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모스크에서 제일 아래 층에 위치한 수도를 틀고 더위를 식히는 대니의 모습.
시원~하다!
제기랄, 발권을 못한다니.
조금은 귀찮다는 듯이, 무성의한 말투로 발권 안된다고 하는 그 녀석에게 더이상 할 말이 없어 그대로 문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아, 이를 어쩐다.
사실 우리의 이스탄불 계획은 하루를 더 머무는 것이었으나 그날의 이스탄불 관광을 한 다음에 마음이 바뀌고 말았다. 한국을 떠나오기전에 살짝 예상해보았던 대로 '성교회 불감증(성이나 교회 등 중세 건축물을 보아도 아무런 감동이 없는 증상)'이 우리를 엄습해버린 것이었다. 블루 모스크 → 아야 소피아 → 톱카프 궁전 으로 이어지는 이스탄불의 '건축물 3총사'를 차례로 방문하면서 감동이 배가되기는 커녕 오히려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죠셉과 나는 일정을 하루 앞당겨 이스탄불에서 하루만 보내고 이튿날 다음 행선지인 '이즈미르(Izmir)' 로 향하기로 마음을 먹고 여행사를 돌며 표를 알아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고된 비행을 끝낸 지 얼마 안되는 시점이라 장거리 버스보다는 비행기로 이동을 해서 피로감을 최소화하기로 결정을 했었다. 그런데 비행기표 발권이 이미 끝났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 괘씸한 녀석이 운영하는 여행사를 나와 바로 옆 집인 우리의 숙소 유누스 엠레 호텔로 들어가려는데 바로 그 다음 집이 또 여행사 간판을 걸고 있는게 보였다.
"야, 저기도 여행사네. 들어가보자. 밑져야 본전이니까."
어차피 안된다는데 가봐서 뭐하겠냐는 표정의 죠셉을 살살 꼬셔서 우리는 '보스포러스 여행사'안으로 들어갔다. 여느 여행사처럼 7~8평 정도의 사무실에 책상이 두세개 놓여있고 안에는 긴 말총머리에 덮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어떤 사내가 앉아있었다. '파리(Fahri)라는 이름의 사내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고 나는 그런 태도만으로 혹시 안된다는 비행기 표가 예약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런 나의 바람은 나중에 현실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그에게 지금 비행기 표가 필요하며, 다음 행선지를 이즈미르로 잡았는데 전반적인 관광 가이드를 원한다고 말했더니, 그는 비행기표 발권은 물론 가능하며 이즈미르 보다 더 좋은 곳을 안내해 주겠다고 말했다. 나와 죠셉은 발권이 된다는 그의 말에 귀를 의심하며 재차, 삼차 되물었다. 그렇다면 저 옆집의 배스터드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발권이 안된다고 한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여기서 된다고 하니 그냥 우리는 발권을 하면 그만일 뿐이라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게다가 그는 비행기 티켓도 가격대가 두가지가 있는데 어느 것이든 우리가 원하는 것으로 고를 수 있다고 했다. 하나는 전통의 Turkish air line 이었고, 또다른 하나는 신생 항공인 Onur air(오누르 항공. 터키어로 명예라는 뜻)였는데, 특히 후자는 가격이 택스 포함 99달러로서 110불 정도의 전자보다 비교 우위에 있었다. 망설일 것도 없이 우리는 오누르 항공을 선택했고 비행기표는 잠시 후 발권이 되었다.
이제 문제는 다음 행선지였다. 애시당초 한국에서 여행책을 놓고 어디를 갈까 고민할 때 결정했던 다음 행선지인 이즈미르는 파리의 말에 의하면 그다지 매력적인 여행지는 아니었다. 그저 규모가 큰 도시일 뿐, 오히려 그 주변의 도시들이 더 볼 것이 많다는 조언을 그는 해주었다. 우리는 그의 말에 따라 이즈미르까지는 비행기로 이동하고 다시 미니버스로 이용해 Kusadasi(쿠샤다스)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쿠샤다스의 숙소도 파리가 권해주던 Polat Beach Hotel(폴랏 비치 호텔)로 예약을 했다.
