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적인 달란트로 찬송시를 지은 여류작가, 화니 크로스비(Fanny Crosby)
뉴욕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지 6주 만에 심각한 눈 염증을 앓아 의사의 부주의한 처방으로 결국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모는 "왜 우리에게 이런 비극이! 안돼! 받아들일 수 없어!"라고 원망하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고난의 골짜기를 걸어가기로 작정했습니다. 그 의사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제가 만약 다시 그분을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저는 그분이 저를 시각장애인으로 만들어 주신 것에 대해 몇 번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평생 시각 장애인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스러운 섭리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그와 같은 섭리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자서전 ‘화니 크로스비의 생애’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녀는 만약 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해도 그것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또 자신이 앞을 못 보게 된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노래들을 쓸 수 있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만약 제가 앞을 볼 수 있었다면 제 주위를 끄는 많은 흥미롭고 아름다운 것들 때문에 마음이 흐트러져 결코 수천 편의 시를 지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크로스비 가문은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 집안으로 신앙심이 깊었습니다. 화니는 자랄수록 청각과 미각, 후각과 촉각이 예민하게 발달했고 손재주가 좋았으며 영리하고 똑똑했습니다. 할머니는 어린 화니에게 성경 이야기를 은혜롭게 들려주며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손으로 만져 보고, 코로 향긋한 향기를 맡게 했습니다. 특히 자연이 움직이는 모습을 성경 말씀과 연관 지어 설명해 주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필요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라. 그리고 일어난 모든 좋은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해야 한다.” “일이 너무 어렵다고 하나님께서 하지 못하실 일이 하나도 없다. 자기의 필요가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은 능히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이란다.” “너의 기도제목이 아무리 엉뚱하거나 가망이 없는 것일지라도 너에게 유익하다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다. 설령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신다 해도 낙심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얼토당토않는 너의 소망과 기대보다 더 좋은 것을 이미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늘 기뻐해야 한다. 고통과 좌절도 기쁘게 인내하면서 참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더 좋은 것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지.” 그녀의 외할머니는 성경의 사람이었으며 “기도를 확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열 살 때는 구약성경의 첫 네 권과 사복음서 또 수없이 많은 시를 암송했습니다. 1835년 뉴욕에 있는 맹인학교에서 들어가 교육을 받았는데 교장은 그녀가 자만에 빠지지 않게 주의하라고 3개월 동안 어떤 시도 쓰지 말라는 지시도 했습니다. 이는 어린 소녀에게 큰 시련이었는데 의식적으로 시를 쓰지 않을 때도 시상이 끊임없이 마음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녀는 “그것은 나에게 엄청난 유익을 가져다주었다.”라고 술회했습니다.
그녀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 발생하는데, 1848년에 맹인학교에 콜레라가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어 주검의 시신 앞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장례식에서 경험하고, 화니도 이러한 일을 경험하면서 죽음과 그 후의 삶에 대해서 깨닫게 되어 자기 신앙을 돌아보았습니다.
“만일 콜레라가 내 생명을 빼앗아 갔다면 나는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했을까?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또 다른 무언가를 하라는 말씀이 아닐까?” 때마침 부흥집회에 참석하여 회개의 시간을 통하여 과거 어두움을 다 씻어내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일하는 사명의 눈을 뜨게 되어 그날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그 당시에 대해 “내 영혼은 하늘의 빛으로 차고 넘쳤다. 처음으로 나는 지금까지 나 자신이 한 손으로는 세상을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주님을 붙들려고 노력해 왔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체험으로 화니는 예수님 사랑에 푹 빠졌습니다.
1864년 그녀는 저명한 찬송 작곡가이자 출판가인 윌리엄 브래드버리를 만나 첫 복음성가 ‘저 하늘에 빛나는 우리의 본향’을 출판했는데 출판사에서 그녀가 지은 시 한 편에 1~2달러(당시 달러 가치) 정도만 지급했기 때문에 생활은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앞으로 51년 동안 하나님께 이끌려 찬송 8000여 곡을 지으리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마음 상태가 최적에 도달할 때까지 늘 회개하고 기도하며 “나는 시 쓰기에 앞서 기도해요. 좋으신 주님께 내가 쓰려는 시에 영감을 달라고 요청하는 기도를 드리지 않고는 찬송가를 써 본 적이 없어요.”라고 고백했습니다.
화니 크로스비를 잘 모른다 해도 모든 기독교인들은 그녀가 지은 많은 찬송을 부르며 큰 은혜를 받으며 그 찬송들이 비록 육신의 눈은 보이지 않았으나 영혼의 눈으로 본 영의 세계가 그의 펜을 통하여 아름다운 찬송시로 나타났습니다. 화니는 찬송가를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의 노래”로 예배자 자신의 체험과 관련을 지어 찬송부르는 사람들의 마음에 아주 소중하게 역사하였습니다.
“당신을 위하여 용서가 있다오.” “나를 지나가지 마소서.” “주께로 내가 옵니다.” 찬송가 대부분을 1인칭으로 써서 부르는 자들이 그 찬송의 사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게 했습니다. 그녀의 삶은 당시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던 복음 전도자 무디와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자신이 경험한 간증과 찬양으로 수많은 이를 주님께 인도했습니다. 맹인이며 95년의 생애를 살면서 대략 8,000여 찬송시를 쓰고 일반 서정시도 1,000여 편 이상을 쓴 시인이며, 교육자이며, 음악가인 그녀는 하프와 오르간 연주가로도 유명하고 간증 설교자 겸 강연자로도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녀는 인류역사에서 최고의 기독교 찬송 시인이며 위대한 탐험가요 위대한 승리자였습니다. "금빛 찬란한 아침에 주님 다시 오실 때 주의 영광 내가 친히 보겠네…" “주가 맡긴 귀한 역사 힘을 다해 마치고 밝고 밝은 천국 아침 맞을 때 요단강을 건너가서 주의 손을 붙잡고 기쁜 마음으로 얼굴 대하리…” 그의 영안으로 보는 주님의 모습에 그녀는 절망과 슬픔이 아닌 기쁨과 감격의 인생길 95년을 찬양 속에 살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