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9. 거적지를 다녀 왔습니다.
대편성 하기 전에 못을 휘둘러 본 후 여섯대를 널고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자니
그 옛날 단산지에서 만났던 녀석이 떠오릅니다.
대학 2년 늦여름 즈음이였으리라 기억됩니다.
이종사촌 동생인 H와 봉무동 단산지로 밤낚시를 갔습니다.
지금은 봉무공원이 조성되어 접근성이 좋아 졌으나
당시엔 무너미 아래쪽 마을을 지나 제방위로 올라갈 수 있는 토끼길 같은 소로만 있었고
못위에는 좌안쪽에 과수가 심겨진 작은 비탈밭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1급수에 가까운 청정지역이면서 주변은 원시림같은 숲이 우거진
완전한 야생의 세계라고 할 정도로 인적이 드문 곳이였슴다.
20번(아니면 33번) 버스를 타고 단산지 입구에서 내려 논사이길을 따라 단산지 제방에 오르니
바라만 보아도 추워지는 시퍼런 수면에 살짝 한기를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면서
"야아~! 물참 깨끗한 게 쥐기네~!!"
허세가 섞인 일갈로 몸을 추스렸지요.
"형~! 진짜 물 깨끗하제. 오늘 타작하는 거 아이가??"
아마도 H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였으리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제방을 지나 제방좌안 오솔길을 걸어 가면서
우리 둘은 좌안 두번째 골짝 곳부리가 좋겠다면서 그기로 가기로 했슴다.
당시 공산댐은 아직 준공전이라 단산지가 대구 동구에서는 가장 큰 못으로 8만평이상 되었고
크고 작은 골짝이 많은 곳이라 두번째 골짜기까지 낚시장비와 텐트 그리고 먹을 것을 들고 가는 것도
거리가 만만잖게 먼 곳이라 힘들었지요.
첫째 골짝을 돌고 좀 쉰 뒤 두번 째 골짝으로 가는데 소로 주변의 칡덩굴과 잡풀이 우거져
마치 밀림을 헤치고 가는 것 처럼 낫으로 나뭇가지와 덩굴을 치면서 진군했슴다.
갈수기여서 물이 조금 빠진 상태라 못으로 내려서기 좋은 곳은 물빠진 곳으로 가기도 하면서
두번째 골짝 상류부근에 다달았을 때 건너편에 요상한 짐승이 한마리 서 있는 게 아닌가??
처음엔 웬 개가 인가도 없는 이 산골짝에 있지라고 고개를 갸웃하다가
자세히 보니 그건 개도 아니고 고양이도 분명 아니더군요.
고라니라면 벌써 토꼈을 건데 아직도 우릴 째려보고 있는 저놈은 대체 뭐지???
H와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넘을 살펴보니 넘역시 우두커니 서서 우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슴다.
고양이보다는 덩치가 많이 크고 키는 보통 중개 정도의 킨데
키에 비해 몸통이 날렵하고 다리가 길어 보였으며 꼬리가 짧고 귀가 쫑긋해 보였고
털색깔도 얼룩무늬가 뚜렷하지 않는 그냥 옅은 회갈색으로 보이는 녀석이 도망도 가지 않고
우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더군요. "저넘들은 대체 뭐냐?" 라는 늠름한 표정으로
어릴 적 부터 촌에서 살았던 H가 살짝 흥분하면서 말하더군요.
"형~! 저거 납닥바리 아이가."
"납닥바리가 뭐꼬?"
"그 와 흙 퍼붓고 사람 홀리갖고 잡아 묵는다 카는 그거"
"뭐시라꼬~! 조래 쪼매난 넘이 사람을...못된 넘이네. 그럼 쪼차 내자."
우리 둘은 돌을 주워서 건너편의 넘을 향하여 몇차례 던졌더니 넘은 숲속으로 사라지더군요.
골짝 안창을 돌아서 곳부리에 오니 텐트치기 좋은 곳이 있어 그 곳에 텐트를 치고
어두워 지기 전에 두번째 골짝을 가로 지르는 주낙을 쳤습니다.
저는 텐트가 있는 이 쪽에서 줄을 잡고 있고 H는 줄을 쥐고 골창을 돌아 건너편에 가서 말뚝을 두개 박아
줄을 걸고 다시 이쪽으로 돌아와 말뚝을 두개 박고 줄을 묶어 주낙의 원줄을 완성했습니다.
