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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무학국민학교 친구 전종성과 약속한 4월말 산행은, 친구가 나를 편하게 하려고 배려하는 바람에 경주에서는 비교적 가까운 재약산과 천성산으로 정해졌다. 물론 둘다 한국100명산에 속한다. 그는 산행을 희망하는 친구들과 함께 왔는데 김형철, 문성호, 이성표 그리고 안이사라는 여성이 바로 그들이다. 우리는 첫날, 밀양 재약산부터 오르기로 결정하고 모두들 정오 경에 밀양 표충사에 모였다. 천성보다 재약이 산행이 어렵기에 먼저 오르기로 한 것이고, 이틀 연속 산행의 피로함을 덜기 위해 산행 코스를 최대한 힘을 비축하는 방향으로 계획했다. 우리가 밀양 표충사에서 만나 산행을 시작한 것은 12:30분 경이었다. 다소 늦은 시간이었다.
서울팀이 예정시간보다 1시간 늦게 오는 바람에 나는 여유있게 표충사를 둘러보면서 기다렸다. 예전 천화산으로 알려졌던 재약산은 영남알프스에서도 가파른 편이라 다른 산들에 비해 덜 오게되는 곳이다.
재약산(1,189m 예전 천황산)의 주봉은 사자봉으로, 남쪽 5km 부근에 솟아 있는 수미봉(1,018m 예전 재약산)과 맥이 이어져, 예전 천황산으로 불리웠으나 이제는 산악인들을 중심으로 재약산으로 일컬어진다. 이러한 혼동은 천황산이 일제시대 때 일본천황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하여 '우리 이름 되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사자봉을 재약산 주봉으로, 재약산을 수미봉으로 부르면서 생겨났다.
재약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삼남금강(三南金剛)이라 부르며, 인근 일대의 해발고도 1,000m 이상의 준봉들로 이루어진 영남알프스 산군(山郡)에 속하는 산이다. 산세는 부드러운 편이나 정상 일대에는 거대한 암벽을 갖추고 있다. 수미봉·사자봉·능동산·신불산·영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드넓은 억새평원으로서 사자평 고원지대라고 부르는데, 일대는 해발고도가 800m에 달해 목장으로 개발되어 있다.
서쪽 산기슭에 있는 유명한 대찰인 표충사를 비롯하여 부근에 내원암·서상암 등의 절과, 높이 20m의 폭포 2개가 연이어 있는 층층폭포, 무지개가 걸리는 높이 25m의 금강폭포 등 명소가 있다. 천황산의 북쪽 사면에는 가마볼·호박소 등의 명소 외에 단열냉각에 의한 물리적 현상으로 여름에도 골짜기에 얼음이 어는 얼음골(천연기념물 224)이 있다.
표충사에서 좌측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내원암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우리는 산행의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금강폭포 방면을 버리고 내원암 길로 접어 든다.
천황산-재약산 산 이름에 대한 얘기는 대충 이렇다. 표충사 뒤의 명산은 천황산으로 일컬어져 왔는데 최근에 산악인들을 중심으로 고유한 산 개념에 대한 연구가 한창 이루어 지던 중에 천황산의 이름이 일제시대 일본천황을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는 증거가 나와, 천황산의 옛이름을 조사 중, 중종 때 실학자 여암 신경준이 쓴 <산경표>에서 재약산이라는 옛이름을 알고는 천황산을 재약산으로 다시 개명한 것이다. 그리고 천황산 앞의 재약산은 수미봉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정리하자면 천황산은 재약산 사자봉으로 재약산은 재약산 수미봉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일반 지도나 산중 이정표나 정상석을 보면 아직 예전 그대로다. 단 산악인들은 이제 완전히 재약산으로 부르고 있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한국100명산에 재약산이 나와 있는 데 그 산이 바로 예전 천황산이다. 예전 천황산을 이제는 재약산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100명산 산행하는 사람들이 흔히 오해들 하여 수미봉에 갔다 오고는 재약산 갔다 왔다고 하는데 그건 오류다. 낙동정맥 주 능선에서 능동산으로 갈라져 내려와 얼음골을 품고 있는 산이 재약산이며 그 아래에 넓은 평전인 사자평을 거느리고 있는 산이 또 그 재약산이다. 사자평에 올라보면 어느 산이 명산인지는 눈으로 바로 판가름 난다. 그러니 예전 천황산, 지금도 정상석이 천황산으로 된 산이 바로 진짜 재약산인 것이다. 100명산을 등반하려면 그리로 올라야 한다.
