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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원본과 사본 .역본
그러나 유대인들의 성경에 대한 특별한 존경심이 낡은 성경을 보관하지 않고 묻거나 불태워버렸고 바벨론 유수와 같은 박해 때에 이방인들에 의해 성경이 더럽힘을 받지 않게 하려고 파기하거나 불태웠기 때문에 오늘은 구약의 원본을 완전히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고대의 사본들 역시도 박해의 시기에 많이 유실된 것으로 본다. 현재 보존되고 있는 사본들은 원본 또는 다른사본을 베낀 것들이다. 사본은 기원전 11세기 경부터 사용된 파피루스에 가장 많이 기록되었으며, 그 밖에 양피지나 송아지 가죽, 점토, 나무 껍질 등도 재료로 이용되었다.
[1] 구약의 사본
1) 사해 사본 1947년 사해 북방에 있는 쿰란동굴 속에서 구약 성경의 사본들이 적힌 가죽 두루마리들이 발견되었다. 이 동굴은 기원전 2세기말부터 기원후 2세기초까지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에 속한 쿰란 공동체 사람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 작업을 통해 에스더서를 제외한 모든 구약 성경의 단편들과 함께 외경과 당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종파의 문헌들이 발견되었다. 그 후 1951,2년에 다른 동굴에서도 다른 사본들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11개의 동굴들에서 발견된 문서들은 고문서학적 분석 및 탄소 연대 측정법을 통해 기원전 2세기 경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보다 앞선 것들로는 기원전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레위기와 사무엘서의 단편들도 있고, 늦게는 기원후 2세기경의 사본들도 발굴되었다.
고대 유대인들은 모음 없이 자음만으로 글을 썼으며, 구약성경의 내용을 거의 암기하여 그것을 구전으로 후대에 전해 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히브리어는 점차 잊혀지게 되었고 대신 아람어가 통용어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율법과 예언서를 낭독했는데, 히브리어가 점차 사어(死語)가 되어가자, 히브리어로 된 율법서와 예언서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중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원전 7세기부터 자음만 있던 히브리어에 모음을 달기 시작했는데, 그 작업을 주도한 유대인 학자들을 '맛소라'라 불렀고 그들에 의해서 모음이 붙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맛소라 사본'이라 부른다.
(3) 사마리아 오경 사마리아인들은 구약성경의 모세 오경만을 그들의 유일한 경전으로 여기는데 이를 사마리아 오경이라고 한다. 1616년 이탈리아의 한 여행가가 다마스커스에서 처음 발견하였는데 단편들까지 합쳐서 150여 개의 두루마리들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으며, 가장 최초의 것은 기원후 9세기경에 기록된 것이고 대부분은 14-15세기의 것들이다. 특히 이중에서도 오늘날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꼽히는 사마리아 오경은 세겜의 그리심산 기슭에 위치한 사마리아 회당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아론의 증손자 이름이 붙여져 아비샤 두루마리라고 불린다. 아비샤 두루마리는 적어도 9명의 필사자들에 의해 편집된 것으로 여겨지며, 이 가운데 1149년에 기록된 것이 가장 최초의 것으로 밝혀졌다.
[2] 신약의 사본
전체이건 부분이건 신약 성경이 기록된 그리스어 사본은 대략 5,000여 개에 이르고 그 밖에도 초기 번역본에 대한 사본들이 약 1만개 이상, 교부들의 인용문도 수천개가 발견되었다. 기원후 9세기까지는 모든 사본 그리스어 대문자로만 기록되었고, 소문자는 그 이후에 사용되었다. 대문자 사본으로 공식 목록에 올라 있는 것들은 214개에 달한다. 그 중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본들이 유명하다.
