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내 손톱 길이는 짧고 매끈하다.
손바닥도 깔금하고 살갗도 보드랍다.
이런 손은 농사꾼의 손이 아니다.
서울생활이 길어질수록 내 손은 자꾸만 작아지고 세련되어 간다.
나는 이런 손이 싫다.
시골 텃밭에서 삽으로 땅을 파며, 톱으로 통나무를 자르며, 무거운 예초기를 등에 짊어지고는 길섶의 무성한 풀을 깎고 싶다. 지쳐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도 일하고 싶다.
보기만 해도 섬뜩하고 무서운 뱀에 물릴까 싶어서 장화를 신고, 낫, 톱날에 손가락을 다칠까 싶어서 두꺼운 목장갑을 끼고, 뜬금없이 날아다니는 왕탱이(말벌류)에 쏘일까 싶어서 밀짚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서 일하고 싶다.
오늘은 비가 내린다기에 아파트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는 종일 방안에서 머무르고 싶다.
컴퓨터 앞에서 자판기를 두들기며 잡글을 긁적거린다.
아내한테 또 지청구를 여러 차례나 들었다.
'제발 30분이라도 걸으세요. 전립선비대증 환자가 맨날 의자만 타고 앉아 있으면 어떻게 해요?'
맥없이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락하면서 걷기 운동이라도 해야 되는지.
한숨을 후 하고 길게 내뺀다.
후덥지한 여름날에... 이게 무슨 지랄인지 모르겠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잡글을 카페에 올리는 것도 지랄이다.
아내한테 지청구를 먹고는 외출복을 입은 뒤에 유리창 너머로 멀리 도로를 내려다보니 우산을 든 사람들이 개미만큼이나 작게 보인다.
비 내리는데도 우산 들고 청승맞게 바깥에서 산책할 수도 없고.
도로 옷을 바꿔 입은 뒤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한글의 우수성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국어학자도 아니고, 문학인도 아니다. 국어학, 문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런데도 요즘에는 사이버 공간인 카페에서 남의 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왜 그렇게 틀려? 하는 의문이 들어서 글쓰기에 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문자를 가졌다. 한글 자음모음 24개를 활용하면 무려 11,000여 개의 글자 모양을 만들며, 또 그만한 숫자로 소리를 낼 수 있다. 소리를 글자로 나타낼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글자를 가졌는데도 정작 한국사람인 우리는 어떻게 이를 활용했던가? 조금은 반성하고 싶다. 나 스스로도.
회원들의 글을 보면서 어색한 부문을 확인하려고 요즘 '한글 맞춤법'이란 책을 보기 시작했다. 오래 전에 발간되었기에 내용이 무척이나 다를 게다. 현행 한글 맞춤법은 2017 ~18년에 새로 개정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도 내가 가진 책은 오래된 낡은 책이다. 이런 책이라도 보면서 사이시옷(ㅅ)을 공부한다.
우리나라 어문정책기관의 최고인 국립국어원의 사이시옷(ㅅ)에 관한 해설을 보면.. 때로는 아니다 싶다. 지나치게 사이시옷(ㅅ)을 획일화 강제화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서양의 논리학에는 '성급한 일반화'의 논리가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리고는 그 결정에 억지로 짜맞추는 모순을 뜻한다.
우리 '한글 맞춤법'의 개정이 수시로 있어서도 안 되겠고, 그렇다고 해서 무한정 개정을 미루어서는 안 될 것이다.
뜻 있는 학자, 한글로서 문학 글을 쓰는 문인들이 점차로 우리말과 우리글을 다듬어서 쓰고, 이를 모두에게 전파했으면 싶다.
문학카페에 오른 글 가운데 특히나 詩는 그 짧은 길이인데도 왜그리 어색한 낱말과 괴기스러운 표현이 넘치는지를 모르겠다.
나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글이 발전했으면 싶다. 즉 통역과 번역이 쉬운 말과 글이었으면 싶다.
