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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8: 5. 어린아이 하나 6. 실족하게 하면 7. 세상에 화가 있다 8. 손이나 발
마 18: 5.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
교만한 사람은 높은 자에게는 아첨하고 낮은 자를 무시한다. 그러나 겸손한 자는 어린아이 하나라도 사랑하고 귀히 여긴다. 그 아이가 예수님을 믿는 자라면 더욱 그렇다. 그 아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1]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교만한 자는 자기보다 높은 자에게는 혹 아첨할지라도, 자기보다 낮은 자는 낮추어 볼 것이다. 그러나 겸손한 자는 어린아이 하나까지도 사랑하고 존중히 여긴다.
특히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일 때 더욱 그러하다. 예수께서는 후에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마 25: 31-46) 그의 형제들, 곧 그의 종들과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영접하며, 그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히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고, 옥에 갇혔을 때에 방문하는 것이 곧 주님을 영접하고 대접하는 것이며, 또 그의 이름을 가진 작은 자 하나의 영접 여부가 구원과 멸망을 나누며, 의인과 악인, 영생에 이를 자와 영벌에 던지울 자를 나눌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2] 곧 나를 영접함이니
그 어린 아이는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이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으로 그를 영접하는 것은 곧 주를 영접하는 것이다.
* 고전 12: 27 -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예수께서는 후에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마 25: 31-46) 이 진리를 좀 더 자세하게 증거 하셨다.
행위는 구원의 조건은 아니나, 구원의 표가 된다. 우리는 겸손히 서로를 영접하며 서로를 섬겨야 한다.
마 18: 6. 실족하게 하면 -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
예수께서는 그를 믿는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케 하는 것, 곧 범죄하게 하는 것이 큰 죄가 됨을 말씀하신다.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낫다는 말씀은 얼마나 무서운 경고인가? 남을 범죄케 하는 것보다 자신이 죽임을 당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우리는 산즉 남을 살리고 남에게 유익을 주는 자가 되어야지 남을 범죄케 하고 남을 멸망시키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1]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반대로 주를 믿는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케 하는 것은 대단히 큰 죄가 된다.
실족케 한다는 말은 죄를 범하게 한다는 뜻이다.
2]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이 얼마나 무서운 경고인가?
물론 이것은 자살을 가리키는 말씀은 아니다. 자살은 주의 피 값으로 사신바 된 몸, 주의 성전 된 몸을 해치는 죄다.
이 말씀은 남에게 죄를 범하도록 하는 자는 차라리 자신이 죽임을 당하는 편이 낫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남을 살리는 자가 되어야지 남을 죄를 범하도록 하여 죽게 만드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마 18: 7. 세상에 화가 있다 -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
이 세상에는 남을 범죄케 하는 일들이 적지 않고, 그로 인해 세상에 화가 있다.
우리는 남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에 바쳐질지언정, 남을 죄 짓게 하는 것, 예를 들어, 이단을 가르친다든지, 위선적 말과 행위로 남에게 참 신앙과 교회에 대한 반발심을 가지게 한다든지 술취하고 음란한 풍조를 사회에 조장하는 등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1]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이 세상에는 남을 죄를 범케 하는 일들이 적지 않다. 그것은 세상에 화가 되는 일들이다.
우리가 남을 죄 짓지 않게 하는 일, 남을 죄에서 건지는 일에 바쳐질지언정, 남을 죄 짓게 하는 데 바쳐져서는 안 된다.
2]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종교적 이단을 가르친다든지, 위선적 행위로 남에게 참 신앙과 교회에 대한 반발심을 일으키게 한다든지, 술 취함과 음란과 방탕한 풍조를 사회에 조장하는 것은 남을 죄를 범케 하는 예들이다.
3]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남을 실족케 하는 자에게 주는 경고다.
본문은 사회에 대한 신앙인의 책임에 대한 가르침으로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주고, 빛을 그리워하는 자들에게 빛을 비추이며, 갈 길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들에게 참 길을 제시해 줌으로 그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명을 다하기는커녕 도리어 그러한 길을 역행하여 타인을 실족케 하고 구원의 길까지 막아버리는 신앙인들이 있다.
본문은 그러한 자들에게 임할 '화'에 대한 주님의 엄중한 선언이다.