(1) 시내 사본 1884년 시내산의 성 캐더린 수도원에서 독일 신학자 티쉔도르프가 발견한 사본으로 4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 (2) 알렉산드리아 사본 1627년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였던 루카리스가 영국왕 찰스 1세에게 증정한 사본으로 5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3) 바티칸 사본 4세기 초의 사본으로 1457년 바티칸 도서관에 등록되어 계속 보관 중이다. 이 밖의 중요한 대문자 사본들로는 에프라임 사본(5세기초), 베자 사본(5, 6세기) 등이 있다. 한편 소문자 사본들은 9세기에서 17-8세기에 기록된 것들이다. 모두 2,500여 개가 넘는 사본이 남아 있지만 역시 대부분 단편들이다. [3] 고대 역본
(1) 아람어 탈굼역 바벨론 포로기 이후 회당에서는 성경을 낭독한 다음 당시 히브리어보다 아람어를 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유대인들을 위해 아람어로 해설해 주었다. 이같은 구두 해석이 전승을 거듭하다가 기원전 2세기에는 문서화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탈굼이라고 하는 아람어 역본이다. 오늘날 전해지는 탈굼은 모세 오경, 예언서, 성문서집 등이다. 하지만 아람어 역시 나중에는 대중들이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서 히브리어와 같은 운명을 겪는다.
(2) 그리스어 역본 기원전 3세기 초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70명의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했는데, 이를 70인역(Septuagint)이라 부른다.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 팔레스타인과 지중해 지역의 유대인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은 이 70인역만을 사용하였다.
(3) 라틴어 역본 기원후 2세기 말엽부터 유럽 각지에서 라틴어로 성경이 번역되었는데 이들을 고대 라틴어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고대 라틴어역들은 무절제한 수정과 내용의 와전으로 많은 혼란을 가져왔다. 그리하여 382년 교황 다마수스 1세는 당시의 가장 유능한 성경학자인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오늘날 제롬으로 알려져 있음)에게 라틴어 성경의 번역을 요청하였다. 제롬은 383년 복음서를 시작으로 하여 405년에 신구약 번역을 끝마쳤다. '불가타'(The Vulgata: 공통적인)라고 불리는 제롬의 라틴어 역본은 이후 중세 1,000년 동안 서구세계에서 공인성서로 그 권위를 인정받았다.
(4) 그 밖의 역본 초대 교회는 전도자들의 선교활동을 돕고 개종자들에게 그들의 모국어로 된 성경을 제공하기 위해 그리스어 성경을 다른 언어로 번역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신약성경이 근동지방과 남부 유럽 여러 민족들의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현재 고대 이집트어인 콥트어를 비롯하여, 고트어, 아르메니아어, 시리아어, 그루지아어, 이디오피아어, 아랍어역 사본 등이 전해지고 있다.
[4] 현대 역본
(1) 현대 성경 번역의 현황 1999년 말까지 전세계적으로 성경이 번역된 언어는 모두 2,333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성서공회연합회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6,500여 개 언어 가운데 371개 언어로 신-구약을 합친 성경전서가 번역됐으며, 신약은 960개 언어로 번역됐고, 단편만 번역된 언어 숫자는 902개에 이른다. 이는 98년 말 2,212개에 비해 21개가 늘어난 것이다. 성경은 단편이 먼저 번역된 다음 신약과 구약의 순서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2) 영어 성경
가. 위클리프 성경 최초의 영어 성경전서는 위클리프(Wycliffe)의 번역이었다. 위클리프는 1383년 평신도의 손에 성경을 쥐어 주겠다는 목적으로 번역한 뒤 '청빈한 사제단'을 조직, 평신도들에게 성경을 나누어주며 가르치게 했다. 후에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한 위클리프는 종교개혁의 샛별이라고 불렸다.
나. 틴데일 성경 영어 성경 번역의 큰 흐름은 틴데일(Tyndale)로부터 시작되었다. "성경을 모국어 로 평신도의 눈앞에 제시하지 않고는 그들을 진리 앞에 굳게 서게 할 수 없음"을 깨달은 틴데일은 1525년 박해를 피해 영국을 떠나 독일에서 신약을 인쇄하여 영국으로 보냈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과 라틴어 역본(불가타)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어로부터 직접 번역하 였다. 틴데일역은 근대 번역이 출현하기까지 문체나 내용 면에서 표본이 되었고 영어를 훌륭한 문장언어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틴데일 역시 화형을 당 했다.
