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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는 1400여년전 고대 백제가 가장 융성했던 6대왕 123년 동안의 고도로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아름다운 문화예술의 본고장이며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과 소박 장중한 백제탑이 보는 이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곳이다. - 오늘 비구니승님들이 모처럼 연꽃 구경을 나오셨습니다. 제가 섭외를 해서 촬영을 -
아름다운 고장 사비의 땅에는 태평성대를 누렸던 그 시대 선조들의 혼과 숨결을 느낄수 있는데
백제금동동대향로와 정림사지 오층석탑등 국보 5점을 비롯한 182점의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사적관광지이자 산교육장이다.
궁궐의 정 남쪽에 위치해 있다하여'궁남지'란 이름이 붙었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무왕 35년에 궁의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리나 되는 곳에서 물을 끌여들여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 한가운데에는 중국전설에 나오는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선산을 모방한 섬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궁남지는 서기634년에 만든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공연못으로 연못 가운데 포룡천이라는 정자가 있고, 그 정자까지 나무다리가 놓여 있다.
백제는 삼국 가운데 조원기술이 가장 뛰어나 노자공이라는 백제사람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황궁의 정원을 꾸며 아스카시대 정원사의 시조가 되기도 했다. 궁남지 사계는 저마다 색다른 느낌을 주며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특히, 연꽃과 야생화가 만개한 궁남지를 거닐다 보면 꿈속 길을 걷는 느낌을 맛보게 된다.
- 부소산성 입구 - 부소산에 가면 곳곳에 흙을 다져만든 나즈막한 토성이 발걸음을 잡는다.
부소산의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이 사당은 백제말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망할 때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한 성충, 홍수, 계백장군등 삼충신의 위국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매년 10월 백제문화제때 삼충제를 지내고 있다.
낙화암 위에 있는 백화정...
이곳에서 백제의 의자왕이 삼천궁녀들과 함께 풍월을 즐겼으리라
- 낙화암 - 꽃들이 떨어진 곳입니다. 목덜미 뒤에서 나당 연합군의 말발굽소리가 들려오는듯 함성이 들립니다. 백제가 멸망하던 서기660년 백제의 여인들이 적군에게 잡혀 치욕스런 삶을 이어가기 보다는 충절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 백마강에 몸을 던진곳이라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훗날 그 모습을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백마강에서 바라보면 아직도 절벽 색깔이 붉은데, 당시 백제 여인들이 흘린 피로 물들었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낙화암 아래 백마강 절벽에 약수로 유명한 '고란사'가 있다.
그 옛날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은 백제여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건립한 듯 하며 약초와 고란초에 대한 전설과 백마강을 바라보는 주위 경관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으로 백제시대 임금은 항상 고란사 뒤편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애용하여, 매일같이 사람을 보내어 약수를 떠오게 하였는데
약수터 주변에서 자라는 고란초를 띄어오게 하여 고란약수라는 것을 증명하였으며 이 약수를 즐겨 마셔 원기가 왕성하고 위장병은 물론 감기도 안걸리고 사셨다고 한다.
- 고란사 촬영 중 비가 몹시 내려서 사찰 안에서 1시간 반을 기다리며 불법을... -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아기가 된 할아버지
아득한 옛날 소부리(옛부여지명)에 살던 노 부부의 이야기다. 부부의 금실은 남이 부러워할 정도로 좋았으나 늙도록 자식이 없어 늘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을 한탄하고 있던 중 어느날 할머니의 꿈 속에 日山 도사로 부터 부소산의 강가, 지금의 고란사 바위에 고란초의 부드러운 이슬과 바위에서 스며 나오는 강한 물, 곧 柔剛이 합한 陰陽약수가 효험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할머니는 좋아서 다음날 새벽에 남편을 보내 그 약수를 마시고 오게 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걱정에 찬 할머니는 다음날 아침 약수터로 가 봤더니 왠 갓난 아이가 남편의 옷 속에서 울며 누워 있었다. 도사가 약수 한 잔을 마실때마다 삼년이 젊어진다고 한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할 수 없이 할머니는 갓난 아이를 안고 집에 돌아와 고이 길렀는데 후에 그 아이가 자라 나라에 큰 공을 세워 백제시대 최고의 벼슬인 좌평에 올랐다고 한다.
- 出 寫後記 -
궁남지를 돌아 볼 때에 정말 날씨가 너무 더워서 함께 간 회원들에게 미안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곳에서 일부 스님들을 조심스럽게 포섭(?)을 하여 길안내를 해드린다고 하면 미리 보아둔 길로 안내를 하며 뒤에서 사진을 촬영하기도 하였다.
주변의 손맛이 좋은 냉면집에서 시원한 냉면을 먹고 부소산성을 오를 때에는 다시한번 한여름의 더위를 실감해야 했다. 날씨도 덥지만 산속에서 따라오며 신경쓰이게 하는 모기 같은 곤충은 정말 비호감이었다. 귓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물론 동행자의 눈속으로도 들어가서 땀에 젖은 손수건으로 눈 속에 있는 곤충을 빼내어 주기도 하였다. 다행히 나는 시력이 별로라 안경을 쓴 덕에 그들의 공격을 무력화 시킬 수 있었다. 눈이 안좋은 것이 이럴때에는 정말 좋더군...
갑자기 프랑스 작가인 베르나르베르베르의 개미가 생각났다. 뿔풍뎅이를 타고 손가락이라고 부르는 인간들에게 전속력으로 공격을 감행하였던 개미군단의 무모한 공격장면이 왜 나는 생각이 났을까... 우체국 직원이 아무 생각없이 두꺼운 유리문을 닫을 때 그 문에 부딯혀 모두 땅에 떨어져 쌓이던 포병 개미들의 쌓인 시체들.....
그날 모기 같이 생긴 곤충들의 특기는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함께한 많은 동료들의 눈에 들어와 피곤하게 하였으니까...
그러나 나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바로 우체국 유리창문보다 맑은 안경이 있었기에.... 그날 나는 보았다. 내 안경에 부딯혀 떨어져 쌓이는 그 모기같은 곤충의 시체더미를..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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