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 |
왕 |
공신들 |
제1실 |
태조고왕제 |
남은, 남제, 흥안군 이제, 이지란, 의안대군 이화, 조인옥, 조준 |
제2실 |
태종대왕 |
이래, 이천우, 정탁, 조영무, 하륜 |
제3실 |
세종대왕 |
신개, 효령대군 이보, 이수, 양녕대군 이제, 최윤덕, 허조, 황희 |
제4실 |
세조대왕 |
권람, 한명회, 한학 |
제5실 |
성중대왕 |
신숙주, 정창손, 홍문 |
제6실 |
중종대왕 |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정광필 |
제7실 |
선조대왕 |
이이, 이준경, 이황 |
제8실 |
인조대왕 |
김류, 신경진, 신흠, 이귀, 능원대군 이보, 이서, 이원익 |
제9실 |
효종대왕 |
김상헌, 김집, 민유중, 민정중, 송시열, 인평대군 이요 |
제10실 |
현종대왕 |
김만기, 김수항, 김좌명, 정태화 |
제11실 |
숙종대왕 |
김만중, 남구만, 박세채, 윤지완, 최석중 |
제12실 |
영조대왕 |
김재로, 김창집, 민진원, 조문명, 최규서 |
제13실 |
정조선황제 |
김조순, 김종수, 유언호 |
제14실 |
순조숙황제 |
김이교, 김재찬, 은신군 이구, 이시수, 조만영, 조득영 |
제15실 |
문조익황제 |
김로, 남공철, 조병구 |
제16실 |
헌종성황제 |
이상황, 조인영 |
제17실 |
철종장황제 |
김수근, 이헌구, 이희 |
제18실 |
고종태황제 |
민영환, 박규수, 신응조, 이돈우 |
제19실 |
순종효황제 |
서정순, 송근수 |
공신당 - 영녕전
실 |
왕 |
공신들 |
제1실 |
목조대왕 |
|
제2실 |
익조대왕 |
|
제3실 |
도조대왕 |
|
제4실 |
익조대왕 |
|
제5실 |
정종대왕 |
익안대군 이방의 |
제6실 |
문종대왕 |
하연 |
제7실 |
단종대왕 |
|
제8실 |
덕종대왕 |
|
제9실 |
예종대왕 |
박원형 |
제10실 |
인종대왕 |
김안국, 홍언필 |
제11실 |
명종대왕 |
심연원, 이언적 |
제12실 |
원종대왕 |
|
제13실 |
경종대왕 |
민진후, 이유 |
제14실 |
진종소황제 |
|
제15실 |
장조의황제 |
민백상, 이종성 |
제16실 |
의민황태자 |
(악곡청) 등이 있다
♣ 종묘에서 사용되는 조선왕조 역대 왕들의 묘호라고 하는데, 이 묘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① 종(宗) - 평이한 왕들의 칭호
② 조(祖) - 국가의 시조, 환란 극복, 번성을 이룬 왕들의 칭호
(예 : 영.정조 찬란한 시기, 순조-홍경래의 난)
③ 군(君) - 임금의 자리를 박탈당한 임금 (연산군, 광해군)
4) 창덕궁
♣ 창덕궁은 왜 지었나요?
3대왕 태종 5년(1495년) 경복궁이 정궁으로 지워진 궁궐이었으나 선조때 임진왜란으로 불타 “창덕궁”을 정궁으로 옮김.
(경복궁은 흥선대원군때 재건) 1610년 광해군때 정궁으로 사용한 이후 258년 동안 역대제왕의 정궁으로 사용됨.
♣ 창덕궁의 세계문화유산적 가치는?
동아시아 궁전 건축사에 있어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인 궁으로
주변 자연환경과의 완벽한 조화와 배치가 탁월할 뿐 아니라 중요문화재가 많이 있어 1997년 등재됨.
5) 수원 화성
♣ 정조임금은 왜 화성을 쌓도록 했을까요?
①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억하는 효심
② 강력한 왕권 강화
③ 남쪽 지역 거점
♣ 화성이 건축학적으로 우수한 이유는?
동서양의 건축기법을 적용하여 ( )기능과 + ( )기능을 함께 보유한 성으로 평가되며
(실학)사상이 가미되어 거중기와 벽돌을 사용한 견고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 화성의 세계문화 유산적 가치는?
