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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스페인 철학
1. 라몬 율 (Ramon Llull)
라몬 율은 카탈루냐의 신비주의자,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이며 그리고 기호, 도표와 조합의 논리 발명가입니다.
라몬 율은 1232년, 현재 스페인 팔마에서 출생하여, 1315년, 튀니스 또는 마요르카 근교에서 승천했습니다. 그는 카탈루냐의 신비주의자이자 시인으로, 그의 저술은 로망스어인 카탈루냐어 발전에 기여했으며, 중세와 17세기 유럽 전역의 신플라톤주의 신비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카탈류나 지역은 유명한 도시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스페인 북동부 지역입니다.
그는 사상사에서 "진실 탐구의 기술", (ars inveniendi veritatis)을 창시한 사람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이 기술은 주로 선교 활동에서 로마 가톨릭 신앙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모든 지식 분야를 통합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진실 탐구의 기술" 즉 "아르스 인벤니엔디 베리타티스"는 "진리를 찾는 기술"이라는 뜻의 라틴어 문구입니다. 중세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라몬 율이 개념의 논리적 조합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개발한 방법 또는 체계를 말합니다. 이 '기술'은 지식을 체계화하고 진리 발견을 용이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 그의 대규모 작업인 “위대한 기술” 즉 아르스 마그나, (Ars magna) 의 핵심적인 부분이었습니다.
라몬 율의 "진실 탐구의 기술"는 기존의 진리를 찾는 방법뿐만 아니라 기본 개념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는 기호와 조합 시스템을 사용하여 개념 간의 가능한 모든 관계를 탐색하고 새로운 통찰력과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포함되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율의 사유는 현대에까지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라몬 율의 시스템은 당대에 영향력이 있었고 논리와 조합학의 발전에 기여했지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현대적인 진리 발견 방법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발견과 지식 습득의 과정을 체계화하려는 초기 시도를 보여주는 철학적, 논리적 사고의 역사에서 중요한 단계입니다.
마요르카 궁정에서 자란 율은 기사도적인 성장 과정에서 음유시인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했습니다. 그는 기사도 교본을 저술했는데, 이 책은 최초의 영국 인쇄업자인 윌리엄 캑스턴이 편집한 15세기 영문판에 실렸습니다 . 마요르카에 거주하는 많은 무어인들로부터 아랍어에 대한 지식을 얻었고, 이를 그의 저서에 활용했습니다. 또한 그의 환경은 이슬람 수피 신비주의와 동양의 관조 정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혼 후, 30세 무렵 율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환상을 경험했고, 그 후 궁정 생활을 버리고 선교 활동에 헌신했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평화주의적 영성에 영향을 받아 북아프리카 와 소아시아 전역을 여행하며 무슬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노력했습니다 .
1272년경, 마요르카 섬의 란다 산에서 또 다른 신비로운 경험을 한 후, 율은 온 우주가 신적 속성을 반영하는 것을 보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후 그는 모든 지식을 최초의 원리로 환원하고 그것들의 수렴점을 결정하는 것을 구상했습니다. 11세기 스콜라 신학자 캔터베리의 안셀름에게서 특정 교리를 빌려와 그의 주요 저작을 집필했는데, 이 저작을 통틀어 "신의 계시"라고 합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인 “위대한 기술” 즉 Ars magna 에서는 "지식의 나무"와 "지성의 상승과 하강에 관한 책" 이라는 논문이 포함됩니다.
율은 주로 무슬림과의 논쟁의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기독교 변증론을 합리적 토론의 수준에 두려고 시도했습니다. 율은 신학, 철학, 자연 과학서로의 유사체이자 우주 속의 신성의 표현으로 연결하기 위해 기호 표기법과 조합 다이어그램을 포함하는 논리와 복잡한 기계적 기술 즉 위대한 기술 즉 Ars magna를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율은 기독교 신학의 교리를 증명하기 위해 독창적인 논리적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Ars magna 의 변증적 적용은 율의 죽음 이후 역사의 배경으로 자리 잡았고, Ars는 보편적인 체계이자 지식의 요약으로서 르네상스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영향력을 유지했습니다.
