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서로 약속이 잘못되었나 보았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당장 천막과 짐을 실은 트럭을 몰고 나갈 사람이 없었다. saba는 ㅅ꼬미가 아침에 오는 걸로 알고 있다 했는데, 내가 듣기로 오늘은 ㅅ꼬미가 오후에 오기로 했다. 보통 평일 아침은 ㅅ꼬미가 아니면 배준이가 트럭을 몰고 나가 아침에 나오는 도우미들과 함께 천막을 펴는데 오늘은 배준이도 아침 시간에 온다는 약속이 없었다. 그래서 누가 오려나,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혜화역 4번 출구라면서 신우에게 전화가 왔다. 역시, 엊그제 천막에 들러, 그게 몇 해만에 만난 건데, 그 자리에서 이 일을 쭉 같이 하자고 얘기하자마자 날마다 나와 제 몫을 하고 있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주 훌륭한 일꾼이다.
그러면 할 수 없지, 신우하고 saba, 나 그렇게 셋이서라도 천막을 치면 되지 하면서 내가 트럭을 몰고 나갔다. 다른 날은 늘 숙소에 더 남아 일지를 마저 쓴 뒤 단식장 준비가 다 된 뒤에 나가곤 했으니 짐을 싣고 같이 나간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어제부터 날이 추워지고 있지만 아침 볕이 참 좋았다.
혜화 4번 들머리에 나가니 프랭스도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프랭스랑 신우, saba와 짐을 내렸고, 곧 기차길옆 작은학교 상범 삼촌이 왔다. 기차길옆 작은학교에서 하는 하루씩 이어 굶기 네 번째 날이다.
온우리 선생님들
트럭을 세우고 막 짐을 내리고 있을 때 낯이 익은 선생님들 몇 분이 걸어오셨다. 깜짝 놀랐다. 그 멀리에서까지 직접 찾아오실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 가까운 곳이라 해도 마음으로 힘을 보태어주시겠지, 직접 발걸음을 두어 찾아주실지 몰랐다. 온우리 모임의 우공 선생님과 서정록 선생님, 이성원 선생님.
온우리 모임은 광주 동화읽는어른 모임의 양선숙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된 모임이었다. 그 때 내가 살던 남양주 수동에 이성원 님이라는 동요를 부르는 가수가 산다는 말을 전하며 말이다. 꼭 함께 만나 알게 되면 좋겠다 하면서. 그래서 다음에 있는 온우리 까페에도 가입했는데 실제로는 뵙거나 하지 못하다가 지난해이던가, 지리산 악양에 사는 우공 선생님이 수동에 찾아왔다. 물론 이성원 선생님을 만나러 온 거였지만 그 길에 나에게도 연락을 해 함께 만난 거였다. 그렇게 뵌 분들. 서정록 선생님은 오늘 처음 뵈었지만 까페에서 선생님이 올리는 인디언 문화나 인디언의 삶에 대해 쓰는 글들을 보아 알고 있었다.
아직 천막을 치지도 못했으니 어디에 앉을 수도 없고,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몰랐다. 그저 차길에 선 채로 선생님들 하시는 말씀을 들었고 나도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다. 이성원 선생님이 얼마 전 공연을 그대로 녹음해서 냈다는 새 동요 음반을 선물로 주었고, 우공 선생님이 인디언들의 주술 같은 음악, 소리를 담은 씨디를 주셨다. 따로 선물을 챙겨오셨다기 보다는 그저 그 순간 무어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가방을 열어 주신 것 같았다. 무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 아주 고마웠다.
들어가세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우공 선생님은 악양으로, 이성원 선생님은 수동으로, 서정록 선생님은 거제로 먼 길을 가야하셨다.
