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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03년 11월 23일 새벽 3:47 오후 12:29(8시간 42분, 좌석리 13:00)
<날씨> 맑음. 새벽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웠음. 아침햇살과 함께 추위는 물러감.
<산행거리> 26Km(좌석리까지 30Km), 진부령으로부터 329.1km <-> 406.5km남음 (44.7% 진행)
<경로 요약> 도래기재(3:47)-옥돌봉(4:45)-박달령(5:33)-선달산(7:12)-늦은목이(8:16)-각곳산(8:36)-마구령(10:09)-헬기장(10:46)-고치령(12:29)(-좌석리(13:00))
<산행기 요약> 초겨울의 새벽 산행은 너무 추웠음. 아침햇살과 함께 추위는 사그라지고. 막엽을 밟으면서 가는 초겨울산행. 네 개의 산을 넘고 도착한 좌석리에서 산불경방기간이라고 국립공원 관리공단 단속요원과의 한바탕 씨름을 하였음.
(백두대간 제 15구간 : 도래기재-고치령 산행기)
초겨울의 새벽 산행은 너무 춥다.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한다.
도래기재의 바람은 너무도 세차고 차갑다. 체감기온 영하 십도 쯤 되겠다.
그래도 우리 5차 팀은 날씨의 도움을 많이 받는 거란다. 얼마 전 대간 종주를 마친 4차 팀의 경우 여름에도 내내 비 때문에 고생했지만 눈도 10월달부터 일찌감치 왔었다고, 여기 선달산 구간에서도 눈길 산행을 했노라고 한다.
우리 팀원 중 누가 복 받은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우리의 산행은 하늘이 많이 도와주었다.
오늘은 선두그룹과 같이 가 볼까나.
그동안 주로 중 후미 그룹과 다니다 보니 선두그룹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다. 사진도 그렇지만 산행기에서도 선두그룹의 움직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면 문제일 듯 하다. 한두 번 정도 선두에 대한 기록, 또는 사진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되어서야 형평성에서도 문제겠지만 종주를 완료했을 때 기록 완성도의 측면에서도 문제일 것 같다.
내 실력으로 얼마나 쫓아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는데 까지 가 보고자 한다.
3:40분 하차한 일행은 3:47분, 드디어 제 15차 구간종주의 발걸음을 옮긴다.
어두운 밤하늘, 별이 가득하고, 바람은 세차고, 장갑을 끼었음에도 손끝이 언다.
오늘도 숲 속의 랜턴 불빛은 별빛과 같아 보인다. 하늘에 별, 땅에도 별, 마음에도 별. 오늘은 산아래 마을의 불빛들도 별빛처럼 반짝인다. 아마도 봉화군 춘양면이겠지... 예전에는 오지에 속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자연스런 연상 - 처갓집이 산골 오지였는데 집사람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토끼하고 발맞추는 마을이라고 불렀다나? 산골은 이미지가 순수하다...
계속되는 오르막은 처음에는 그리 가파르지 않았는데 점점 경사가 심해진다. 오르다가 평탄해지다가 또 오르다가...
일부러 선두에 서려 했음에도 어쩌다 보니 중간에 끼어 있다. 길은 좁아서 추월이 힘든 상황에서 오르막만 나오면 속도가 떨어진다. 영 작전이 안 맞는다.
몇 봉우리를 그렇게 올라가다 드디어는 오르막 추월 시작. 네다섯 사람을 앞지르고 속력을 더해 나아가다 보니 오랑우탕님이시다. 반갑다. 앞에 몇 사람이나 있나 물으니 열 사람 정도 될 것이란다. 마음이 급해 진다.
혼자서 깜냥대로 속도를 높여 본다. 힘이 점점 떨어질 즈음 앞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옥돌봉 정상에서 선두를 만난다. 이정재님, 홍성택님, 이은애님, 임번수님.