율은 평생을 자신의 저서 “위대한 기술”, (Ars magna)의 보급에 바쳤고 , 통치자들과 교황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라곤의 제임스 2세는 아르스를 이슬람 세계 전역에 전파 하기 위해 마요르카에 동양어 학습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도록 설득당했습니다.
라몬 율의 “위대한 기술”은 합리적이고 기계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기독교 교리의 진리를 입증하고 무슬림과 유대인을 개종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도표와 조합 논리를 활용하여 다양한 개념과 원리를 연결함으로써 진리를 도출하는 '논리적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위대한 기술” 즉 아르스 마그나의 주요 측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2. 위대한 기술의 체계의 구조, 조합론과 기호학
“위대한 기술”의 핵심은 기하학적 기호와 조합 원리에 기반한 알고리즘적 사고입니다. 율은 9개의 절대적 원리 즉 (신, 선, 진리, 자비, 완전성 등)와 9개의 상대적 원리 즉 (차이, 일치, 대립, 시작, 끝 등)를 정의하고, 이를 회전하는 원판 즉 (율의 원판)으로 시각화했습니다. 이 원판들을 조합함으로써 복잡한 개념과 논증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 는 신, (Deus) B는 선, (Bonitas) C는 진리, (Veritas) D는 자비,
(Misericordia) 등
로 설정한 후, 원판을 회전시켜 A+B 즉 (신과 선의 관계), B+C 즉 (선과 진리의 관계) 등의 조합을 탐구했습니다. 이는 모든 지식이 유한한 기본 요소의 조합으로 도출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했습니다.
# 운용 방법은 4단계 프로세스로 운영됩니다.
1. 의문 제기, (Quaestio), 해결할 문제를 설정합니다.
2. 기호 할당, (Signa), 관련 기호를 원판에 배치합니다.
3. 조합 실행, (Combinatio), 원판을 회전시켜 가능한 조합을 탐색합니다.
4. 해석 도출, (Interpretatio), 결과 기호를 자연어로 번역해 결론을 얻습니다.
이 과정은 기계적 사고의 초기 형태로, 인간의 주관적 편향을 줄이고 보편적 진리에 도달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위대한 기술은 절대적인 원리와 상대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 절대적 원리와 상대적 원리의 정의
절대적 원리,(Principia Absoluta)는 신,(God), 선,(Goodness), 진리,(Truth), 자비,(Mercy), 완전성,(Perfection) 등 9개의 본질적 속성입니다. 이는 신성의 필연적 특성으로, 변화하지 않으며 모든 존재의 근원입니다.
상대적 원리,(Principia Relativa)는 차이,(Difference), 일치,(Concordance), 대립,(Contrariety), 시작,(Beginning), 끝,(End) 등 9개의 관계적 범주입니다. 이는 현상 세계에서 개념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규정합니다.
# 결합의 메커니즘
율의 원판 장치(회전하는 원형 차트)는 절대적 원리와 상대적 원리를 기호로 배치하고, 이들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명제를 생성합니다. 예를 들어
절대적 원리 A,(신) + 절대적 원리 B,(선) 은 "신은 선하다"를 나타냅니다.
절대적 원리 A,(신) + 상대적 원리 ㄱ,(일치) 은 "신은 자신과 일치한다" ( 이 조합은 신의 단일성 증명합니다)
절대적 원리 B,(선) + 상대적 원리 ㄴ,(대립) 은→ "선은 악과 대립한다" (이는 악의 부재성 설명합니다)
결합의 결과와 의미는 신학적 진리의 체계화하는 것입니다.
절대적 원리 간 결합은 신성의 속성을 이성적으로 증명합니다.
예: A,(신) + D,(자비) 는 → "신은 자비롭다"
이는 신학을 추상적 믿음이 아닌 논리적 논증의 대상으로 전환시킵니다.
현상 세계의 설명:
절대적 원리와 상대적 원리의 결합은 창조된 세계의 구조를 해석합니다.
예: B,(선) + a,(일치) + ㄴ,(차이) 는→ "선한 사물들은 서로 일치하지만, 악과는 차이를 가진다" 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 율은 선과 악의 형이상학을 구축합니다.