다시, 숙소
짐을 내리고 단식장 준비하는 것을 같이 하려 했지만 도무지 나는 가벼운 것 하나 나르는 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괜찮대두, 아이 참. 무거운 것 들지 말고 힘 아끼라고. 그럴 힘 있으면 찾아오는 사람들하고 얘기 한 마디 더 나누라며 손을 써 하는 일에는 아예 가까이에도 못 오게 한다. 그래, 그럼 나는 다시 천막 들어가서 일지 쓰던 것 마저 쓰고 나올게.
서둘러 어제 일지를 썼다. 요즘은 늘 일지를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쓰게 된다. 밤에는 일찍 자야 한다고, 안 자면 운영진들에게 혼이 나는 판이니, 밤에는 쓸 수가 없다. 그러니 다른 때보다 좀 더 일찍 시계를 맞추고 일어나 아침에 쓰는 편인데, 일어나 씻고 챙기고 하다보면 그것도 자꾸만 늦어진다. 그리고 욕심 때문인지 나름껏 꼼꼼하게 기록하고 싶어 짧게 쓰지도 못한다. 천막 치는 식구들이 먼저 나가고, 천막을 다 치고 나서도 한참 지나서야 나가게 될 때가 많다.
더구나 오늘은 아침에 단식장에 다녀오며 시간을 훌쩍 넘겼으니 다른 때보다 더 늦게 쓰기 시작. 마음만 바빠서 급하게 썼다. 두 시부터 광화문 앞에 있는 집회에 가서 이야기 한 꼭지를 하기로 했으니 시간을 넘길 수도 없었다. 서둘렀다.
동훈이, 동민이, nan느티나무
천막 앞에 가서도 서둘렀다. 어서 준비해, 나 말고 누가 같이 가지? saba 너 같이 갈래? 신우도 같이 갈 수 있나? 유인물도 좀 가져가서 그 곁에서 나누어주면 좋겠는데, 얼른 준비해, 늦었어, 가자…….
천막 앞 책상에는 소망 나무를 키우는 엄마 같은 사람들 서 있다. 엉겅퀴 선생님, 동치미 선생님, 장선주 선생님. 어제 일지를 막 올리고 나오면서 즐겨찾는 게시판 몇 군데를 툭 툭 툭 들러보았는데 그 가운데 어느 게시판에 엉겅퀴 선생님이 ‘어서 머리 감고 나가야지’ 하고 쓴 것을 봤거든, 그게 여기 나온다는 얘기였구나. 그래서 머리 감았어요? 하니까 못 감고 나오셨단다.
나는 늦었다 해서 마음이 급한데 saba가 어린이 둘하고 어머니 한 분을 소개해 주었다. 대전에서 올라온 식구. 학교는 어떻게 하고요? / 여기에 온다고 하면서 체험수업 하는 걸로 해서 선생님께 말하고 빠졌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잘 이해해주시면서 동훈이네 반 아이들한테도 소망의 나무 얘기를 잘 해줬어요. 다른 아이들한테도 소망 나무 이파리에 자기가 적고 싶은 얘기 적어 달래서 그것도 동훈이에게 모아줬어요. 대신 가져가서 달아달라고.
동훈이와 인사를 나누었다. 선생님 저는 대전 녹색연합에 있는 징검다리라는 동아리 회장 백동훈이에요. / 와아, 그럼 징검다리는 어린이 동아리인 거야? / 네, 청소년 동아리요. 그리고 이거요. 이거 제가 여섯 달 동안 한 번도 안 빼고 걸고 다니던 목걸이이거든요, (나무 목걸이, 쇠백로 그림이 있었다.) / 아아, 환경에 대해 공부하는 동아리인가 보다. 그치? / 네. 그런데요, 이 목걸이 박기범 선생님한테 드리려고 갖고 왔어요. / 정말? 와아아. 진짜, 진짜. 이거 그럼 아저씨가 날마다 하고 다닐게. / 여기에요, 또 이거는 제가 하고 다니던 거 아니고 새거에요. 탈 목걸이요. / 와아, 선물을 이렇게 두 개나.
