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잔인한 봄이 지나간다. 기상관측 사상 처음으로 서울에 3월 벚꽃이 피고, 세찬 비바람이 그 꽃들을 할퀴고 지나간 것은 4월 사건의 흉한 전조였나 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여객선이 진도 바다에 쓰러져 잠기고 304명의 인명피해를 보았다. 안전을 위한 사전조치나 선원들의 추악한 이기심, 해경을 비롯한 당국의 어설픈 초동 대처로 미처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생명들이 비바람에 날리는 봄꽃 마냥 졌다. 떨어지는 꽃은 비장미라도 있는데 친구들과 처음으로 큰 배를 탔을 어린 청춘들은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비명에 갔다.
안산 화랑유원지의 분향소에 걸린 그 예쁘디 예쁜 학생들의 사진을 보면서, 울창한 공원으로 둘러싸인 단원고 정문에 놓인 편지와 과자봉지들을 보면서 우리는 운다. 어린 학생들 못지 않게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환갑을 기념하여 제주여행을 같이 가던 용유초등학교 동창생들의 비보다. 평생을 너나 없이 지내던 한동네 17명 친구들의 마지막 동창회는 하늘 여행이 되어버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정치나 사회시스템의 문제, 우리의 안전의식의 문제 등은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하더라도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의 인생은 왜 이렇게 거품같은 것일까? 어젯밤 불꽃놀이의 즐거움이 마음에 가시기도 전에 생을 마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 앞에 던져진 엄청난 화두를 치열하게 살펴보고, 씹어보고, 목으로 넘겨보는 것이 우리 지성인들의 할 일이 아닌가? 가슴 다시 뜨거워지는 오월에 그 분들의 명복을 빈다.
왜 산에 가느냐? 에 대한 질문엔 그럴듯한 대답들이 많다. 일반적으로는 산에 오르고 발 밑을 내려다보며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 말보다 산 속에 있는 것이 좋아서라는 대답이 더 고수처럼 느껴진다. 산을 오르다 잡목 사이에 앉아서 쉬면 나뭇잎 사이로 햇볕이 얼굴을 간질이고 새소리, 물소리가 아름답다. 약간의 산들바람이 불어주고 꽃 향기라도 곁들이면 바로 그곳이 별유천지비인간이다. 산에 오르는 또 다른 맛은 친구를 만나는 것이다. 친구는 오랜 친구일수록 좋다. 그들과 함께 걸으면 산행에서 만나는 바위와 나무, 바람과 물이 모두 이야기가 된다. 각자의 인생 경험 속에서 나오는 진솔한 에피소드가 서로에게 소중한 치유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북한산 산행은 규모는 작았지만 세가지 뜻을 이루는 알찬 일정이었다. 칼 같은 산봉우리에서 북한산의 파노라마를 보고, 점심 후엔 산속에 앉아 숲이 주는 힐링을 맛보았다. 10명의 소수 인원으로도 대화는 진지했고 우정은 뜨거웠다.
당초 예정은 홍천 팔봉산이었지만 대원들의 일정이 만만치 않았다. 15명을 예상하던 인원에 미달하고 대장은 북한산으로 급선회했다.
피톤치트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을 원하던 동석의 희망을 반영하고, 못 가서 아쉬운 팔봉산의 오르내리락 길을 대신해 잡은 코스는 북한산 의상능선. 누구는 설악산 공룡능선 못지 않다는 난코스다.
8시반에 북한산성 입구 집결. 의상봉-용출봉-용혈봉-증취봉-나월봉-나한봉-남장대지-행궁지-중흥사지-중성문-북한산성계곡을 거쳐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로 돌아오는 원점회귀코스다.
탐방지원센터 오른쪽의 북한산 둘레길을 10분 정도 걷다가 내시묘역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바로 의상봉을 향하는 절벽덩어리를 만난다. 백운대를 향하는 북한산 초입 좌우에 있는 우람한 바위산에 의상봉과 원효봉 우리 불교 최대 고승 두 분의 이름을 붙인 것이 그럴 듯하다. 의상봉에서 산을 넘고 넘어서 도달하는 나한봉의 나한은 누구인가. 부처와 보살에 이르지 못했으나 바로 밑 경지에 이른 분의 이름이다. 나한봉의 다음에 있는 문수와 보현은 누구인가. 문수는 대지 문수 사리보살의 줄임이다. 보현은 대행 보현보살의 줄임이다. 대지, 큰 지혜를 갖추고, 세상을 향해서 대행, 올바로 실천하는 것이 깨달은 자의 덕목이다. 북한산 영봉들의 이름은 깨달음을 향한 길을 가리킨다. 오르고 내리고 험한 길이지만 반드시 그 끝에는 해탈이 있다는 가르침이다.