윤리적 체계의 수립: 이런 원리들의 결합은 또한 인간 행위의 지침을 제공합니다.
예, A,(신) + B,(선) + ㄷ,(시작) 는→ "인간의 행위는 신의 선을 본받아 시작되어야 한다"입니다.
이는 도덕이 신성의 모방,(imitatio Dei)임을 강조합니다.
종교 간 대화의 촉진:
율은 이 조합 체계가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언어가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예: A,(신) + C,(진리) 는→ "신은 진리다" (모든 일신교에서 인정 가능한 명제)
이를 통해 종교적 갈등을 이성적 대화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지식의 통합적 생성:
또한 원리의 결합은 신학, 철학, 과학을 아우르는 종합적 지식 체계를 만듭니다.
예: A,(신) + ㅁ,(원인) 는→ "신은 최종 원인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의 연결됩니다.)
율은 이를 통해 단일한 진리에 도달하려 했습니다.
# 종교적 적용, 이성적 신학
율은 이 체계를 사용해 신의 속성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신은 선한가?” 는 A+B의 조합으로 그 결과는 신과 선의 일치성으로 증명됩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A = Deus)과 선,(B = Bonitas) 의 조합,(A + B)은 체계의 최종적 논리적 결론을 낳습니다. 이 조합은 신성의 본질적 속성을 규명하는 동시에 윤리적·형이상학적 체계의 기초를 제공합니다.
# 1. 신과 선의 동일성 확립
A + B 조합은 "신은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명제를 도출합니다. 율에 따르면, 신은 절대적 선의 원천이므로 선함은 신의 필연적 속성입니다. 이는 신학적 토대이자 형이상학적 원리로 작용하며, 모든 창조물의 선함이 신에게 기원함을 의미합니다.
# 2. 악의 문제에 대한 해결
이 조합은 "악의 존재는 선의 부재“ 라는 설명을 가능하게 합니다. 율은 신이 악을 창조하지 않았으며, 악은 창조물의 불완전성이나 자유 의지의 오용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A + B 조합은 신의 전능함과 선함이 공존할 수 있음을 이성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입니다.
# 3. 윤리적 명령의 기초
A + B에서 “인간은 신을 본받아 선을 실천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신과 선의 일치는 인간의 도덕적 의무의 근거가 되며, 이성적 존재인 인간은 신성의 선함을 자신의 행동으로 구현해야 합니다.
# 4. 종교 간 대화의 도구
이 조합은 이슬람교나 유대교와의 대화에서 공통적 신관을 건립하는 데 활용됩니다. 율은 모든 일신교가 "신은 절대적 선"이라는 명제에 동의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를 출발점으로 종교적 화합을 모색했습니다.
# 5. 지식 체계의 통합
A + B는 다른 원리, (예: 진리[C], 자비[D])와의 추가 조합을 통해 더 복잡한 명제를 생성한다. 예를 들어, A + B + C는 "신은 선하고 진리하시다"는 명제로 확장되며, 이처럼 율의 체계는 계층적 지식 구축을 가능하게 한다.
신과 선의 조합은 율의 사상에서 이성과 신앙의 통합을 상징하는 핵심적 결론입니다. 이는 그의 보편적 지식 체계가 단순한 논리적 게임이 아닌, 신학적·윤리적 실천을 위한 도구임을 보여줍니다.
또 "신은 자비로운가? 라는 질문은 A+D의 조합으로 나타나고 신과 자비의 필연적 연결으로 나타납니다. 즉 신은 본질적으로 자비로우시다 라는 명제를 도출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신은 절대적인 선, (Bonitas)의 원천이므로 신은 본질적으로 자비로우시다 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따라서 신과 자비의 일치라는 사상이 도출이 된 것입니다. 그 다음은 여기서 더 나아가 신의 자비는 창조물에 대한 긍정적 개입 즉 구원, 용서 등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D가 A 없이 독립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를 창조적 연관이라고 합니다. 또 여기서 인간은 신의 자비를 모델로 삼아 타인에게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이를 윤리적 연관이라고 합니다.
