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28년(1997")
우리들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며
아름다운산행을 함께하는 룸비니(불교)산악회!
57년만에 개방된 무등산 인왕봉 1,187m 산행!
룸비니산악회는 "눈,비.바람이불어도 정상출정합니다
무등산(無等) 천왕봉1,187m
무돌뫼(무진악), 무당산, 무덤산, 무정산, 서석산 등의 별칭을갖고 있다.
무진악이란 무돌의 이두음으로 신라 때부터 쓰인 명칭이다
무돌의 뜻은 무지개를 뿜는 돌이란 뜻이다.
무등산이란 명칭은 서석산과 함께 고려 때부터 불려진 이름으로
비할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란 뜻이다.
무등산에는 수많은 볼거리가 많이 있는데
어떤 것은 멀리서도 바라볼 수있도록 우뚝 솟아 있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가까이 가서야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무등산은 오르기에 가파르지 않다.
그래서 휴일이면 무등산의 경승을 즐기려는 인파가 끊이지 않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간편한 옷차림으로 산을 찾는다.
볼만한 풍경이 있는 구경거리는
서석대, 입석대, 세인봉, 규봉, 원효계곡, 용추계곡, 지공너덜, 덕산너덜 등이 있다.
전망을 즐기려면 중머리재, 장불재, 동화사터, 장원봉 등이 있다.
이 중 화순쪽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입석대, 규봉, 지공너덜, 장불재, 백마능선, 규봉암에서의 동복호 조망 등이 있다.
무등산은 산줄기와 골짜기가 뚜렷하지 않고
마치 커다란 둔덕과 같은 산세를 지닌 홑산이다.
가장 큰 특징은 너덜지대로, 천왕봉 남쪽의 지공너덜과
증심사 동쪽의 덕산너덜은 장관을 자랑한다.
천태만상의 암석들이 운집한 정상, 천왕봉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바위들의 웅장함은 남도민의 신앙대상이 되어온 신산임을 반증한다.
특히 입석대, 서석대, 규봉의 바위군상은 보는 이를 압도할 만큼 대단하다.
허나 무등산은 전반적으로 완만한 산세이며 대부분이 흙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멀리서 본 전경은 뫼 '山'자를 연상케 하며 호남정맥 흐름의 중심에 솟아 있다.
골짜기들은 맑고 깊은 물을 품어 광주의 젖줄 노릇을 해 왔으며,
위치나 산세 면면이 남도의 으뜸이라 할 만한지라 빛고을 광주를 품기에 부족함이 없는 산이다
무등산 억새는 천연덕스러웠다
. 왜 사람들은 이 자그마한 울타리를 넘지 못하고
57년이나 기다렸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본인의 씨앗은 산들바람 한 점만 있어도 울타리는
물론 주상절리와 저 멀리 솟은 세 왕의 어깨 위까지 쉽게 날아갈 수 있으니 그럴 만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자유롭게 무등산 정상에 오를 수 있게 됐다.
9월 23일부터 인왕봉 정상이 상시개방됐다.
무등산 정상은 가장 높은
천왕봉天王峯(1,187m), 지왕봉地王峯(1,175m), 인왕봉人王峯(1,164m)
세 봉우리로 이뤄져 있는데 1966년 12월 20일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모든 봉우리에 철책이 둘러졌다.
지난 2011년부터 연 1~2회 정도 가끔 개방되곤 했는데
그럴 때도 일방통행을 원칙으로 군부대 안을 통과해 군사도로를 걷는 형식이었다.
그러니 여러모로 제대로 된 등산은 아니었다.
이젠 그런 통제 없이 마음껏 정상에 오를 수 있다.
57년 만에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무등산을 만나봤다.
원효사에서 출발해 입석대, 서석대와 인왕봉을
한 바퀴 돈 뒤 중봉을 거쳐 증심사로 내려왔다.
<<8,700만 년 전 화산이 빚어낸 입석대는 기기 묘묘한 조각품 같다.>>
온 세상이 무등이다
'무등학원, 무등식당, 무등상점, 무등체육관…'
"광주시민들이 얼마나 무등산을 좋아하는지 아시겠죠?"
옆자리에 앉은 국립공원공단 양헌삼 계장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원효사로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살펴본 광주시의 모습은 과연 그랬다.
중요한 장소에는 웬만하면 '무등'이란 이름이 있었다.
서석대, 입석대도 그 사이사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무등산에 대한 시민들의 주인의식이 굉장히 높아요.
그래서 정화활동도 엄청 열심히 해주시고 자원봉사도 많이 하시죠."
광주토박이인 양 계장이 토막토막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등에 대한 각별한 마음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투쟁의 역사다. 중봉에 있던 군부대를 이전시켰고,
1990년대에는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펼쳐 무등산 일부를 공유화했다.
또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1982년 일주도로 계획이 발표되자
지역 산악인들이 피켈을 들고 시위를 벌여 저지했다.
하지만 정상에 들어선 군부대를 비롯해
장불재, 중봉, 북봉 등에 삐죽빼죽 솟은 방송3사(KBS, MBC, KBC)와 KT 송신탑은
수십 년 동안 이전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번 인왕봉 개방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남은 지왕봉과 천왕봉은 주둔지 안에 있는데
이제 군부대 이전 논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거든요
. 특히 지왕봉의 경우 콘크리트로 덮고 위에 초소를 세워둔 걸
2015년에 복원한 바 있어요. 한 걸음씩 무등산이 제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는 셈이죠."