어둠 속에서 핀트를 못 맞춘 사진 한 장을 찍으니 금방 또 디카가 얼어붙는다.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하산 길로 접어든다. 옥돌봉 통과 4:45
내리막은 한참을 경사가 심하다.
다른 산악회에서 왔는지 사람들이 내려오는 중턱에 서 있다.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통과.
10여분 지나고 나니 다시 그만그만한 길로 오르락내리락.
어쩌다 선두에 서 있던 나는 선두를 양보한다. 속도를 얼마나 내는지 모르기 때문. 일단은 그리 크게 힘이 부치지 않는다. 저번에 선두 섰을 때보다 속도가 많이 줄은 것 같다 하니 요즈음은 선두도 그렇게 속도전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좋은 생각인 듯.
내려오는 길은 역시 운동량이 덜한지, 땀이 식으면서 더욱 추워진다.
일반적으로 낮 2시경에 가장 덥고 새벽 해 뜨기 전이 가장 추운 법. 지금이 가장 추운 때 인 것이다. 몸 안쪽의 내의도 얼어서 버석거리는 듯 하다.
잠시지간 만에 건물이 하나 나타난다. 산신각이다. 그러니까 여기가 박달령.
여기 저기 어둠 속에서 살피다가 바로 출발할 줄 알았는데 쉬면서 물도 마신단다. 음... 그새 많이 변했군. 예전에는 물도 서서 마시고 그러더니...
산신각 오른쪽으로 돌아가 바람을 피해 앉는다. 전기장판 위에. 그러나 전기는 없다. 그래도 바람이 막히니 추위가 많이 가신다. 한참을 앉았다가 어둠 속에서 여기저기 주변도 둘러보고 이정표도 보고... 선두도 이제는 많이 쉬는구나.... 출발. 5:33 도착해서 7분이나 쉬었다!
산을 넘고 또 넘어서 간다.
이번 종주 구간은 도래기재(734), 박달령(1009), 늦은목이(750), 마구령(800), 고치령(760), 다섯 개의 고개와 그 사이 네 개의 산 - 옥돌봉(1242), 선달산(1236), 암릉(1057), 1096.6봉(헬기장) - 정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네 번의 오르막은 가파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드는지 모르겠다. 대간길이라는 것이 거의 항상 오르락내리락 하는 과정인데...
어쨌거나 선달산 오르는 길은 그렇게 경사가 급하지 않다. 박달령이 워낙 해발고도가 높으니까 그렇기도 하겠다.
넘으면 또 나타나고 넘으면 또 나타나는 봉우리의 연속이다.
점점 걷혀가는 어둠 속을 가다 보니 이정표다. 별 내용이 없다. 선달산⇔박달령. 그 단순한 이정표 옆에 이미 친근한 목원대 표언복 교수의 설명이 붙어 있다. 왕바우골 갈림길.
엄청 많이 달려 있는 리본 밑에서 기념사진 한 장, 그리고 서있는 자세로 1분간 휴식, 출발 6:51.
그것은 생각해 보니 이 지방의 특색이었다! 그렇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눈치를 챘는데...
소백산에서도 그랬고 태백산에서도 그랬고, 그리고 여기에서도 또 한번 그러는데...
새벽에는 얼어붙을 듯 찬바람이 불다가 해만 뜨면 바람이 잦아들고 날씨가 따뜻해지는 거...
아마도 지형적인 특색과 계절적인 특색으로 인하여 이 부근의 산들이 전부 한결같이 그러한가 보다.
해가 밝으면서 어느덧 잦아들은 바람으로 한결 지나기가 수월하다.
이제는 암릉지대를 지난다. 바위가 그럴 듯 하다.
그나저나 자꾸만 동녘 하늘이 붉어온다. 어서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해돋이를 감상할 듯. 선달산까지 가기는 약간 무리인지 모르겠다.
열심히 진행하다 보니 선달산 바로 아래에서 해돋이를 맞는다. 잡목 숲 때문에 사진이 잘 잡히지가 않는다. 안타까워서 해가 뜬다고 소리를 지르니 뒤쪽 봉우리에서 누군가가 화답을 한다.