21세기는 국제화시대이다. 한반도의 비좁는 땅(그것도 남북으로 반토막 났음)에서 꼼지락거릴 것이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갔으면 싶다. 더불어 외국인도 한국에 더 많이 와서 한국의 문화에 익숙하고 활용했으면 싶다. 그렇게 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쉬운 것이 말을 배우고, 글을 쓰는 것이다.
국제화, 세계화가 가능한 국어정책이었으면 싶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문학이 큰 부분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한국사람인 나조차 때로는 이해하기 힘든 문학글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내가 생뚱맞게 '한글 맞춤법' 운운하는 게 웃긴다. 내 나이 일흔두 살이다. 늙을 만큼 늙어버린 늙은것이 이제와서 한글말을 새로 배울 바도 아니고, 글쓰기 공부를 더 할 필요성도 그다지 없다.
그런데도 이왕이면 바르게 말하고, 쉬운 글을 써서 후대를 기렸으면 싶다.
이하 생략한다.
창밖은 캄캄해지고...
나도 잠시 쉰다.
1.
어떤 詩의 제목은 '웃음을 벗는다'이다.
또 다른 詩의 제목은 '웃음을 벗다'이다.
'웃다'의 명사형은 '웃음'이다.
이 웃음을 어떻게 벗는다는 것인지...
일흔두 살인 내가, 평생을 한국땅에서 살고 있는 나조차 이게 무슨 소리인지 짐작도 못한다.
※ 벗는다, 벗다는 자동사인가, 타동사인가, 피동사인가?
벗다는 영어로는 'take off'로 번역, 통역한다.
'A laugh takes off.'
'Takes a laugh off.
이런 문장들이 외국인들의 귀에는 어떻게 들릴까?
2000년대는 초현대사회이다.
지금은 2019년이다.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며, 우주 공간너머로 전파가 날아다닌다.
이런 세상에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요상한 말장난/글장난으로 의사전달이 제대로 될까?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문구를 줄여서 약어로 쓴다.
예컨대 '깜놀'이다. '깜짝 놀라다'의 약자이다.
오늘 경향신문 '오피니언'란에는 '제대로 밀당하는 고양이와 썸을 타면서'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랐다.
젊은 정신과 여의사가 쓴 글인데도 나는 제목부터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밀당'이라는 단어는 '밀고 당긴다'는 뜻의 약어로 해석되지만 '썸을 타면서'의 '썸'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인터넷 사이트로 검색해야만 '썸'이란 괴상한 낱말을 이해할 수 있으련지.
만약에 이런 말을 해외 공식석상에서 즉시 통역, 즉시 번역을 한다면? 끔찍할 게다. 도대체 무어라고 통역 번역할까? 별 수 없을 게다. 아예 통역 번역하지 않거나 전혀 엉뚱한 말로 버벅거리다가 그만 둘 게다.
생각해 보자.
그 짧은 詩조차도 요상하게 과잉치장해서 요상한 문구로 써야 하는지?
젖먹이는 젖먹이에 어울리는 유아복을 입어야 하고, 젊은이는 젊은이한테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 하고, 직장인은 직장분위기에 알맞는 옷을 입어야 하고, 노년의 환자는 환자복을 입어야 제격이다.
전혀 엉뚱하고 생뚱맞은 옷을 걸치면? 그냥 웃음거리가 될 게다.
'웃음을 벗다'의 반대 뜻은 '웃음을 입다'인가?
'웃음을 벗다, 웃음을 입다'가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쉬운 말은 진정 모르는가?
초현대에 걸맞는 속도로 의사소통이 되는 그런 글을 썼으면 싶다.
단어 하나로도 뜻이 통하는 세상에서 진부하기 짝이 없도록 빙빙 에둘러서 말하는 話法은 이제는 어울리지 않는다. 벙어리가 버벅거리는 것처럼 엉뚱하게 빗대지 말았으면 한다.