서석대(해발 1,100m)는
무등산의 상징이자 최고 인기 명소예요. 약 8천만 년 전 백악기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주상절리대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거대한 돌기둥들이 햇빛을 받으면 마치 은빛처럼 빛난다 하여 '서석(瑞石)'이라는 이름이 붙었답니다.
근처의 입석대와 함께 2005년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핵심 명소이기도 해요. 계절마다 봄의 산철쭉, 가을의 억새, 겨울의 환상적인 눈꽃 시상까지 절경을 자랑합니다
중봉으로 가는 길에 돌아본 무등산 정상부.
이제 굳게 닫혀 있던 울타리를 열고 서석대와 인왕봉 사이에 드넓은 억새밭에 몸을 던진다. 억새 사이로 희미하게 난 길을 따른다. 원효사에서 올라올 때 충분히 옆통수를 봐뒀는데 여기에 서니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우뚝우뚝 다가서다 보니 어느덧 군사시설은 자취를 감추고 황금빛 억새 위로 인왕봉만 당차게 섰다.
억새밭이 끝나면 데크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 오른다. 군부대 방면은 가림막으로 막혔다. 계단을 따라 오르면 널찍한 전망대다. 가장 먼저 산허리를 얼기설기 가로지르는 도로들이 보이고 그 위에 중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뚜렷하다. 바로 이 위에 광주시가 이름답게 새하얀 빛으로 물들어 있다.
"다른 정상과 다르게 군사시설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울타리를 넘는다든지, 부대 안을 촬영, 진입하려고 하면 절대 안 됩니다. 또 하나 궁금하실 것 같은데 요즘 정상 인증이 인기죠? 찾아보니 인증 지점이 대개 정상석이고 무등산은 서석대더라고요. 다만 아직 인왕봉에 정상석을 세울 계획은 없고, 필요성이 있는지만 검토 중입니다. 가령 군부대 이전이 조속하게 진행된다면 무등산의 진짜 정상인 천왕봉에만 세우면 되는 거잖아요? 하지만 만약 이전이 10년 이상 소요될 예정이라면 일단 인왕봉 정상석을 세우고 등산을 기념할 수 있도록 조치할 수도 있겠죠."
다시 서석대로 돌아와 목교 기점으로 내려선다. 서석대 발치 전망대에 잠시 머물었다가 길을 잇는다. 전나무와 잣나무가 조림지 위로 솟은 중봉을 마주본다. 집 앞 정원에 조성된 편안한 산책로 같은 길이다.
"중봉은 최근 SNS 성지가 됐어요. 아담한 정상석 너머로 서석대와 입석대가 멋지게 보여서 젊은 사람들이 인증샷을 찍으러 많이 와요. 그리고 여기 보시면 오른쪽 위에 뭔가 지운 흔적이 있죠? 4~5년 전에 누군가 중봉, 서석대 정상석에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라고 낙서를 했어요. 둘 다 지우느라 아주 애를 먹었죠."
중봉에서 북쪽 원효사 방면으로 뻗은 능선이 부드러운 가운데 모 방송사 송신탑이 경관을 훼손하고 있다.
그의 말을 듣길 잘했다. 짙은 숲길에 다람쥐가 천지다. 마음과 머리를 텅 비우고 걷기 딱 좋다. 이번 취재에서 가장 중요한 인왕봉 정상을 안전하게 다녀온 탓에 긴장이 풀렸다. 입을 열어서 무언가 잡념을 떠들었는데 그대로 휘발돼 무등에 안겼다.
커다란 당산나무를 지나자 평생 나병환자를 돌봤다는 최흥종 목사가 머물었던 오방수련원이다. 양 계장은 "과거 나병환자들이 모여 살던 이 골짜기 이름은 운림골인데 지금은 최흥종 목사의 친구였던 허백련 화가의 의재미술관을 포함해 자그마치 11개의 미술관이 골짜기를 따라 들어섰다"고 말했다. 나병 환자들의 도피처가 현재는 문화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빠듯했던 산행이 끝나간다. 문득 서석대에서 만난 한 노신사가 떠올랐다. 인왕봉에 오른 후 돌아오는 취재진을 한참 바라보던 그는 울타리를 넘자 "벌써 정상이 열렸습니까?"라며 말을 걸어왔다. 취재 당일은 정식 개방 이전이었기에 "날을 잘못 잡으셨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고 대꾸했다. 그러자 그는 "잘못 잡기는요. 어차피 늘 오는 산인데"라고 우문에 현답을 내놓았다. 광주시민들에게 무등산은 그런 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신라의 지증왕이나 법흥왕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뒤 삼국통일을 전후한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이곳에 머물면서 암자를 개축한 뒤부터 원효사 · 원효당 · 원효암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일설에는 고려 충숙왕 당시의 이름 있는 화엄종승(華嚴宗僧)이 창건한 뒤 원효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원효암이라 했다고도 한다.
그 후의 역사는 입증할 길이 없으나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섭정 때 사세(寺勢)가 다시 일어났으며, 선조 때의 승병장이었던 영규(靈圭)가 수도했던 곳이기도 하다. 정유재란 때 전소된 뒤 증심사(證心寺)를 중창했던 석경(釋經)이 직접 기와를 구워 중창하였다.
그 뒤 1636년(인조 14)에 신원(信元)이, 1685년(숙종 11)에는 신옥(信玉)과 정식(淨式)이, 1789년(정조 13)에는 회운(會雲)이, 1831년(순조 31)과 1847년(헌종 13)에는 내원(乃圓)이 각각 중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