그리고 1분만에 선달산 정상에 도착. 7:12
그래봐야 사정은 비슷하다. 정상 주변은 잡목으로 온통 둘러싸여 있다... 여기가 오늘의 타이틀 산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초라함...
내가 선두에 참여해 온 목적 - 사진 찍기 - 일명 작업을 한바탕 하고 있는데 한규동님과 김진욱님이 합류하신다. 역시 실력자들이다. 또 한참을 여유 있게 쉬고 출발. 7:19
선달산 아래 바람이 잦아드는 곳에서 아침을 먹기로 한다.
오늘 홍성택님은 특별히 버너와 코펠 - 라면을 가져왔다. 세 봉지의 라면을 끓여서 일곱명이 나눠 먹으니 따뜻하니 매우 좋다. 이것도 선두에서는 하지 않던 거란다.
선두의 역사상 가장 긴 아침식사를 마치고 출발할 때는 7:50. 거의 30분 가량이 걸렸다.
새로운 요원이 충원된 산행은 훨씬 신이 난다.
특히 임번수님은 김진욱님이 오자마자 푸념을 늘어놓는다. 어쩌다 이 선두에 끼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누가 같이 갈 사람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이제는 되었다...
항상 같이 다니는 발 맞는 산행동지가 그렇게도 좋은 건가 보다.
낙엽이 쌓인 길을 한참 고꾸라지듯 내려가니 늦은목이. 앞쪽에 대장이 설명한 입산금지 표시와 함께 줄이 쳐져 있다. 음... 이게 그거구나... 이걸 지나서 진행하라한 거지...
(나중에 이 지점부터 소백산 국립공원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는 모두 황당했다 - 사진을 보면 엄청 커다란 국립공원 입간판이 걸려 있다)
사진 한 장 찍고 잠깐 물 마시고 바로 출발. 8:16
다시 오르막이다. 줄창 20분을 오르니 이정표. 봉황산 갈림길.
이정표 머리맡에 매직으로 누군가 갈곶산이라고 써 놓았다. 아까 본 이정표에는 각곳산으로 되어있던 곳이다.(아마도 저번 장암재-자암재 건처럼 백두대간 종주산행 표기가 지자체의 표기와 다르다... )
봉황산 쪽으로 가면 부석사가 나온단다.
별로 넓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갈림길인데 각곳산 꼭대기라니 좀 황당하다. 여기에서도 한참을 쉰다.
신라시대에 지방행정조직은 현(縣) 밑에 부곡(部曲)을 두었는데, 봉화읍을 '퇴곶(退串)'부곡이라고 하였다. 이곳 각곳산의 '각곳'은 아마 '가는 곶'에서 변한 것이고, 이를 '퇴곶'으로 한역(漢譯)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고장의 '곶'자는 강화도의 옛 지명인 '갑비고차'와 닮은 데가 있다. '갑비'는 '갑'으로 읽을 수 있고, '고차'는 '곶'으로 읽을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배가 들고나는 곳이 갑비고차이다. 단군왕검은 아들 셋을 보내어 이 곳 마리산에 제단을 쌓았다. 그 제단이 한강과 임진강과 황해가 합수하는 강화섬에 있으므로 갑비고차에 쌓은 제단이 되는 것이다. 이 섬에 쌓은 돌 제단은 이 곳이 천제를 지내는 곳이 아니라 지제를 지내는 곳임을 나타낸다. 이곳 퇴곳은 아마 지제를 지냈거나 조상신에게 제를 지냈던 곳이 아닌가 한다.
단군왕검을 상징하는 박달나무가 지천을 깔린 각곳산과 선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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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곳산은 이 구간에서 가장 높은 곳이 아니다. 한참을 올라간다. 그리고 또 한번 휴식. 9:19, 4분간. 임번수님과 김진욱님의 걸음이 늦으니 기다려서 가는 것인가 보다. 이런 속도로 가면 아마 여덟시간 조금 더 걸려서 고치령에 도달하겠다는 중론.
