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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좋은 질문이다. 아마도. 하지만 내게는 아직 대답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지금 라오스까지 가려는 것이니까. 여행이란 본래 그런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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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피상적으로 흉내만 낼지라도 계속 실천하다보면 언젠가 진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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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의 사원을 느긋하게 도보로 돌아보며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즉 '평소(일본에서 살 때) 우리는 그렇게 주의깊게 사물을 보지 않는구나'란 사실이다. 우리는 물론 매일같이 여러가지를 보지만, 그것은 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보는 것이지, 정말로 보고 싶어서는 아닐 때가 많다. 전철이나 차에서 창밖으로 잇따라 흘러가는 경치를 멍하니 눈으로 좇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언가 한 가지를 찬찬히 살펴보기에는 우리 생활이 너무나 바쁜다. 진정한 자신의 눈으로 대상을 본다(관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차츰 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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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아름다운 얘기가 아니라서 죄송하지만, 한번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 펜웨이 파크 근처에 있는 스포츠 바에서 생맥주를 마시고 화장실에 갔다. 그런데 소변기 안에 뉴욕 양키스 마크가 새겨진 플라스틱 탈취제가 놓여 있었다. '이 위에다 소변을 보시오.'라는 뜻이다. 이 지역 성향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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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요?" 빌에게 물어보자 고개를 갸웃하며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그냥 옛날부터 그랬어"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보스턴에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옛날부터 그랬던' 것이 꽤 많은 듯하다. 그런 면도 보스턴이라는 도시의 한 가지 매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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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 갑판에서 고래들을 구경하며 적잖이 철학적 성찰에 빠져단다. 우주적 견지에서 보면 그들의 생활방식과 우리 생활방식에 본질적으로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보스턴 앞바다에서 무심히 정어리 떼를 쫓는 것과 말러 교향곡 9번을 집중해서 듣는 것의 의미가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하나의 빅뱅과 또다른 빅뱅 사이의, 덧없는 일취지몽에 불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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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의 비포장도로를 '라 스트라다 비안카(하얀 길)'라고 하는데, 이 이름에는 물론 이유가 있다. 도로에 희고 고운 모래 먼지가 일어서 한나절만 달려도 차가 새하얘져버리기 때문이다. 토양에 석회질 비율이 높은 탓이다. 주차되어 있는 차들도 하나 같이 새하얗다. 세차해봤자 어차피 금방 다시 하얘지니까 보통 다들 그 상태로 놔둔다. 그런 광경도 토스카나답고 멋있다. 또한 그런 독특한 토양은 질 좋은 산조베세 포도와 올리브 열매가 실하게 여무는 데 일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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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성이 보이'는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근사한 일일 것이다. 카프카의 성, 처럼 '눈에 보이지만 다다를 수 없는' 곳도 아니고, 참고로 구마모토시에는 '성 주위에는 성벽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다'라는 조례가 있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야자나무 보다 높은 건물은 지을 수 없다'는 하와이 카우아이 섬의 조례와 비슷하다. 앞으로도 '성곽도시'의 느긋한 시간성과 분위기를 잃지 않고 지켜나가기를 여행자로서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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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예술'이라고 부르기는 아마 어렵겠지만, 적어 도 '성취'라고 부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넓은 세계에는 비평의 개입을 허락지 않는 수많은 성취가 존재한다. 그런 성취 혹은 자기완결 앞에서 우리는 그저 놀라고 감탄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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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좋은 것입니다. 때로 지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있습니다. 자, 당신도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로든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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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은이로부터, 예쁜 책 선물을 받아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정말 예~~쁜 책이다.
디자인도 맘에 들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어서 좋았고,
더군다나 여행기라서 좋았다.
하루키의 글은 담백하다.
특히 수필에서 그런 그의 필체가 더 잘 드러난다.
여행기임에도 격한 감동이나 놀라움이 아니라
백반을 대하는 느낌?
어쩌면 여행을 많이 다녀본자만의 여유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어디에 서 있든 당연한 느낌.
그리고 잘 스미는 존재.
여행기에는 풍경과 여행자가 서로의 낯섦에 대해서
충돌하고 방황하는 분위기가 곧잘 느껴지기 마련인데
하루키의 여행기에서는 그런 느낌이 없다.
그래서 나는 더 좋다.
그리고 하루키처럼 자신의 삶의 궤적을 다시 방문하는
자기만의 삶에 대한 순례꾼이 되어보는 느낌은 어떨까 아주 궁금해졌다.
나도 언젠가 다시 어설프고 좌충우돌했던 그곳에 다시 가 본다면.
그 장소의 변화만큼이나 나의 변화도 느낄 수 있으려나?
얼마전 어떤 경험이 가장 좋은 경험이냐는 학생들의 질문에
나는 여행을 꼽았다.
나에게는 이미 정해져있는 늘 같은 대답이다.
내가 비로소 요만큼이라도 성숙하게 된 데 여행은 정말 많은 기여를 해 주었다.
지금은 이렇게 책으로 여행을 대신하고 있지만
곧 떠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다.
이 책은 지금 나에게는 살짝 '수능 금지곡'같은 책이기도 했다.
산적한 업무들, 입시가 있어서 특히나 숨가뿐 봄학기.
다 끝내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여행을 기대해본다.
그때, 하루키처럼.
첫댓글 여행 기록 앱 'been' 추천! 특히, 나같은 세계지리,꽝 사람에게는 완전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