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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변화를 받으라 (2011.11. 6)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벌써 11월 첫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어제는 캠퍼스 교정을 지나치면서 어느새 땅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과 앙상해진 가지들을 보았습니다. 세월이 빠르게도 흘러간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조금 지나면 곧 겨울이 오고 해가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인터넷 검색하다가 돈 버는라고 결혼 못한 40대가 15%나 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젊음의 시대도 너무 빠르게 지나갑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지만 사는 것이 불안 한 것은 여전합니다. 세계경제를 보면 그리스처럼 국가적 파산 위기를 맞고 있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global 시대에 이제는 지구 반대쪽에서 일어난 일도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지금은 잘 되어도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미래가 불안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세대에 무엇인가를 투자를 잘 해서 많은 돈을 벌고 안정되게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세상을 잘 대처한다고 우리가 안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생성되고 파괴 되고, 새로 나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불안하고 흔들리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 이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듯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의 ‘마음’을 굳게 지키는 것입니다. 잠언서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이 이에서 남이라" 하였습니다.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생명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복잡한 현실 속에 그냥 마음 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마음 나도 몰라” 하면서 세대 풍조에 끌려 떠내려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과연 이 세대에 우리 자신을 맡길 수 있을까요? 시대가 점점 풍요로워진다고 우리가 안심하며 살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시대의 본질과 결말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창 8:22). 세상은 선과 악, 긍정과 부정 두 가지 양면을 갖고 있습니다. 또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갖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7장에서 우리 안에도 두 가지 법이 있다고 합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세상은 두 가지가 섞여 있는 희색 지대입니다. 세상에 마음을 놓고 살다보면 우리의 마음도 희색지대가 됩니다.
물론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해서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처럼 화려하고 풍요로움을 주는 세대가 어디 있겠습니까? 점점 과학이 발달하여 엄청난 혜택을 누리기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1500만 시대입니다. 저는 이 중에 아직 끼지도 못했지만 애플 아이폰 4s가 예약 폭부로 서버가 다운될 정도라고 합니다. 중국은 우주선 선조우 8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해서 자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발달해도 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선한 양심입니다. 그 양심에 담을 수 있는 사랑과 생명과 평안은 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줄 수 있는 천국도 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단은 예수님께 한번만 절을 하면 천하 만국의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 만국의 영광은 누릴 수 있지만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 없게 됩니다. 세상을 좇아가는 결국은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시험을 물리치시고 마음을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세상을 이기는 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좇아 사는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좁은 길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세상과 반대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하여 사는 길입니다(롬 6:11). 우리의 마음이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분별하게 될 때 세상이 어떻든 우리는 이기는 자가 됩니다.
문제는 어떻게 우리가 이 세대에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해야 분별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정말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변하지 않으면 세상의 가치관 속에 파묻혀 살다 점점 우리 자신도 세상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희색지대에 자신의 아성을 쌓고 살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이 고민하고 절망하는 것 중에 제일 큰 고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안 바뀌는 것입니다.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평생을 살아도 본성이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 이고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좋은 성격 습관 고집 그대로 가지고 살아갑니다. 교회를 오래 다녀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또 세상을 끌고 나갈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탓하고 원망하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변하고 달라져야 합니다. 내가 달라지면 나의 삶이 달라지고, 남편이 달라지고, 아내가 달라지고, 자녀가 달라지고, 가정이 달라지고 세상이 달라집니다. 세상이 달라지는 가장 빠른 길은 자신이 달라지고 변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분명 다른 사람이 달라지고 세상이 변해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 자신입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에 납골당이 있습니다. 교회직원들과 신부들을 안치하는 곳인데 그곳에 한 주교의 무덤 앞에 이런 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젊었을 때 내기는 자유와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다. 나의 상상력과 꿈은 세상의 어떠한 글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좀더 나이가 들어 인생의 지혜를 갖게 되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땅만이라도 변화 시켜야 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황혼에 이르러서 나는 내 나라를 변화 시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의 가족만이라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임종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문득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 시켰더라면 나를 보는 가족들이 변화 되었을 텐데, 그리고 내 가족의 변화를 보고 이 땅의 사람들이 변화 되었을 것을..... 또한 이 나라의 변화를 보고 세상이 변화되었을지 모르는데.......”