조금 더 진행하니 암릉지대다. 지도 표기상 이 소구간에서(늦은목이-마구령) 가장 높은 곳이다. 그리고는 바로 또 한번의 내리 꽂히는 내리막. 이 구간에서부터 이정재님이 앞장을 서더니 바로 없어져 버린다. 아마 지금부터 속도를 더 낼 듯. 나머지 일행은 등산학 박사를 수여해야 한다는 농담과 함께 혀를 내두른다.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길은 발걸음을 편안하게 감싼다. 초겨울의 따뜻한 햇빛. 살랑살랑 부는 바람은 땀을 식혀 준다.
선두 그룹은 발걸음을 시원시원하게 죽죽 뻗으며 나아간다.
후미로부터 무전-어디쯤 가고 있는지 확인 무전이 들어온다. 마구령 1km전방 못 미쳐서 이다. 후미는 봉황산갈림길이라 한다. 아마 한시간 가량 더 떨어져 있는 듯 하다. 깜짝 놀란다. 아니, 벌써 그렇게 떨어진다고??? 그렇게 크게 속도를 내지 않았던 듯 싶은데...
홍성택님이 예상시간보다 느리다고 한다. 그 말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빨라지는 선두. 사진을 찍으면서 쫓아가는 것이 버겁다. 또 한번의 가파른 내리막, 마구령이다. 도착 10:09.
이정표 위에 돌탑이 싸여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마치 사람 같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승합차가 올라온다. 우리보고 일행을 보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아까 새벽에 추월한 사람들을 기다리는 듯 하다.
조금 있다가 김진욱님 하산, 그 뒤로 임번수님 하산. 올라가는 것은 임번수님이, 내려오는 것은 김진욱님이 더 잘 하시는 듯 하다. 6분간 휴식.
고치령으로 가는 길에도 역시 사람이 들어갈 수 없도록 줄이 쳐져있고 입산금지 표시가 있다. 그나저나 개구멍으로 통과, 산으로 올라가려는데 경찰차가 지나가다가 뭐라 한다. 들어가면 안된다... 우리는 백두대간 산꾼이다. 우리 중에는 담배 피는 사람이 없다. 걱정하지 마시라... 그러니까 그냥 지나간다.
강자의 세계는 말이 없다.
상당한 오르막. 속도도 상당히 빠르다. 금방 헉헉거려진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지, 한규동님이 제일 앞에, 그 다음 홍성택님, 그 다음 이은애님 순으로 말없이 올라간다.
속도를 확 내 버리니 금방 임번수님과 김진욱님이 떨어져 버린다. 사진을 찍고 얼른 쫓아 가고자 하나 아무리 용을 써도 이은애님과의 10m 간격이 줄어들지 않는다.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듯 하다. 그래도 다행으로 더 이상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렇게 30분 동안을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아마도 오늘 가장 힘든 오르막인 듯 하다.
거의 2km 가까운 거리를, 등판 각도 30-60도 정도 되는 고개를, 거의 평지 가는 속도로 주파를 한 것이다...
헬기장에 도달하여 징하다 하니 한규동님 왈, 한번에 오르는 것이 쉽다고... 음... 그거야 맞는 말이지만... 헬기장 10:46
짐 풀어놓고 편안히 앉아서 가을을 즐긴다. 과자도 나눠 먹고, 아까부터 미련 맞은 사람이 끝까지 싸 간다며 가져온 귤도 꺼내어 나눠 먹고... 선두도 먹을 것이 무지 많다.
한 10분 있으니 임번수님과 김진욱님이 올라오신다. 그 가방에서도 먹을 것이 잔뜩 나온다.
좋다. 나는 먹을 것만 보면 좋아죽겠다.
갈대 사이에 앉아서 먹을 것을 들고 기념사진 찰칵. 17분 휴식.