내원암은 숨어 있다.
한참 오르다 보면 진불암 갈림길에서 왼편 가파른 길로 올라야 한다. 이쪽이 사자평이 있는 천화재 쪽이다.
재약산은 신라시대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병을 얻어 전국 방방곡곡의 명산과 약수를 찾아 헤매다 이곳에 이르렀고 왕자는 이곳 영정(靈井) 약수를 마시고 병이 낫게 됐다는 데서 재약(載藥)산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영정이라는 샘이 어디 있는 지 확실히 모른다. 다만 표충사 안 마당에 영정이라는 약수터를 만들어 놓았다. 보기에도 화강암에서 스며나온 최고의 물인 감로수인 것같이 보인다.
7부능선에 오르니 전면에 수미봉 방면의 단애들이 화려하기만 하다. 얼뜻 적상산의 중간 테두리 암맥 같이도 보인다.
이번 산행에 홍일점으로 참석한 중국인 조선족 안hm씨. 그녀는 한국-중국간 비철 무역업의 사업을 하는 비즈니스우먼이다. 그녀는 우리 친구 김형철 사장의 회사가 제조하는 화장품 제품을 수입하여, 중국에서 대리점을 내 놓은 거래자라고 설명한다. 사업가 기질이 농후한 그녀는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남정네 다섯을 모두 자기 편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틀 동안 산 속에서 내내 귀여움을 받던 그녀는 이번 산행의 청량제였다.
이제 곧 사자평의 안부인 천황재에 닿는다. 날씨가 더워서 모두들 진땀을 흘리고 있다.
11월이면 최고의 억새풀 평야를 연출하는 그 사자평의 억새다.
천황재에 선 5명의 무학동 친구들 (서울 무학국민학교 동기들). 좌로 부터 김형철, 이성표, 전종성, 문성호 그리고 나 다. 어릴 적 친구들이지만 그 뒤에도 형철과 종성은 성동고 동기이며, 형철과 나는 한양대 동기이기도 하다.
천황재에서 북쪽을 보면 재약산 사자봉이 보인다. 정상부 좌측에 있는 바위더미가 사자바위이다.
산정 바로 아래 나무그늘에서 점심을 즐긴다. 반찬들이 너무 많아 완전히 뷔페 수준이다. 내가 가져온 반찬만 해도 3통이다. 형철이가 오는 것을 알았다면 반찬을 안 가져오기를 잘못했다. 반찬을 열거해 볼까? 두릅, 참나물, 응개잎, 볶음김치, 두부구이, 계란말이, 토마토, 호박전, 일미, 오징어젓갈, 생나물, 야채, 김밥, 멸치볶음, 된장국, 씻은 묵은지김치, 상치, 쑥갓............그 외에도 많다.
사자봉 오르면서 뒤돌아본 천황재
수미봉 방면의 산줄기
사자바위 근방에 여러가지 샤만니즘의 돌 쌓음이 늘어져 있다.
친구들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나.
땀을 흘리며 올라 온 길을 돌아다 본다.
정상이 이제 보인다. 물론 정상석도 보인다.
정상석에는 천황봉............하지만 이제는 재약산 사자봉이다.
재약산 정상에서 바라다 본 신불평전. 신불산과 영축산이 보인다. 그 사이 허옇게 된 부분이 신불평전이다. 이 사자평과 함께 전국 최고의 억새풀 단지이다.
이제 북서쪽을 보면 우편에 가지산과 왼편 운문산이 보인다. 둘다 100명산일 정도로 산세가 크고 수려하다.
3 사나이의 포즈가 재미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인가? ㅎㅎ 일종의 퍼포먼스 같다. 물론 추한 놈은 산에서 담배 피우다가 오른손을 가리는 놈이다. ㅎㅎ
경남 울산과 양산에 걸쳐서 가지산(1,241m), 운문산(1,188m), 재약산(1,189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고헌산(1,034m), 간월산(1,069m) 등 7개 산군이 유럽의 알프스처럼 산정이 평전이며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이른바 <영남알프스> 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백두대간 다음으로 산줄기가 거대한 낙동정맥(태백산-금정산 까지의 산줄기)에서 가장 거대 산군이 바로 영남알프스이다.