이젠 원줄을 한쪽 방향으로 당기면서 회전시켜 가지바늘을 원줄에 달아서 미끼를 끼워 밀어 넣으면 되는데
바늘에 미꾸라지를 끼우는 작업을 하던 H가 하는 말
"형~! 조오기 커버머리 돌아오다가 아까 글마 또 봤다~!"
"납닥바린지 글마 말이가?"
"응~! 글마 저그 동네라꼬 시위하는 거 같은데"
"그카다 말겠지. 주낚 쳐놓고 낚시나 하자~!"
넘이 비록 웬만한 중개정도의 덩치였지만 혈기왕성한 젊은 나이였던 지라 맨손으로 붙어도 이길 것 같아서
우린 별 신경 안쓰고 낚시준비에 여념이 없었지요.
둘은 주낚을 친 뒤 각각 두대씩 들낚을 셑팅한 후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보니 시선이 닿는 곳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안쪽 골짝에도 인기척이 없는 걸 보니 이 너른 못에 낚시하는 사람은 아마도 우리 둘 뿐인 듯 했습니다.
"형~! 아무도 없스이끼네 우리 둘이 오불숭타 그쟈~!!"
"뭐~? 오불숭타는 또 뭐꼬?"
"그러이끼네 그 뭐시냐 그냥 좋다는 뜻이지."
짐작컨데 오불숭타는 "오붓하다"는 말일 듯 합니다.
연신 입질해대는 잔챙이 손맛을 즐기다가 석양이 물들어 밥을 해먹고
준비해간 고기를 구워 먹으며 소주도 한잔하니 어둠이 내려 앉았습니다.
칸데라에 카바이트를 넣어 불을 켜고 낚시를 하는데 입질은 없고 웬 넘의 날파리와 불나방들이
그리 달라 드는지???
쉰내 비슷한 카바이트 타는 냄새와 불빛에 덤벼들던 날파리와 나방들이 타는 비리한 냄새
그리고 가끔씩 눈속이나 코 또는 귀속 심지어는 입안으로 파고들던 날파리들 성화에
칸데라 위치를 이리저리 옮기기도 했었지요.
이 때는 아직 캐미(라이트)가 나오기 전이라 통상 야광테잎을 찌탑 위부분에 촘촘하게 또는 어느 정도 간격으로
2~3줄씩 붙인 뒤 불을 비춰서 밤낚시를 하였는데 찌오름폭이 클 경우 참 보기 좋았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수면 아래서 마술지팡이를 천천히 밀어 올리는 듯한 그 장면은
진짜 챔질하기 싫을 정도로 황홀했었죠.
대박을 노리며 많은 준비를 해갔는데 새우, 지렁이, 떡밥, 보리밥 이것저것 부폐식 미끼를 총동원해도
입질은 없어 마지막 보루인 메기나 가물치를 노리고 미꾸라지를 끼워 밀어 넣은 주낚을 당겨보니
달랑 칼자루만한 가물치 두마리가 달려 있었슴다.
"형~! 소주나 한잔 빨고 자고 내일 아침장이나 보자~!"
"그라자~!! 입질도 없고 칸데라불에 날파리가 달라들어 성가시가 몬 하겄따~!!"
우리는 2박할 요량으로 왔기에 다음 날 마실 소주를 남겨두고 시원하게 마셨더니 얼그리하게 되었고
텐트안에 나란히 누워 잠이 들려는데 텐트위에 흙같은 게 촤르륵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게 아닌가???
마치 누군가가 우리 텐트위로 흙을 뿌리는 것처럼......
"H야~! 자나?"
"아니~!"
"니도 흙뿌리는 소리 들었나?"
"응~! 형도 들었나?"
"그래~! 이기 뭐꼬? 아까 글마가 해꼬지 하는 것 같은데"
그 순간 또다시 텐트위로 흙뿌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촤르르르륵
우리 둘은 후레쉬를 켜들고 텐트밖으로 나와 산쪽으로 후레쉬를 비추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 뒤
주변의 주먹만한 돌을 주워서 숲속 여기저기 던진 뒤 텐트로 들어 와 있으니 한동안 잠잠하여 넘이 멀리
도망갔나 보다 잠이나 자자며 누워서 잠이 들 무렵 또다시 넘의 반격이 시작되더군요.
"촤르르르륵~"
숲속에 숨어 보이지 않는 넘을 상대로 두어차례 고함지르며 돌을 던졌으나 넘의 산발적인 갈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행인 건 넘도 우리를 두려워 해선지 근처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였슴다.