(1) '실족하게 하다'라는 말의 의미
'실족하게 하다'라는 의미는 헬라어로 '넘어지다‘
* 마 16: 23 -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오해하다’
* 마 17: 27 -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그리고 '범죄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실족하게 하는 것은 그가 구원에서 떠나 멸망으로 향하게 하는 중요한 범죄다.
(2) 실족하게 하는 일들
① 인간적인 생각
자신의 뜻으로 하나님의 뜻을 제한하며 가로막는 일이 실족케 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베드로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 마 16: 21-23 –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인간을 구원하거나 버리시는 일은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다. 우리는 그러한 위대한 역사에 감히 뛰어들 수도 없고 참견할 수도 없다. 단지 그분이 시키는 대로 우리의 환경과 여건하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증언할 뿐이다.
그러나 때로 그러한 자신의 위치를 떠나 자신의 생각과 뜻을 앞세우는 때가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범죄요 교만이다.
그것은 남을 이롭게 하거나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를 실족케 하는 일이다. 우리가 온전한 하나님의 종이 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그분의 뜻에 의존해야 하며 그분의 뜻대로 행해야만 한다.
② 오해
타인에 대한 오해는 때로 그를 미워하며 증오하게 하고 심지어는 살인이라는 끔찍한 결과까지도 낳게 한다.
어떠한 사건에 대한 오해는 그 사건을 실패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만다.
무작정 남을 판단하지 말라. 그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오해는 자신과 타인 모두를 파멸 속으로 몰아넣는 불행의 씨앗이 된다.
③ 자만
신앙인은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자부심은 우리로 하여금 항상 살아 있는 신앙 의식 속에 거하게 하여 범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며, 언제 어디서든지 신앙인으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게 하는 원천이 된다.
그러나 때로 그러한 자부심이 그 도를 넘어 교만으로 발전할 수가 있다. 그러한 교만은 유대인의 선민 의식에서와 같이 분리주의와 권위주의, 그리고 타인을 무시하는 우월감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교만은 타인으로 하여금 진리와 신앙인에 대한 적대감을 갖게 하고 자신들은 그러한 진리 안에 결코 포함될 수 없으며, 진리의 한 일원이 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지게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천국은 원하되 천국을 거부하며 진리는 사모하되 진리를 배척하고 대적하고야 마는 결과를 도출하고 만다. 주님께서 금하신 '실족'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뿐 아니라 천국으로 들어가려는 타인까지도 막아버리는 이러한 행위를 주님은 엄히 경고하셨다.
④ 탐욕
인간을 넘어뜨리는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탐욕이다.
물질에 대한 욕심과 권세에 대한 집착, 그리고 정욕에 대한 불붙는 마음들이 인간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욕심들을 제해 버려야 한다.
우리 앞에 웅크리고 있는 이러한 걸림돌을 치워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욕심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로워야 한다.
내 안에 자그마한 욕심이 자리잡기 시작할 때 그것은 나를 실족하게 하며,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까지도 실족하도록 하게 되는 가장 무서운 대적임을 알고 속히 제해 버려야 한다.
⑤ 본이 되지 못하는 성도의 생활
거룩하지 못한 성도의 생활은 불신자로 하여금 진리에 대한 간절함을 상실하게 한다.
이런 이유로 일단 진리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된 자들은 여간해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생활은 물론 언행, 몸가짐까지라도 조심하는 경건한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3) 실족하게 하는 자의 결과
타인을 실족하게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임하게 된다.
그 내용은 연자 맷돌을 목에 메고 바다에 빠지는 형벌이다.(6절)
남을 실족하게 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화가 있다.
그에게는 영적인 고통과 육적인 곤고함이 임할 것이요 구원을 위한 성령의 사역을 훼방하는 무서운 범죄로 말미암아 그도 구원의 길에서 제외되는 커다란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마 18: 8. 손이나 발이 범죄하게 하거든 -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 만일 네 손이나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
주의 말씀은 매우 엄격하고 철저하다. 그는 우리의 손이나 발, 우리의 눈이 우리를 계속 범죄하게 한다면 그것을 찍어버리고 빼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다.
두 손, 두 발, 두 눈을 가지고 계속 범죄하여 지옥 가는 것보다 한 손, 한 발, 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지 않아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1]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여기서 '손' 이나 '발'은 문자 그대로의 신체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 마 5: 29-30 –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만일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해당 부위를 즉각 찍어 내버리면 우리의 신체 중 지금까진 남아있을 만한 지체는 한 군데도 없을 것이다.
