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생트(Absinthe)와 만나다. 2009년 12월 13일
- 지난 8월 제가 출판한 <미술.투자.감상>의 첫 글 ‘화가와 술’이라는 것으로 인해 프랑스 주류회사 사장을 만나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와인을 수출하는 분이었는데, ‘압생트’를 수출한다고 하면서 저에게 술 한 병을 선물하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차 지난주 토요일 드디어 ‘압생트’를 만났습니다.
ㅋㅋㅋ.
아래 글은 술과 관련된 이야기 중 저의 책에 수록된 부분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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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가와 술 - 술을 마셔야 그림이 된다? -박정수의 <미술.투자.감상>중에서
이생진의 『반 고흐, 너도 미쳐라』라는 시집에는 ‘압생트, 너는 랭보의 지갑을 털었고 빈센트의 귀를 잘랐으며 모딜리아니의 목을 비틀었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술과 예술가를 소재로 한 시집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술과 예술가의 관계가 참으로 돈독한가 봅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 로트렉(Toulouse Lautrec, 1864-1901)은 알코올 중독자였는데, 압생트 중독으로 37세에 사망했습니다. 압생트(L'Absinthe)라는 술은 70도 정도의 독주입니다. 주원료의 하나인 향쑥 때문에 환각 작용을 느끼는 술이라고 합니다. 드가의 작품 중에도 ‘압생트’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술잔을 앞에 둔 무표정의 여성과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는 파이프를 문 남성이 있는 그림입니다. 당시에는 술 취한 모습이 일상적이었을 만큼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한 삶을 살았나봅니다. 고흐가 그린 많은 그림들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사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양에 자신의 귀를 자른 고흐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최북(1712-1786)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최북은 자신의 손으로 한 쪽 눈을 찔러 실명한 화가입니다. 두 사람 다 주당이었음에는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라는 김홍도(1745∼1806)는 자신의 호를 ‘취화사醉畵師’라 붙였을 정도로 취중에 그림 그리기를 즐겼습니다. 미술책에 나오는 달마도를 그린 김명국(1600∼?)은 ‘취옹醉翁’이란 호를 썼으며, 그림을 그릴 때 술을 마시고 그렸다고 합니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는 알코올 중독과 싸우면서도 창작의 열의를 불태우다 36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적당한 취기는 예술 활동에 도움이 되기도 하나 봅니다.
우리나라 그림 중 술을 중심으로 한 작품으로는 신윤복의 ‘주사거배酒肆擧盃(1805)’와 김홍도의 ‘주막(1780년대)’그리고 김기창의 ‘주막(1981)’ 등이 있습니다. 서양에는 고흐의 ‘압생트가 담긴 잔과 물병(1887),’ 로트렉의 ‘라미에서(1891),’ 마네의 ‘카페 콘서트(1878),’ 피카소의 ‘압생트를 마시는 여자(1902)’등 술과 술집을 소재로 한 수많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렇듯 술과 예술의 관계가 밀접했던 이유는, 슬이 예술 창작에 힘을 보태주었기 때문인지, 창작의 과정이 너무나 힘이 들어 술의 힘을 빌어 잠시나마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술 활동의 근원이 사회에 있는 한 새로운 변화와 정신 문화의 발전을 위한 창작의 과정은 고통과 번민의 결과물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상 줄이면서 압생트로 넘어갑니다.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술병을 땄습니다.
처음 향기는 중국에서 처음 맛본 ‘향차이’와 흡사했습니다. 새로운 맛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무척 반가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첫키스와 같은 흥분은 아닙니다만 약간의 설레임과 흥분으로 아주 조금 마셨습니다.
쏴한 향기와 입안에서 터지는 술 방울의 움직임이 살아 있습니다. 콧속을 후비면서 입 천정을 간지럽힙니다. 쓴맛과 단맛과 향이 새로운 세계로 끌어들입니다. 그렇다고 처음 맛 보면서 압생트 예찬론자가 되었다는 오해는 말아주세요.
첫키스와 비슷합니다. 설레임과 흥분으로 입술을 부딪혔지만, 미끄덩한 살덩어리의 촉감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감성과 감정이 이를 달래주긴 하였지만요... 55도 임에도 역함은 거의 없었습니다.
더 정확한 전달을 하자면요...뭐랄까, 이과두주에 소주를 섞은 듯한 첫 맛, 미나리를 소금에 찍어 먹은 듯한 오묘함, 와인에 설탕이 약간 배어있는 듯 혀끝 맛이 있더군요.
다음으로는 물에 희석시켜 마셔 보았습니다. 본래는 희석시켜야 한다고 하더군요. 숟가락에 각설탕을 넣고 물을 부었습니다. 처음 청량한 옅은 녹색이 탁한 녹색으로 변합니다. 연두색에 올리브그린이 섞인 색으로 말입니다. 남들은 압생트의 쓴맛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저는 쓴맛을 거의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향과 맛을 무척 즐기는 듯 합니다.
‘어머, 여자 꼬시기 딱 좋은 술이다. 술 맛이 전혀 안나. 향과 맛만 있는 것 같다.’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레몬주스에 소주 몇 방울 떨어뜨린 것 같다나요. 맛있게 한잔을 마시더니 기분 좋은 취기가 온다고 합니다. 맥주나 소주에 취하는 것을 싫어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술이라고 합니다.
저는 발효주에 강한 몸을 지니고 있어 증류주인 압생트는 금새 몸을 취하게 합니다. 그래도 압생트에 대한 선입견과 고흐가 사랑했다는 배경을 지니고 있어 그 술에 매료되기 쉽더라구요.
선입견을 버리고 술을 마셨다면 어떠했을까요. 독특한 색과 향, 묘하게 사람을 취하게 하는 느낌이 있어 그래도 그 술에 매료될 가능성이 컸다고 봅니다.
저는 선을 본 적은 없지만 압생트와의 만남에 에프터를 신청하고 싶습니다. 연애질하기 딱인 술입니다. 전망 좋은 야외에서 으슥하고 음침한 분위기로 이끌기 쉬운 남성의 술인 것 같아요. 아내의 말과 비슷하게 말이죠. 맛과 향과 분위기는 90점이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이상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첫댓글 압생트가 고흐가 좋아했던 술이군요....술맛은 모르지만 글을 읽고 있으니 궁금해 집니다.....*^^*
제가 아는 어떤 화가선생님은 그림그릴때 옆에서 게속 비우는 술 잔을 채워드려야 그림이 잘된다고 해요..
술은 모든사람들과 어울리는 친구인듯~~
결국 맛을 보셨군요~ 축하합니다!! 배아프게 하시더니...
조만간 해넘기기전에 압생트파티를 할 생각입니다. 오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