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설가인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 1948~)은
기념비적인 『뉴로맨서』 등의 작품을 통해
현재는 보편화된 사이버스페이스, 매트릭스 등의 용어를 고안하며
사이버펑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인물 중의 하나다.
사이버펑크는
미래를 장밋빛으로 그리던 당시의 주류 공상과학 소설들과 달리
테크놀로지가 가져올 부정적 결과에
주목했다.
그의 작품은
문학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사이버스페이스,
그리고 넓게는 디지털 시대를 읽는 주요한 텍스트로
간주되고 있다.
깁슨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콘웨이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최초의 원자폭탄을 제조한
오크
브리지(Oak Bridge) 공장 건설에 참여한 민간 계약자 중의 하나였다.
그는 19세에 베트남 전쟁 징병을 피해 미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주,
1972년 이후 계속 캐나다 밴쿠버에서 살고 있다(Wikipedia, 2012).
깁슨은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학생 시절
처음으로
소설을 썼고, 그 대학에서 영문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첫 장편소설을 출간하기 3년 전인 1981년
깁슨은 향후 작품세계의 단초를 보여주는 한
단편소설
『건스백 연속체(The Gernsback Continuum)』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기존의 공상과학 소설 작가들이 갖고 있던
유토피아적 기술 비전을 비판하며,
기술이 친근하기도 하고 침략적이기도 하며,
가진 자와 못가진 자가 새로운 디지털 세계에 대한 통제권을 놓고
대결할 것이라는 생각을 제시했다.
일부 비평가들은 이 단편소설이 향후 나타날 모든 사이버펑크의 진정한 청사진이 되었다고
간주한다.
그렇지만 깁슨의 명성을 떨치게 해 준 작품은
바로 그의 첫 장편소설인 1984년 작 『뉴로맨서』이다.
이는
케이스(Case)란 이름의,
이른바 '인터페이스 카우보이(interface cowboy)'의 활약을 그린 것으로,
암시장의 데이터 범죄조직을
대리하는 그의 활동무대는
가상의 절도행위(오늘날 온라인 신용카드 절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를 벌일 수 있는
디지털 공간, 즉
'매트릭스(matrix)'이며
이것이 바로 사이버스페이스다.
그렇지만 케이스가 실제로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이버스페이스가 주는 탈육체의
환희(bodiless exaltation)'다.
그를 고용한 자들을 대상으로 절도를 하다 잡힌 그는
신경계와 뇌가 독에 의해 미묘하게 손상되는
처벌을 받게 되어
매트릭스에서 원활하게 활동할 수 없게 된다.
그에게는 '고깃 덩어리'에 불과한 육체만 남겨졌고,
육신에 갇혀버린 그에게 주어진
것은
가상성이 비참하게 제거되어 버린 실재뿐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매트릭스에 접속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해
다시 한 번
사이버스페이스 또는 매트릭스를 내달릴 수 있게 된다.
1995년엔 이 소설에 나타난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깁슨의 생각을 바탕으로 한 영화
〈메모리 배달부 조니(Johnny Mnemonic, 코드명 J)〉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깁슨이 보는 사이버스페이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매력적이고 결정적인 새로운 발전단계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경제적인 활동 무대가
인간이 속한 계급에 차이가 없을 정도로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자신이 육체적, 도덕적으로 인간이라는 점을 경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Jones, 2003).
『뉴로맨서』
이후로
깁슨은 아직까지 사이버스페이스나 탈육체 같은 자신의 관심사를
계속 왕성하게 소설로 그려내고 있다.
브루스 스털링(Bruce
Sterling)과 같이 쓴 1992년의 판타지 소설
『디퍼런스 엔진(Difference Engine)』은
증기로 가동되는 커다란 컴퓨터가
개발된 빅토리아 시대를 그린 것이다.
『가상의 빛(Virtual Light)』(1993)은
우리의 현재와 아주 가까운 미래를 그리고 있다.
후속
작품 『이도루(Idoru)』(1996)는
일본을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
기술중심 시대에 유명인사의 역할을 성찰한 것이다.
『미래의
파티(Tomorrow's Parties)』(2000)에서는
탈육체의 가상 몰입이라는 자신의 테마를 극단적으로 다뤘다.
물론 이들
작품 대부분이 나름대로의 호평을 받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깁슨의 후속 작품들은,
공상과학 소설 작가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상들인
휴고상(Hugo Award),
필립 딕 추모상(Philip K. Dick Memorial Award),
성운상(Nebula Award)을 수상한
『뉴로맨서』의 영향력을 따라가지는 못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렇기는 해도 자신을 이끌어온 테마들에 계속 매진하고 있다는 점은
사이버스페이스
개념의 중요한 고안자이자 작가인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Jones,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