손과 발은 유혹의 도구, 수단 및 그 죄악의 실천적 기능에 불과한 것일 뿐 죄의 원인과 동기와 그 근원은 악한 생각이 나오는 곳, 즉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찍어 버리라고 하는 이 경고의 말씀은 악한 생각, 죄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마음의 썩은 생각을 잘라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는 죄에 대해서 철저하고 무자비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성결한 삶을 살게 하시려는 의도에서 나온 말씀이다.
2]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절에 의하면, '지옥 불'이다. 지옥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헨나'(*)는 히브리어 '게 힌놈'(힌놈의 골짜기)에서 유래되었다.
힌놈의 골짜기는 우상 몰렉에게 자기들의 자녀를 제물로 바쳤던 곳이다.
* 대하 28: 3-4 – 3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4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니라.
* 대하 33: 6 –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으며
예루살렘 서남쪽에 위치한 힌놈계곡을 지칭하는 게헨남에서 유래했다. 게헨나는 여호수아 15: 8과 18: 16에서 유대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땅을 구분하는 경계 표시로 언급되었다. 이 말은 아마도 바사어(Persian)에서 기원한 것 같은데, 구약성경에는 파르데스란 단어로서 세 번 나온다(ASV의 아 4: 13에 '과원'(果園, orchard으로, ASV의 느 2: 8에 '삼림'(森林), forest)으로, 전 2: 5에 '공원'(parks)으로).
헬라어 파라데이소스는 크세노폰(Xenophon) 시대로부터 파피루스들과 명각(銘刻)들과 70인 역(27회 나옴, 그 중에 어떤 것들은 '에덴'을 가리킴; 예, 창 2: 8, 9, 10, 15, 16)과 필로(Philo)와 요세푸스(Josephus)의 글에 나온다.
신약성경에는 파라데이소스가 세 번 사용되었는데, 십자가상의 우편 강도들에게 약속된 낙원(눅 23: 43)과 세째 하늘(고후 12: 4)과 약속된 생명 나무가 있는 곳(계 2; 7)을 가리킨다.
(1) 구약성경의 힌놈의 골짜기.
* 느 11: 30 – 또 사노아와 아둘람과 그 마을들과 라기스와 그 들판과 아세가와 그 주변 동네들에 살았으니 그들은 브엘세바에서부터 힌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
(2) 벤힌놈의 골짜기
* 수 15: 8 – 또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올라가서 여부스 곧 예루살렘 남쪽 어깨에 이르며 또 힌놈의 골짜기 앞 서쪽에 있는 산 꼭대기로 올라가나니 이곳은 르바임 골짜기 북쪽 끝이며
(3) 어린 아이를 몰록신에게 희생 드리던 곳
* 왕하 23: 16 -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4) 여호수아가 이것을 막기 위해 골짜기를 더럽혔다.
* 왕하 23: 6 - 또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 거기에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때 불결한 곳, 부정한 곳으로 선언되어 쓰레기를 태우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서의 지옥에 관한 언급은 사 66: 24 외에는 별로 보이지 아니한다.
* 왕하 23: 10 -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떤 사람도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 사 66: 24 -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신구약 중간기에 이르러 묵시 문학의 등장으로 '지옥'이라는 개념이 차차 사람들의 생각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신약의 가르침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게헨나'라는 말이 약 3: 6을 제외하고는 예수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묵시 문학적 종말 사상, 즉 임박한 세계 종말과 심판 사상에 충만해 있던 예수는 이러한 사상을 사람들에게 고취시킴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진리와 공의로써 행동하게 하였다.
* 약 3: 6 -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 마 8: 12 - 바깥 어두운 데 :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 마 13: 50 - 풀무 불 :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지옥에 관한 여러 표상들, 예컨데 '영영한 불', '바깥 어두운데' 등은 지옥에 대한 상징과 비유로서, 죄를 지은 영혼이 영원히 고통당하게 될 것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말이다.
(5) 신약 성서에는 지옥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 마 5: 29-30 –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 마 10: 28 -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히브리어 게한놈 즉 힌놈의 골자기(느 11: 30) 로서, 이곳은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와디 엘 라바비의 골자기라고 했던 곳으로 옛날에는 아이들의 희생제가 있었고 (왕하 23: 10, 힌놈의 아들 골자기) 뒤에는 시내의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곳으로 삼았다.