(화성 성역의궤)를 통해 건축일지를 활자로 널리 보급함으로써 왕권강화 및 후대에 와서 보수/복원 매뉴얼로 활용되었다.
18c에 완공된 짧은 역사이지만 동서양의 군사이론을 잘 배합시킨 독특한 성으로 방어적 기능이 뛰어난 특징이 있음.
약 5.4Km에 달하는 성벽안에는 4개의 성문이 있으며 각기 디자인의 다양성
6) 고인돌 (Dolemen)
♣ 우리나라에 존재하고 있는 고인돌 유적은 어디인가요?
① (고창) 유적지구
② (화순) 유적지구
③ (강화도) 유적지구
7) 경주역사유적지구
♣ 경주역사 유적지구의 세계문화유산적 가치
신라천년 (BC57~AD935)의 왕조 수도로써 불교유적, 왕경유적이 잘 보존.
세계유적지구중 가장 유적의 ( )가 뛰어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8) 조선 왕릉 40기
♣ 입지 선정
능묘는 조선 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의 "능역은 한양성 사대문 밖 100리 안에 두어야 한다"라는 입지 조건에 따라 선정되었다.
실제로 경국대전이 편찬되기 이전의 정종의 능묘인 후릉과 여주의 세종과 효종의 능묘인 영·녕릉, 영월에서 객사한 단종의 장릉을
제외하면 서울 사대문에서 100리 이내에 위치하고 있다.
왕릉은 풍수지리적인 요소를 고려해 위치를 선정하였으며, 바람, 물, 불, 나무, 흙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재해의 발생이 없어야 하
고, 배산임수 지형을 갖추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에서 이장하기도 하였다.
♣ 왕릉 목록
세대 |
왕명 |
왕릉 |
한자명 |
매장인 |
년도 |
위치 |
사적번호 |
구분 |
추존왕 |
목조 |
덕릉안릉 |
德陵安陵 |
목조효공왕후 |
1274년미상 |
함남신흥함남신흥 |
북한 소재북한 소재 |
- |
추존왕 |
익조 |
지릉숙릉 |
智陵淑陵 |
익조정숙왕후 |
미상미상 |
함남안변함남문천 |
북한 소재북한 소재 |
- |
추존왕 |
도조 |
의릉순릉 |
義陵純陵 |
도조경순왕후 |
1342년미상 |
함남함흥함남함흥 |
북한 소재북한 소재 |
- |
추존왕 |
환조 |
정릉화릉 |
定陵和陵 |
환조의혜왕후 |
1361년미상 |
함남함주함남함주 |
북한 소재북한 소재 |
- |
제1대 |
태조 |
건원릉제릉정릉 |
健元陵齊陵貞陵 |
태조신의왕후신덕왕후 |
1408년1391년1396년 |
구리개성서울 성북구 |
193호북한소재208호 |
동구릉-- |
제2대 |
정종 |
후릉 |
厚陵 |
정종,정안왕후 |
1419년 |
개성 |
북한소재 |
- |
제3대 |
태종 |
헌릉 |
獻陵 |
태종,원경왕후 |
1422년 |
서울 강남구 |
194호 |
- |
제4대 |
세종 |
영릉 |
英陵 |
세종,소헌왕후 |
1450년 |
여주 |
195호 |
- |
제5대 |
문종 |
현릉 |
顯陵 |
문종,현덕왕후 |
1452년 |
구리 |
193호 |
동구릉 |
제6대 |
단종 |
장릉사릉 |
莊陵思陵 |
단종정순왕후 |
1698년 |
영월남양주 |
196호209호 |
- |
제7대 |
세조 |
광릉 |
光陵 |
세조, 정희왕후 |
1468년1483년 |
남양주 |
197호 |
- |
추존왕 |
덕종 |
경릉 |
敬陵 |
덕종, 소혜왕후 |
1457년 |
고양 |
198호 |
서오릉 |
제8대 |
예종 |
창릉공릉 |
昌陵恭陵 |
예종, 안순왕후장순왕후 |
1469년 |
고양파주 |
205호198호 |
서오릉파주삼릉 |
제9대 |
성종 |
선릉순릉 |
宣陵順陵 |
성종, 정현왕후공혜왕후 |
1494년 |
서울 강남구파주 |
199호 |
-파주삼릉 |
제10대 |
연산군 |
연산군묘 |
燕山君墓 |
연산군, 거창군부인 |
1506년 |
