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지방에 내린 장맛비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6일 오전 경남 함안군 대산면 하기리의 시설하우스에서 황철옥씨가 물에 잠긴 수박을 들어 올리며 깊은 한숨을 쉬고 있다. 혼자 살던 80대 산사태 참변 집 있던 자리 흙이 산더미처럼 “얼마 안 있으면 수확인데 …” 수박·멜론 등 하우스 침수 돌풍으로 농업시설 완파도 장맛비에 작물 병들고 망가져 “농사 포기 불가피” 한숨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쏟아진 장맛비로 전국에서 피해가 잇따랐다. 산사태로 인명피해가 발생했는가 하면 시설하우스 침수·파손으로 수확을 앞둔 작물이 큰 피해를 봤다. 6일 오전 발생한 산사태로 주택 2채가 매몰되고 주민 한명이 사망한 전남 광양시 진상면 비평리 탄치마을의 피해현장.
◆산사태로 안타까운 인명피해…전남 광양=“‘콰광쾅쾅’ 하는 천둥소리에 놀라 밖에 나가봤더니 집이 있던 자리에 흙이 산처럼 쌓여 있었어요.”
6일 오전 6시께, 전남 광양시 진상면 비평리 탄치마을에서 밤새 내린 비로 산사태가 나면서 주민 한명이 사망하고 집 2채가 매몰됐다. 사망자는 매몰된 집에 혼자 살던 이모씨(82)로 갑자기 쓸려 내려온 토사를 피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방당국이 포클레인 등을 동원해 장대비 속에서 필사적으로 구조작업을 펼쳤지만, 이씨는 산사태 발생 9시간 만인 오후 2시45분께 주검으로 발견됐다.
비보를 접한 주민들은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서용래 탄치마을 이장은 “산사태 나는 소리를 듣고 나와보니 (이모씨의 매몰된 집) 지붕 아래 얼마간 공간이 있어서 안쪽이 들여다보였다”면서 “저만큼 공간이 있으니 살아 있겠다 싶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매몰된 다른 집은 비어 있던 상태여서 추가 인명피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에 따르면 새벽 5시52분 엄청나게 큰 소리와 함께 산이 무너져 내리면서 산 밑에 있던 집 2채가 토사에 쓸려 내려갔다. 현장에는 매몰된 집 뒤편 산의 밤나무가 토사와 함께 쓸려 내려와 아랫집 지붕 위에 얹혀 있어 산사태 당시의 위급함을 짐작게 했다.
한편 매몰된 집 뒤편 산에서는 2년 전부터 산을 깎아 집을 짓는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이번 산사태와 연관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수확 앞둔 시설하우스 침수…경남 함안, 전북 고창=“일주일 후면 내다 팔 수박이었는데, 이렇게 되니 한숨밖에 안 나오네요.”
6일 오전 11시, 경남 함안군 대산면에서 시설수박농사를 짓는 황철옥씨(48·하기리)는 무릎까지 물이 들어찬 시설하우스 안에서 수박을 건져 올리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시설하우스 4동이 물에 잠기는 피해를 본 황씨는 “수확을 코앞에 두고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운 수박을 버려야 해 피해가 막심하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시설하우스 한동당 480∼500개가 자라고 있었다는 수박은 물에 잠겨 보이지 않고 줄기만 둥둥 떠 있었다.
정대진씨(60·평림리)도 수박·멜론 시설하우스 4동이 침수되는 피해를 봤다. 정씨는 “비가 그치면 수박과 멜론을 수정할 참이었는데, 밤새 내린 비로 시설하우스가 침수돼 작물을 모두 뽑아내야 할 판”이라고 속상해했다.
25년간 시설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안형순씨(65·옥렬리)는 “장마로 시설하우스에 물이 찬 건 올해가 처음”이라며 “시설하우스 6동, 개수로 1만개에 달하는 멜론을 한개도 건질 수 없어 너무 아깝다”고 허탈해했다.