또 동물과 죄인의 시체를 화장하기도 해서 부정스럽고 음산한 이 골자기가 지옥을 연상하는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과 같은 말을 가르키게 되었다. (마 5: 22, 29-30, 10: 28. 18: 9. 23: 15, 33. 막 9: 47)
신약성경의 지옥 - 게헨나
신약성경에 지옥으로 가장 많이 번역된 게헨나는 12번 나타나는데 헬라어로는 게헨나로 불린다. 히브리어로 골짜기를 뜻하는 게(ge)와 인명인 힌놈(Hinnom)이 함성된 힌놈의 골짜기란 뜻의 지명이다(수 18: 16). 12번 가운데 9번은 지옥이란 명사로 3번은 형용사로 쓰였는데 한 번(약 3: 6)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수께서 친히 사용하신 특이한 표현이다.
이 게헨나만이 불타고 있는 성경적인 배경의 지옥을 묘사하는 용어이다. 그렇다면 게헨나는 어디이며, 타오르는 불은 언제 그리고 언제까지 타오를 불인가? 지옥의 주소로 소개된 게헨나는 다름 아닌 예루살렘 남쪽 비탈 아래의 계곡이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에 빠져 타락이 극도에 달했을 때, 이곳에서 자식들을 몰렉 신에게 불살라 제사하기까지 한(대하 28: 1-3, 33: 1-6, 왕하 23: 10) 배도의 현장이었다. 예레미야는 이 골짜기를 살륙의 골짜기라 칭할 것임을 예고하고, 배도한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며, 땅이 황폐하리라고 예언했다(렘 7: 31-34; 19: 2, 6. 32: 35).
요시아 왕은 그 골짜기를 그렇게 만들었다(왕하 23: 10). 후에는 처형당한 죄수들의 시체와 죽은 짐승들의 사체를 버리고 온갖 오물을 버리는 곳이되어 이를 불태우는 연기가 밤낮 타오르고 있었으며 구더기와 온갖 벌레들이 서식하고 악취가 풍기는 불쾌한 곳이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힌놈의 골짜기 곧 게헨나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악인들이 최후의 형벌을 받을 곳을 상징하기에 이르렀다. 예수께서도 이러한 역사적, 지리적 배경을 적용하여 당신의 말씀을 한사코 거역하는 바리새인들과 완고한 인간들을 질책하시며, 그들이 마지막 심판 날에 살륙의 골짜기 곧 게헨나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 막 9: 43-47 – 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 (없음)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없음)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묘사하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이나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는 지옥 불은 곧 힌놈의 골짜기의 쓰레기와 시체를 태우는 불이었다.
* 막 9: 43, 48 - 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이 게헨나가 신약성경에는 모두 지옥으로 번역되어 있다(마 5: 22, 29-30. 10: 28. 23: 33). 그러나 이러한 지옥은 사람이 죽은 뒤 몸을 떠난 영혼이 불 가운데서 고통받는 곳으로 표현된 경우는 한 번도 없고 장차 있을 재림과 연관된 심판의 때에 (마 5: 22. 25: 41) 몸이 함께 없어질 곳으로 분명히 언급되었다.
* 마 5: 22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 마 25: 41 -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 마 10: 28 -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그 때와 장소는 앞에서 밝힌 대로 재림이 있은지 천년 후에 불못으로 화할 이 땅이다.
* 계 20: 7-10, 13-14 – 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곡과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 벧후 3: 10-13 –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구약의 스올(65번), 신약의 하데스(11번), 타르타루스(1번), 게헨나(12번)등 사람이 죽은 뒤에 가는 곳으로 언급된 표현이 89번이나 나오지만 어느 한곳도 죽은 뒤 몸을 떠난 영혼이 가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곳으로 소개된 곳은 없다.
단지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쓰레기를 태우는 불이 밤낮 타오르던 힌놈의 골짜기를 뜻하는 게헨나를 연상하여 신약성경은 마지막 심판 날에 악인을 태울 불을 영원한 불로 표현한 것이다.
* 마 25: 41 -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높은 자에게는 아첨하고 낮은 자를 무시한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이 넘쳐 나는 하루 되시길 기원 드립니다💖
교만한 사람은 높은 자에게는 아첨하고 낮은 자를 무시한다.
설교 감사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높은 자에게는 아첨하고 낮은 자를 무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