서울 도봉구 |
362호 |
- |
제11대 |
중종 |
정릉온릉희릉태릉 |
靖陵溫陵禧陵泰陵 |
중종단경왕후장경왕후문정왕후 |
1544년1557년1562년1565년 |
서울 강남구양주고양서울 노원구 |
199호210호200호201호 |
--서삼릉- |
제12대 |
인종 |
효릉 |
孝陵 |
인종, 인성왕후 |
1544년 |
고양 |
200호 |
서삼릉 |
제13대 |
명종 |
강릉 |
康陵 |
명종, 인순왕후 |
1567년 |
서울 노원구 |
201호 |
- |
제14대 |
선조 |
목릉 |
穆陵 |
선조, 의인왕후, 인목왕후 |
1608년 |
구리 |
193호 |
동구릉 |
제15대 |
광해군 |
광해군묘 |
光海君墓 |
광해군, 문성군부인 |
1643년 |
남양주 |
363호 |
- |
추존왕 |
원종 |
장릉 |
章陵 |
원종, 인헌왕후 |
1627년 |
김포 |
202호 |
- |
제16대 |
인조 |
장릉휘릉 |
長陵徽陵 |
인조, 인렬왕후장렬왕후 |
1731년 |
파주구리 |
203호 |
-동구릉 |
제17대 |
효종 |
영릉 |
寧陵 |
효종, 인선왕후 |
1673년 |
여주 |
195호 |
- |
제18대 |
현종 |
숭릉 |
崇陵 |
현종, 명성왕후 |
1674년 |
구리 |
193호 |
동구릉 |
제19대 |
숙종 |
명릉익릉 |
明陵翼陵 |
숙종, 인현왕후, 인원왕후인경왕후 |
1701년 |
고양 |
198호 |
서오릉서오릉 |
제20대 |
경종 |
의릉혜릉 |
懿陵惠陵 |
경종, 선의왕후단의왕후 |
1724년1718년 |
서울 성북구구리 |
204호193호 |
동구릉 |
제21대 |
영조 |
원릉홍릉 |
元陵弘陵 |
영조, 정순왕후정성왕후 |
1776년1757년 |
구리고양 |
193호198호 |
동구릉서오릉 |
추존황제 |
진종 |
영릉 |
永陵 |
진종, 효순왕후 |
1728년 |
파주 |
205호 |
파주삼릉 |
추존황제 |
장조 |
융릉 |
隆陵 |
장조, 헌경왕후 |
1761년 |
화성 |
206호 |
|
제22대 |
정조 |
건릉 |
健陵 |
정조, 효의왕후 |
1800년 |
화성 |
206호 |
|
제23대 |
순조 |
인릉 |
仁陵 |
순조, 순원왕후 |
1834년 |
서울 서초구 |
194호 |
|
추존황제 |
익종(문조) |
수릉 |
綏陵 |
익종, 신정왕후 |
1830년 |
구리 |
193호 |
동구릉 |
제24대 |
헌종 |
경릉 |
景陵 |
헌종, 효현왕후, 효정왕후 |
1849년 |
구리 |
193호 |
동구릉 |
제25대 |
철종 |
예릉 |
睿陵 |
철종, 철인왕후 |
1863년 |
고양 |
200호 |
서삼릉 |
제26대 |
고종 |
홍릉 |
洪陵 |
고종, 명성황후 |
1919년 |
남양주 |
207호 |
|
제27대 |
순종 |
유릉 |
裕陵 |
순종,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 |
1926년 |
남양주 |
207호 |
※ 역대 왕조의 무덤이 많이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다. 조선왕조는 500년 유교사상,풍수지리의 왕릉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2. 우리나라의 세계기록유산
1) 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 훈민정음은 사용에 대한 설명이 상세히 나오는 글자로 과학, 독창성이 뛰어난 언어이다.
28자중 지금은 24자만 사용 (알파벳은 26자)
2) 조선왕조실록
이 책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역사적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하는 역사서술의 한 방식)로 기록한 책이다.
