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낳고 싶어 비법 따랐다"…'딸 바보' 열풍, 그뒤엔 노년 걱정
자녀를 바라보는 가치가 달라지면서 남녀 출생 성비가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셔터스톡]
7,9세 아들을 둔 정모(39·경기도 화성시)씨는 지난해 딸을 출산했다. 정씨 부부는 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몸 만들기'를 시작했다. 6개월 간 정씨는 육류를, 남편은 과일·야채류를 많이 먹었다. 의학적 검증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부부는 딸을 너무나 간절히 원해 시중에 떠도는 ‘딸 낳는 비법’을 안 해본 게 없다고 한다. 정씨는 “주변에서 딸 둘은 금메달, 딸ㆍ아들은 은메달, 아들 둘은 '목메달'이라고 해서 속이 상할 때가 있었다. 아들은 귀엽고 든든하지만, 딸보다 힘이 세고 활동적이다보니 키우기 힘들어서 딸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녀를 바라보는 가치가 달라지면서 남녀 성비가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동의 성비가 104.7명(여아 100명당 남아수)으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1990년에는 116.5명이었을 정도로 남아선호 현상이 강했으나 2007년 이후 정상 성비(103∼107명)를 유지하고 있다. 남아선호의 지표인 셋째아이 성비는 90년 189.9명으로 남아가 거의 두 배에 달했으나 지난해 105.4명으로 떨어졌다. 셋째아이도 2014년 이후 정상수준을 이어가고 있어 남아선호 사상이 사라진 것으로 분석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일부 지역에서 둘째·셋째아의 경우 3,4년부터 남아선호를 넘어 여아를 더 낳는 '딸 바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30년 전만 해도 딸 둘을 둔 부모가 셋째만큼은 아들을 낳았으나 요새는 정씨처럼 반대가 됐다. 2021년 인천광역시의 셋째아 성비는 89.9명이다. 부산·광주·대전·충북은 90명대로 여아가 더 많았다. 2020년에는 울산·대구가, 2019년엔 광주·충북·전남·경북·경남·제주가 그랬다.
심지어 둘째아이도 여아가 많이 태어난 지역이 나온다. 2019년에는 대전·제주에서, 2020,2021년에는 강원·세종에서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네살배기 아들을 둔 김모(37·서울 강서구)씨는 지난달 딸을 출산했다. 김씨는 “'둘째가 아들이면 어쩌지'라고 조마조마 했는데 임신 중 초음파 검사에서 딸인 걸 확인하고 안도했다"며 “어릴 때 '남동생이 먼저 태어났으면 너는 안 태어났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는데, 그 때와 세상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이삼식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 겸 정책학과 교수)은 "딸 선호 현상이 번지면서 아들 낳은 걸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며 "아들 한 두 명이 있는 부모가 딸을 낳으려고 하고, 딸이 있는 부모는 더 낳지 않으려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첫째아이는 성별을 구분하지 않지만 딸이 태어나면 더 좋아한다. 서울 용산구 한모(35)씨는 지난해 딸을 낳았는데, 임신 16주쯤 딸인 것을 확인하고 환호했다고 한다. 오수석 경기도 광주시 인보한의원 원장은 "고위험 출산이 증가하면서 난임부부가 많아 첫애는 성별을 구분하지 않지만 그래도 딸이면 좋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대구·경북의 변화는 더 극적이다. 1990년 전국 셋째아 이상 출생성비가 193.7명일 때 대구는 392.2명, 경북은 294.4명이었다. 그게 2021년 각각 107.2명, 111.3명으로 떨어졌다. 김후남 대구 달서구 상록수요양원 원장은 "대구·경북 지역에 조상을 모셔야 한다거나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요새는 기성세대나 젊은 세대 모두 그런 생각을 별로 안 한다"고 말한다. 경북 포항시 김모(62)씨는 딸 둘을 둔 아들에게 "셋째는 아들을 낳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1년 전 딸이 태어났다. 김씨는 처음에는 섭섭했으나 셋째 손녀가 예쁘게 크는 걸 보고는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며느리가 눈치를 보자 "아들 필요 없다"고 말해줬다.
여아선호의 이유는 두 가지다. 이삼식 회장은 "자녀세대가 부모보다 못 사는 시대가 오면서 아들에게 부양을 바라는 부모가 사라지고 있다"며 "부양은 사회보장제도에 맡기고, 자녀와 교감하는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런 면에서는 아들보다 딸이 낫다고 보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경제적 가치에서 정서적 가치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다.
병 수발에도 딸이 낫다고 판단한다. 수명은 증가하지만 건강하게 홀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건강수명은 평균수명보다 13.39년(보건복지부 자료) 짧아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한다. 김후남 원장은 "요양원 입소 어르신(130명)을 면회 오는 자녀의 80%가 딸"이라면서 "딸은 부모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오거나 생필품을 가져와서 면회시간(30분)을 다 채우고 살갑게 스킨십을 하다 가지만, 아들은 10분만에 간다"고 말했다. 김 원장의 재가센터가 200명의 독거노인을 돌는데, 연락이 닿는 자녀는 딸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장남이 부모를 부양하는 전통이 사라지는데다 아플 때 아들보다 딸이 더 잘 돌보기 때문에 딸 선호로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 기자 sssh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