이제부터 고치령까지는 전반적으로 내리막. 물론 거리가 6km 이상 되니 봉우리야 계속 걸리겠지만... 어쨌든 출발. 아까부터 해 오던 것이 시작된다. 말없이 앞으로 나아가기.
그런데 이놈의 길에는 왜 이리 이정표가 많은 것이여 도대체가. 1km마다 있는 정도를 넘어서 어떤 이정표는 100m만에 나타나는 것도 있다. 짜증나게 나는 적당히 지나가지 못하고 보이는 이정표마다 사진을 찍는다.
어짜피 카페 자료실 용량의 한계 때문에 올리지도 못할 것들을 자꾸 찍으면서 가다 보니 주춤거리는 시간이 누적되어 쫓아가기가 영 힘이 든다. 달리기를 해서 거리를 좁히곤 한다...
어쨌거나 한규동님, 홍성택님, 이은애님, 나, 이 순서는 무너짐 없이 계속된다.
모두들 말이 없다. 1km 12-15분 주파 속도도 변함 없이 지켜진다.
누구도 말이 없는 가운데 강자의 세계를 생각한다. 절대강자의 세계는 저렇게 말이 없는 것일 진데...
후미에서 즐겁게 떠들떠들 하면서 오는 재미도 상당하다만 이런, 그야 말로 온 힘을 다해서, 아무 말 없이, 산을 느끼고, 내 발끝을 따라서 흩어지는 낙엽을 느끼고, 내 힘줄, 내 뼈 마디마디를 느끼고, 바람과 햇살을 느끼고, 느낌은 느낌대로 흘러가고, 정신은 등산이라는 순수한 하나의 목표에만 초점이 맞춰진, 이런 것도 대단히 재미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강자의 세계는 그런 것이다. 말이 없고, 군더더기가 없고, 최선을 다하고, 순수하고...
고치령 닿기 직전 능선에서 바라보니 저번에 산행했던 소백산 구간이 지척이다.
공터에 서서 기념사진(작업) 찍고 떡도 한 조각 먹고 내려오니 12:29분. 생각보다 많은 8시간 42분 걸린 산행이었다. 후미는 이제 6km 남았다 한다. 한시간 반 이상 걸려야 할 거리.
오늘은 뒷이야기가 더 있다.
오늘은 이렇게 백두대간 구간을 마치고 좌석리까지 걸어 갈 요량으로 터덜터덜 한 20분 내려오는데 트럭이 내려온다. 김진욱님과 임번수님이 타고 있다. 우리는 일찍 내려가는 것도 그렇고 대장이 뒷사람을 위해 트럭을 타지 말라 하여 내려오는 참인데 두 분은 아까부터 트럭을 탈 것이라 하더니만 그렇게 하는 것이다. 우리도 같이 동승. 금방 좌석리에 도착.
그런데 이정재님 외에도 두 사람이 더 있다. 김학주님과 최심님. 깜짝 놀라서 물으니 김학주님은 땜방 구간이었는데 마구령까지만이어서 내려 왔고 최심님은 아직 부상에서 완쾌되지 못하여 김학주님과 동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따라 좌석리 냇가에 찌개거리 불을 지폈다.
평소에는 길가에나 버스 뒤에 하더니만 냇가에 해 두니 오히려 운치도 있다. 아무리 경방기간이라지만 이렇게 냇가에 불을 피워놓으면 화재염려는 붙들어 놓은 거나 매 한가지.
돌들로 좀 뒤뚱거리는 불편함이야 있겠지만 그럴 듯 하다고 생각이 든다.
흘러가는 물결이 햇빛에 반짝인다.
선장님이 솜씨를 발휘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정말 일품이다.
'백두대간 하면서 남은 것은 찌개 끓이는 솜씨뿐인 것 같아요.' - 선장님. 4차 팀과 같이 했던 고치령 매요리 어디에 가면 눈 여겨 봐 둔 자리가 있다 한다. 거기에서 찌개 끟이고 막걸리 한 사발에 천원씩 받으면 괜찮을 것 같다 한다. 음... 너무 싼 거 아닌가....