이것은 조선시대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다방면에 걸쳐 기록되어 있으며, 역사적 진실성과 신빙성이 매우 높다.
또한 사료의 편찬에 있어서 사관이라는 관직의 독립성과 기술에 대한 비밀성도 보장되었다.
실록을 편찬하는 작업은 다음 왕이 즉위한 후 실록청을 열고 관계된 관리를 배치하여 펴냈으며, 사초는 임금이라 해도 함부로 열어
볼 수 없도록 비밀을 보장하였다.
사료가 완성된 후에는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실록을 보관하던 창고)에 각 1부씩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었지만, 20세기 초까지 태백산, 정족산, 적상산, 오대산의 사고에 남아서 전해내려 왔다.
현재 남아있는 정족산본 1,181책, 태백산본 848책, 오대산본 27책, 기타 산엽본 21책 총 2,077책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
지정되었다.
3) 승정원 일기 - (조선왕조 최대의 기밀 기록)
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 왕명을 출납하던 비서실인 승정원의 일기로 1623년부터 1910년까지 288년간의 역대 국왕들의 하루 일과,
지시, 명령, 각 부처의 보고, 각종 국정회의 및 상소 등을 모두 전제한 연대기 기록이다.
「승정원 일기」는 당시의 정치·경제·국방·사회·문화 등에 대한 생생한 역사를 그대로 기록한 1차 사료이다.
288년간 매일의 날씨 정보를 기록 수록한 천문 기상학 자료이외에 국문학의 변천과정을 알 수 있는 등 그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등으로 인해 인조 이전의 일기는 모두 없어졌고, 그 이후인 인조 원년 (1623) 3월 12일부터 순종 4년(1910)
8월 29일까지 288년간의 일기만이 남아 있다.
♣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 일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공통점으로는>
모두 국왕을 중심으로 서술했고, 장구한 역사를 기록한 기록물이죠...
거의 백과사전적인 기록(정치, 경제, 국방, 사회, 문화, 천문, 자연재해.....)
<차이점으로는>
조선왕조실록이 국왕 사후 사관들에 의해 편집된 2차 자료라면,
승정원 일기는 당시의 정치·경제·국방·사회·문화 등에 대한 생생한 역사를 그대로 기록한 1차 사료...
4) 직지심체요절
♣ 직지의 세계기록유산적 가치와 현재 왜? 프랑스에서 보관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쿠텐베르그 보다 70년? 정도 빠름)
(더 오래된 활자로는 “상정고금예문” 이 있으나 현재 현존하지 않음)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하 불조직지심체요절이라 함)은 백운화상이 75세였던 고려 공민왕 21(1372)년에 노안을 무릅
쓰고, 선도(禪徒)들에게 선도(禪道)와 선관(禪觀)의 안목을 자각(自覺)케 하고자 함은 물론, 선풍(禪風)을 전등(傳燈)하여 법맥
(法脈)을 계승케 하고자 저술한 것으로서,
그 제자 석찬과 달담이 비구니 묘덕의 시주를 받아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 7월에 금속활자로 인쇄하였다.
「불조직지심체요절」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문염송집(禪門拈頌集)」등의 사전부(史傳部)의 여러 불서(佛書)를 섭렵하
고 역대의 여러 불조사(諸佛祖師)의 게(偈), 송(頌), 찬(讚), 가(歌), 명(銘), 서(書), 법어(法語), 문답(問答) 중에서 선(禪)의 요체
(要諦)를 깨닫는데 필요한 것만을 초록(抄錄)하여 찬술(撰述)한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
「불조직지심체요절」의 찬자(撰者)인 백운화상(白雲和尙)은 백운이 그의 호이며, 법명(法名)은 경한(景閑)이다.
고려 충렬왕 24(서기1289)년에 전라도 고부(古阜)에서 출생하여, 공민왕 23(1374)년에 여주(驪州)의 취암사(鷲巖寺)에서 77세를 일
기로 입적(入寂)하신 분이다.
화상은 어려서 출가하여 불학(佛學)을 익히고 수도하는 데에만 전념하였다.