간단명료하게 의사전달이 되는 군대용어처럼 직설적인 표현이었으면 한다.
쉬운 말로 말하고, 쉬운 글자로써 글 썼으면 싶다.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그런 말과 글이 가장 좋은 것처럼...
詩를 왜 써야 하는지?
詩의 본질은 무엇일까?
하는 원초적 질문에 대해서 나는 詩 공부해야 되는지...
텃밭농사꾼인 나한테는 식물 재배학이 더 시급하다. 그게 현실적이다.
햇볕이 안 드는 서울의고층 아파트 베란다/발코니에 비좁게 올려놓은 화분들.
키 작은 식물들은 자꾸만 시들어 간다.
햇볕, 바람, 빗물이 통하지 않는 공간에서, 아무런 거름도 없는 화분 속에서 식물들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채 비실거린다.
있어야 할 공간이 아니기에.
요즘의 내가 그렇다.
텃밭가꾸기, 화초가꾸기, 야생화 등의 책이 잔뜩 있는 시골집으로 내려가고 싶다.
비 내리는 7월 중순이 시작되는 날인 오늘 오후.
마음이 착잡하다.
서울에서는 무기력한 늙은이기에 더욱 그렇다.
첫댓글 글
실력
나 날이 발전 일취월장
오타도 띄어쓰기도 틀린곳 없어
비평만
하지말고 긍정적 사고
좋게 평가 살을 붙여 주석을 달아 보세요
카페에 글 올리거나 글 읽은 회원 숫자는 무척이나 적지요.
조회건수를 보면 고작 20 ~40 정도. 거의 30대에 머물지요.
이게 회원만 읽은 숫자일까요? 아니지요. 비회원이 우연히 검색해서 읽은 숫자도 포함되지요.
회원이 읽는 숫자는 매우 적다는 뜻.
잘 읽어 주지도 않는 카페-인심이대요.
내가 비난, 불평만 했나요?
아니지요.
비판이란 무슨 뜻일까요? 비난, 힐난과는 다른 뜻이겠지요.
다듬어 쓴 글, 조금은 어색하게 틀렸어도 내용이 좋으면 저도 칭찬하지요.
내가 평론가도 아니고, 평가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일반 회원의 한 사람이지요.
남이 글 바르게 써서 나한테 득되는 게 있나요? 없어요. 별로.. .
최 윤환 선생님
댓글 읽어 보았는데요
제가 듣고 싶은 것은 속시원히 말씀 안해 주시네요
(내가 비난. 불평만 했나요?
아니지요
남의 글 바르게 써서 나한테 득되는게 있나요? 없어요)
그 말씀
글귀 눈에 띄어
저는 그것만 참고 해요
비평하다 보면
다음에는 좋게 살을 붙여
칭찬하고 그런 주석도 달아 주시겠지
그런 날이
하루 빨리오기를
학수고대 기대를 하는데?
'내게서 웃음이 떠나가다' 아니면 '나는 웃음을 잃었다'를
시에서는
'웃음을 벗는다' 또는 '웃음을 벗다'로 표현해도 상관없습니다.
시는 묘사나 표현이지
그대로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시로서의 맛이 떨어지고
유행가 가사가 됩니다.
그리고 시에는 직유법 은유법이 있고
의인화(擬人化의인화란 사람이 아닌, 사물을 사람처럼 표현하는 것을 말함)도 있습니다.
그리고 관념적(觀念的현실성이 없으며 추상적이고 공상적인 것 )일 수도
있습니다.
제 시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나는 사라진다
저 넓디넓은 우주 안으로'라고 표현한 것도
내가 로케트나 인공위성도 아닌데 어떻게
저 광활한 우주속으로 사라지겠습니까?
'내가 죽어서 화장하면 한 줌 재가 되고 매장하면 땅 속에서 썩어서
흙의 일부'가 되지만 '넓은 우주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하면
거짓말이지만
시에서는 관념적으로 가능한 표현입니다.
