중)가 나오고 있었다)
- 물론이지. 자고로 아프리카란 위선은 없거든 자네같은 인간들은 절대 이해 할 수 없는 순수한 욕구로만 움직이는 세상이니까.(짧은 시간에 100년은 더 세월을 삼킨 듯 한 목소리 였다)
: 그렇군. 난 이제 자네와 할말이 별로 없는데. 웬일이지?(익숙한 출근길을 운전하며 내가 말했다)
- 별일아냐 그냥 와본거야. 나는 버디 자네에게 결코 애정을 가질 수는 없어. 다만 그곳은 너무 더워서 이곳 겨울이 보고 싶어서 온거야. 쓸쓸한 풍경들이..
내차는 좌회전 깜빡이를 켰다. 이정표는 언제나 나를 편하게 해주곤 한다. 소속감과 함께.
이정표는 말한다. "버디 죄회전을 하세요 익숙한 출근 길이잖아요, 그곳에는 당신의 컴퓨터와 긴 책상이 있아요, 따뜻한 커피와 함께.."
그때 다시 원숭이가 입을 열었다.
- 우회전 해줘 버디..
: 안돼! 오늘 꼭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단 말야..게다가 어제 데이터 백업도 확인해야 한다고.. 정말 안돼 ..
결국 우회전을 했을 때 차창 밖으로 비춰지는 태양은 강하고 권태로웠다. 32살의 태양은 18살의 태양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것은 조금 더 현실성이 부여된 태양이었다.
그런 풍경이 있는줄은 상상도 해본적이 없었다.
벌거벗은 나무들과 아직도 녹아내리지 못한 눈들이 겨울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원숭이는 어느새 말보로 미디움 세 번째 개피를 꺼내 물었다.
- 첫사랑 얘기 해줘 버디..처음 여자..
: 이봐 아무리 친구라지만 지금은 오후 1시야 1시에 합당한 대화가 있는 법이라고, 게다가 난 어제저녁부터 아직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
- 부탁해 버디. 자네의 첫 섹스가 궁금해..
말보로 미디움은 역시 독했다. 콜트레인은 강했고 태양은 거짓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창문을 열면 태양의 따뜻한 기운은 존재하지 않았다. 원숭이와 나는 분명 어느 부분은 속고 있었다.
마지 못한 듯 나는 입을 연다.
: 아주 간단해.
17살인가 18살인가 동해바다 민박집이었고, 2박 3일 여행 중 마지막 날에 나는 처음으로 여자와 관계를 가졌던 것 같아. 그건 쾌락의 일부가 아니라 겨울 안에서 일종의 친밀감의 확인 이었던 것 같아.
원숭이지만 그정도는 알꺼야. 어떤 술을 마시냐 보다 누구와 마시냐가 230배쯤 중요 하다는 건.
그러니까 그녀와 나는 누구와 함께 있는가를 확인하려고 했던 것 같아.
싱거운 섹스였고 아주 금방 끝났던 것 같아. 이게 다야 만족해?
- 흠.. 겨우 한번만 한거야?
: 응.
- 생각보단 싱겁네. 아무튼 그녀는 지금 어디 있는데?
: 글쎄 잘 살고 있지 않을까? 알수 없지
- 그립거나 하진 않아? 보고싶거나..
: 솔직히 말해?
- 응
: 전혀.
그는 시종일관 뭔가 실망하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내게서 자신이 원하는걸 찾지 못하는 듯 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공허감이나 실망한 표정 보다 참을수 없는 공복감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고 내가 '전혀' 라고 말한건 어느정도는 사실이었다.
그립지 않다 보다는 그때를 정시시킨채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리고 서둘러 원숭이와의 대화를 단절 시키고 싶었다.
길게 얘기할수 없을만큼 배가 고팠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상하게 자꾸만 배가 고팠다. 허기가 졌다. 자꾸만 자꾸만. 약간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다시 내가 물었다.