사실 우리가 전적으로 여행사를 신뢰하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여행사 문을 두드렸을 때 단지 비행기 표만 발권하기를 원했으며 나머지 일정도 우리 스스로 헤쳐가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그가 강력하게 추천을 하는 바람에 쿠샤다스의 일정까지는 그의 말에 따라 예약을 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여행을 떠나오기 전 가이드 북에 씌여있던 '이스탄불의 여행사가 모든 일정을 예약하기를 추천해도 절대 받아들이지 말라. 현지에 가면 오히려 더 싼 상품들이 있다."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쿠샤다스의 숙소 외에도 저렴한 가격으로 카파도키아의 벌룬 투어나 그린 투어 등을 권해 올 때 가이드 북에 씌여있던 가격을 이미 숙지하고 있던 나와 죠셉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현지에서 더 할인을 해도 이보다 더 싸게 될까 싶었다. 그래서 그 두개의 투어 마저 더 예약을 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파리가 카파도키아의 숙소마저 자신이 추천하는 것으로 왜 바꾸지 않느냐고 해도 그것만은 끝까지 우리가 예약해 두었던 것을 고집처럼 지키고 있었다. 파리가 말했다.
"너희가 예약한 '드림 케이브'도 좋은 곳이기는 해. 하지만 거기는 '펜션'일 뿐이야. 돈을 조금 더 주고 쓰리 스타에 새로 지어진 진정한 암굴 호텔에 묵지 그러니?"
내가 말했다. "파리,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해. 하지만 우리는 드림 케이브를 한국에서 미리 전화해서 예약을 했었고, 이제와서 무책임하게 약속을 깨고 싶지는 않아."
그랬다, 한국에서 터키까지 전화료만도 돈 만원은 나올 터였다, 십 분도 통화를 못했는데. 그런데 거기까지 가서 예약을 바꾸기는 싫었다. 파리는 너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할 수 없지만 정말 아쉽다는 표정으로, 우리의 뜻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이 내게는 자꾸만 패키지로 모든 터키 관광을 팔아먹으려는 장사꾼의 모습으로 비춰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파리와의 상담이 호의와 장삿속을 오가면서 우리에게 비춰지고 있는 사이에 모든 거래는 끝났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쿠샤다스까지의 비행기 티켓, 이동 버스편, 숙소를 예약했고 추가로 카파도키아의 벌룬 투어와 그린 투어를 예약했다. 옆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여행사 사장님이 흐뭇한 미소를 띄며 내일 아침에 공항까지 픽업 서비스가 있으니 8시까지 호텔 로비로 나오라고 했다. 우리에게 따뜻한 애플티를 건네 주었던 일본인 여성 스태프도 방긋이 웃음을 띄며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말총머리 파리도 밖으로 나와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수염 때문에 무척 나이가 들어보였지만 실제로는 우리보다 한 살이 어리다던 그. 우리 나이를 듣더니 깜짝 놀라며 무척 어리게 보인다고 말하던 그. 그렇게 우리는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내가 조셉에게 말했다.
"좋은 인연일꺼야. 그렇지?"
"응, 그러길 바래."
죠셉이 짧게 대답했다.
우리는 숙소에 돌아가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잠시 침대에서 뒹굴뒹굴 하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파리와 일본인 스탭이 추천해 준 숙소 바로 앞의 '도이도이'에 들어갔는데 십 분 정도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래서 바닥의 쿠션이 주저 앉아 옆을 보는 데, 우리 말고도 서너 팀의 사람들이 죽치고 앉아서 옥상의 좋은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십 분 정도를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안되겠기에 그대로 자리를 빠져나왔다. 언덕길을 올라 아까 낮에 힐끗 보았던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음식은 그럭저럭 먹을 만 했는데 고기와 고기를 싼 만두 피 같은 것이 조금만 더 부드러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료로 나는 맥주를 시켰고 조셉은 콜라를 다 마시고 진한 터키시 커피를 한잔 더 시켰다.
"내가 친구한테 들었는데 말이야, 터키에 오면 이 터키시 커피를 한 잔 마셔보라고 하더라고. 아주 엄청 진한게, 커피 안에 알갱이 같은 게 씹히는 게 느껴진다고 하더라고."
죠셉이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티스푼을 들고 잔을 저으며 내게 말했다.
"맛있냐?"
"음..."
"맛없어?"
"음... 맛은 그다지 없네...? 한 번 마셔볼래?"
맛없다는 커피를 권하는 죠셉의 말을 물리치고 앉아 있는데, 웬 사내가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자신을 사장이라고 소개하고 음식이 어떠냐고 물었다. 표정이나 제스처를 의식적으로 상냥하게 하는 티가 너무 나서 조금 부담이 되는 사람이었다. 대충 음식이 맛있다고 말하자, 그는 손바닥을 비비며 무척 만족한다는 표정이더니 이내 우리가 학생인지를 물었다. 학생 아니고 직장인이라고 하자,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러면 몇 살이냐고 했다. 그는 서른 둘이라는 우리의 나이를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Would you show me your passport?"