율은 이 조합을 통해 이성적으로 신의 자비를 증명함으로써, 신학을 합리적 대화의 영역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이는 그의 종교적 이상 즉 이성적 설득으로 종교 간 갈등 해소를 구현하는 구체적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는 이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구원 등의 교리를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 과학적 영향, 계산 사고의 선구
율의 조합론은 근대 논리학과 컴퓨터 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라이프니츠는 율의 원판에서 영감을 받아 *보편적 기호학*,(Characteristica Universalis)을 개발했으며, 이는 현대 기호 논리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20세기 컴퓨터 과학자들 (예: 노버트 위너)은 율의 작업을 알고리즘 설계의 원형으로 평가하며, 인공지능의 지식 표현 체계와 유사성을 지적했습니다.
그의 조합 원리는 **조합 논리**(Combinatory Logic)와 **계산 가능성 이론**의 선행 개념으로 간주됩니다.
# 보편지향적 이상
라몬 율의 『위대한 기술』은 중세가 낳은 가장 독창적인 지적 유산 중 하나로, **종교, 철학, 과학을 하나의 체계로 통합**하려는 위대한 도전이었습니다. 비록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의 작업은 이성의 보편성에 대한 깊은 신념과 인류 화해에 대한 열정을 증명합니다. 율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적 논의와 다문화적 대화에서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하며, "진리는 하나이지만 다양한 길로 접근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을 계승합니다.
2, 수아레스
프란시스코 수아레스는 1548년 1월 5일, 스페인의 그라나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는 가톨릭 군주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가 8세기에 걸친 무슬림 지배에서 도시를 탈환한 지 불과 반세기 후였습니다. 그의 가문은 번영했지만, 모계 혈통으로 인해 종교재판에 휘말려 여러 사람이 화형당했습니다.
1585년 수아레스는 알칼라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기 시작했습니다. 1592년, 그는 학창 시절을 보낸 살라망카 대학교로 돌아가 그의 대표작 “형이상학 논쟁”즉 (Disputationes metaphysicae)을 집필했습니다 .
형이상학과 신학
수아레스는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둔스 스코투스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퀴나스와 스코투스는 중세의 스콜라 철학자였습니다. 아퀴나스는 기독교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종합하여 신학대전을 집필하고 실존과 본질의 객관적인 구별을 주장했습니다. 또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 스콜라 철학의 대표적인 인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받아들여 보편자와 개별자에 대한 독자적인 입장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보편자는 개별 사물 속에 형상으로 존재하며, 동시에 이성으로는 보편적인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보편자와 개별자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이며, 개별자 안에서 보편자가 실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영국의 철학자 둔스 스코투스는 유명론,(Nominalism)의 입장을 지지한 중세 철학자로, 보편자,(Universals)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사물들의 공통된 특징에 대한 이름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그는 인간이란 보편 개념에 해당하는 실체는 없다, 인간이란 단어는 개별적 인간들의 공통적인 속성에 불과하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특히 개별 사물들의 고유한 특성, 즉 개별화 가능성을 강조하며, 보편자가 개별 사물보다 우선한다는 실재론,(Realism)에 반대했습니다.