전북 고창에서도 수박 시설하우스가 침수됐다. 7일 오전 10시30분, 대산면 대장리 용산마을의 수박농가 유병도씨(65)는 “수박농사 30년 동안 한밤중 기습 폭우로 시설하우스가 이렇게 잠긴 건 처음”이라고 했다. 5일부터 시작된 장맛비에다 6일 밤과 7일 새벽에 쏟아진 ‘야행성 물폭탄’에 비닐하우스 5동 전체가 침수된 것. 유씨는 “낮이라면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든지 배수구를 더 깊이 파든지 손을 썼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유씨는 “26일부터 출하하려고 지금껏 애지중지하며 키웠는데 억장이 무너진다”며 “긴급히 물을 빼내고, 생장촉진제라도 줘 최대한 살려보려 노력하겠지만 올 수박농사는 포기하게 생겼다”고 탄식했다.
이에 전북농협지역본부(본부장 정재호)와 고창 대성농협(조합장 김민성)은 신속한 피해 지원에 나섰다. 장경민 농협경제지주 전북지역본부 부본부장과 정동균 대성농협 상임이사는 이날 현장을 찾아 농가를 위로하고 복구 대책을 논의했다.
전북도에 따르면 7일 오전 10시 기준 고창 0.6㏊, 부안 2.5㏊ 등에서 농작물 침수피해가 발생했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앞줄 오른쪽부터)이 7일 이동진 전남 진도군수,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남 해남·완도·진도)과 함께 진도군 의신면을 찾아 집중호우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해남을 비롯해 진도 등 집중호우 지역을 방문한 이 회장은 “피해 집계가 아직 안된 상황이라도 영양제 등을 먼저 지원하고 침수지역에는 배수작업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양수기를 신속하게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진도=이상희 기자, 사진=김병진 기자 ◆돌풍에 장맛비까지…충남 논산=“애써 키우던 작물이 장맛비에 죄다 썩거나 병들고 있으니 기가 찹니다.”
6일 충남 논산시 양촌면 거사리·반곡리·명암리 일대 시설하우스에선 멜론·상추·방울토마토·고추 등이 누렇게 변해 썩어가고 있었다. 탄저병과 역병이 돌기 시작한 곳도 눈에 띄었다. 뜨거운 날씨와 많은 비에 잇따라 노출된 탓이다.
주말인 3∼4일 내린 비는 50여㎜. 장맛비치곤 아주 많은 양은 아니었다. 하지만 6월29일 이 일대 약 3㎞ 거리를 돌풍이 강타하면서 비닐하우스 36동(11농가)과 농경지 2.4㏊가 피해를 봤다. 이어 장맛비가 들이치면서 작물에 큰 피해를 줬다.
멜론을 재배하는 조모씨는 “비닐하우스 안에 물이 들어차 멜론 껍질이 노랗게 변해 상품성을 완전히 잃거나, 멜론이 물을 많이 먹어 당도가 떨어지고 과육이 터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상추와 딸기를 재배하는 김용옥씨(64)는 “돌풍으로 비닐하우스 6동이 파손됐고, 이어서 내린 많은 비로 상추도 모두 망가졌다”고 안타까운 상황을 전했다.
인근의 딸기농가 강향현씨(48)도 사정은 비슷했다. 8월말에 아주심기(정식)를 하려고 3월부터 키운 딸기 모종이 이번 돌풍과 장맛비에 병들거나 썩고 있는 것. 강씨는 “비를 많이 맞고 뜨거운 날씨에 노출되면서 벌써부터 역병과 탄저병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피해를 설명했다.
피해를 본 11농가 가운데 9농가가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했지만, 자기부담금을 차감한 금액만 보상받을 수 있어 손실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더구나 하우스용 철재 파이프 가격이 최근 크게 올라 손해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강승원 논산 양촌농협 팀장은 “몇년 전만 해도 비닐하우스 1동 짓는 데 1000만원가량 들었는데 최근에는 1700만∼1800만원으로 올라 농가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양=이상희, 함안=노현숙, 고창=황의성, 논산=서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