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심으로 산다는 것
어제가 큰애 생일이었습니다.
저는 애들 생일 때 축하선물로 봉투에 나이만큼 돈을 넣어줍니다.
올해는 37만 원을 넣어서 책상 옆에 올려두고 출근을 했지요.
저녁에 아내가 딸한테 전해주라는 뜻에서였습니다.
전날 술 한잔하고 온 탓에 화가 난 아내는 출근하는데 돌아보지도 않고 누워있었습니다.
물론, 아침밥도 차려주지 않은 상태였고...
어릴 때부터 장남으로 자라난 탓에 어머님은 아버지와 제 밥에 유난히 정성을 들였습니다.
아버지랑 제가 식사 때에 집에 아무도 없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난히 딸이 많은 저희집 여자, 형제들은 어머니한테 불만이 많으셨지요.
불만이 많았지만, 제가 결혼하자 그 압박은 제 아내한테 그대로 전수(?)가 됐습니다.
그래서 결혼 이후 아내는 제가 퇴근할 때 집에 없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친구들과 만났다가도 남편 올 시간이라며 허둥지둥 돌아오기 일쑤였지요.
하지만, 직업상 출장이 잦았던 탓에 아내를 꽁꽁 묶어두고만 살았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퇴근만 하면 의례 저녁밥이 준비되어 있는 줄 알고, 아침에는 식사를 해야 출근하는 걸로 아는, 밥심으로 살아가는 가장이었습니다.
큰애 생일인 어제 아침, 생전처음 아침을 굶고 집을 나서려니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에게 밥도 안 차려줘? 앞으론 내가 밥을 먹나 봐라. 앞으론 밖에서 밥을 해결하고 들어가야지, 하고 속으로 앙다짐을 했지요.
점심 때 손님이 찾아와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아내한테 문자가 왔습니다.
'저녁에 사위랑 함께 저녁 식사하기로 했으니 일찍 들어오라'고
'아침밥도 안 차려 준 사람하고 무슨 저녁 식사를 같이 해? 너희들끼리 식사하시오'
저는 일언지하에 짤라버렸지요.
아내도 아침에 한 행동을 저녁 때 이렇게 되갚음 당하리라곤 생각 못했는지 당황하는 눈치였습니다.
사위하고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약속을 했던 터라 많이 난감했을 겁니다.
결국에는 잘못했으니 마음 풀라는 문자가 오더군요.
사위 덕분에 사과를 받아낸 거였지만, 아침 식사 한끼를 차려주지 않은 아내는 '밥심'의 위력을 절실히 깨달은 하루였지요.
『빗새 』✍🏻
첫댓글 그래도 결국사과 받고 따님 생일 축하 저녁 식사는 같이 하셨군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