영남알프스 전체 종주에는 2박 3일 정도 걸리며, 등억온천, 사자평, 밀양 남명리 얼음골, 대곡리 암각화, 밀양 농암대, 통도사, 석남사, 운문사, 표충사 등의 명소와 사찰 들도 모두 관광 차 곁들일 수 있다. 재약산 아래로 내리 뻗은 사자평, 신불산과 영축산 사이의 신불평원 60여만 평과 간월산 밑 간월재의 10만여 평, 고헌산 정상 부근의 20만여 평에 억새군락지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저 아래로 표충사가 보인다. 밀양의 명소인 '표충사'는 사명대사의 '표충비'에 비해 그 이름이 가려진 것 같지만, 실제로 찾아 가 보면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의 면모가 뚜렷하다. 신라 무열왕 원년(65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이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삼한시대부터 밀양지역을 지켜온 고찰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표충사는 수 많은 고승들이 지나간 곳으로 명성이 높다. 근대사에서 그 이름이 혁혁한 효봉선사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갔을 때 만날 수 있는 여러 건축물과 석탑 등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국내 그 어느 사찰보다 그 이력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그 어느 곳 하나 빈 곳 없어 보일 정도로 많은 게 이 때문. 때문에 풍광도 보고, 고건축물도 보고, 그리고 지난 역사의 이야기도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가득이다.
옛 이름이야 다르긴 했어도, 유학과 만나 그 이름이 '표충사'로 정해진 내력도 흥미롭다. 원래 재약산 속에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쇠락한 사찰. 그러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와 기허대사 세 분의 영정이 봉안된 표충서원을 품으면서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된 내력은 여러 모로 생각되는 바가 많다. '유불선 삼합' 같은 게 아니라, 공존공생의 이치라는 부분에서 특히나 그렇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은 따지지 않는 게 좋다. 왜냐하면 표충사의 풍광은 사람의 머릿속을 청아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어서다. 옛 선현들이 이 곳을 수양지로 잡은 게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표충사를 품은 재약산의 풍광과, 때 마침 방문객을 맞이한 청명한 하늘은 그야말로 선경의 풍광을 지상에 펼쳐 놓는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모두 다 다른 운치가 있다고 하니, 밀양에 사는 분들이 부러워질 지경이다.
너덜지대를 통과하는 팀
금강폭포에 이르러 잠시 물을 즐긴다. 물은 여전히 차지만 얼굴의 소금끼를 닦아내기에는 충분하다.
금강폭은 몇단에 걸쳐서 물이 쏟아진다. 햇볕이 나는 낮에는 무지개가 생긴다고 한다.
저쪽에도 폭포..............
이쪽에도 폭포..............
그리고 아래에 또 폭포..............
계곡을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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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위 옆도 지나고............
단장된 길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제 표충사가 가까와지려는 모양이다.
계곡물은 계속 흐르고............
시멘트 포장길에 다다른다. 이제 저녁이다.
우리가 잠시 걸어 표충사에 이르런 것은 어둑어둑해 질 때였다.
표충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로 경남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재약산에 있는 절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충훈(忠勳)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표충사당(表忠祠堂)이 있는 절이다. 원래 이곳에는 원효가 창건한 죽림사(竹林寺)를 신라 흥덕왕 때 황면이 재건하여 영정사(靈井寺)로 개칭한 절이 있었다. 표충사라는 이름은 사명대사를 제향하는 사당을 당시 서원(書院)의 격으로 표충서원(表忠書院)이라 편액하고 일반적으로 표충사로 불렀는데, 이 사당을 사찰에서 수호(守護)하여 왔으므로 사(祠)가 사(寺)로 바꾸어진 것이다.
이 곳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인 대광전, 팔상전, 명부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2호인 만일루, 표충서원 등이 있다. 또한 국보 제75호인 청동함은향완(靑銅含銀香垸)은 1177년(명종 7)에 제작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고려시대 향로이다. 이 밖에도 보물 제467호인 표충사 삼층석탑, 중요민속자료 제29호인 사명대사의 금란가사(錦襴袈裟)와 장삼(長衫),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호인 표충사 석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인 표충사비 등이 있다. 절 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언양에서 숙소를 잡은 우리는 바로 나와서 횟감으로 저녁과 술을 먹는다. 언양은 불고기가 전국적으로 알아주지만 회를 무척 좋아하는 김형철의 제의에 따라 횟집에 들어간다.