다. 흠정역 흠정역(King James Version: KJV)은 1604년 영국왕 제임스 1세가 "전 영국 교회가 하 나님 예배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성경번역을 명령하여 성공회와 청교도 성직자 및 평신 도로 구성된 54명에 의해 1611년 완성되었다. 종교개혁의 일환으로서 10세기 이후 발간 된 각종 영역성경에 입각, 왕과 교회의 권위로써 통일시킨 표준역으로, 내용 면에서도 독 일어의 루터역 성경과 쌍벽을 이루는 명역(名譯)으로 알려져 있다. 장중한 문체, 간결하 고도 힘 있는 표현, 유려하고 격조 높은 리듬, 명확하고 구체적인 이미지 등의 특징으로 인하여 ‘영어 산문의 가장 숭고한 금자탑’으로 평가되고 있다. 처음 출판된 이래 수세 기를 경과한 오늘날까지 영국 국민뿐만 아니라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두터운 사랑을 받아왔다.
라. 개정 표준역(Revised Standard Version, RSV) 개정 표준역은 국제 교회 협의회(National Council of Churches)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흠정역(KJV)의 미국 개정판이었다(1946-52). RSV는 전혀 새로운 번역이 아니었으며, 가능한 곳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이전의 번역본에 충실하였다. 가끔 딱딱한 문체의 성경 영어('thou'와 ‘thee'를 포함)가 나오긴 하지만 여러 면에서 RSV는 연구 목적을 위한 최고의 성경이었다. 이것을 개정한 NRSV(New Revised Standard Version, 1990)는 딱딱한 성경 영어적 표현은 좀 적으며 포 괄적인 언어에 예민하지만, 원문에 덜 충실하다는 점에서 가치는 떨어진다.
이 성경은 뉴욕 국제 성경 공회(New York International Bible Society)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RSV의 보수적인 대안으로 불리어졌다. 일반적으로 문자적인 것이 분명하지만 RSV만큼 문자적인 것은 아니며 약간 일관성이 없다. 그러나 연구 목적을 위해 유용하다.
새 영어 성경(New English Bible, NEB, 1961-70)은 영국의 개신교 교회에서 그 당시 박력이 있는 문체의 영국 영어로 출판되었다. 구약은 다소 의역이 심해서 이상한 점이 있지만, 신약은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980년대 NEB의 철저한 개정으로 이루어진 성경이 REB이다. REB는 보다 일관성 있게 만들어졌다.
흠정역 이후 17-19세기 동안 새로운 사본의 발견에 자극받아 수많은 번역이 이어졌다. 1870년 영국에서 신교가 초교파적 개역 작업에 착수하여 1881년 신약이 출 판되었는데 영,미 양국에서 첫 해에 300만부나 팔렸고 4년 후 구약이 마저 발간되었 다(English Revised Version). 1901년에는 미국에서 이를 일부 수정한 American Standard Version이 출판되었다. 그 후로도 Revised Standard Version, The New English Bible, The New American Bible, The Today`s English Version, Good News Bible, The New International Version(NIV), The Living Bible 등이 발간되었고, 가장 최근에는 New Living Translation(NLT)이 번역, 출판되었다.