후에 백운화상은 중국 호주(湖州) 하무산(霞霧山) 암(天湖庵)의 석옥청공(石屋淸珙)화상으로부터 직접 심법(心法)을 전수 받았으
며,인도의 지공(指空) 화상에서도 직접 법(法)을 물어 도(道)를 깨달았던 것이다.
귀국한 뒤에는 태고 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 1301∼1382)나 혜근 나옹화상(惠勤懶翁和尙,1320 ∼ 1376)과 더불어 대선사(大禪師)
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뿐만 아니라 황해도 해주(海州)의 안국사(安國寺)에서 11년 동안이나 선림(禪林)의 정업(精業)에 전력하였고, 뒤에는 해주의 신광
사(神光寺)에서 후학들을 계도(啓導)하였다
「불조직지심체요절」이 해외로 유출된 경위는 조선시대 고종때 주한 불란서대리공사로 서울에서 근무한바 있는 꼴랭 드 쁠랑시
(Collin de Plancy)가 수집해간 장서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 그후 골동품수집가였던 앙리베베르(Henry Vever)에게 넘어갔으며
그가 1950년에 사망하자 유언에 따라 프랑스국립도서관으로 이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책은 상·하 2권으로 되어있으나, 현재 하권만이 유일하게 프랑스에 소장되어 있으며, 하권은 39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째 장은 없고 2장부터 39장까지 총 38장만이 보존되고 있다.
흥덕사(興德寺)의 창건년대와 규모는 알수 없으나, 「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 간기에 고려 우왕 3년(1377)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
속활자로 책을 인쇄하였음을 명기(宣光七年丁巳七月 日 淸州牧外興德寺鑄字印施)하고 있는데,
이것은 독일의 구텐베르그보다 70여년이나 앞선 것으로 1972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도서의 해"에 출품되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된 것이다.
5) 조선왕조의궤
-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된 546종 2,940책의 각종 의궤
- 한국학 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287종 490책의 각종 의궤
의궤는 조선왕조에서 유교적 원리에 입각한 국가 의례를 중심으로 국가의 중요행사를 행사 진행 시점에서
당시 사용된 문서를 정해진 격식에 의해 정리하여 작성한 기록물이다.
같은 유교문화군에 속하는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는 의궤의 체계적인 편찬이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의궤는 조선시대 600여년에 걸쳐 (1392-1910) 왕실의 주요 행사, 즉 결혼식, 장례식, 연회, 사신영접 등 뿐 아니라, 건축물·왕릉의 조
성과 왕실문화활동 등에 대한 기록이 그림으로 남아져 있어 600여년의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희소성
을 가지고 있다.
총 3,895 여권의 방대한 분량에 이르는 의궤는 왕실의 주요한 의식이 시기별,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어서, 조선왕조 의식의 변화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를 비교연구, 이해하는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반차도, 도설 등 행사모습을 묘사한 시각 콘텐츠는 오늘날의 영상자료처럼 당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예컨대 정조의 능행도는 전 여정을 15.4m에 걸쳐 표현하고 있다.
이런 형태(시각중심)의 기록유산은 뛰어난 미술장인과 사관의 공동작업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성격을 지니
고 있다.
한 마디로 의궤는 장기간에 걸쳐 조선왕조의 주요 의식을 방대한 양의 그림과 글로 체계적으로 담고 있으며 이러한 유형은 동서양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기록유산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세계사 맥락에서 유교의 중요성이 저평가되고 있는 면이 없지 않다.
유교는 세계의 조그만 한쪽 구석에 존재했던 문화가 아니다.
유교가 지배했던 영토는 그 면적으로 볼 때 서유럽보다도 몇 배나 컸으며 인구 수에 있어서도 유럽, 서남아시아 및 중동을 초과하는
큰 규모였다.
유교권은 최소 14세기까지 전세계를 2~3개 권역으로 분할하던 주요 문화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수차례에 걸친 야만족의 침입과 이들에 의한 점령으로 인해 시간이 경과하며 전통 의식은 원형을 점차 잃어갔
다. 특히 몽골 침입 기간 동안 유교 의식을 수록한 문헌 상당수가 소멸됐다.
이에 반해 한국은 그러한 침입을 경험하지 않았기에 전통 유산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며 천 년 동안 진정성을 훼손하지 않고 유교
의식을 봉행하는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의궤는 대부분의 유교사회에서 잊혀진 과거 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기록이다.