그리고 우리가 그걸로 끝내겠냐? 2차에서 새벽 2시까지 마셔 준다. 산은 산이고 우정은 우정이다. 이 나이에 필요한 것이 우정 빼고 무엇이 있겠는가?
언양에서 하루밤을 지내고 아침에 일어나 바로 양산 내원사로 들어온다. 내원사를 품고 있는 천성산에 오르기 위해서이다. 언양에서 승용차로 17km를 왔다.
아침에는 피곤들하여 아무도 산에 못 오를 것 같더니, 일단 산으로 들어오니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따라온다. 하긴 이 산은 '그저 먹는 산'(성호 말)인데 안 따라오면 언제 다시 온단 말인가? 근데 그저 먹어질까? ㅎㅎ
내원사계곡은 이 지역에서는 유명한 계곡이다. 경기도 유명산의 입구지계곡과 생김이 비슷하지만 계곡 주변에 흩어진 바위들 크기의 스케일은 더 크다. 계곡이 드문 이 지방에서 여름이면 이 계곡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천성산 들머리 초입에 위치한 내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로, 한때 내원암이라 불렀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창건 설화가 <송고송전(宋高僧傳)>에 기록되어 있다.
중국 당나라 태화사의 승려들이 장마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예견하고 효척판구중(曉擲板求衆)이라고 쓴 현판을 날려보내 그들을 구해준 인연으로 1,000명의 중국 승려가 신라로 와서 원효의 제자가 되었다. 원효가 이들이 머물 곳을 찾던 중 내원사 부근에 이르자 산신이 마중나와 현재의 산신각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에 원효는 대둔사를 창건하고 상·중· 하 내원암을 비롯하여 89개의 암자를 세웠다.
조선시대 의천(義天)과 용운(龍雲), 해령(海嶺)이 1646년(인조 24)과 1845년, 1876년(고종 13)에 각각 중수를 하였고,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대둔사 및 상·중 내원암은 없어지고 하내원암만 남았다. 1898년(광무 2)에는 유성(有性)이 수선사를 창설하고 내원사로 개칭하였다. 일제시대에는 혜월(慧月) 혜명(慧明:1861∼1937)이 주석하면서 많은 선승(禪僧)들을 배출했다. 6·25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된 것을 1955년에 수덕사(修德寺)의 비구니 수옥(守玉)이 13동의 건물을 재건하였고, 그 뒤로 꾸준한 불사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계곡을 지나가는 길도 있다.
천성산 계곡 물가 짙은 녹음의 푸른 손들과
그 손바닥 그늘 아래 잠든 소금쟁이 한 마리
조용조용 흘러서 봄에서 여름으로 간다
무덥다고 투덜대는 풍경(風磬)을 흔들다
바람도 잠시 대숲에 누워 낮잠을 즐길 때
여름 선정(禪定)에 든 내원사 깨울까
물소리도 발뒤꿈치 들고 산문 밖으로 돌아가고
졸음에 겨워 함께 흘러가던 젊은 비구니의 독경소리
물 위에 비친 제 얼굴에 깜짝 놀라
낯 붉힌 물동그라미로 흩어진다.
천성산은 낙동정맥 산줄기 상에 속하며, 남서쪽으로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 있는 산을 원효산(元曉山)이라 하였는데, 양산시에서 이전의 원효산을 천성산 주봉(主峰)으로 하고, 이전의 천성산(812m)을 천성산 제2봉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하지만 나무 이정표에는 예전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온 1,000명의 승려를 <화엄경>으로 교화하여 모두 성인으로 만들었다는 전설에서 '천성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많은 계곡과 폭포 및 뛰어난 경치로 인해 예로부터 소금강산(小金剛山)이라 불렀다. 유명한 낙동정맥의 줄기에 해당하는데, 이 산줄기에 따라 양산시가 동·서로 갈리며, 회야강(回夜江)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천성은 가지산, 운문산, 신불산, 영출산과 함께 영남알프스 산군에 속한다. 천성에는 원효암을 비롯하여 홍룡사·성불사·혈수폭포(血水瀑布) 등의 명승지가 산재한다. 제2봉의 북서쪽 사면에는 통도사의 말사인 내원사(內院寺)가 있다. 희귀한 꽃과 식물·곤충들의 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는 화엄늪과 밀밭늪은 생태학적 가치가 매우 높으며, 가을에는 울창한 억새밭이 장관을 이룬다. 특히 산 정상은 동해의 일출을 가장 먼저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계곡이 작아질 무렵에 산길은 갑자기 된비알이 된다.
