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정시에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 벨파스트 항구에 도착한다. 우리는 서둘러 5층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그곳에서 주차된 버승에 다시 승차하여 배 안을 빠져 나간다. 신비로운 체험이다. 벨파스트 항구로 나왔다. 이제 북아일랜드 영토에 진입한 것이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를 잠시 거쳐 자이언트 코즈웨이로 이동한다. 벨파스트는 중공업이 발달된 도시였는데, 지금은 죽어가는 도시다. 아일랜드가 영국연방에서 독립할 때 이곳 아일랜드 북쪽만 빼놓고 독립했다. 아일랜드 36개 주 중에서 6개 주는 북아일랜드에, 30개는 아일랜드에 있다. 1906년 헨리 8세 때 아일랜드는 영국 연방에서 독립했다. 그래서 아일랜드는 단독 국가지만 북아일랜드는 영국 연방 국가 중 하나다. 영국 연방 국가는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이렇게 4개국이다.
북아일랜드 주도는 이곳 벨파스트다. 앤트림, 아마, 런던데리, 다운, 퍼매너, 티론의 6개주로 이루어져 있다. 일찍이 아일랜드 섬의 4대 지역의 하나인 얼스터(Ulster)로 일컬어진 지방으로 9개주가 있었으나, 3개주는 아일랜드 공화국에 속하게 되었고, 나머지 6개주는 분리되어 1920년부터 북아일랜드라고 부르게 되었다. 북쪽은 대서양에 면하고, 북동부는 영국해의 노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코틀랜드와 마주보고 있다. 지형적으로는 북동부에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앤트림 고원이 있고 일반적으로 저지이며, 영국 최대의 호수 네이호에서 발원한 밴강이 북류하고 있다. 편서풍과 난류의 영향으로 기후가 온난하여, 겨울에도 4℃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으며, 강수량은 연간 1,500mm 정도다. 북부의 3개주는 스코틀랜드계 주민이 많고, 남부의 3개주는 약 절반을 켈트계 주민이 차지하여, 아일랜드와의 분쟁지역이다. 언어는 영어 외에 일부 켈트계의 게일어를 사용하고, 종교는 주민의 약 2/3가 프로테스탄트다. 이 지역은 일찍이 켈트족이 살고 있었으나, 12세기 이후 영국의 귀족 및 영주들에 의해 정복되었다. 17세기에는 북부 얼스터 지방을 중심으로 프로테스탄트 인구 확보를 위한 스코틀랜드·잉글랜드의 ‘얼스터 식민’이 이루어졌다. 영국에 의한 ‘얼스터 식민’은 다른 아일랜드 지역의 가톨릭계 주민과 분쟁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었고, 지형적인 장애요인이 가해져 남부와는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지역을 형성하게 되었다. 오랜 아일랜드 민족운동의 결과, 영국으로부터의 자치 또는 독립문제가 대두되자, 영국과의 연합을 바라는 얼스터 유니어니스트들의 요구를 이유로 1920년 아일랜드 통치법을 제정, 얼스터 6개주를 아일랜드의 다른 26주와 분리시켜 북아일랜드가 성립되었고, 1922년 영국-아일랜드 조약에 따라 아일랜드 자유국이 수립되었다. 이후 영국령으로 남게 된 북아일랜드가 소수 가톨릭계 주민에게 취업차별, 불평등선거 등으로 심한 차별정책을 취하여 신교와 구교의 교파 간에 분쟁이 일어났다. 1969년 7월에는 런던데리에서 신교와 구교파 양측 간에 일대 충돌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양측의 항쟁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10월까지 계속되었다. 북아일랜드의 분쟁은 남북 아일랜드의 통일을 주장하는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활동으로 격화되어 198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IRA는 폭탄 테러·게릴라전 등으로 영국 군경에 맞섰으나 1985년 11월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 북아일랜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정치형태는 78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는 양원제 의회 아래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영국하원에 13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이번 여행을 통해서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분단으로 원래는 한 나라였던 것이 슬픔을 품고 살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으며 더 많은 것들을 배워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