동훈이(6학년)와 동민이(2학년)은 손수 만들어온 나뭇잎과 편지도 건네어 주었다. 나뭇잎 두 개와 동훈이의 편지 하나, 모두 테두리마다 조그만 종이학들을 빽빽하게 붙여서 꾸몄다. 나뭇잎도 보통 것보다 몇 배나 되게 컸으니 그것 하나에 종이학이 백 개는 붙었을까? 정말 정성을 담은 나뭇잎, 그리고 편지. 감동, 큰 감동이었다.
하지만 광화문 집회 시간에는 늦었으니 어서 가야 할 시간. 마침 잘 되었다. 동훈아, 동훈이도 오늘 아저씨 가는 곳에 같이 가자. 거기에서 우리나라 군인들 보내지 말라고 사람들 모여 얘기하는데, 동훈이가 써 온 편지를 거기에 가서 읽을래?
파병반대와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를 위한 집회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으로 갔다. 두 시가 조금 늦었지만 아직 집회 시작 전이었다. 우리가 막 닿았을 때 사회자가 집회를 시작하자고, 줄을 갖추어 서자고 얘기했다.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얼마 없었다. 거기 정보통신부 앞이 워낙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도 아니니 아무래도 이 집회는 상징을 두고 하는 자리 같았다. 맨 앞줄에는 오랫동안 운동해 오신 어른들이 플랭카드를 들고 섰고, 그 뒤로 단체에서 활동을 하는 것 같은 이들이 섰다. 우리 - 나와 신우, ,nan느티나무님 그리고 동훈이와 동민이는 맨 뒷줄에 섰다. 별로 익숙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동훈이, 동민이에게는 더 그랬을 거다. 집회를 시작하면서 사회자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자고 했다. 그 자리에 모인 사오십 명 어른들은 팔뚝을 어깨 위로 올렸다 내렸다 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동훈이가 난 이런 거 못하는 데 했다. 괜찮아, 이거 안 해도 돼.
차례에 따라 파병 반대에 대한 주장과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에 대한 이야기를 몇 분이 앞에 나가 얘기했다. 아주 비장한 모습, 결의에 찬 목소리. 그런데 솔직히 귀에 잘 들리지는 않았다. 그분들 진성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흥분해서 크게 소리쳐 얘기하는 어조가 오히려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분위기는 엄숙하고 딱딱했다.
프랭스와 saba가 조금 늦게 왔다. 처음에는 집회를 준비하는 쪽에서 우리 소망의 나무까지 같이 가지고 와서 하면 어떻겠느냐 했지만, 그건 그야말로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오히려 그렇게 않는 게 낫겠다 싶었고 그것말고 우리 피켓이나 몸 벽보 정도는 챙겨오는 게 낫겠다 싶어서였다. saba가 그걸 챙겨 다시 왔다. 다른 단체에서 온 이들도 몸 벽보를 가슴과 등에 달았지만 우리 몸 벽보를 달으니 예쁘고, 분위기가 훨씬 환해졌다. 강아지풀 님이 성아, 수빈이와 만든 피켓 하나와 소망의 나무 피켓 하나를 가져갔는데 그것이 있으니 더욱 예뻤다. 동훈이, 동민이는 손에 들고 갔던 평화 꽃을 가슴에 꽂기도 했다. 그렇게 모여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saba가 사진을 찍자고 했다. 우리는 앞에서 연사가 나와 얘기를 하고 있는데도 어울려 사진을 찍었다. 자연히 웃고 떠드는 소리도 낫다.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뒤를 돌아보는데, 나는 그게 눈치가 보이고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saba야 우리 혼나겠다, 그만 하자 했더니 saba는 에이, 우리 분위기대로 해요 하고 말하는 것 아닌가?