일명 천성산 깔딱고개에 이런 계단이 설치되어 예전보다 한결 수월하게 산을 오른다. 하지만 무릎이 새콤새콤하다.
오르막 중간게 잠시 쉰다. 아마 나 빼고는 이틀 동안 100명산을 두개나 친다는 데에 뿌듯한 느낌들이 있지 싶다. 이 곳은 서울에서 오기 힘든 지역이기 때문이다. 친구들 얼굴에도 노티가 조금씩 나는가?
4월말의 산은 연두색 세상이다. 연두색은 김형철과 안이사가 매우 좋아하는 색인 모양이다. 연이어 감탄사가 튀어 나오니 말이다.
정상 천성산2봉. 예전에는 이곳이 천성산이었는데 최근에 원효산과 천성산을 같이 합하여 1봉, 2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척에 있는 신불, 가지산보다 지명도가 떨어지니 양산시청에서 관광지 개발에 적극 나선 결과물인 것 같다. 이 천성2봉이 내원사계곡과 천성공룡능선을 품고 있는 오리지날 천성산이다. 이 곳이 바로 한국 100명산에 포함되는 봉우리이다.
옛날 정상석. 여기가 원래 천성산이다. 천성1봉이라고 불리우는 곳은 예전 원효산이다. 천성산은 한국100명산이지만, 원효산은 100명산이 아니다. 그러니 한국100명산을 타려면 여기 천성2봉으로 와야 한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재약산 간다하고 수미봉에 갔다오는 사람들처럼...............
모두 같이 정상에서 한방..................찰칵!
남서쪽에 있는 천성1봉, 예전 원효산이다. 우측으로 길게 뻗은 평전이 화엄벌 또는 화엄늪이다.
저 아래 내려다 보이는 내원사. 보이는가? 안경 줄까?
뷰포인트에 선 친구들.
우리는 왔던 길로 회귀하지 않고 천성1봉 쪽으로 나아가다가 은수고개에서 서쪽으로 내려 안부 밑 계곡으로 하산한다. 하지만 등산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처럼 산길을 파악하는 사람들이 내려오다가 생긴 길이 조금 나 있다. 결국은 우리가 올라온 내원사계곡 길과 만날 것이다. 그 가파른 계단 말이다.
그래도 제법 경치가 괜찮은 곳도 있다.
계곡의 바위를 타고 건너...............
바위 경사가 있고 물이 흐르면 바로 폭포다.
연연한 마음이 두런두런 번지는
윤삼월 한창 때, 여름에 드는 날
내원사 계곡 청청한 물살 흐르고
대추나무 새 잎은 연두빛이 눈물겹다
하늘이 푸르러 속상한
눈빛이 졸망제비꽃 닮은 너를 만나면
암암한 그리움을 연두잎에 실어서
조용히 귀잠이나 자는 듯이
얌전한 색깔로 포개지고 싶다
무슨 소문 무슨 내막 다 심드렁한 날에도
계곡물 흐르는 사이에 너를 곁에 두고는
네 속에 품고 사는 연두빛을
감쪽같이 훔치고 싶어 내심으로 버겁다
가벼운 트래버스도 있고..............
아슬아슬하게 바위벽을 타는 코스도 있다.
이제 내원사계곡이 나온다.
산을 벗어나기 전 폼을 다시 갖추고..............나는 괜찮지만 저들은 서울까지 가야 한다.
서둘러 앞에 서서 천성을 벗어나 속세로 돌아가고 있는 나.
그리고 산을 벗어난다.
如意橋가 나오고............
내원사다.
내원사에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선나원(禪那院), 선원(禪院), 심우당(尋牛堂), 정처헌(靜處軒), 불유각(佛乳閣), 송루, 사문(寺門) 등이 있으며, 암자로는 미타암(彌陀庵), 성불암(成佛庵), 금봉암(金鳳庵), 원효암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제 제58호로 지정된 금고(金鼓)가 유명하며, 절 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8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표적인 비구니 수도원으로 알려져 있는 사찰이다.
이 기념촬영 뒤에 우리는 헤어진다. 경주로, 서울로...........그러나 일주일 뒤에 또 만난다. 내가 서울에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건 나를 빼고 그들이 서울로 올라가면서 서이천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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