따라서 수아레스의 철학은 이런 여러 가지의 철학적인 흐름을 수용하고 또 반대의 학설들을 종합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수아레스는 형이상학의 본질을 새롭게 규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형이상학 즉 Metaphysics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의 이름입니다. 이 책 이름의 유래는 물리학 즉 Physics 뒤에 오는 책 혹은 물리학을 넘어서는 책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방대하여 순수한 형이상학적인 주제뿐만 아니라 논리학, 철학사 등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수아레스는 형이상학의 정의를 깔끔하게 규정하여 그 본질을 밝히고 싶어 했습니다. 이런 영역도 아주 복잡한데 이 철학의 항해 유튜브 방송에서는 그 중 재미있는 몇 가지 주제만을 뽑아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선 그는 형이상학의 대상을 실제적인 존재 즉 real being이라고 규정을 합니다. 실제적인 존재에는 무한한 존재 즉 신과 유한한 존재 두 가지가 포함됩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창조주와 피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존재들을 다시 실체와 속성의 두 가지 범주로 분석을 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란 유한한 존재가 있습니다. 그의 실체 즉 substance는 인간이고 그의 속성은 이성과 감성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속성 즉 properties 에도 본래적인 것이 있고 우연적인 것이 있습니다. 수아레스는 형이상학은 본래적인 속성만을 다룬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이성이란 본래적인 속성 외에도 웃음이란 비본질적인 속성도 있습니다. 인간은 웃음없이 살 수 없는 웃는 동물이기는 하지만 이런 속성은 형이상학 외에서 다른 곳에서 다룹니다. 즉 웃음이 인간의 본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형이상학에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참고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웃는 동물"이라고 정의하며 웃음을 인간의 본질적인 특징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웃음이 인간과 짐승을 구분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으며, 웃음의 원인을 인간의 자존감과 연관지어 설명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zoon politikon" 즉 (정치적 동물) 뿐만 아니라 "zoon geloion" 즉 (웃는 동물)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이는 웃음이 인간의 본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실제적 존재라는 말은 다른 말로 자립적인 존재와 같습니다. 실제적인 존재는 자신과 구별되는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존재론적인 구별, 수아레스의 3가지 구별 **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실제적인 존재를 형이상학의 본래적인 대상으로 취급하는 수아레스의 철학은 존재 구별의 3가지 방식을 분석합니다. 즉 1) 실제적 구별, real distinction, 2) 이성적 구별, rational distinction 그리고 3) 양태적 구별, modal distinction 입니다.
가장 명확한 두 가지 구별 유형은 1) 실제적 구별과 2) 이성적, 혹은 (개념적) 구별입니다.
1) 실제적 구별은 한 가지 사물과 다른 사물 사이에서 기대하는 종류의 구별입니다. 이는 결정적으로 정신 외적 구별이며, 그 특징은 상호 분리 가능성, 즉 어느 한 사물이 다른 사물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과 소의 구별입니다. 이 구별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대표적입니다.
2) 이성적 구별은 오직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구별입니다. 보통은 주관적 구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사물은 하나인데 나의 평가나 분석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또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새뮤얼 클레멘스입니다. 마크 트웨인과 새뮤엘 클레멘스 사이에는 이성적 구별이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적인 구별은 없습니다. 달리 말해서 이성적 구별은 단순히 개념상으로만 나뉘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 예는 '인간'과 '이성적 동물'입니다. 그러나 이 구별은 현실적 차이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인간'과 '이성적 동물'은 실은 같은 존재를 가르킵니다. 또 달리 말해서 인간과 이성적 동물은 상호 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이성적 구별은 둔스 스코투스가 대변합니다.
3) 양태적 구별
수아레스가 철학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발명 혹은 발견을 취한 부분이 바로 이 양태적 구별입니다. 이를 통해서 수아레스는 스콜라 철학의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수아레스는 자신이 고안한 양태적 구별을 "실체보다 약하지만 단순한 개념 차이보다 강한 존재론적 차이"로 정의합니다. 즉 실체는 같으나 그 양태 혹은 속성이 다른 부분을 지식과 언어로 구별하여 존재로 세우는 구별이 바로 양태적 구별입니다.
예를 들어, 빛과 그 밝기의 구별이 있습니다. 빛의 밝기는 빛의 부가적 규정입니다. 즉 양태로서, 실체는 아닙니다. 이런 양태적 구별은 단순한 개념적 구별, 즉 이성적인 구별은 아닙니다. 빛과 그 밝기는 현실에 내재한 차이이지만, 실제적 구별처럼 독자적 존재성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양태적 구별의 다른 예는 영혼의 기능이 있습니다. 즉 인간 영혼의 중요한 기능인 지성과 의지는 서로 완전히 다른 개념이기는 하지만 두 개를 분리할 수는 없습니다. 달리 말해서 지성과 의지는 한 인간에 들어 있는 두 개의 속성입니다.
