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 한 접시
김경준
무엇이든 제대로 된 것을 얻으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하더군요.
다른 일이야 잘 모르겠습니다만
더불어서 사는 일에는 얼마간 침묵하며
잠잠히 기다려야 맛도 향도 더 짙어지더군요.
생경한 농촌으로 이사한 이듬해에
집마당에 열린 살구의 착색이 먹음직하기에
성급하게 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시어서 기대한 맛은 아니기에
저 나무의 살구맛은 원래 별 볼 일 없으려니 하고
한집에 살면서도 몇 해를 관심 없이 지냈습니다.
앵두와 보리수가 끝난 어느 유월의 봄날에
아내가 달디단 살구 한 접시 책상에 올려놨는데
그 살구가 맛없는 살구나무의 살구라는 것을 알고
과일이란 게 다 익었어도 맛있게 숙성이 되는 데는
또 다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세상은
겉보기에는 익은 듯 하나 [과숙이 덜됨]이
아예 세상일 다반사에 넘쳐나더군요.
시장에서 희소가치를 가지기 위해
아직 덜 과숙된 과일을 성급히 따서 시장에 내니
시장에 낸 과실이란 게 과숙이 덜 된 것이 태반이듯
요즘 인생살이는 과숙되기를 기다릴 여유가 없나봅니다.
조금 늦더라도, 조금 기다리더라도,
원숙해져야만 원래의 맛과 향이 차 오르고
모든 삶의 여정에 참 맛과 향기 가득 채워질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