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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회(UR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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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 낭송시 스크랩 ‘우리詩’ 6월호와 설앵초
홍해리洪海里 추천 0 조회 142 14.06.05 05:17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생명과 자연과 시를 가꾸는 ‘우리詩’ 6월호가 나왔다. 앞머리를 장식하는 ‘우리詩 칼럼’은 김세형 시인의 ‘시는 어디에서 오는가?’, 이어 ‘신작시 14인 선’으로 조병기 차영호 주경림 박정래 김성찬 전순영 민문자 한영채 남정화 박동남 박정이 권기만 성숙옥 손성태 시인의 시 각 2편씩을 올렸다.

 

 또 이번 호부터 특별기획연재물이 나가는데, 발행인인 홍해리 시인이 ‘인간을 구속, 또는 해방하는 그 무엇 - 치매행致梅行’이라는 주제로 한 호에 10편씩 1년 동안 쓰게 된다. ‘시지 속 작은 시집’은 박홍 시인의 ‘까마중 효소’외 7편과 임채우 시인의 해설 ‘시 와이너리winery’를, ‘테마가 있는 소시집’은 ‘이국異國’을 테마로 김금용 시인의 시 11편과 시작노트를 실었다.

 

 이어 ‘시인이 읽는 시’는 이종암 시인의 ‘6월에 읽는 우리 시’와 나병춘 시인의 ‘내통이며 은밀한 연애이며 합궁인 시詩’를, ‘시와 함께 하는 가족’으로 조영임의 ‘한시한담’과 양선규의 ‘인문학 스프’를 썼다. 시 8편을 골라 지난 일요일 한라산에서 찍은 설앵초와 함께 올린다.  

 

 

♧ 산에서 - 조병기

 

산은 스스로 이름을 짓지 않는다

산은 스스로 말을 만들지도 않는다

언제나 그냥 거기 그대로 서 있지만

높은 곳에 있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아는 체하지 않지만

속으로만 반긴다

산은 이름을 짓지 않아도

스스로가 이름이고

말을 만들지 않아도

스스로가 말씀이다

산은 멀리 있어도 가까이에 있고

가까이 있어도 멀리에 있다

찰나에 있지 않고 영원에 있음을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

언제쯤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산이여

 

 

♧ 몽골초원 스냅 - 차영호

    --테렐지* 가는 길

 

외줄기 선로를 베고 누워

기일게 하품하는

지평선

 

석양은

덥수룩한 종마의 갈기 너머

갈치조림처럼 보글거리고

 

나는

내가 기착해야 할 저녁을

손차양하고 내다보고 있었지

 

저녁참으로 말젖을 끓이다 말고

해끗해끗 눈시울 훔치며 웃는

두메양귀비

내 귓바퀴 좁쌀알 매만지며 속닥이더군

 

초원에는 애당초 길이 없었던 거야

그러니 새삼스럽게 잃어버릴 길 따윈 없는 거지

 

---

*Terelji : 몽골의 국립공원 이름. 수도 올란바트로 북동쪽 80km 지점 헨티산맥 기슭에 있음.

   

 

♧ 아들의 군 제대 - 박정래

 

국방부 시계와 자명종 사이

이십일 개월이 깜빡 흘렀다

 

잔밥과 집밥 사이

아들이 입맛을 달고 돌아왔다

 

고무신 거꾸로 신고

군화와 꽃신 사이

오늘 산벚꽃 눈이 펑펑 내리는구나

 

뜨거운 여름에 떠나

따뜻한 봄에 돌아온

낯선 새 예비군복 한 벌

 

고된 시간이 쌓여 고약 같은 약이 되길

간절히…… 

 

 

♧ 개복치 - 남정화

 

개복치는 상가집 요리로 훌륭하다

혼례용 요리로도 손색없다

좁쌀만한 입을 살짝 벌린 채 오물거리다가 그물에 걸렸을 것이다

개복치 몸에는 생채기만 무성하다

죽음은 수제비를 먹는 것만큼 쉬웠다

개복치는 한 번도 찬란해본 적이 ?다

오토바이가 코너링을 할 때

아버지만 떨어뜨리고 저는 도로옆 가로수에 가서 멈춰선 것처럼

개복치의 주검은 아버지 앞에서 찬란했다 

 