보통 우리는 “저 애는 머리는 좋으나 의지가 약하다”또는 “이해는 늦지만 의지는 강하다”는 등의 표현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지성과 의지는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양자는 구별은 되나 분리는 안 됩니다. 따라서 이들은 동일한 실체에 속하는 속성들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이성 혹은 지성을 실체로 보고 의지를 이성의 양태로 봅니다. 이들은 동일 실체에 속하지만 기능적으로 다릅니다.
그런데 수아레스가 이성적 구별에 호소하고자 하는 주목할 만한 맥락은 신의 속성을 논의할 때입니다. 신적인 단일성 즉 “신은 유일자이다” 교리는 신적 속성이 양태적인 구별이라고 합니다. 즉 보통 삼위일체라고 부르는 절대적 신의 3가지 위격 즉 person 은 수아레스에 의하면 하나의 실체에 속한 3가지 양태입니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은 양태적 구별의 범주에 들어 갑니다.
즉 수아레스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설명하기 위해 양태적 구별 즉 (distinctio modalis) 이론을 적용했습니다. 그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존재들은 하나의 신적 본질 즉 (essentia divina) 안에서 구별되지만 즉 실제적으로는 하나의 대상을 지시합니다. 따라서 성삼위 즉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은 그 실체는 하나이지만 그 3가지 양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성삼위의 동일성은 쉽게 설명되나 그들이 역사적으로 각기 다르게 나타났다는 점에서 난점을 가집니다.
어쨌든 삼위일체의 교리는 이성적으로 설명하기는 극히 어렵습니다.
양태적 구별의 더 중요한 부분은 존재와 본질입니다. 즉 esse와 essentia 사이의 구별입니다.
# 본질주의, (essentialism)
스콜라 철학은 위에서 본 것처럼 구별의 관념을 중시합니다. 그러나 수아레스의 이름을 떨치게 한 것은 스콜라 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존재와 본질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있어서 가장 표준적인 이론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발명한 존재와 본질은 실제적으로 구별된다. 즉 존재와 본질은 실제적 구별, real distinction 입니다.
존재와 본질 즉 에세와 에센시아입니다. 즉 esse & essentia
프랑스의 천주교 철학자 에티엔 질송은 그의 저저 <존재와 일부 철학자들 즉 Being and some philosopher>에서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형이상학을 네 가지 유형으로 구별했습니다. 그 중 두 가지가 “실존주의”와 “본질주의”입니다.
두 용어는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어 왔지만, 질송에게 실존주의는 존재를 본질보다 우선시하는 반면 본질주의는 그 반대의 입장을 취합니다. 질송의 이야기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존재를 존재의 행위로 인식하고 즉 being as the act of existing 이런 철학을 존재의 학문으로 인식합니다. 또 여기서 하나 덧붙이면 존재 즉 being은 다른 표현으로 실존 즉 existence 라고도 합니다. 즉 존재는 실존과 같은 말입니다.
질송은 그러나 수아레스는 철학에서 존재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형이상학이 본질에 대한 학문이 되는 대표적인 본질주의자로 간주합니다.
더 나아가 “에티엔 질송”은 본질주의가 다양한 철학적 병폐를 낳는다. 따라서 이러한 본질주의는 수아레스가 역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만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비판합니다.
이 이야기에는 형이상학에 대한 수아레스의 개념이 등장하지만 존재의 구별에 대한 그의 설명은 필연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 영원한 진리, 우연적인 것에 대한 학문의 가능성 등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토마스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일반적인 토마스주의 즉 Thomism의 견해는 에센티아, essentia와 에세, esse 사이에는 실제 또는 실제적 차이 즉 real distinction이 있다는 것입니다. 피조물 즉 우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에는 그러한 구별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은 필연적으로 그리고 그 자신으로부터 존재하며 신 안에는 존재와 본질의 구별이 없습니다.
즉 신의 본질은 모두 존재화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달리 말해서 신에게는 그의 본질이 100% 현실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존재 혹은 실존은 본질의 현실화를 나타냅니다. being as the act of existing입니다.