그의 말을 우리 말로 번역하면 '민증 까봐.'가 되었다. 하도 놀라워하기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여권을 보여주었더니 아주 난리가 났다. 어디론가 황급히 사라지더니 잠시 후에 우리 또래의 어떤 사내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는 사장이 터키어로 뭐라고 설명을 하자 그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우리가 사장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몇살인가요?"
"스물 셋."
그 이후로 우리는 터키인들의 나이를 추측하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다.
다음 편은 럭셔리하게 비행기를 타고 쿠샤다스로 가서 휴식을 취하는 죠셉과 대니의 이야기입니다. 지중해의 따가운 햇살 아래서 선탠을 하고 호텔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즐기는 죠셉과 대니. 그런데 시내로 진출하려다 낯선 봉고차에 납치가 될 상황에 처하는데... 다음편 쿠샤다스 호텔 라이프 편을 많이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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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맛없다는 커피를 권하는 " 이부분에서 혼자 웃다가 뒤집어졌습니다... 맛없기에 권했던 걸까여? 저도 이스탄불 도착하면 바로 셀축이나 쿠샤다시로 야간버스 이동하려고 하는디... 음.. 뱅기로 이동하셨다니... 시간은 엄청 절약되셨겠네여
소년님도 시계반대방향으로 여행하셨나바여... 전 쿠샤다시에서 그리스 로도스 잠깐 댕겨오고 카파도키아를 마지막 행선지로 택하려고 하걸랑여... 교통편만 제편이 되어준다면....
당근 시간 절약 되었었구요. 결론적으로 루트방향에 대해 조언해드리자면, 시계방향을 추천합니다. 이스탄불에서 이틀 정도 보내다가 카파도키아까지 빡세게 버스 이동해서 이틀간 투어하고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남쪽 휴양지에서 몸을 푸는 것이 좋지요. 저희의 경우 카파도키아 빡세게 관광하고 이스탄불 돌아와 바로 귀
국하려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반대를 강추합니다. 그리고 현지 여행사에 물었더니 로도스 섬은 '그냥 그리스 섬일뿐'이라고 일축하더군요. 터키에서 배타고 그리스 땅 함 밟고 온다 이거지 더도 덜도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희도 현지에서 맘 바꾸고 뺐어요. 잘 생각해보셔요. 로도스는 마르마리스에서 떠난답니다.
날이 덥긴 더웠나봐..저리 물을 보고 얼굴 씻으니~~ㅋㅋ미리 교육받고 사진보니 어찌나 잼나는지..ㅋㅋ
사진을 보니 저까지도 시원해지는 듯~ ㅋㅋ
소년님의 조언 감사합니다. 터키여행카페에서도 대부분 시계방향을 많이 제안하더라구여... 빡세게 여행하고, 지중해연안에서 피로 풀고 이스탄불에서 뱅기타고 돌아오라고..
첨계획은 그리스 산토리니가 목적이었는디 여정만 거의 이틀이어서 로도스도 좋다...라는 소문에 함 가볼까 했는디..진짜 고민해야겠네여... 토욜출발이라 고민할 시간도 별루 없네여...
죠셉님은 맛있는 콜라는 권하지 않고 맛없는 커피를 권하시네요. ㅋㅋ 성교회 불감증 지극히 이해가 되고 동감이여요.. 크리스티 말대로 교육 받고 보니 더 재미있네요.. 특히 세수하는 사진 ㅎㅎㅎ
예습의 중요성을 또한번 느끼네요..ㅋㅋ 머리속에 쏙쏙 들어오고 더 잼나는거같아요~~
결과적으로 파리의 추천에 다 만족하셨나요? 궁금해요 다음편. :)
쿠샤다스의 럭셔리 여행기편 기다려지네요~~ 나이들수록 배낭여행보다는 럭셔리로만 눈이 높아지니 걱정이에요...ㅠㅠ; 돈 벌어야지...
지중해 소년님 글 넘 잼나요~~~ ㅎㅎㅎ 진짜 글 잘 쓰신당~
결과적으로 만족의 여부는... 음, 미리 알려드리면 잼없을지도 몰지만 질문 들왔으므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았죠. 시설 등에 있어서는. 하지만 굳이 우리의 초이스를 하는 바람에 에피소드는 많아져서 좋았어요.
미니미니님, 열심히 활동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