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500년을 지나오면서 수많은 왕비와 후궁들이 왕의 주변에 머물면서 또는 궁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도 왕의 애첩이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연산군 때 장록수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띤다.장록수는 원래가 제안대군(연산군의 작은아버지) 애첩인데 어느날 연산군이 작은아버지 집에 심심해서 놀러갔다가 미모의 장록수를 보게된다. 한눈에 반해버린 연산군이 장록수에게 "너, 나하고 궁에가자"고 꼬득여 작은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장록수를 빼앗다시피 궁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궁에들어온 장록수의 행포는 그아말로 가관이었다. 조정을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면서 마음에 들지않는 사람은 궁에서 쫓아내고
자신을 비방한 사람은 왕에게 고자질해서 반드시 고문과 감옥에 집어넣기가 일수였던 장록수였다.
연산군을 다루는 솜씨는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난잡하고 무자비한 연산군도 장록수앞에서는 꼼짝을 못했다. 이렇게 되니
부작용이 날수밖에 백성들은 불만과 언성이 높아지고 있을 때 중종반정이 터졌다. 이때 장록수가 장터로 발가벗겨진채로 끌려나온 장록수를 향해 모인사람들이 "국가를 망쳐놓은 곳이 모두 저기에서 나왔다"며 장록수의 음문을 향해 돌울 던졌 다. 비참한최후를 맞이한셈이다 장록수는 연산군보다 3살많고 연산군전에 노비와의 사이에 아이 둘을 둔상태였다
중조반정이 일어난 원인은 월산대군(연산군의 큰아버지)브인 박씨이다. 박씨는 연산군의 큰어머니가 되는데 종친의 큰어른 박씨에게 어느날 큰어머니 댁에 놀러왔다가 박씨를 덮쳐버렸는데 일이 이렇게 되자,너무나 어이가 앖는 박씨부인(그후 3번당함) 은 동생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하고 말았다. 그 당시 박씨부인 동생 박원종 그즉시 누나의 유서를 보고 분노의 치를 떨었는데 ,(유서내용은 (너무나 억울하니 네가 내한을 풀어달라)그때까지 박원종은 친연산군파였는데 누나의 사건으로 반연산군파로 돌아서게되고 성희안등과 함께 거사를 준비하고 옛 단종복위 때 성삼문등이 너무 꾸물대는 바람에 실패한 경험을 거울삼아 즉시 행동개시 하여 연산군을 몰아내게되었다 강하도 교동도에 위리안치 되고 후에 그곳에서 죽었다 나이 31살.
첫댓글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수고마니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