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으로는 바다가 눈앞에 펼쳐 있고, 남쪽에는 한라산이 웅장
하게 멀리 보인다. 눈 아래로 제주시의 크고 작은 마을들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특히 저녁 무렵에는 붉은 해가 온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지는 광경이 참으로 장관이다. 그래서 ‘사봉
낙조(沙峯落照)’라 하여 영주십이경의 하나로 이름이 높다.
산 위에는 팔모정이 있고, 조선시대에는 봉수대가 있어서
동쪽으로 원당봉(元堂峯), 서쪽으로 도원봉(道圓峯,
도두봉) 봉수에 응했다고 한다.
사라봉 아래에 산저포라고 불렸던 제주항이 있다. 산저포(山低浦)는
산짓개 또는 산지포라고 불리는 산지물 북쪽에 있는 포구로 건입포를
말한다. 건들개는 건입 앞에 있는 개로 신라 때, 고을나의 15대손
고후(高厚)ㆍ고청(高淸)과 그 아우 삼형제가 신라에 갔다가 이곳으로
돌아오자 족속의 무리들이 여기에 모여 환영했다는 장소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어획기에 접어들어 물결이 잠잠한 밤에는 수백 척의 어선이
물고기를 잡으러 나간다. 이때 점점이 등잔불이 수면에 반사하여
일대가 온통 불야성을 이룬다. 그때의 장관을 영주십이경의
하나인 ‘산포조어(山浦釣魚)’라고 했다.
이 내는 물이 얼음처럼 차서 예부터 제주 시내 사람들이
한여름에는 이 물로 몸을 씻어 더위를 잊었다 하며 은어가
많아서 조정에 진상을 했다고 한다.
그때의 산저포는 1927년 제주항 개항과 함께 제주도의
관문이 되면서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저무는 날 고기잡이 나간 가벼운 떼배
바닷구름 비인 곳 뱃노래도 끊긴다.
사람과 벗하는 백로는 서로 잊은 지 오래고
물을 거슬러 오르던 북어 뛰려고 할 때
거꾸로 잠긴 부푼 돛 산 그림자에 어우러졌고
한 어깨에 걸친 도롱이에 빗소리도 성기다.
한가로이 홀로 앉아 천기를 따르는 이는
배 안에 다만 찻상과 책 묶음만 실었구나.
제주시 해안동 산 220-12번지에 있는 어승생봉(御乘生峯)은
해안동ㆍ연동ㆍ오라2동에 걸쳐 있는 산이다. 어수생ㆍ어수생이
ㆍ어승생이ㆍ어승봉ㆍ어숭생악ㆍ어승생오름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높이가 1692미터인 어승생 밑에 제주시 상수도
수원지가 있는데, 정조 21년인 1797년에 이 오름 아래에서 매우
잘 달리는 좋은 말[용종마(庸種馬)]이 나와서 목사 조명즙
(曺命楫)이 임금께 바쳤다. 정조 임금이 그 말 이름을 ‘노정(盧正)
’이라고 내리고 또 벼슬의 품계를 올려주었다고 한다.
제주읍성은 일도1동ㆍ일도2동ㆍ이도2동ㆍ삼도1동ㆍ삼도2동ㆍ오라2동에
걸쳐 있던 성이다. 둘레가 6120자, 높이 13자인 이 성은 조선 제13대
명종 21년(1566)에 목사 곽흘(郭屹)이 축성한 성이다. 그는 성안에
우물이 없어서 백성들의 식수난과 변란 때의 물난리를 대비하여 성을
산지내 밖으로 물려 쌓고, 동서에 각 1문, 남쪽에는 2문을 내었다. 선조
32년(1599)에 목사 성윤문(成允文)이 더 늘려 쌓고, 남문을 하나 없애는
동시에 문마다 초루를 만들었다. 남ㆍ북 두 문은 홍예로 하였다.
그리고 격대, 포루를 21대를 두었다. 그러나 성은 이제 거의 다
없어지고, 오직 오현단 남쪽만 일부분이 남아서 그 옛날을 증언하고 있다.
1890년에 산지∼부산 간 조선 우편 소속 기선이 취항한
것을 시초로, 내륙항만과 연결하는 제주도의 중심 항만이다.
제주항을 국제관광항으로 개발, 1974년도에는 현대식 여객터미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