각설하고, 의상봉을 향하는 길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다. 몸을 바위에 바짝 붙이고 한발한발 신중히 디뎌야 한다. 최대장이 앞장을 선다. 산행경력에 따라 걷는 길이 다르다. 정총무가 한마디 한다. 오십견이 온 마눌님을 모시고 왔더니 바위에 매달린 밧줄을 성한 한 팔로 잡고 오르며 내내 잔소리를 하시더라고. 그런데 의상봉 꼭대기에 오르고 사방을 둘러보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즐거워 하시더라고. 오십견 치료코스, 의상능선.
의상봉에 오른다. 마스코트 토끼 바위가 우리를 맞이한다. 바위 위에 한 명씩 독사진. 모두 달라붙어 단체사진. 단체로 야유회를 온 듯, 국군 아저씨의 사진 솜씨가 좋다.
나중에 정총무는 젖꼭지 바위를 찍어 카톡에 올렸다. 산에는 원색적인 형상에 붙인 칼라풀한 이름이 많다. 영환의 얘기다. 설악산 12선녀탕 앞에 군부대가 있는데 그 부대 맞은 편 바위가 꼭 여인의 나체상을 닮았는데 이상스럽게 그 부대에 자살사고가 많았단다. 새로 온 부대장이 그 말을 듣고 부대 쪽에 3미터가 넘는 목제 남근 조각을 세웠더니 사고가 반으로 줄었고, 다시 하나를 더 세웠더니 사고가 없어졌다는 얘기. 남이 지나치는 바위에서 여체의 모습을 찾아내는 사람은 과연 여복이 많다(고 느껴진다). 자연은 자연일 뿐이라고 치부하지 말 일이다. 우리는 그 자연이 낳은 자연의 일부이니까.
용출봉과 용혈봉을 걷는다. 용을 낳은 곳이 용혈이고 용이 하늘로 오른 곳이 용출인가? 증취봉은 무슨 뜻일까? 최대장이 구글구글한 끝에 증자가 시루 증임을 알아냈다. 아마 봉우리가 떡시루를 닮았다는 뜻인가 보다. 공부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 공부 못하는 사람은 그냥 지나가고, 공부 잘하는 사람은 사전을 뒤진다.
바위틈을 오른다. 한손을 바위에 붙이고 한발씩 뗀다. 심심한 우회길을 제끼고 정상길을 택한다. 발 밑이 아찔하다. 새 옷을 갈아입은 산의 신록이 신선하다.
산악회와 처음 동행한 영환은 둘레길 산보라는 정총무의 감언이설에 속았다. 처음 온 산행이 의상능선이라는 것은 고행이자 축복이다. 봉우리를 오를 때마다 묻는다. 또 더 가느냐고. ㅎㅎ. 그러나 지구를 한바퀴 걸어야 졸업한다는 육사출신의 기본기가 어디 가겠는가? 산악회 고참들도 힘든 길을 땀도 안흘리고 주파하고는 설악산 번개산행에 관심을 갖는다.
나한봉 정수리에서 점심을 한다. 용수가 없음을 아쉬워했지만 승렬이 족발을 내놓고 태환이 두릅 장아찌를 꺼내서 제법 푸짐한 식사가 되었다. 자연을 즐기며 뒤쳐져 오던 만수, 인상, 태환 팀은 점심 장소를 지나쳐 다음 봉우리를 중간쯤 오르다 최대장의 고함에 다시 내려왔다.
멋쟁이 금표가 소설 아리랑에서 아이를 바라는 처자에게 육보시를 하는 승려의 얘기를 한다. 그 말이 외설적이지 않고 오히려 멋이 있다.
나한봉 밑에 최고의 거풍장소를 소개한다. 절벽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바지를 내리고 몸 으로 자연을 맛보는 친구들이 있었으나 그 이름은 개인정보라 감춘다.
하산길에 나선다. 남장대 옆 봉우리에서 본 북한산의 파노라마. 저기 멀리 백운대,인수봉, 만경대가 메 山자로 보인다. 북한산의 원래 이름 三角山은 이 형세에서 나왔다. 매번 오르던 북한산성 계곡도 친구들과 걸으니 가볍다.
북한산 입구도 많이 변했다. 돼지고기 소금구이와 막걸리를 팔던 북한동 집들은 모두 철거되고 그자 리에 야생화 공원이 들어섰다. 물가에 좌판을 만들어 장사하고 수영장으로 북적이던 곳도, 족구 한판하고 음주가무 하던 곳도 자연의 모습을 되찾았다. 덕분에 상점건물로 막혔던 길이 뻥 뚫려서 원효봉과 백운대, 노적봉과 만경대가 시원하다.