우리가 시를 쓰는데 통역가, 번역가를 위하여 쓰는 것은 아니지요. 남의 생각이 다 내 생각과 같아야 한다는 것은 억지이고요, 내가 싫으면 안 읽고 지나가면 됩니다. 요상하게 과잉치장해서 요상한 문구로 써야 하는지? 이런 말씀은 글 쓴 사람을 모독하는 말이 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제가 글 쓴 사람을 모독했나요?
임 선생님이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할 수 없네요.
저는 모독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내가 받아들이는 느낌과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 것일 뿐.
책벌레인 나한테는 서점에 가면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대요. 그 가운데 하나가 문학글...그 문학 가운데에 또 하나가 시.
제가 본 견지에서만 제가 글 쓴 것이지요.
임 선생님도 제 글 읽으면서 그냥 지나가면 되겠군요.
저는 아니지요.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의견을 조율하고 싶지요. 지나친 일방적으로는...
하여튼 댓글 고맙습니다.
생각차이가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니까요.
최선생님은 이제 서울 사람이지
충청도 시골의 농사꾼은 아닙니다.
어쩌다 고향(시골)에 한 번씩 가시고
전문적인 농사를 짓는 분도 아니신데요.
'내게서 웃음이 떠나가다' 아니면 '나는 웃음을 잃었다'를
시에서는
'웃음을 벗는다' 또는 '웃음을 벗다'로 표현해도 상관없습니다.
시는 묘사나 표현이지
그대로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시로서의 맛이 떨어지고
유행가 가사가 됩니다.
그리고 시에는 직유법 은유법이 있고
의인화(擬人化의인화란 사람이 아닌, 사물을 사람처럼 표현하는 것을 말함)도 있습니다.
그리고 관념적(觀念的현실성이 없으며 추상적이고 공상적인 것 )일 수도
있습니다.
제 시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나는 사라진다
저 넓디넓은 우주 안으로'라고 표현한 것도
내가 로케트나 인공위성도 아닌데 어떻게
저 광활한 우주속으로 사라지겠습니까?
'내가 죽어서 화장하면 한 줌 재가 되고 매장하면 땅 속에서 썩어서
흙의 일부'가 되지만 '넓은 우주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하면
거짓말이지만
시에서는 관념적으로 가능한 표현입니다.
사이 시옷이 들어간 말은 수없이 많습니다.
'김칫국', 저잣거리',
'하굣길', '등굣길', '바닷가', 요즘 내리는 비는 '장맛비'
저는
사이시옷(ㅅ)이 지나치게 남발한다고 보지요.
제 입에는 '하교길', 장마비'이지...
저잣거리, 김칫국, 하굣길, 장맛비라고 강하게 발음이 안 됩니다.
국어 어문학에 대해서 문제점이 있다는 생각을 조금 나타냈습니다.
우리말을 우리글로 적는데 더욱 조율해서 통일시켜야겠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서로의 생각과 주장을 조율하면서요..
그만큼 모두 국어를 사랑하며 존중한다는 뜻이지요.
또 글 기다립니다.
빙그레 웃습니다.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으면서 더욱 성숙하게 되니까요.
생각과 주장이 100% 합치되지는 않을 겁니다.
저는 민주주의 원리를 51 : 49로 보지요. 찬성과 반대를 하면서 때로는 우측으로 좌측으로, 이따금 뒤로 후퇴하되...
본질은 앞으로 나가는 것이지요.
문학 글 종류는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시. 무척이나 짧아서 쉽게 읽히지요.
그에 대한 개인의 느낌 생각이 획일적으로 통일하라고 강용할 수는 없지요.
제 생각은 제 생각일 뿐, 다른 사람이 다르게 해석하겠지요.
덕분에 시가 무엇인지, 한글 맞춤법이 무엇인지를 더 생각합니다.
여러 개의 댓글 정말로 고맙습니다.
또 좋은 댓글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