*비고
아가페 출판사
"바이블"이란 말은 어디서 나왔는가
사본이란 무엇인가
1. 원시 기독교에서 권위있는 책들 *. 예수와 원시 기독교는 결코 성경이 없지는 않았다. 그들은 구약을 "성경"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유대교에서 물려 받았으며 후에 구약 정경이 된 세부분 모두에서 인용되었다. *. 랍비들에 의해서 주후 1세기에 성경으로 규정된 39권의 마소렛 판의 정경은 여러 세기 동안 기독 교회에서 채택하지 않았다. *. 원시 기독교는 "성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확실하게 한정된 정경이나 배타적인 기준을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다. *. 고전 15:1ff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원시 기독교 신앙의 근거가 되고 있다. *. 새로운 살아있는 규범은 우선 주님을 위시해서 주님의 메시지를 증거하는 사도들을 갖고있던 교회에서 형성되었다고 하는 점이다. 2. 사도이후 시대에서 정경화 과정의 예비적 단계들 *. 주님의 말씀을 인용할 때에 그것들이 기록되어 있었다는 표시가 없다고 하는 사실이며 오늘날까지 클레멘스 1서나 이그나티우스 서신이 쓰여진 복음서를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 하는 문제에 대해 아무런 견해도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 최소한 2세기 초까지는 소아시아에서 알려져있던 바울 서신들의 수집이 끝났고 이러한 수집은 이미 마르시온의 정경에 잇던 10통의 편지 전부를 포함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 2세기 중엽쯤에는 상황이 바뀌어져 갔는데 클레멘스 2서와 130년대에 기록된 폴리ㅋ의 서신의 주요 단락들이다. *. 사도시대 이후로 이러한 저작들의 수집과 병행해서 2세기 중엽에는 "성경"이 형성되는 예비적 발전이 있었다. *. 소위 클레멘스 2서는 교회의 기원이 위에서 부터 온 것이라는 교리를 뒷받침하는 권위있는 것으로서 를 들고 있고, 그럼으로써 그 본문의 가장 타당한 의미에 따르면, 그는 사도들을 구약성서와 나란히 살아있는 권위로 놓았던 것. 3. 2C 후반부에서 정경화의 시작 *. Justin이 4복음서 정경을 알고 있었는지는 증명될 수 없고 Justin 에 의하면 인용된 몇 가지 조화를 이룬 공관 복음서의 본문들은 그에게 구전 전승으로 전해졌을 가능성도 아주 높다. *. Marciond의 정경은, 다소간 후대의 서문들에 의해서 보여주는 신학적 의도에 따라서 특정지어 있는데, 분명히 두 부분으로 정확하게 구분된 성격이었다. *. 이 부로 구성된 새로운 경전이 2세기말에 발전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Vienna와 Lyones의 교회들의 서선들 속에서 177년부터 요한계시록을 로 인용하고 있었다. *. 2세기말의 세 명의 위대한 신학자들은 4복음서와 13통의 바울 서신들, 사도행전은 베드로전서, 요한1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이 포함된 사도 서신들을 내용으로 하는 신약 성서를알고 있었던 반면에, 일반 서신들과 히브리서의 경전성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또 종종 다른 문서들이 경전성이 있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 여기서 우리가 개별문서들을 포함시키거나 제외시킨 동기들에 관해서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주 분명했던 의식은 예언적인 문서들의 숫자가 고정된 것과 마찬가지로, 사도적인 문서들도 정확한 한계가 정해져서, 새로운 겅경도 확정적인 것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였다.
