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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②
사하라 열풍과 신들린 대수로 공사
이 글은 그룹에서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시행하고 있는 <각계 저명인사 초청 리비아 대수로 공사 시찰단> 중 제6회 시찰단의 일원으로 지난 7월 10일부터 22일 까지 12박 13일간 리비아를 견학하고 온 명지대 교수이자 중동학회 회장인 심의섭 교수가 현지에서 보고 느낀 것을 옮긴 글입니다.
한편 제6회 시찰단은 리비아대수로 공사 현장에서 땀 흘리는 근로자의 교양관련 도서 구입 보조금으로 미화 1400 달러를 모금하여 동아건설에 기증했습니다. 동아건설은 이에 교양관련 도서 250권을 구입하여, 지난 8월 21일 동아콘소시움으로 송부했습니다.〈편집자 주〉
출처: “사하라열풍과 신들린 대수로 공사”, 동아그룹, 동아그룹사보, 1995, 9: 50-53
심 의섭(명지대 교수)
● 영글은 나의 사하라 꿈
서양사람 들이 만든 색안경을 끼고 냉전적 이데올로기로 염색된 내 머리에 낀 묵은 때를 벗기고자 중동과 아프리카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지만 눈금 틀린 잣대에 의한 주변의 응시는 나를 늘 외로운 방랑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아그룹 창립50주년기념 리비아 대수로 공사 시찰단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필자가 갈망하던 꿈은 영글기 시작했다.
이번에 동아그룹에서 실시한 대수로 공사 시찰은 5월부터 시작하여 11월까지 모두 14차례에 걸쳐 연인원 225명이 참여하게 되고 필자가 참가한 제6차 시찰단은 김생빈 단장(동국대 부총장)을 포함하여 16명으로 구성되어 동아건설의 최종각 부부장과 권오경 차장의 안내로 약 2주일간(7.10-7.22)의 일정으로 다녀왔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리비아에서 몇 년 동안 고생하는 동아직원들도 사리르 공장을 다녀온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말을 들을 때 그곳이 얼마나 가기 어려운 사하라 사막의 한가운데이던가? 필자에게 앞으로 또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인생에 많지 않은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 생각일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시종일관 지나치리만큼 친절한 안내와 빈틈없는 일정과 배려는 세계의 동아를 실감케 하는 성숙된 동아맨들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더구나 인류가 만들고 있는 세계 8번째 불가사의인 대수로 공사가 수행되고 있는 역사적인 현장을 답사할 수 있는 세기적인 귀중한 기회를 마련해주신 최원석 회장님과 동아그룹에 이 기회에 새삼 감사한 마음을 드리고 싶다.
시찰알정을 대체로 살펴보면, KAL 전세기로 서울을 출발하여 튜니시아의 제르바 공항(이집트를 경유한 팀도 있음)에 도착한 후 육로로 트리폴리로 이동하였다. 트리폴리에서는 동아건설 전용기로 벵가지로 이동하고 다음날 아즈다비아 저수조와 사리르 관생산 공장을 시찰하고 하룻밤을 지냈다. 이어서 사리르 Well Field와 벵가지를 둘러보고 트리폴리에 도착하여 관매설 현장을 시찰하였다. 다음날 튜니스, 로마에 머물렀다가 파리에서 묵은 다음 KAL편으로 귀국하였다. 어느 여행에서나 마찬가지지만 일부러 마개 빠진 개그와 주책, 특히 이원복 교수, 백영식 교수, 송영섭 교수의 트리오 개그반죽과 리비아 부채깃발과 강시모자 등은 앞으로 사하라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었기에 단원 여러분들께 진실로 감사한 마음을 드리고 싶다.
● UN경제제재에 다져지는 각오
소위 국제적인 경제제재(Economic Sanction)는 늘 그랬듯이 성공할 수 없는 엄포라고 한다. UN은 이미 5년 전에 발생한 Rockerby 사건에 연루된 리비아인 용의자 인도문제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리비아에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에 따른 불편은 트리폴리 공항에서 몇 년째 뜨지 못하고 열사에 졸고 있는 국제선 여객기처럼 리비아 인에게는 이미 체질화되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은 동아를 비롯하여 리비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어려움이다.