오후 4시. 하산주는 시원한 호프와 막걸리다. 파전과 도토리묵, 계란말이가 푸짐하다. 태환이 한턱 냈다. 두 딸이 영특해서 장녀가 LG 연구원으로 입사하고, 둘째는 KBS사회부 기자로 입사했단다. 이름은 김민지. 앞으로 KBS에서 큰 활약을 동지들과 기대한다. 짝짝짝!
그늘진 막걸리집 담벼락에서 바라보니 저 앞에 노적봉이 눈부시다. 인상이 그 장엄한 모습에 거듭 감탄한다. 처음 온 영환이 신고한다. 육군 대령의 신고를 받으면 우린 별쯤 되는 건가? 묵직한 저음으로 근황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의 연륜을 느낀다. 술 한잔에 노적봉이 초점을 잡는 자동카메라 렌즈 속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눈이 감긴다. 깜박 한잠 잤다 깨어보니 노적봉에 노을이 물들었다. 편안하다. 산도 친구도.
6월 산행은 강화도 마니산으로 정했다. 단군님을 뵙고 민족의 안녕을 빌어야겠다. 풍물시장의 벤댕이 회 생각에 벌써 침이 고인다.
(함께 했던 대원들)
최성원, 정강훈, 최동석, 김태환, 최만수, 박승렬, 윤인상,최금표, 김영환, 고승훈
산행후기 작성자 : 고승훈
첫댓글 우선 승훈이가 쓴 워드파일을 카페에 올리는 일을 대신한 것임을 밝힙니다.
용진이의 산행기에 기독교 사항이 베어 있다면 승훈이의 산행기에는 불교의 철학이 묻어난다고나 할까. 또 하나의 색다른 산행기를 접하게 됨을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아침 출근해야 혀서 다 보지 못하고 전철속에서 봐야 할 모양이지만 암튼 무쟈게 빠르다.
일필휘지랄까~~^^
산행코스가 좋아서 펜을 잡자마자, 숨소리도 거칠지 않으면서 가볍게 산행을 하더니 가볍게 터치하 듯 써낸 글이 좋아보인다.
승훈이 멋쟁이~~^^
전철 속 출근길에 다시 뒤적여 읽어보니 힘들게 지나왔던 코스를 후딱 다녀온 기분이다.
인도의 향기가 승훈의 몸에 스며들어 북한산 고승들이 줄줄이 우릴 반긴 것 같다....
승훈아!
마니산의 단군신화도 기대해본다.
승훈이가 등산모임에 활기를 다시 불어 넣는구나!!!
멋있다
후기를 읽고나니 혼자서라도 이번 코스를 꼭 가보고 싶어진다
산행후기를 읽고나니, 한번 더 산행을 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한 모습이다. 즐거운 산행이었고 함께한 산우들 즐거웠네~~
술 한잔에 노적봉이 .. 자동카메라 렌즈 속처럼 ....왔다 갔다..눈은 감기고..비몽사몽 간에 깨어보니 노적봉에 노을이 물들었다. 편안하다. 산도 친구도....
누가 그려낸 글인가..멋진 글이여~! 숙독의 욕심나는 문장이 사월,오월 내내 죽어 있던 내 감각을 깨우는 구만!
후기를 탐하다 함께 하지 못하여 다시 후회스럽기도 하고...하지만 좋은 후기로 위로를 삼아보네. 승훈이 고마우이
새로 합류한 영환이 축카축카...어 그리고 민지양, 태환이 축하하네~~!
어이~ 유성이~! 우리 헐일이 줄었구만~ 좋아부러. 안그런가.후기 기록도 역시 서로 공유하는게 더욱 풍성해지고.
혼자 의상능선 타지 말고 날 불러줘~~!
여억시 용진이가 내 맘을 알아주네. 노른자를 뽑고 거기에 ...을 동원해서 시각적인 표현까지! 화룡점정일세. 고마우이. 다음 산행에서 보세! 두번째 노적봉은 바위산으로 바꾸세. 어느새 바위산은 노을에 물들었다. ㅎㅎ
북한산은 이제 웬만한 코스는 다 등정했다고 생각하고 의상능선만 바로보고 있었는데....개인일정으로 참석 못해 아쉬웠네! 멋진 10명의 산우들이 참석해 녹슬지 않은 우정과 산행을 즐기는 사진 한컷 한컷들이 정겹네!!! 6월산행에서 다시 보도록 함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