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을 끝내려면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한 문장을 남겼다. “그가 지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는 네가 무슨 일을 하든 금하지 않겠노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 이 말은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그 방황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는 학문을 통해 세상의 거의 모든 지식을 얻고 자연의 이치까지 깨달았지만, 그의 내면은 조금도 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은 공허와 갈증이 그를 사로잡았다. 지식이 많아질수록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더 커졌고, 결국 그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악마와 계약을 맺는다. 젊음을 되찾고,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순수한 사랑을 얻게 되지만, 그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한 번의 좌절로 멈출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는 다시 욕망을 선택한다.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또 다른 힘이 바로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악마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 최고의 미녀 헬레나와 권력을 손에 넣지만, 그 끝 역시 무너짐이었다. 욕망은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더 깊은 허무로 이끌었을 뿐이다.
이 이야기는 먼 시대의 한 인물에 대한 기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더 나은 삶을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더 많은 것을 얻고, 더 높은 곳에 오르고, 더 큰 만족을 누리려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 속에서도 마음은 쉽게 평안을 얻지 못한다. 채워진 것보다 채워지지 않은 것이 더 크게 느껴지고, 이미 가진 것보다 아직 갖지 못한 것을 향해 시선이 머문다. 그렇게 인간은 오늘도 조용히 방황을 이어간다.
이 방황은 과연 어디에서 멈출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인간이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려 할 때 겪게 되는 방황을 끝낼 수 있는 단서를 담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힘과 지혜로 삶의 방향을 완성하려 할 때 오히려 길을 잃는다. 그러나 참된 길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을 따르는 데서 시작된다.
방황을 끝낸다는 것은 더 이상 무엇인가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뜻에 가깝다. 눈앞의 욕망과 순간의 만족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진리를 향해 방향을 돌릴 때, 인간의 걸음은 비로소 흔들림을 멈추게 된다.
파우스트는 끝내 자신의 힘으로 길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신자는 이미 바른길, 생명에 이르는 길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길을 따라 조용히 걸어가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