: 이제 그만 돌아가줘. 원숭이가 있어야 할 장소로. 피곤해.
- 그래야지.
하지만 이 얘기를 해주고 싶어서 온거야 버디.
난 이제 원숭이의 삶이 지겨워 졌어. 바나나도, 담배도.
얼마전에 -복어-를 잘못 먹으면 간단하게 원숭이의 위대한 삶을 손쉽게 마감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 마치 댄스가수가 어린 여자아이를 침대로 유혹하는 것보다 더 쉽다는 걸.
사실 난 충분히 오래 살았어. 생각하는 것도 지쳤고 그리고 가장 견디기 힘든건 나에게 -모든게- 무의미 해져 버렸어. 정말이지 모든게. 어쩌면 일부러 부정해 왔는지도 모르지만
만약 버디가 그녀가 가끔 그리워? 라는 질문에 "가끔은 숨막힐 만큼.." 이라고 대답해 주길 바랬어.
그러나 결국 내 결심에 확신을 더해줄 뿐이지.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걸 내 스스로 인정해 버린 이상 아침에 눈을 뜬다는 게 몹시 지겹거든.
언제나 태양의 빛이라던가 바다의 모습 이런 풍경들이 내 삶을 지속시켜 준다고 생각했지만, 수치스럽고 부조리한 내 삶을 연장할만한 어떠한 명분도 이젠 내게 없어. 흠..
만나면 무척이나 할말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잘 안돼는 군.
아무튼 미안하게 됐어 버디...
: 자살을 말하는 거야?(어쩐지 한낮의 똑똑한 원숭이의 자살 결심은 너무도 비현실 적이어서 차라리 잘 포장된 아이스크림 같은 느낌이었다. 녹으면 볼품 없어지는)
- 뭐 그렇게 말할수도 있지만 난 고작 원숭이에 불과한걸. 중요한건 아냐.
버디. 자네 인생의 흐름에는 아무 영향도 없지 자네도 알고 나도 알잖아.
: 그렇긴 하지만. (나는 이제 원숭이와 아무 대화도 할 수 없었다. 분명 둘 사이에서 어떤 고리부분이 빠져 있는게 분명했고, 솔직히 끝없이 고뇌하는 원숭이가 보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어 오를만큼 나는 그를 배반하고 있었다.) 나는 할말이 없어.
나로서는 원숭이 자네가 스스로 부조리를 그런 방법으로 끝내겠다면 어쩔수 없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게 어때 ? 그리고 난 지금 몹시 배가 고파..
성의 없는 나의 대사 틈에서 그는 다시 모자를 눌러썼고, 그는 내리겠다고 했다.
마일즈를 몹시 좋아했던 원숭이가 KIND OF BLUE 씨디 케이스를 열었을 때 그 안에는 이소라의 씨디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내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 쳤다.
원숭이는 말했다." 비굴한 놈"...
그는 쓸쓸한 겨울 들판으로 사라져 갔고,
지금 나는 카프카 원숭이에게 얻어맞은 뺨을 어루 만지면서 이글을 쓴다.
잘 포장된 아스팔트와 이정표를 따라 늦었지만 제대로 출근을 했다.
그는 분명 시간의 흐름에 지쳐 버린게 분명했고, 존재에 대한 의지를 상실 한 듯했다.
그가 과연 복어를 먹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건 그는 나를 사랑했던 만큼 심한 배신감에 더욱 힘들어 할 것이다.
한낮의 태양은 나를 원숭이가 진지하게 대화 할 수 있는 동질감을 없애 버린 것 같다.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 심장의 3분의1쯤이 칼로 도려낸 듯 통증이 있다.
원숭이를 보내고 나는 산다.
빌어먹을 인생이다.
PS : 뭘 얘기 하려고 하는건지 나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글은 한글97로 50분 가량 타자한 후에 올립니다. 글쓰기를 누른 후 가장 오래 타이핑한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