리비아와 튜니시아의 국경출입국 관리소에 장사진을 이룬 출입국자 행렬과 검문검색에 지친 관리들에게 경제제재야 말로 사하라 생수의 위력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국경사무소는 리비아의 저물가 경제정책 때문에 튜니시아와 리비아를 오가는 보따리장수들은 보통 15배의 이익을 보기 때문에 혼잡이 매우 심하다. 이 같은 경제제재의 사생아인 보따리장수들이 늘어날수록 이 같은 불편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리비아에 들어서면서 필자는 기대와는 다른 활력 있는 시장거리, 희망에 찬 시민들의 얼굴, 대수로 공사의 주역인 동아 맨에 대한 진실한 호의 등을 보면서 필자가 가지고 있던 가다피 대통령과 리비아에 대한 어설픈 선입견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 또 하나의 불가사의, 대수로의 태반
벵가지의 티베스티 호텔의 채송화 내음을 멀리하고 사막의 중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시가지를 벗어나자 불그레한 사막과 은빛의 모래사막이 교차되고 신기루를 찾다 보면 오아시스를 지나게 되고 또 다시 낙타무리를 만나고 동아의 관 운반 차량을 만나면서 원의 중심으로 깊게 빠져들었다. 간간이 만나는 수단사람들의 이사차량, 빈 깡통 하나 플라스틱 물병 하나라도 그렇게 소중하기에 까마득하게 싣고 며칠이 걸리든지 몇 달이 걸리든지 사막을 달리고 있고 필자는 사막의 열풍에 신경통이 나아지기를 바라며 쉴 틈에 열풍을 즐기다 보니 어느덧 사리르 공장에 도착하였다.
워낙 넓은 사막에 흩어져 일하기 때문에 서울(본부), 부산, 대구, 추풍령 등으로 각 현장을 지칭하며 무선으로 교신하면서 일사불란하게 작업하는 것을 보니 나의 옛 군대생활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남대문시장과 명동 시장, 가락시장이라고 하는 이름도 있다니 과연 지구촌시대가 멀리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사리르란 의미는 죽음의 지역을 뜻한다는데 이러한 극지의 사막에 마로 동아가 낙원을 건설한 것을 보니 한국인의 가능성에 대해 어쩐지 숙연해지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원래 건설 공사 중에서 지하에 묻히는 상하수도 공사는 다른 공사와 달리 떠들썩하지 못하다. 대수로 공사도 관매설이 지하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만약 그것이 지상에서의 구조물로 된다면 육감으로 느끼는 장대함은 몇 배를 더하리라. 관생산과 관매설 현장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인류 역사상 8번째의 불가사의가 태어나는 태반이라고 생각하니 역사적 의미에 대한 표현의 한계가 아쉽기만 하였다
● 저수조 낙조
도대체 황량한 사막에 어니서 물이 나오는 것일까? 3억년 전희 화석수를 지하 200-300m에서 뽑아 올려 사하라 사막을 옥토로 만든다는 리비아의 꿈이 바야흐로 실현되고 있는 현장이었다. 나일강 물이 200년 정도 흐를 수 있다는 풍부한 수향이 도대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어찌 알리요 마는 사하라 사막의 모래만큼이나 풍부한 물이 사막 속에 있다니 리비아는 그저 석유만의 보고가 아니라 수자원의 보고가 아닐는지?
황량한 사막의 한가운데 있는 아즈다비아 저수도 직경 1km의 저수조에 파랑이 일고 이끼가 끼고 깡패 고기가 살고 메뚜기와 개구리가 생기고 제비가 날아오고 물새가 나르니 참 자연의 신기함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방으로 수백km를 가야 오아시스가 있다는데 어떻게 물고기가 생겼단 말이냐? 물고기 알이 바람에 날려 왔나? 물새의 배설물에서 나왔나? 새들이 물 먹으로 날라와서 사람을 보아도 도망가지 않는 사리르 공장에도 벌써 10년 가까이 오아시스가 형성되었으니 생태계에고 변화를 주는 것 같았다.