1. 오리겐에서부터 고대 말엽까지 헬라 교회 내에서의 신약성서. 오리겐은 자기 새대에 신약성서와 관련해서 교회의 여러지방 별로 어떤 경향이 있었는지를 알아내고, 이 연구에 근거해서 조심스럽게 몇가지의 결론들을 이끌어 낸 것이다. (1) 첫째부류는, 그에의하면, 에 속하는 것이다. (2) = 의심스로운 문헌들 : 베드로 후서, 요한2서, 3서, 히브리서, 그외에 야고보서와 유다서, Hermas의 목자서와 Didache를 로 인용함. (3) :에집트 복음서, 도마 복음서, 바실리드 복음서, 맛디아 복음서 이런 것들은 이단적인 왜곡이 있는 것으로서 배척됨. *. 3세기에는 Codex Claromontanus에 의해 다른 증거가 제시됨. 이 목록 안에는 4복음서와 13통의 바울서ㅅ들, 7통의 일반 서신들, 요한계시록, 사도행전 등이 열거되었다. *. 신약성서의 사도적 서신들의 한계에 대한 불확실성은, 가이사랴의 Euswbius가 자기의 교회사에서 신약성서에 관해 발였던 확대된 논쟁에서 나타남. (1) 모두 성경으로 인정하는 것 (2) 의견이 나누이는 것 (3) 완전히 분별없고 불경건하며, 참된 신앙에서 이탈된 이단자들의 위조인 것. 그에게 있어서 의견이 나누이는 것을 두 그룹으로 나눔. *. 유세비우스 자신이 증거하는 7통의 일반 서신들을 대부분은 알고 있었고,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의견이 일치되는 문헌들과 의견이 나누이는 문헌들 중 첫째 그룹이 함께 묶일 수 없다면, 현대적인 의미의 신약성경이 구성되었던 것이다. *. 이러한 신약 성경의 범위에 대한 불확실성은, 동방 교회에 있어서는 367년의 Athanasius 의 39회 부활절 축제 서한에 의해서 종결되었다. 이 서한은 거의 완전하게 헬라어, 시리아어, 그리고 콥트어로 보존 되어 있다. *. 후기 비잔틴 시대까지 님아 있었던 신약 성서의 헬라어 문헌들 중에는 단지 몇개 만이 요한계시록을 포함하고 있고, 요한계 시록의 대부분의 헬라어 사본들은 그 본문이 주석의 일부로서가 아니면 비 성서적인 문헌들과 함께 나타나고 있다. 2. 시프리안에서부터 5세기까지의 라틴 교회에서의 신약성서 *. Novatian (약 250년 경)은,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열 세통의 바울 서신들 이외에는 단지 요한 1서와 요한계시록만을 "성경"으로 인용. *. Jerome 은 서방과 동방의 경전 사이의 구분을 철폐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 *. Ambrosioster 라는 사람은 히브리거를 제외한 13통을 바울 서신들로 제한 했으며, Pelagius 도 로마에서 약 400년 경에 시도함. *. 4세기 후반에는 Piotoers 는 히브리서와 야고보서, 그리고 베드로 후서를 사도적인 것으로 인용함. 3. 동방의 국가 교회들 안에서의 신약성서 *. 5세기 초에 생성된 시리다의 전승인 Doctrina Addai 가 전하는 바로는, Edess 의 교회를 설립한 사람이 자기를 고별 설교에서 후임자 Aggai 에게 훈계하기를 구약성서 이외에는 복음서, 바울 서신들, 사도행전 등 하나님의 진리가 담긴 것 이외의 다른 문서들이 교회에서 읽혓는 안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 5세기 초에 감독안의 공동 노력에 의해서, 시리아 교회의 성경인, 소위 말하는 Peshitta 가 형성됨. 히브리서를 포함한 14통의 바울서신들 다음에는 세 통의 일반서신들, 야고보서, 베드로 전서, 요한1서 등이 있었고, 요한계시록등 다른 것들은 제외되었다. *. 508년에 Mabby 의 감도 Phildyenus에 의한 공인개정 작업 - 즉, 신약성서의 새 번역 사업으로서, 소위 Philoxeniana - 과 616 년에 Harkel 의 Thomas 에 의한 수정 작업에는 요한2서, 3서와 벧후,유다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이 포함됨. 종교 개혁 이후의 서방교회에서의 정경과 정경에 대한 신약적 문제 *. 1442년에 플로렌스 공회에서 서부 시리아의 야곱파와 연합할 때에도, 아타나시우스의 정경은 다시 한번 논의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공인되었다. *. Trent 공회는 구약 성서 전체와 신약성서 전체가 Vulgate 에 수록되어 있는 그대로 정경성이 있는 것이라고 선언하였으며, 모든 개별적인 책들을 열거하였는데, 그 가운데 히브리서는 바울의 14번째 서신으로, 야고보서는 사도 야고보의 것으로 열거되었다. 