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이냐 믿음이냐 (갈라디아서 3장)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서 기적을 베푸신 것은 여러분이 유대교의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온 마음으로 의지했기 때문입니다.(갈 3장 5절)
율법은 철이 들기전에는 필요하다 철든 후에는 성장과 과정이 필요하다. 그림자는 깨달은 자의 말씀 가운데 살아있다. 그림자가 실체인 줄 아는 사람의 의식에 그림자가 본체가 아니고 동굴 밖에 태양이 실체이다. 이것이 이데아이다. 헤세는 인간은 알 안에 있는 존재다. 루소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지만 아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고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말한다. 그게 인간의 비극이다. 그걸 가지고 뭘 해보려는 건 아니다. 그림자는 알 안에 갇혀 있는 것을 의미한다. 단군신화에서 곰은 100일동안 마늘 먹고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이렇게 사람은 누구나 수성에서 벗어나 인간이 되고 신성이 깃든 존재가 되어야 한다.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될 것인지 말 것인지 그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처럼 사람은 동굴의 어둠 속에 게속 있을 것인지 동굴에서 벗어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돌아갈 것인지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결단에 달려있다. 천부경 9장에 본심본태양앙명 인중천지일 本心 本 太陽昻明 人中天地一 라는 말이 있다. "근본은 마음이라. 마음은 태양에 뿌리를 두어 밝고 밝으니 사람가운데서 천지가 하나 되느니라" 율법은 동굴의 모습이다. 트라우마에 갇혀서 사는 삶에서 벗어나는게 복음이다. 내가 쫄면서 사는 것에 대하여 자유로워져야 한다. 쇠사슬에서 벗어나 본디 자유인의 자리로 돌아가야한다. 자유인으로서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믿음으로서 영적 혈동을 잇게 되고 그 내용 속에 그리스도가 존재하시고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다. 율법이냐 복음이냐 이 선택의 기로에서 사람의 길에 설 것인지 그리스도의 길에 설 것인지 모두 도상의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다. 스페인의 퍼밀리아 성당을 만든 안토니오 가우디는 곡선을 중시하는 건물을 건축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는 이에 대하여 직선은 인간의 영역이고 곡선은 신의 영역이라 말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율법은 인간의 것이고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 계신다.
'sial ('17.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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