사하라 화석수의 물맛, 그것은 먹어 본 사람이라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무공해 화석약수이었다. 물맛이 그만이어서 물만 먹어도 살 수 있고 물만 활용해고 좋을성 싶은 사하라 사막의 화석수… 어찌 동아가 아니면 맛인들 볼 수 있었으랴.
● 잊을 수 없는 수박 맛
리비아 수박은 기가 막히게 잘 익었다. 일조량이 많기 때문에 당도도 높고 맛도 좋았다. 특히 동아농장의 원두막에서 큼직큼직하게 빠개어 먹은 수박의 맛이야말로 지금까지 먹은 어느 수박보다도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무, 배추, 양파, 아욱 등 동아가족의 자급을 위해 가꾼 동아농장은 리비아에서의 한국 정서를 느끼게 하는 깜짝쇼와 같았다. 리비아에서 농장경경은 방풍림 조성의무와 관정시설 제한 등 수자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갖가지 정책을 보면서 물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사막의 구내식당에서 맛본 싱싱한 광어회는 지금도 군침이 넘어갈 정도이다. 지중해에서 잡아온 광어회. 리비아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광어 값을 올리는데 우리가 한몫을 했다고 생각하니 좀 개운치 않은 느낌도 없지 않았다.
● 기술연수에 비지땀을 쏟는 동남아 인력
한국의 해외건설업체들이 진출 초기 과정에서 제3국 인력을 다룰지 몰라서 시행착오가 얼마나 많았건가? 그저 식민지 시대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제3국 인력활용이 비교열위에 있다고 자탄할 뿐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제3국 인력활용에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비교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이제는 노임 따먹기 식의 단순인력 대량투입형의 노동집약적 공사는 졸업을 하여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지난 6,70년대. 소위 한국의 개발연대에는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고 기를 쓰고 해외공사판으로 건설인력이 줄을 지어 나간 적이 있었다. 아. 그것이 벌써 어제이었던가? 지금은 그 꿈을 이루고자 후발 개도국들이 줄을 잇고 있는 대수로 공사 건설현장… 중국 조선족, 베트남인, 태국인, 필리핀인, 방글라데시인, 파키스타인 등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한국의 기능 인력은 꼭 필요한 팀장들만 고용하고 제3국인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제3국 인력들이 뒤범벅이 되어 일을 하더라도 처음 며칠은 의사소통이 어렵지만 며칠만 지나면 각국의 말이 뒤섞여서 불편 없이 통화가 된다니 언어학자들이 알면 멋진 실험장을 돈을 들여서라도 가고픈 곳이리라. 그리고 현장에서 외국 인력의 먹는 것까지 신경을 쓰자니 해당국의 일류 주방장까지 고용하여 신토불이라고 자기 나라 음식으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다. 비번 시간을 활용하여 쇼핑차량도 마련해주고 운동시설도 마련해주고 있었다. 나라마다 좋아하는 운동은 따로 있었다. 조선족은 축구를 좋아하고, 필리핀 사람들은 농구를 좋아하고, 베트남과 태국사람들은 배구를 좋아하고, 리비아와 서양인은 미니축구를 좋아하고… 또 국가간 친선경기가 벌어지면 그 또한 볼만하다니, 돈벌이도 돈벌이려니와 젊은 날의 한 추억들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 냉전의 딱지는 떨어지지 않고
동아에서 사하라에 써놓은 한글 간판 말고 또 하나의 한글구호가 있었다. <우리식대로 살자>. 빨간 바탕에 흰색 글씨로 또렷이 써 있었다. 냉풍기는 건강에 안 좋아 사용하지 않는다는 애써 으쓱하는 말투와 함께 간혹 동아 현장에서의 중환자들이 신세지는 병원이 잘루에 있었다. ‘남조선이 살기 어려워 여기까지 와서 고생이 얼마나 많으냐’는 말에 ‘의료봉사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냐’고 화답할 수도 있으련만 . . . 그저 지나는 길에 저게 북한의 의료협력병원이라느니, 저게 남조선의 물관 운반 차량이라느니, 서로 어긋난 잣대인줄 알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말투들이 냉전의 종식은 아직도 다른 나라 사람들의 말이라 던가? 지금도 냉전이란 산청의 흉터가 지워지지 않고 딱지조차 너덜거리는 곳이 리비아였다.
