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비가 잦았고 열대야 일수도 많았던 올여름이 가고 있다. 구월에 들어 늦더위가 남아 있었고, 그 사이 고향 가서 큰조카와 선산 벌초를 마쳐 놓았다. 추석 연휴 사흘을 앞두고 토요휴무일과 일요일이 붙어있어 닷새간 연휴다. 고향걸음은 열나흘 날 아침 일찍 가기로 하고 마음 통하는 벗과 산행을 나섰다. 평소 출근시간 대에 창원을 빠져 나가 밀양으로 향했다. 가을 들판에 안개가 자욱했다.
단산 농협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표충사 행 시골버스를 기다려 탔다. 오랜만에 타 본 시골 버스엔 우리 둘을 포함해 승객은 다섯 명도 안 되었다. 얼음골과 표충사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쳐진 마을이 단산의 금곡삼거리다. 그곳 다리를 지날 때 강바닥 따라 무성한 갈대가 이삭을 내밀고 스치는 바람에 물결처럼 나부꼈다. 유명한 고례 대추는 나무마다 조랑조랑 달려 볼이 붉어가고 있었다.
버스가 표충사 매표소까지 바짝 다가가서 커다란 적송은 감상할 기회를 놓쳤다. 일주문까지 가는 길가에서 아름드리 꿀밤나무가 있었다. 그곳을 지나다 우리는 허리 굽혀 도토리를 주웠다. 우리보다 먼저 지나간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사이 또 떨어져 우리가 주운 량이 제법 되었다. 일주문 근처에는 몇몇 보살들이 일을 삼고 줍고 있었다. 먼저 준 사찰입장료는 우리가 줍는 도토리 보상받지 싶었다.
일제 때 살인범에 사형선고 후 고뇌하다 법복 벋고 엿판 들고 유랑하다 금강산에 들어가 석두선사 문하에 든 사람이 있었다. 그가 만년에 표충사 서래각에 기거하다 입적한 효봉선사다. 그의 부도가 대밭 아래 있어 절 구경은 효봉선사를 떠올려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대밭을 돌아 사자평 오르는 산 들머리에 여뀌 꽃이 메밀밭 꽃처럼 하얗게 피어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물봉선도 아직 붉게 피어 있었다.
명절을 앞두고 있어선지 주말인데도 산행객은 뜸했다. 우리 둘은 등산길에 떨어진 도토리를 보고 그냥 오를 수 없었다. 팥이나 콩 같은 곡식이 흘려져 있는 것처럼 아까웠다. 다람쥐한테는 좀 미안하다만 워낙 많은 도토리라 주워도 금방 또 보였다.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연신 닦아가며 계속 주웠더니 배낭이 묵직해졌다. 아직 우리가 올라야 할 길이 먼데 배낭이 무거워 걱정이 좀 되었다.
예정한 시간보다 늦게 사람도 떠나고 오두막도 철거된 고사리분교가 있던 자리에 닿았다. 너럭바위를 찾아 마주앉아 막걸리를 한 통 비우고 우리는 그 주변에 떨어진 도토리를 주웠다. 이제 더 무거워진 배낭을 메고 재약산 수미봉으로 올랐다. 이제부터 짙은 운무가 앞을 가려 그 너른 사자평이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었다. 구절초는 하얗게, 쑥부쟁이는 연한 자주로 아름답게 피어나 있었다.
해발 천 미터 넘는 수미봉에서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산정이었다. 암반지자기를 받으며 둘은 가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들었다. 바람이 세어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짙은 운무 속에 전에 다닌 경험으로 짐작해 천황산 사자봉으로 향했다. 두 봉우리 사이 천왕재 가게에서 도토리묵으로 막걸리 잔을 함께 나누고 다시 천백여 미터 사자봉에 오르니 운무는 더 앞을 가렸다.
산정의 낮은 기온으로 안경에 성에가 끼어 앞을 분간 못할 정도였다. 영남 알프스 억새군락은 운무 속에 제대로 다 볼 수 없었다. 그래도 고사리분교 자리부터 반겨주던 구절초와 쑥부쟁이 꽃으로 위안 되었다. 억새야 다음에 신불산이나 간월산에 올라 보기로 미루어 놓았다. 배낭에 도토리가 가득한지라 점심을 먹고도 배낭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우리는 산 능선 타고 동쪽으로 계속 걸었다.
맑은 날이라면 남명 마을을 발아래 두고 운문산 백운산 가지산의 우람한 산세를 조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명 마을 이정표를 지나 얼음골 이정표에서 하산 방향을 틀었다. 비탈진 돌계단을 얼마간 내려서니 동의굴이 나왔다. 허준이 그의 스승 유의태 시신을 해부했다는 설이 전하는 곳이다. 볼록한 배낭을 짊어지고 조심조심 돌계단을 내려밟아 얼음골에 닿았다. 사과 볼이 수줍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양반은 글 덕, 상민은 발 덕’이라는 속담이 있다. 양반은 문장을 짓는 정신노동으로 살아가고, 상민은 다리품을 파는 육체노동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오늘 벗과 산행에서 배낭 가득 채운 도토리는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시장에 내다 팔 물건도 아니다. 내일 모레 고향 가는 걸음에 가져가련다. 큰형수님에게 보내면 겨울방학쯤 다시 들리면 도토리묵을 맛볼 수 있으려나.
첫댓글 발덕 참 톡톡히 버셨습니다. 먼 길 타신 보람도 컸을 거구요. 고사리분교가 있던 그 사자평엔 고냉지 배추가 이맘때면 한창이었었는데. 다 철거되었다더군요. 운무 속의 산행이 눈에 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