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클리조선 | 기사입력 2007-06-26 14:53 |
시범선정된 알타이11마을의 성과 알려지며 몽골 전역으로 확산
한국 지자체도 앞다퉈 지원… 세계 최초로 현지인 새마을지도자 대회 열려
TIP 몽골 개황
인구 247만명(2004년 1월)
면적 156만7000㎢(한반도의 7.4배)
1인당 GDP 477달러(2003년)
평균 고도 1500m(오대산 정상과 비슷)
종교 라마교 90%, 이슬람교 5%, 기타
시차 한국보다 한 시간 늦음. 서머타임 때는 동일.
화폐 투그릭, 1달러=1160투그릭(2005년 6월 현재)
자료 : 주한 몽골대사관
지난 5월 25일 오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는 드라마센터는 활기가 넘쳤다. 대형행사가 열렸기 때문이다. 몽골 전통공연 등이 자주 열리는 이곳에 이날은 낯익은 로고가 자주 눈에 띄었다. 세 잎 클로버 모양의 새마을 로고였다.
오전 10시, 사회자가 “몽골 새마을운동 활성화 대회 개막을 선언합니다”라며 힘차게 말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장내를 가득 메웠다. 이 대회는 범상한 행사가 아니다. 현지인이 자발적으로 여는 새마을지도자대회라는 점에서 세계 최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몽골 현지인 600여명으로 구성된 몽골새마을회(Mongolia Saemaul Undong Center)가 이 행사의 주최 측이다. 한국의 새마을운동중앙회는 몽골 정부와 함께 후원만 맡았다.
대회 열기는 몹시 뜨거웠다. 300여명의 참석자는 내외빈이 등단해서 연설할 때마다 꼼꼼히 메모해가면서 경청했다. 울란바토르에서 서북쪽으로 1420㎞ 떨어진 옵스도(道)에서는 이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10명이 3박4일 동안 자동차를 타고 왔을 정도다. 몽골은 포장도로가 적은 데다 포장상태도 안 좋아 이동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참석자의 열광적 호응에 힘입어 대회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몽골에 새마을운동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송중근 새마을운동중앙회 사업국장은 “몽골은 세계 최초로 현지인이 새마을지도자 대회를 열 정도로 새마을운동 열기가 높다”고 말했다.
몽골의 새마을운동은 몽골새마을회가 주축이 돼 전개하고 있다. 산파역을 맡은 K 마리나(여·41) 회장은 울란바토르의 얼헌대학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울란바토르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2000년에 처음 한국을 방문한 이후 2002년에 한국에 갔을 때 새마을기가 많이 보여서 관심을 갖게 됐다”며 “농민이 많고 소득이 낮은 몽골 실정에 새마을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새마을운동중앙회 등을 찾아다니며 새마을운동을 공부했고 그의 열의에 감동한 새마을운동 관계자들은 적극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세계적으로 드문 현지인의 자발적인 노력에 한국 측도 화답하기 시작했다. 2004년과 2005년에는 경기도새마을회가 지원을 맡았다. 시범마을은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45㎞ 떨어진 날라이흐군(郡) 알타이11마을이 선정됐다. 주민 250여명의 작은 마을이다. 2004년 10월 경기도새마을부녀회는 공동우물과 기계은행이라는 보따리 2개를 선물했다. 새마을 공동우물은 1일 식수 50톤을 생산할 수 있다.
또 날라이흐군 주민 중 23가구를 대상으로 가내수공업 기계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주민이 원하는 직물, 목공기계를 사주면 주민은 1년간 매월 일정한 금액을 갚아나가고 이 회수금으로 다시 다른 주민에게 기계를 사줘서 주민이 골고루 소득을 늘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2005년 7월에는 알타이11마을에 몽골 첫 새마을회관도 들어섰다. 건평 40평 규모의 이 건물은 다용도 회의실, 소득기계 운용작업실, 구판장 등을 갖추고 있다. 이 마을에는 300평 규모의 새마을 시범영농장도 설치됐다. 주민은 이 농장에서 무, 배추 등을 키워 마을 공동기금을 마련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경기도새마을회 외에 지자체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경기도새마을회는 7월 알타이11마을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했다. 몽골에는 비닐하우스가 없었다. 8월에는 알타이 10~11마을 진입로에 22m 길이의 다리를 건설했다. 9월에는 알타이 10~11마을 새마을회관 내에 장서 2000권을 갖춘 10평 규모의 새마을문고를 개설했다.
춘천시는 9월 옵스도 울란곰군에 새마을 시범목장을 설립했다. 축사 1동 건설과 양 420마리 구입에 1만5000달러가 들었다. 정선군은 7월 말 바양쥬르흐군 카쵸르트면에 1만달러를 들여 350평 규모의 새마을보건소를 신축했다. 구미시는 수흐바타르도에서 마을 진입로 350m를 포장해주고 시멘트 350통, 가로수 1000그루, 생필품 컨테이너 한 박스 등을 지원해줬다.
