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토)
11시 55분 진에어 비행기를 탔다. 구름을 뚫고 올라가니 창문으로 하얀 구름이 햇빛에 반짝인다. 약 200명 정도가 탑승했는데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승객들은 가족 단위들이 더러 보이고 여성들이 훨씬 많다. 한 시간 남짓 만에 제주섬이 멀리 아래로 보이다. 날씨는 아주 좋다. 며칠 전에 가족들과 제주에 와서 여행하고 가족은 서울로 가고 혼자 남은 태용이를 6번 게이트에서 만나 서귀포행 버스를 탔다. 약 한 시간 만에 서귀포터미널에 도착했다. 서귀포터미널 뒤편에 하냔 지붕을 한 월드컵경기장이 보인다. 2002 월드컵을 위해 지은 축구전용경기장으로 현재 제주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이다. 제주의 오름과 분화구에서 모티브를 따온 독특한 지붕 디자인으로 멀리에서도 눈길을 끌고 바다와 섬,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인근에 예약해 놓은 타마라호텔 방에 짐을 내려놓고 3시 반경에 올레 7-1코스를 출발했다. 공원길을 지나 언덕길을 오르다가 편의점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금세 동백과 천연난대림이 우거져 있는 악근천 상류의 깊은 숲속으로 들어서니 엉또폭포 절벽바위 낭떠러지가 보인다. 큰 비가 내리는 동안 잠시 폭포가 되는 것이라 지금은 물 한 방울 없이 말라 있다. 대신에 바로 앞에 있는 무인카페에서 아쉬운대로 영상으로 폭포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엉또폭포를 돌아서 고근산으로 올라갔다. 가파를 계단을 한참 올라가서 벤치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오르니 정상이 나온다. 고근산(표고 396m)은 서귀포시 신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오름으로 시야가 탁 트여 있어 마라도에서 차귀도까지 제주 남쪽 바다와 서귀포시의 풍광 그리고 서귀포 앞바다 수평선과 망망대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설문대할망이 한라산 정상을 베개로 삼고 고근산 굼부리에 궁둥이를 얹어 앞바다 범섬에 다리를 걸치고 누워서 물장구를 쳤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고근산을 내려오니 감귤농원들이 늘어선 동네가 나온다. 감귤나무 잎들이 햇빛을 받아 유난히 반짝이고 가지들에는 작은 구슬 같은 짙푸른 열매들을 달고 있다. 이어서 조용한 중산간 마을인 서호마을을 지나 호근마을로 들어선다. 감귤밭에 둘러싸인 집들이 드문드문 자리 잡은 아기자기한 마을로 돌담과 감귤나무와 집들이 어우러진 제주 농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조금 더 지나면 하논분화구 안내소가 나오는데 하논분화구는 동양 최대의 미르현 분화구로 수만 년 동안의 생물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살아있는 생태박물관’이라 불린다. 하논은 큰 논이란 뜻으로 분화구에서 용천수가 솟아 제주에서는 드물게도 논농사를 짓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논은 모내기를 끝냈는데 일부 논에는 모판들이 논 가장자리에 놓여 모내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논분화구를 지나 서귀포 서문로터리 근처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 도착하니 오후 7시다. 15km를 걷는데 3시간 반이 걸린 셈이다. 버스를 타고 서귀포터미널로 와서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 쉬었다. 일기예보를 보니 월요일 오후 늦게 비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6월 19일(일)
아침 8시에 호텔을 나섰다. 하늘은 흐리고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제주올레여행자센터로 가서 인근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7코스를 출발했다. 올레센터 앞에서 귤을 파는 아줌마한테서 맛있어 보이는 한라봉을 몇 개 샀다. 서문로터리를 지나 해변 쪽으로 내려가니 칠십리시공원이 있다. 제법 넓은 공원에 유명한 시인들이 서귀포를 주제로 쓴 시비들이 여럿 늘어서 있다. 시공원을 지나니 삼매봉으로 이어지고 야트막한 삼매봉에서는 서귀포 앞바다의 네 섬인 범섬, 문섬, 새섬, 섶섬 그리고 서쪽으로 마라도와 가파도까지 한눈에 보인다. 삼매봉 정상에 남성대라는 팔각정이 세워져 있는데 수령선 멀리 남극노인성을 바라보는 곳이라는 뜻이다. 팔각정을 지나 조금 더 가서 돌계단을 내려가니 해변에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제법 큰 풀장이 있는데 선녀탕이라고 한다. 아침 이른 시간인데 한 젊은 여성이 선녀탕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 다시 돌계단을 올라와 해변길을 돌아가니 외돌개라고 하는 큰 바위기둥이 해변에 우뚝 서 있다. 