공회는 전체 성서의 모든 책들이 같은 권위를 기지고 있는 것이라고 선언함 *. 비록 신약 정경의 외적인 역사는 종결되었지만, 계몽주의 신학 시대 이후로 정경에 대한 교회의 제한과 개신교 신학에 있어서 정경의 구속력 등이 타당한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 Semler 시대 이후로 얻어진 바를 정경의 범위에 대한 여러 세기에 걸친 동요와 역사적 발전에 대한 통찰이야말로 정경의 이러한 형성의 가치와 합리성을 고려하게 해주는 것이다. 정경의 역사는 복음서와 사도문서들로 구성된 두 부분으로 된 정경이 교회의 삶속에서 2세기에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 정경의 범위에 대한 고대 교회의 결정들은 대부분 사도성을 문제 삼았는데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사도성이라고 하는 기준도 역사적으로나 교리적으로 쓸모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 정경의 범위에 대한 현실적인 개방성과 사실상의 한계 설정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성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신약성서의 원본에는 원저자 자필의 원본은 없다. 그러므로 모두 사본에 의하여 전승되어 있다. 신약성서의 원본의 재건에는 (1) 그리스어 사본,(2)고대 번역, (3)교부들의 저서 중에서 성서를 인용한 것과 언급한 것 등의 세가지 사료가 주로 사용된다. 그중에서 그리스어 사본이 주요 사료가 되며,고대의 번역과 교부들의 인용구나 언급, 그리고 그 밖의 단편들은 2차적인 사료가 된다. 그러나 번역도 양질이나 정본의 독법을 반영했을 경우는 그리스어 사본과 맞먹는다. 그리고 초기 교부들의 인용이나 언급은 중요한 도움이 된다. 그리스어 사본의 수는 5천을 넘으며,이것은 다음 네 종류로 분류된다. (1) 파피루스(사본수 81),(2) 대문자 사본(267),(3) 소문자 사본(2768), (4) 일과서(2146) 신약성서의 주요 사본은 기원 2세기에서 10세기 사이의 것이 많이 남아있다. 대문자 사본으로 주요한 것으로는 시나이 사본(4세기,시나이산 기슭 수도원에서 발견되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대영박물관 소장).바티칸 사본(4세기,바티칸 도서관 소장)알렉산드리아 사본(5세기,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것, 대영박물관 소장), 에브라임 사본(5세기,중기 사본,배자 사본(5-6세기,그리스어와 라틴어의 대조판)등이 있다.
사해사본이란 무엇인가? ● 사해사본이란 1947년과 1956년 사이에 사해 주변에서 발견 되어진 사본을 말한다. 이 "사본들"은 일부 완전한 것들도 있 지만, 대부분은 부분적인 조각들로 발견되었다. 광범위한 의미 로보면, 사해사본들은 주전 3세기부터 주후 8세기 무렵까지의 문서들로서 사해바다 주변 지역의 7 장소에서 발견되어진것들을 통칭한다. 사해바다 주변 지역들이란 것은 쿰란, 마사다, 와디 무라바아트, 나할 헤베르, 나할 쩨엘림, 나할미쉬마르, 그리고 키르벳 미르드 지역들을 일컫는다. 이러한 광범위한 의 미에서의 사해사본에는 카이로에서발견되어진 "그니자"까지도 포함되어지기도 한다. ?제 1번 동굴에서 발견되어진 것들은 무엇인가 ? ?제 2번 동굴에서 발견되어진 것들은 무엇인가 ? ?제 3번 동굴에서 발견되어진 것들은 무엇인가 ? ?제 4번 동굴에서 발견되어진 것들은 무엇인가 ? ?제 5번, 6번 동굴들에서 발견되어진 것들은 무엇인가 ? ?제 7번 동굴에서 발견되어진 것들은 무엇인가 ? ?제 8번, 9번, 10번 동굴들에서 발견되어진 것들은 무엇인가 ? ?제 11번 동굴에서 발견되어진 것들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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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알파와 오메가 원문보기 글쓴이: 알파와 오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