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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과의 인연...제주 오승철 시인이 떠났다
김우영
19일 아침 8시쯤, 전날의 과음으로 침대에서 뭉그적거리는데 전화가 왔다. 내 오랜 친구 정수자 시인이다. 물기가 그득한 목소리였다. “오승철이 떠났어...” 말을 잘 잇지 못한다. 그날 아침 6시30분에 영면에 들었다는 것이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친구여, 가고 말았구나. 지난 몇 달 동안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옛 시림(詩林) 동인들에게 연락해 제주도에서 모임을 갖자고 했었다.
그런데 우리가 방문하기 전 부음을 먼저 듣게 된 것이다. 안타깝고 슬프다. 1957년생, 만나이로 이제 겨우 66세밖에 되지 않았는데...
<사진> 제주에는 돌에 오승철 시 ‘터무니 있다’가 새겨져 있다.
그래서 최근 그리 열심히 시를 쓰고 제주도 문학을 위해 뛰어다녔던 것일까. 오시인은 지난해 6월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는 시집에 이어 올해 3월엔 ‘다 떠난 바다에 경례’를 펴냈다. 또 지난 2월엔 한국문인협회 제주특별자치도지회 제26대 회장으로 취임, 청년문학특별위원회, 제주어문학특별위원회 등 두 개의 특위를 설치해 그에 걸맞은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고, 제주문학제를 개최해 제주문인들의 날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오승철 시인은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서 태어났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겨울귤밭’이 당선돼 등단했으며 그동안 시조집 ‘오키나와의 화살표’ ‘터무니 있다’ ‘누구라 종일 홀리나’ ‘개닦이’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 ‘다 떠난 바다에 경례’ 등을 펴냈다.
한국시조작품상, 이호우시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오늘의 시조문학상, 한국시조대상, 고산문학대상, 한국예술상, 서귀포문학상 등을 받았다. 오늘의시조시인회의 의장을 지낸바 있다.
그의 타계로 한국 현대 시조문학을 떠받치고 있던 아름답고 든든한 기둥하나가 사라졌다.
그와 만난 때는 갓 스물의 풋풋한 문청시절인 1976년이었지만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원’이란 잡지의 문예란을 통해 서로의 이름과 작품을 알고 있었다. 당시 고등학생으로서 전국적인 문명을 날리던 제주의 오승철, 부산의 최영철·조성래, 안동의 김승종, 광주의 김미구, 서울의 문창갑, 수원의 필자 등과 대구의 이정환·박기섭, 대전의 최봉섭은 ‘시림(詩林)동인회’에서 함께 활동했다. 노동자시인인 순천의 김해화·김기홍 등도 한때 동인으로 참여했다.
시림동인은 1975년 수원에서 출범했는데 1976년부터 전국 규모 동인회로 확대됐다. 당시 시 좀 쓴다는 전국의 문청들 사이에 ‘어디 사는 000’라고 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제법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신문의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 추천 등을 통해 문단에 데뷔했는데 특히 시조를 쓰는 동인 중 이호우시조문학상을 받은 이정환은 현재 (사)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오승철은 오늘의시조시인회의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박기섭도 외솔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고산문학대상 등을 수상한 시조문단의 중추다.
지난 1989년엔 ‘70년대 학생문단의 주역들, 詩林 그 후 10년 그들의 현주소!’라는 부제의 ‘그대 걸어갈 광야는 멀다’라는 동인지를 다시 펴냈다. 당시 열음사에서 일하고 있던 최영철의 노력으로 10년 만에 다시 나온 다섯 번째 동인지인 셈이다. 그 후 다시 발간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2019년 수원에서 한차례 이른바 번개 모임을 가졌다. 제주에서 오승철이 비행기를 타고 수원으로 왔고 부산에서 최영철과 그의 부인 소설가 조명숙, 서울에서 문창갑과 김승종 , 전남 고흥에 살다가 평택으로 이주해 온 김미구도 참석했다.
이날 통닭거리에서 ‘수원왕갈비통닭’을 뜯으며 제주에서 다시 모임을 갖기로 하고 날짜까지 정했다. 비행기 탑승권까지 예약했지만 태풍으로 만나지 못했다.
동인 중 김기홍이 세상을 떠났고 최봉섭은 현대문학 추천을 받은 뒤 소식이 단절됐다. 게다가 오승철 마저 19일 유명을 달리했다.
시조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에 발문을 쓴 문학평론가 박진임의 말처럼 “오승철 시인은 제주도의 삼백여 오름을 그 누구보다도 깊이 사랑해온 시인”이다. “따라비 오름 아래 가시리에서 몸국을 먹으며 그 오름의 사계를 노래 해온 시인”이다.
일찍이 1970년대 중반 수원에서 만나 후 오랜 세월 선연(善緣)을 이어온 오승철 시인. 잘 가시라. 거기선 암 따위에 주눅 들지 말고 껄껄 웃으며 마음껏 자리물회에 한라산 소주도 마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