일행이 편안하니 발도 씻고 막 잘 끓은 찌개하고 막걸리 한 잔 하려는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차가 오더니만 책임자가 누구냐고 묻는다. 여기는 없다 하니까 어디에 있느냐, 여기 취사금지 구역인 것 모르느냐. 그리고 어디로 등산하였느냐. 묻는다. 우리 중 누군가가 우리는 산에 가지 않았다. 대답한다. 그렇게 시작된 실갱이.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주민번호가 어떻게 되느냐는 둥, 산에서 내려온 것이 맞지 않느냐는 둥...
김진욱님이 일차 접근을 시도해 보지만 반응이 냉담하다 한다. 예전에 행정자치부 소속일 때하고 또 틀리단다. 그 사이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이 또 보강되고 찌개 먹는 사진 찍고 고치령쪽으로 내려오는 사람들 사진 찍으러 올라가고... 주섬주섬 찌개거리를 주워서 버스 뒤편으로 옮기고 대장한테 전화를 하니 통화가 되지를 않는다. 무전기로도 되지를 않고...
한참 걱정을 하고 있는데 중간 그룹이 트럭을 타고 내려온다.
그사이 저쪽 편은 경찰이 보강이 되었다. 선장님께 면허증 제시를 요구하는 등... 계속 험악한 분위기... 대장이 내려오지 않으니 수습이 되지를 않는다.
그 사이에도 눈치봐가며 버스 뒤편에서 막걸리 한잔. 어찌 되었든 먹긴 먹어야 하니까. 어짜피 사건은 사건이고 수습은 대장이 와야 할 판이니까...
한참만에 드디어 후미 팀 도착. 대장이 국립공원 직원들과 접촉 시작.
그 사이 나는 버스 안에서 기다리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소란스러움에 눈이 떠졌다. 그 사이 어쨌든 결론이 난 것이다.
대표 한사람에게 산불경방기간 위반 과태료 오십만원, 또 다른 대표 한사람에게 국립공원 내 취사금지 위반 과태료 십만원. 좌석리 전체가 소백산 국립공원 지역에 속한다고 한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그 양반 말이 뻔히 등산을 한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거짓말을 해서 열이 받았다는 등, 홍차정님이 미인계를 써서(?) 그나마 그 선에서 타협이 되었다는 등, 저번 산불경방기간 이전에 소백산구간 종주 했던 자료를 제시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등... 무용담이 분분하다.
내 생각으로는 적절한 선에서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모든 사람에게 모두 과태료를 메긴다면 일인당 오십 내지 육십만원 씩 천오백만원 이상의 대형사건이 될 뻔한 것이었으나 그렇게 해서는 우리가 동의하기 힘이 들 터. 그렇다고 뻔한 위반사항을 눈감아준다면 그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주최측의 실수가 있었다는 것에 대하여 대장이 버스 안에서 사과를 하였다...
많은 분들이 이 사건을 써주기를 바라길래 그 전말을 가능한 한 소상히 기록하는 바이다. 사실 이런 해프닝, 가십거리가 있으면 두고두고 재미있는 거니까.... <끝>
<오늘의 산꾼들> 30명.
<산행경로 및 경과시간>-선두
구 간 |
시 각 |
경과시간 |
휴식,식사, 기타 |
구간소요시간 |
순수산행시간 |
고 도 |
도래기재 출발 |
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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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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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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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
8:42 |
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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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실감나는 종주기에 격려와 즐거움을 표합니다. 작년 추위와 긴 종주, 냇가에서 끓이던 찌개가 생각납니다. 종주하면서 생기는 해프닝도 재미라면 우습지요. 책 출간하고 컴하고도 영 친하기 싫은 것은 완주 후유증 같습니다. 특히 책으로 인하여 피로도가 엄청나군요. 종주하면서 자료 준비하고 글쓰던게 그립네요.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