넘의 공격은 집요했지요.
우리가 후레쉬로 숲속 여기저기를 비추고 쒸익~ 후세이~ 훠어이 소리를 지르며 돌을 던지면
한동안 잠잠하게 있다가 우리가 누워서 잠이 싸악 들라카면 마치 우리 행동을 빤히 보고 있다는 듯이
우릴 잠못자게 괴롭히는 것처럼 흙을 뿌리는 것이였슴다.
시간이 갈수록 흙뿌리는 인타발도 짧아지고 촤르륵 하는 빈도수도 많아지는 듯 했슴다.
영악한 넘~!!
텐트안에서 흙뿌리는 소리에 잠못들고 뒤척이던 H가 얘기 하더군요.
"형~! 남은 술 모두 마시고 이빠이(?) 째리면 절마가 흙뿌리고 개지랄삥해도 잠 잘오지 싶은데"
"그래~! 그게 좋겠다. 먹고 자자."
H와 저는 넘의 영역에 들어온 우리가 잘못이고 우리가 선제 공격을 했기 때문에 저넘은 계속 저렇게
흙을 퍼부을 거라고 생각하고 낚시도 잘 안되고 어차피 2박은 물건너 갔으니 내일 먹으려고 남겨둔 술을 먹고
잠이나 자자고 합의보고 나머지 술을 모두 마시고 술에 흠뻑 취해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보니 넘이 얼마나 흙을 뿌렸으면 텐트에 흙자국이 많이 묻어 있고
지난 밤에 가물치 두마리를 잡아 넣어 둔 망테기가 없어져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당시 텐트모양은 입구에서 보면 삼각형이고 전체적으로 기와집지붕 형태였는데
텐트 양쪽상단 구멍에 지주를 끼워 세우고 폴대에 줄을 매어 땅에 팩을 박아 고정시킨 후
양쪽 끝과 중간부근을 팽팽하게 당겨서 팩을 박아 완성시키는 구조였습니다.
그 때는 그 넘이 삵일 거라고 삵중에 덩치가 유난히 크고 별스럽게 생긴 넘이라 생각했는데
훗날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넘의 전체적인 체형과 두상 및 털 색깔 그리고 덩치와 생김새로 유추해 보건데
삵보다는 스라소니에 가까운 모습이였습니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옛날 고향마을 어른들이 말하던 흙 퍼붓는 납닥바리는 아마 우리가 본 스라소니를 일컫는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고양이과 동물은 배변후 발로 흙을 뿌려 덮는 습관이 있어 간혹 고양이과 동물이 텐트 위쪽에서 배변후
흙을 뿌려 변을 덮을 때 그 파편이 날아와서 그럴 수 있다고도 하던데
그 넘이 밤새 똥을 눈 것도 아니고 분명히 우리 텐트를 타겟으로 일부러 흙을 뿌린 게 확실하다고 봅니다.
스라소니를 토표(土豹)라고 하는 건 흙을 뿌리는 표범이라는 뜻일 듯......
납닥바리, 개호재비, 개오지, 개호주, 개호자는 같은 동물을 지칭하는 방언인데
덩치가 개만하고 흙을 뿌린다는 공통점으로 봐서 아마도 스라소니를 지칭하는 말일 듯 합니다.
통상 앞에 "개"자가 붙으면 가짜, 허접, 못생겼다, 맛없다는 뜻으로 사용했었죠.
개살구, 개복숭, 개옻나무, 개다래......
반면 요즘 애들은 접두어로 "개"자나 "캐"자를 붙혀서 "아주" 또는 "엄청"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합디다.
개호구, 개대물, 개드립, 캐맵다, 캐발렸다... 등등
지난 여름은 정말 캐더웠지요. ㅋ~
아무튼 "개호자"를 가짜 호랑이 새끼 또는 못생긴 호랑이 새끼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꼬리도 호랑이에 비해 볼품없이 짧고 생긴 모습이 독특한 스라소니를 못생긴 호랑이 새끼
즉 개호자라고 했을 듯 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 쩝~~
그 옛날 단산지에서 조우한 스라소니를 떠올리면서
젊은 날의 추억속에서 헤매이는데
깜박이던 찌불이 아련한 추억을 어둠속으로 스르륵 밀어 올린다.
"한번 더~!"
멋진 이단입질을 기대했건만
자정무렵에 철수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