벵가지에 걸린 멋쟁이 다리 … 그 누가 이름 하였던가 김일성 다리라고 . . . 잘은 몰라도 북한에서 건설하다가 중단한 것을 다른 나라회사에서 준공했다는 다리 . . . 그래도 반가워서인지 하루에도 몇 번씩 통과해야 하는 나라가 되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다지도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경쟁에 민족의 정력을 낭비해야 하는가?
● 거풍(擧風)을 한 중동상식
간단히 말해 정부도 의회도 필요 없다. 리비아는 이슬람을 바탕으로 전 인민이 지배하는 나라라고 선언한 가다피 대통령. . . 이슬람의 상징인 초록색. 사막을 옥토화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상인인 녹색 깃발. 리비아를 완벽한 이슬람국가로 만들겠다는 가다피의 정치철학이 담겨있는 세상에서 가장 간단히 그릴 수 있는 국기인 리비아 국기 녹색깃발이 지금도 대수로 공사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힘차게 펄럭이고 있을 것이다.
그 넓은 사막에 깔린 파이프하인 등 국가 기반시설을 보호관리하기 위한 사막경찰이 허허 벌판을 걸을 때면 반듯이 나타나는 완벽한 치안상태는 수준급인 리비아의 방위체제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그래도 막막한 사막을 한가히 다니는 낙타무리 하나하나에 주인이 다 있으며 80리 떨어진 물 냄새도 맡는다는 사막의 배… 동료의 뼈다귀도 살기위해 먹는지, 식성이 좋아서 먹는지 모르지만 주인에 대한 순종은 어느 동물보다도 갸륵하다는 낙타. . . 암놈을 너무 괴롭혀서 수놈에서 훈도시까지 채워줘야 하는 낙타 주인들의 자손들이 사막을 가꾸고 있었다.
도시로 들어서면 철근의 마무리가 잘 안되고 집 단장이 허름한 짓다 말은 주택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준공을 않고 살면 세금이 싸다고 하여 그렇게 산다는 얘기를 듣고야 서민들의 애환은 세상어디서나 비슷한 것 같았다. 그런데 집이 한번 허물어지면 깨끗이 밀어내고 그 자리에 다시 지을 수도 있지만 그대로 방치하고 옆에 다시 짓는 그들의 생활태도를 보자니 중동에 유적이 많은 까닭을 말하는 것 같았다.
이 같은 어렴풋이나마 나름대로 해석하려던 나의 얄팍한 중동상식은 중동에서 10여 년간 생활하고 장기체류한 동아맨 들의 친절한 해설이 있었기에 필자의 곰팡이 핀 상식을 거풍할 좋은 기회였던 것이어서 새 삼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
● 시련, 도전, 그리고 영광
그저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세계의 8번째 불가사의라는 대수로 공사. 더구나 그것은 땅에 묻는 것이기에 아마 어느 다른 불가사의보다도 지구의 역사와 가장 오래 하리라. 10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공사규모. 제3국인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동아의 노하우. 유엔 경제제재를 굳건히 뚫고 나가는 동아정신. 가다피 대통령의 지휘 하에 리비아의 갈증을 해결해주기 위해 동아 맨들은 장엄한 사하라의 오케스트라를 우렁차게 연주하고 있었다.
우리가 지난 세기 무수한 시련을 겪었기에 그 큰 공사를 담당할 수 있고, 줄기찬 도전에 대한 보답이 꽃피는 현장이었다. 대수로 공사의 성공은 동아만의 것이 아니고 한국인 모두의 것이며 그 훈공은 모조리 동아의 몫이다. 한국 사람들과 리비아 사람들의 마음을 피처럼 소중한 사막의 물로 이어주는 동아의 정신이야말로 세게 어느 곳에 내놓아도 자랑스럽고 흐뭇한 것이리라 [동아그룹사보, 1995, 9: 5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