프란시스코 수아레스는 『형이상학적 논고』에서 존재,(esse)와 본질,(essentia)의 관계를 양태적 구별,(distinctio modalis)로 설명하며 스콜라 철학의 오랜 논쟁에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실제적 구별'과 둔스 스코투스의 '이성적 구별' 사이에서 중도적 입장을 취합니다.
수아레스에 따르면, 창조된 실체에서 본질은 실체의 "무엇" 즉 (quidditas)을 정의하는 가능적 차원이며, 존재는 이를 현실화하는 활동 즉 (actus essendi)입니다. 이 둘은 실제로 구별되지만 완전한 분리를 이루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라는 본질 즉 (이성적 동물)은 존재의 현실화 없이도 개념적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실제 인간이 되려면 존재가 부여되어야 합니다. 이때 본질과 존재의 관계는 양태적입니다, 존재는 본질에 부가되는 현실적 계기이지만, 본질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구별의 특징은 비분리성과 약한 실재성에 있습니다. 본질과 존재는 하나의 실체 안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며, 이 구별은 단순한 개념적 차이,(이성적 구별)보다 강하지만 두 실체의 분리,(실제적 구별)보다는 약합니다. 수아레스는 이를 "실체적 통일성 내에서의 현실적 차이"로 규정했습니다. 신학적 측면에서 이 이론은 창조 교리와 연결됩니다. 신은 본질과 존재가 동일한 단순한 존재자이지만, 창조물은 본질이 존재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신의 창조 행위는 본질에 존재를 부여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유한한 실체가 현실화됩니다.
# 초월성 개념
중세에는 초월성 즉 transcendental 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임, 진실됨, 착함 즉 일, 진, 선 등을 모든 존재들의 일반적인 속성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트랜센덴털 즉 transdental이고 독일어로는 트란젠덴탈 transzental입니다. 임마뉴엘 칸트의 선험철학 즉 transznedental Philosophie 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중세 철학에서 '초월성' 즉 (Transcendentals)은 단순한 경험적 범주를 넘어서는 사물들의 보편적 속성을 지시합니다. 즉 모든 존재자는 일, 진, 선이라는 속성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초월성 이론은
토마스 아퀴나스와 스콜라 학자들에 의해 체계화되었습니다. 이 개념은 존재 자체 즉 라틴어 (ens)가 가지는 최상의 속성들로, 일, (Unum), 진, (Verum), 선, (Bonum)을 포함하며, 후기 스콜라 철학에서 아름다움, (Pulchrum)이 추가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초월성들은 모든 존재자가 공유하지만, 신에게서는 완전한 형태로 구현된다고 합니다. 즉 신이나 인간이나 혹은 다른 모든 존재자 혹은 사물들은 모두 이런 일반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 신은 이런 초월자들의 완성입니다.
# 초월성의 철학적 기반
중세 초월성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기독교 신학과 결합되어 발전했습니다. 우선 아리스토텔레스는 (밑줄 쫙) “존재와 일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상은 형식논리학의 원리 즉 동일율, 모순율 그리고 배중율의 근간이 되기도 합니다.
아퀴나스는 『진리론』, (De Veritate)에서 초월성이 "모든 존재자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속성"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존재자는 단일성 즉 “일”을 가지며, 지성에 인식가능한 진리성, 즉 “진”을 지니고, 의지가 추구할 만한 가치 즉 “선”을 갖춘다 라고 합니다. 수아레스의 특징은 일, 진, 선의 구별이 이성적 구별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들 다수의 초월성은 한 실체의 3가지 가면이라고 봅니다.
# 일의 초월성 수아레스에게 '일'은 단순한 숫자의 통일성이 아닌, 존재자의 내적 통합성과 불가분성을 의미합니다. 모든 존재자는 그 자체로 분할될 수 없는 통일체를 이룹니다. (밑줄 쫙)일의 초월성은 존재와 그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영혼과 몸의 실질적 통일로 존재하며, 이 통일성이 파괴될 때 존재도 소멸됩니다. '일'은 존재의 내적 일관성을 보장하며, 다원성 속에서도 통일성을 유지하는 근거가 됩니다. 이는 다른 말로 동일성 혹은 자기동일성이라고 합니다. 일, Unum은 통일성과 불가분성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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