또한, 의궤는 조그마한 군주국가의 기록이 아니라, 한때 세계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유교 전통의 핵심을 대표하는 기록이다.
조선왕조 의궤는 2007년 6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6) 팔만대장경(경판)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일명 고려대장경판)은 지금부터 750여년전인 고려 고종 23년인 1236년부터 38년인 1251년까지 16년간에 걸쳐
제작된 8만 여장의 목판이다.
몽골의 병란을 맞아 국가가 위기에 처하였을 때 전국민이 일치단결 하여 부처님의 힘을 빌어 외적을 물리치겠다는 일념으로 장장 16
년의 대장정을 거쳐 이루어진 우리 민족의 위대한 유산이다.
경판의 재질은 지금까지 모두 자작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전자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산벚나무와 돌배나무가 대부
분이었다.
경판은 한 면에 23행, 한 행에 14자, 전후 양면에 644자를 새겼다.
판의 후면 끝에는 경의 이름과 장 수, 천자문 차례의 함호를 새기고 좌우끝의 각목에도 동일한 표시를 남겼다.
이렇게 만들어진 경판은 81,258판 1511부 6802권으로 현재 해인사 수다라장과 법보전에서 숨쉬고 있다.
7) 동의보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는 2009년 7월 30일 서인도제도 바베이도스에서 열리고 있는 제9차 총회에서 '동의보감'을 세
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의학서로는 사상 최초이다.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우리나라는 1997년의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 2001년의 직지심체요절과 승정원일기, 그리고
2007년의 해인사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조선왕조의궤와 함께 총 7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등재수량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세계기록유산은 아시아에서 첫 번째,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3. 우리나라의 세계무형유산
1) 종묘제례 및 제례악
♣ 종묘제례 및 제례악의 세계무형유산적 가치는?
① 종묘 제례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셔 놓은 사당(종묘)에서 지내는 제사를 가리키며, ‘대제(大祭)’라고도 부른다.
종묘는 사직과 더불어 국가존립의 근본이 되는 중요한 상징물로 정전(19실)과 영녕전(16실)이 있다.
종묘제례는 정시제와 임시제로 나뉘어, 정시제는 4계절의 첫번째 달인 1월, 4월, 7월, 10월에 지냈고 임시제는 나라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을 때 지냈으나, 해방 후부터는 5월 첫 일요일에 한번만 지내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예법이나 예절에 있어서 모범인 의식만큼 순서와 절차는 엄격하고 장엄하게 진행된다.
제례는 크게 신을 모셔와 즐겁게 하고 보내드리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절차를 보면
선행절차 →취위(就位) →영신(迎神) →행신나례(行晨裸禮) →진찬(進饌) →초헌례(初獻禮)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
禮) →음복례(飮福禮) →철변두(撤변豆) →망료(望僚) →제후처리(祭後處理)의 순서로 진행되며,
종묘제례가 있기 전 왕은 4일간 근신하고 3일간 몸을 깨끗하게 한다.
종묘제례는 예(禮)를 소중히 여긴 조상들의 유교 사회에 있어 예술의 기준이된 귀중한 의식으로 웅장함과 엄숙함이 돋보인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과 더불어 2001년 5월 18일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었다.
② 종묘 제례악 → 신라향가, 고려가요 등은 가사는 알지만 음을 모름 (악보존재x) 500년 선율을 악보가 있어 재연할 수 있다.
2) 판소리
♣ 판소리의 뜻과 우리나라에서 지역별로 존재하는 판소리에 대해 알아봅시다.
① 판소리란? 우리나라의 성인문화 (서양의 솔로 오페라)
② 우리나라의 3대 판소리 - 서편제 (전라도 서쪽)
동편제 (전라도 동쪽)
중고제 (경기)
3) 강릉단오제
♣ 매년 3,4,5월 무당들이 산신들에게 하는 행사 (독창적 대표문화)
♣ 유네스코(UNESCO) : 국제연합교육, 과학, 문화기구
♣ 국보1호 : 서울 숭례문 (남대문)
♣ 보물1호 : 서울 흥인지문 (동대문)
♣ 천연기념물 1호 : 대구 달성의 측백수림
♣ 무형문화재 1호 : 서울 종묘 제례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