한국 측의 새마을운동 지원전략은 ‘마중물 이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마중물은 펌프질을 할 때 지하에서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처음에 펌프 위에 붓는 물을 가리킨다. 한국 측은 마중물만 제공하고 펌프질은 몽골인이 담당하는 식이다. 송중근 새마을운동중앙회 사업국장은 “무조건적인 퍼주기는 몽골인의 자립의지를 저해하므로 지양하고 있다”며 “주민의 자립의지가 강한 지역 위주로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마을운동은 몽골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몽골인은 이구동성으로 “새마을운동 덕분에 공동체의식이 생기고 있다”고 말한다. 알타이11마을 주민 도담스룬(여·48)씨는 “몽골은 개인주의가 심해 공동체의식이 없었는데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주민이 공동체의식에 눈뜨고 있다”고 말했다. “새마을운동을 한 이후 혼자서 일을 하는 것보다 힘을 합쳐서 일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됐어요. 한국에서 마을회관을 지어준 덕분에 주민이 1주일에 한두 번 만나서 마을 일을 의논합니다. 요즘은 여름에 감자를 심을까 의논 중입니다. 마을회의를 하면 한 집도 안 빠지고 다 나와요.”
새마을운동의 성과가 알려지면서 시범마을인 알타이11마을 주민은 뜻하지 않은 고민이 생겼다. 주민 웅두르모스(47)씨는 “다른 동네사람이 왜 이 마을만 지원해주고 우리 마을은 안 해주냐고 항의한다”며 “우리 동네로 이사 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새마을운동중앙회 관계자는 “몽골은 우리와 혈통 면에서 가깝고 세계 10대 자원대국이어서 매우 중요한 나라”라며 “자발적으로 새마을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몽골에 우리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새마을운동 변천사
1970년대 정부 주도로 출발, 1990년대 시민운동 변신
새마을운동은 시대별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은 부산에서 열린 전국 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운동을 제창했다. 이것이 효시다.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은 정부 주도로 농촌에서 추진됐다. 정부는 환경개선과 소득증대, 정신계발 등 3대 핵심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1974년부터 1977년까지 농가소득은 도시근로자 소득을 앞지르게 됐다. 1974년부터는 도시와 공장, 직장, 학교 등 여러 분야로 새마을운동이 확산됐다. 새마을운동도 기여해 한국의 국민소득은 1970년 240달러에서 1979년 1400달러로 늘어났다.
1980년대는 새마을운동의 시련기였다. 사단법인 새마을운동중앙본부가 출범함으로써 형식상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뀌기는 했으나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가 본부장을 맡은 데다 노태우 정권 때인 1988년 4월 전경환씨가 공금횡령 혐의로 구속되면서 새마을운동은 관변 비리단체로 국민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1990년대 새마을운동은 정부의 지원이 점차 줄어들면서 순수 시민운동으로 변신했다. IMF 외환위기 때 전국적으로 전개된 금 모으기 운동은 1997년 12월 10일 새마을운동이 민간단체 최초로 시작한 것이다. 국내의 무관심과는 대조적으로 해외의 평가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인터뷰 | 이수성 회장
“저개발 국가들 줄이어 교류·협력 원해… 새마을운동은 신한류”
이수성 회장은 2003년 제16대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에 취임했다. 이 회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 교수와 서울대 총장, 국무총리 등을 역임했다. 친화력이 뛰어나기로 정평이 나있다.
취임 후 어떤 일을 했나? “새마을운동의 지향목표로 ‘새마을 새정신 새나라 만들기’를 설정했다. 탈(脫)관변화 등 민간운동 조직으로서 중립성을 강화했다. 1지역 1농촌 결연 및 농산물 직거래 활성화를 통해 한·미 FTA 극복에 일조했다. 북한 농촌 지원사업을 펼쳤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통일손수레 2만6000대를 제공했고 종계(種鷄)시설을 건립해서 종계와 사료를 지원했다.”
새마을운동이 새로운 한류로서 가능성이 있는가? “새마을운동은 한류로서 가능성이 충분하다. 세계 지역개발의 모델로 이미 인정받고 있고 저개발 국가들이 계속해서 교류와 협력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은 민족주의를 뛰어넘는 순수한 나눔과 상생운동으로서 지속 가능하다고 본다. 국가 정책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면 더욱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새마을운동의 추진 방향은? “시대흐름에 맞게 추진할 것이다. 1960~1970년대 산업화에서 1980~1990년대 민주화, 이제 2000년대 선진화로 향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의 방향은 정신적 윤택과 삶의 질 향상에 두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신·문화 운동으로 펼쳐나가야 한다. 정신·문화 운동의 콘텐츠는 인간존중을 바탕에 둔 나눔과 배려 등으로 품위 있는 시민상을 확립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 울란바토르(몽골)= 박영철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