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2004년 8월 30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20년간의 교수생활을 끝내고 정년퇴임하였다. 그 때부터 부로들을 대신하여 그동안 소홀했던 종사에 참여해야 되겠다는 각오로 약 6년간 양천허씨동주사공파 관련자료를 뒤지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선인들께서 경주하신 노력과 그 분들의 고뇌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본인도 그분들과 동일한 난제에 봉착하여 유사한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난해한 문제의 해법을 찾아 타성의 족보자료까지도 두루 섭렵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족보의 상대기록은 대부분 생몰연대가 없거나 묘소를 실전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족보상 이름은 있지만 생몰연대가 없거나 묘소를 실전했다는 기록만 남아 있는 경우와 묘소는 있지만 정확한 묘주를 확정할 수 없어 보책에 이름을 기록하지 못한 경우기 있었다. 예컨대 인천이씨와 성주이씨는 불확실한 선조의 이름을 모르는 그대로 해당 그 대수에 <O>으로 처리하고 있다. 인천이씨는 4대나 선조명이 없고 성주이씨는 3대가 궐명된 상태이다. 필자는 사실 그대로 정리해 두고 있는 그 분들의 종족사관에 경의를 표하는 입장이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각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어 차세대들로 하여금 실증적 자료를 찾아 미진한 부분을 보완케 여백을 남겨 둔 그분들의 조치는 우리에게도 타산지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1)仁川李氏의 上系記錄(仁川李氏譜冊)
1세 이허기(李許奇)
2세 이허검(李許儉)
3세 이허O (李許O)
4세 이허O (李許O)
5세 이허파(李許波)
6세 이허O (李許O)
7세 이허귀(李許貴)
8세 이허O (李許O)
9세 이허준(李許浚)
10세 이허겸(李許謙), <仁川李氏始祖>
(2)星州李氏列位系派昭穆圖(星州李氏世譜卷之一)
시조 이순유(李純由)
2세 이OO (李OO)
3세 이OO (李OO)
4세 이OO (李OO)
5세 이 범 (李 凡)
첫댓글 歷史는 오래일수록 不詳한 부분과 기간이 있게 마련입니다.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치 檀君이후의 上古史라든지 각 姓氏의 전반계대에서 그 정도는 각 성씨,각 문중별로 大同小異할것입니다. 우리의 宗族史를 밝히는데 盡力하면서 시은형님의 훌륭한 見解도 參考해야 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