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 해동선원
“결제.해제 따로 없는 사시사철 수행도량”
해제철에도 정진하고 있는 산청 해동선원의 사부대중들.
겨울 안거(冬安居)가 해제된 전국의 선방은 한산하다.
겨우내 정진했던 수행자들이 좌복에서 일어나 만행 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2월22일 찾은 경남 산청의 해동선원(海東禪院)에도
해제를 한 재가불자들은 정진하느라 그동안 미뤄왔던 일을
처리하기에 분주했다.
그렇지만 해동선원은 여느 재가불자 선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흘렀다.
해제철이지만 상당수 재가불자들이 선원을 지키며
수행정진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동선원에는 조계종 전계대화상인 성수스님이 주석하며
사부대중들의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종단의 어른 스님이 계신 만큼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불자들도 다양하다.
비구 스님과 비구니 스님도 있다. 여기에 우바새(남자신도)와 우바이(여자신도)도
자신들의 구도행을 위해 정해진 시간에 따라
참선 정진에 열중하고 있다.
해동선원의 가장 큰 특징은 결제와 해제의 특별한 영역이 없다는 것.
본시 부처님 가르침에 시간의 개념이 ‘무시무종(無始無終)’이어서일까.
‘시간 역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오로지 수행에 전념하고 있었다.
해제가 되었지만 해동선원에는 20여명에 달하는 대중들이 정진하고 있다.
물론 결제 철에는 이보다 곱절이나 많은 대중들이
자신의 진면목을 찾아 숨소리 조차 죽이며 정진에 열중한다.
부산에서 온 우바이 배경숙씨는
“내가 내 자신을 본다는 게 어려운 일”이라며
“욕심과 어리석은 마음을 버리기 위해 열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한철 공부에 대해 나름대로 얻은 게 있는 듯,
배 씨는 “청소는 해도 해도 먼지가 나오듯이 욕심도 매일 버리는 게
중요한 것 같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해동선원 입구에는 성수스님이 직접 쓴 붓글씨 액자가 걸려 있다.
‘세상선(世上禪)’이라는 글귀도 눈에 띈다.
생소해 보이는 글 속에는 “세상 모든 일에 선 아닌 것이 없다”는
스님의 가르침이 녹아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정진하는 대중들은
특별히 ‘화두’를 받지 않는다. 각자가 자신의 마음자리를 찾아
주도면밀하게 참구할 따름이다.
선원 입구에는 ‘해동선원 청규’가 걸려 있다.
“청규라 함은 대중생활을 함에 지켜야 할 기본적인 사상을
밝힌 것으로 대중은 이 청규를 바탕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행을 바르게 하여 자리이타 정신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한 생활규범을 말한다.”
짧지만 서릿발 같은 정의에 이어 청규 사항으로
“대중은 대중화합을 최우선시 하며 상호간에 불편한 행동을
절대 해서는 아니 되며 정진하는 도반으로
서로 도업을 이루기 위해 항상 정진하는 자세를 유지한다”고 적혀 있다.
또 “선원 내에서는 묵언을 필히 엄수한다.”와
“각자의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실천한다.”
“대중운력 시간에는 모두가 참여해서 시간을 엄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과표 준수와 함께 청규 마지막에는
“대중에게 불편함을 주거나 정진시간을 소홀히 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은 대중공사에 의하여 해당 행위를 묻고
그 대중공사의 결정에 의거, 해당 행위자는
그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세상 모든 일 禪 아닌 것 없다”
전계대화상 성수스님 수행 지도
엄격한 선원청규 따라 묵언 엄수
사부대중 차별 없이 ‘용맹정진’
해동선원의 일과는 새벽 2시30분부터 시작된다.
새벽 2시40분부터 3시까지 새벽예불을 하고 5시까지 정진에 들어간다.
이어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정진이 계속된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2시간 동안 정진이 있고,
저녁예불 후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정진이 이어진다.
일과표를 지키는 일은 해동선원의 청규이므로
이를 어길 시에는 반드시 대중공사를 통한 책임을 묻게 된다.
일반인이 보면 무척 빠듯해 보이는 시간계획표이나
해동선원에서 정진하는 대중들은 무척 편안하게 느낀다.
그래서 이곳에서 정진을 장기간 하는 재가불자들도 여럿이 있다.
경남 진주에 산다는 이은호씨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몸이 좋지 않아 요양 차 수행한 것이 계기가 됐는데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체험하면서 1년여 동안 수행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고 말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 무엇을 느낀다.’며
사부대중이 적요한 시골에 모여 수행하고 있는
행동선원의 정진모습은 분명 우리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수행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산청= 여태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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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선원의 수행법
‘세상 모든 일’을 화두로 정진하는 산청 해동선원은
‘만물선(萬物禪)’ ‘세상선(世上禪)’을 주장하는
성수스님 가르침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와서 정진할 수 있다.
성수스님의 수행가풍에 따라 특별한 화두를 주고 수행지도를 하지 않는다.
각자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가장 간절한 그 무엇을 화두로 삼아
참구해 타파하라는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만물선.세상선 가르침 따라
특정한 화두 없이 자기수행
성수스님은 40여년 전부터
“화두로 깨친 자 있으면 내 목을 베어가도 좋다”는
파격적이면서도 당당한 사자후를 토하며 수행자들을 경책하기도 했다.
이는 ‘화두가 깨달음을 얻는데 소용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일상사에 부닥치는 모든 세상 일을 화두로 삼아
진지하게 수행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노선사의 확신에 찬 가르침이다.
어느 것에도 집착하고 머무르지 않는 무애행(無碍行)을
실천하기 위해 정진하는 해동선원에는 원효성사의 가르침을
행하기 위해 성상(聖像)을 모셔놓았다.
그러면서도 율사로서 오롯한 경계를 잃지 않는
성수스님이 대중들과 함께 정진하고 있어
치열한 구도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2006. 3. 2.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