 

♧ 노을을 개키다 - 박정이

 

어둠이 깔려 있는 밤

창문에 내 얼굴을 비벼본다

 

내 시간의 등에서 퍼져나간

초승달 밭에서 나는,

 

노을빛 가을국화차 한잔을 들이 마시고

지친 내 손가락 끝을 바라보며 생각을 했다

 

이슥하게 다가서는 노을들

나는 무서울 만큼의 정적 속에서

그걸 차곡차곡 개켜갔으며

 

잘 포개졌다고 생각했던 노을이

하루의 잘못 포갠 시간들을

조용히 개켜갔다

 

나는 낮동안 내내 찢긴 춤을 추던 만남을

조용히 개켜 놓았다

 

이제, 만남을 벗은 달빛의 바람도

지친 하루를

저문 시간에 걸어놓고 있었다. 

 

 

♧ 블루홀 - 손성태

 

 저 구멍의 밑바닥을 치고 올라온 다이버는 없다

 

 허공을 뚫고 줄지어 내려온 햇빛은 너울거리는 물과 뒤섞이다가 땅의 숨구멍 속으로 꺾여 들어가고 뒤따라 상어도 숨어들지만

 

 빛이 지쳐 닿지 못하는 어둠, 안과 밖이 언제나 서로 궁금해 안절부절못하는 순간에도 바다쇠오리는 숨차게 물속에서 날아다니고 날치는 물 밖으로 튀어나와 공중을 헤엄치는데,

 

 호기심을 들이켜고 아가리 속으로 힘차게 날갯짓한 다이버들은 어느 공포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왔을까

 

 진땀이 날아간 진자리에 된서리 같은 소금기, 햇빛알갱이 바람 물 불이 탈출한 얼룩이 푸르다

 

 심해에 뚫린 푸르스름한 달빛 하나 

 

 

♧ 어느 날 문뜩 - 홍해리

    -치매행致梅行 ? 7

 

아내 얼굴을 보지 않고

 

한평생 살았습니다

 

늘 아늠 곱고 젊을 줄만 알았습니다

 

어느 날 문뜩 마주친 아내

 

주름지고 핏기 가신 창백한 모습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아늘아늘하던 아내는 어디 가고

 

낯선 사람 하나 내 앞에 서 있습니다.

   

 

♧ 왜가리 같다 - 김금용

 

한 시간째 뱃머리에 앉아있는 왜가리

바닷물 따라 올라올 물고기를 기다린다

끈덕진 낚시꾼이다 싶었는데

순간 강 아랫녘으로부터

까맣게 몰려드는 가마우지떼에 놀라

멍청한 구경꾼으로 바뀐다

 

수면을 빠른 안단테 박자로 두들기며

머리를 물속에 박고

날개로 물결을 차며 내리꽂는 공격수들

그 때마다 물갈퀴에서 하얗게 지는 물 벚꽃들

 

새끼줄에 목이 묶여

갓 잡은 물고기를 뱉어내고 마는

어부의 노예 가마우지가 어느새

떼로 몰려들어 분탕질 칠 줄이야

어처구니없어 구경만 하고 선 왜가리,

 

일본이 한국 땅에서 분탕질하도록

양반다리 하고 있던 우리네 같다

허우대만 멀쩡해서는

겉핥기로 깔보다가 나라 잃었던 우리네 같다

눈치 없기가 꼭 저 왜가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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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6.06 18:29

    첫댓글 아름다운 음악에 스민 좋은시 잘 읽었습니다. ^^

  • 14.07.15 00:49

    이렇게 열심히 챙겨주시는 이 있어 우리시가 잘 진행되고 있나 봅니다. 설앵초꽃처럼 숲 그늘을 밝히고 선 시인들! 그 시인들에게 힘을 주시는 김창집님께 감사인사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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