자신인 변화되면 세상이 변화된다는 진리를 말해주는 묘비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고 하셨고 세상에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달라지면 세상이 달라진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그렇게 하나님의 앞에 자신을 부인하고 하늘 아버지의 뜻을 좇아 죽기까지 복종하시며 사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달라졌습니다.
사람이 달라지고 변하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달라지면 행동이 변합니다. 행동이 계속 되면 습관이 생기고, 습관은 인격을 형성하여 진정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마음을 행동양식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마음의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건물을 짓고 길을 넓히고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돈으로 할 수 있지만 사람의 변화는 그 어떤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요즘 성형이 얼마나 유행합니까? 또 메이크업을 얼마나 잘 하는지 딴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속의 마음은 여전히 똑같습니다. 마음을 변화시키는 단 한 가지! 그것은 오직 사랑입니다. 강도도 살인자도 악하고 게으른 자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처럼 위대한 능력은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에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6:14). 사랑하면 사람의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사랑하면 사람이 착해집니다. 사랑하면 사람이 겸손해 집니다. 사랑하면 오해 참게 됩니다. 사랑하면 무례하지 않게 됩니다. 사랑하면 모든 일이 의욕적이고 즐겁게 됩니다. 사랑하면 소망을 갖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됩니다. 이 사랑은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고 변화의 희망입니다.
유대 거라사 지방에 한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막 5:1-20).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습니다.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었습니다.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마을의 골칫거리였습니다. 어느 날 그 더러운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하는 것처럼 그에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물으시고 더러운 귀신으로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귀신은 나가는 대신 자신들을 돼지에게 보내달라고 하자 한 영혼을 위해서 기꺼이 돼지 2,00마리를 희생시키셨습니다. 군대귀신들이 나오는 대신 그 마을의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보니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행하신 일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귀신들린 한 사람을 위해서 돼지 2,000마리를 희생시킬 수 있는가 하며 하고 예수님으로 마을을 떠나시기를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영혼을 살리시는데 2,000마리의 돼지를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랑이 아무도 쇠사슬로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한 영혼을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세상이 절망적인 세상이라도 사랑이 있으면 언제나 희망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자기를 찌른 원수들을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미워하지 않으시고 저들을 위한 용서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그 광경을 로마 백부장이 보고 감동을 받아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막 15:39). 십자가 우편에 달리 강도의 마음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뉘우치고 자신의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였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예수님은 그를 낙원으로 초청하셨습니다. 사랑이 강도를 살렸습니다.