외돌개는 삼매봉 앞바다에 외롭게 솟은 높이 20m, 둘레 10m의 기둥바위 이름이자 이 지역의 지명이다. 약 150만 년 전 화산이 폭발할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외돌개를 왼편으로 보면서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멋진 해안절벽이 나오는데 이곳이 7코스의 절경인 돔베낭골∽속골 바당올레다. 바당올레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올레길이 산뜻한 모습의 카페 ‘60 Beans’ 마당으로 들어선다. 수국을 비롯한 예쁜 꽃들과 조각들로 가꾸어진 아담한 정원 앞으로 서귀포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제주의 6월은 수국의 달이다. 가는 곳마다 온갖 색깔의 수국이 활짝 피었다. 카페 분위기가 좋아서인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우리도 들어가서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쉬었다. 속골은 제주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빗물이 고이는 곳이라 30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계단식 논이 있었다고 한다. 계속 해변길이 이어지는데 제법 선선한 바닷바람이 불어서 그늘은 시원하다. 조금 더 가니 해변가에 빨간 우체통을 여럿 세워놓은 바닷가우체국이 서 있다. 가족애, 우정, 보내지 못한 사연 등의 사연별로 편지를 써서 해당하는 우체통에 넣으면 1년 후에 배달한다고 한다. 속골을 지나 언덕을 내려가면 동글동글한 모양의 커다란 돌들이 널린 공물해안이 나오고 한치가 유명한 법환포구로 이어진다. 법환마을은 소라, 전복, 해삼이 제주에서 가장 많이 나고 해녀문화로 유명한 마을이다. 2004년에 ‘잠녀마을’로 지정되었다. 법환포구 올레길에 해녀학교 겸 식당이 있어 소라성게죽으로 점심을 먹고 나오니 할머니 해녀들과 젊은 아가씨들이 잠수복을 입고 짝을 지어서 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해녀학교 수업을 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제주 해녀들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그나마 이렇게 전통을 이으려는 노력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포구 한쪽에는 넓은 풀장을 만들어 놓았는데 옛날에는 남녀노천탕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올레길은 해변길을 따라 쭉 이어지고 해송과 숲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아주 경쾌하다. 법환마을이 끝날 무렵 강정마을과 경계를 이루는 두머니물이 있다. 이곳은 밀물 때에 바다에 잠기고 썰물 때는 바닥이 드러나는 예로부터 애기어멍(애기엄마)이 젖이 나오지 않을 때 이 물을 먹으면 잘 나온다 하여 애기어멍들이 이곳에 와서 물을 마시고 목욕을 했다고 한다. 조금 더 가니 자그마한 섬이 지척에 보이는 올레길 옆으로 아담한 카페가 있다. 섬 이름은 ‘서근도’라고 하는데 옛날에 이 해안에 물고기들이 많아 돌고래들이 밀물에 들어왔다가 썰물에 미처 나가지 못해 포구에 갇혀 죽어 썩는 냄새가 많이 나서 주민들이 ‘썩은섬’이라고 부른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물고기가 줄어 고래는 구경도 못한다고 한다. 더위를 식힐겸 커페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니 옴 몸이 시원해진다. 바로 앞 자리에 나이든 아줌마가 혼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멍때리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온다. 몇 년 전에 남편이 정년퇴직한 후 서귀포로 이사해서 살고 있다면서 이곳 카페가 경치가 좋아서 자주 놀러온다고 한다. 나이는 올해 일흔인데 벌써 증손자가 생겼다고 한다. 증손주들이 자기를 왕할머니라고 부른다며 은근히 자랑을 한다. 나이에 비해 건강해 보이는 참 복이 많은 할머니다. 강정마을에 들어서니 튼튼해 보이는 길다란 방파제 옆으로 해군기지가 조성되어 있다. 공사를 시작할 당시 강정마을 주민들과 환경운동가들이 구럼비바위와 마을환경 보존을 위해 오랫동안 시위를 했던 현장이다. 도로 옆으로 시위 흔적이엇던 천막과 깃발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한참을 더 걸어서 월평포구를 지나 7코스 종점 월평아왜낭목에 도착햇다. 오후 4시 반이다. 약 20km를 걸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서귀포 호텔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인근 돼지갈비 무한리필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기본만 먹었는데도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