유도선수인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전철을 타고 도장에를 다녔습니다. 어느새 이제는 어떤 사람이라도 한번 잡으면 사정없이 메다꽂을 수 있는 실력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가르친 사부는 절대로 싸움을 위해서 유도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스승을 전경하기에 그 교훈을 따르기는 하였지만 언젠가는 유도 실력을 발휘할 날이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철을 탔는데 한 덩치 크고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술 취한 사람이 고함을 치며 열차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모든 사람의 시선에 그에게 쏠렸고 소란을 피우지 않을까 염려하는 얼굴들이었습니다. 술 취한 남자는 비틀거리며 아무에게나 욕을 하고 시비를 걸며 전철 안으로 돌아다녔습니다.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자에게로 가서 아이를 쥐어박았습니다. 여인은 “왜 이러세요”하며 싱갱이가 벌어졌습니다. 청년은 이 때가 자신이 정의의 사도가 될 때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도 이 상황을 해결할 사람은 당신이랴 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청년은 다가가서 “약한 사람을 괴롭히지마세요”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이제 상황은 두 사람에게 심각한 분위기로 흘러갔습니다. 취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다가왔고 손을 잡아채려는 순간 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이, 자네 나하고 얘기좀 하세” 그 노인은 아주 조용하고 왜소한 노인이었습니다. “저 말입니까? 영감님” 술 취한 사람이 돌아봤습니다. “그래 자네 말이야. 웬 술을 그렇게 마셨나?” 그러면서 대화가 오고갔습니다. “오늘 무슨 술을 마셨나?” “막걸리입니다” “아, 그래 좋은 술이지. 나도 가끔 집사람과 막걸리를 마신다네. 그래 가족은 있는가?” “마누라는 얼마 전에 죽었고, 아이들은 모두 시골 어머니에게 가 있습니다.” “ 아, 그거 안 되었군, 사는 게 힘들겠구먼.” “그리고 오늘 회사에서 짤렸습니다. 이제 일할 곳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저런 우리 집에 한번 오게나, 같이 술이나 한잔 하세” “영감님,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하나요?” 대화가 오고 갔고 그런 중에 청년은 내릴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힐끔 돌아보니 그 술 취한 덩치 큰 사내가 왜소한 노인의 무릎에 머리를 파묻은 채 울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힘이 무엇인가? 무엇이 사람을 굴복시키고 변화시키는가? 유도의 힘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
어려움을 만난 사람에게는 조금 더 큰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 조금 더 큰 사랑에 의해서 사람들은 변화되고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좀 더 큰 사랑에 의해서 가정과 일터와 세상이 즐거운 아름답고 즐거운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던지 심는 대로 거둡니다. 심지 않고 아름다운 열매 변화된 세상을 바랄 수 없습니다. 사랑을 심어야 사랑이 나옵니다. 세상은 잡초가 나기에 적당합니다. 미움과 다툼은 잡초처럼 저절로 나지만 사랑은 심고 가꾸어야 거둬들일 수 있습니다. 미움은 심지 않아도 스스로 나서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심고 가꾸는 사람이 없으면 자라지 못합니다. 그런데 일단 사랑은 마음 밭에 심겨져서 자라면 가장 크고 아름다운 열매도 맺고 그 사랑은 온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몇 일 전 아프리카 수단 톤즈에서 사역을 하다 암으로 일직 세상을 떠난 이태석 신부의 책을 두 권 사서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역시 인종 모든 장벽을 초월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사랑뿐이라는 것을, 사랑만이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사랑이 가난과 질병 내전의 상처로 소망이 없고 웃음을 잃어버린 이들을 웃게 하고 울게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부와 명예와 안락한 삶을 버리고 희망이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워 공부를 가르키고 음악을 통해서 정신을 치료하고 행복을 주었습니다. 사랑을 품으면 정말 세상이 달라집니다. 기독교인이라도 다라라지지 않고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을 아직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분에게 영향을 주었던 성 다미앤 신부 역시 하와이 한센변 환자들을 돌보다 48세에 같은 병이 걸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진실로 내 인생은 행복했습니다.” “사랑은 함께 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고통까지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완성된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태석 신부도 아프리카 수단의 영혼들을 사랑으로 끓어 안고 살다가 48세에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사랑의 열매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면 내가 달라지고 세상에 행복해집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세상이 아무리 불안하고 변화 무쌍해도 달라지고 변해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나부터 사랑을 시작한다면 나의 삶도 달라지고 세상도 달라집니다.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나 자신으로부터 가족과 자녀와 이웃을 변화시킵니다. 이런 사랑을 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이런 사랑하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사랑으로 세상이 아름답게 변하는 것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언제나 이웃과 세상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다 해 김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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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와 엘리사벳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묵상하고 기도하며, 매일 주님의 아름다운 가정으로 변화하도록 기도하고 노력하겠습니다.
아멘~
분노 해서 고함 지르는 환자들에게 불쌍함과 사랑의 눈빛 한 5초만 쏴줘도 50%는 calm down됩니다. 신기한 사랑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