아, 그래 맞다. 나는 늘 그런 식의 엄숙하고 딱딱한, 뭐랄까 그 어떤 비장함이나 결연한 의지가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집회 분위기를 싫어했으면서도 그런 자리에 가서는 그 분위기에 나를 맞추려고만 했었다. 마치 맞지 않는 옷에 내 몸을 맞추듯 말이다. 비장함, 그건 우리 소망의 나무와 함께 길에 나온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정말로 우리 군인들을 보내지 말라는 절실함. 하지만 우리는 그 비장함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듯 얘기하고 싶지 않았던 거고, 편안하게 즐겁게 같이 나누고 싶어 했다. 밥을 열흘 넘게 굶어도 그 앞에서 과자를 먹는 사람은 과자를 먹으면서, 흥겹게 놀면서. 그래, 맞아.
사실 나는 바로 그 전까지만 해도 내 차례가 오면 앞에 나가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걱정이었다. 왠지 앞서 말씀하신 분들의 말투나 어조로 얘기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 어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지만 그냥 우리 하던 대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해야지 하니 마음이 아주 편했다. 바로 사회자가 우리를 소개해 주었고, 우리는 다 같이 나갔다. 내가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를 했고 nan느티나무 님이랑 saba, 동민기가 피켓을 들었다. 내가 이야기한 뒤에 동훈이는 써온 편지를 읽었다. 마치 미리 짜고 준비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아주 감동스러운 모습이었다. 기자들도 동훈이 동민이 앞으로 잔뜩 모여들었다. 동훈이, 동민이, 그리고 소망의 나무는 그 집회의 꽃이 되었다. 집회가 끝나고 나서도 기자들이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했다.
민주노동당의 평화군축 위원회였던가, 아무튼 그러한 이름에서 일하는 분 세 분이 인사를 했다. 우리 소망의 나무 활동에 관심을 가지며 그 일을 앞으로 당 차원에서 전국으로 지구당과 함께 벌이면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되기만 한다면, 잘 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은가. 하여튼 그것은 내가 혼자 대답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함께 일을 하는 이들과 의논을 하겠다고 말했다. 아니, 우리가 검토하고 의논할 수 있게 정식으로 제안문 같은 것을 준비해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모쪼록 소망의 나무가 더 많은 이들 소망을 모을 수 있다면 좋겠다.
다시 천막
집회를 마치고 다시 천막으로 왔다. 여전히 책상 앞에는 엉겅퀴 선생님, 장선주 선생님, 변지애 선생님이 선전을 하며 서명을 받고 있었다. 아, 아니다. 오전에는 동치미 선생님이 있었는데 동치미 선생님은 가시고 변지애 선생님이 그 자리에 와 있었다. 오늘 일정이 두 시 광화문 집회를 마치고, 네 시부터는 바로 소망나무 터에서 평화의 바람 유랑극단이 와서 공연하기로 되어 있었다. 다시 천막으로 들어오니 다행히 아직 네 시는 안 되었다. 아직 유랑극단은 오지 않았다.
선전대 앞에 있는 선생님들이 그런다, 누가 와서 한 시간도 넘게 기다렸다고, 한 시간도 넘게 서성이면서 이 둘레에 있었다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데 조금 있으면 다시 올 거라고, 기다려 보라고.
천막 안에 앉아 있으니 정말 누군가 한 분이 다시 왔다. 그런데 전혀 낯이 선 얼굴.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물으니 다음 까페 ‘오소영을 좋아하는 사람들’에서 보고 왔다고 한다. 정말이요? 너무 놀랐다. 거기는 오소영이라는 가수의 팬 까페인데 한참 바끼통의 글이나 소망나무 글을 퍼나를 때 거기에도 꾸준히 올리고 있었다. 바그다드에 있을 때 오소영 씨의 노래를 처음 들었는데 그 가우데에서도 <기억상실>이라는 노래, 그 노래가 마음에 와 닿아 계속 듣다가 가입한 까페였다. 사실 거기에 바끼통 글, 소망나무 글을 올리면서 괜스레 어울리지 않는 글을 올린다고 눈총이나 받지 않을까 혼자 민망해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찾아오시다니.
반가웠다. 이런 저런 얘기, 소망의 나무 얘기도 조금 나누다 까페에 대한 얘기도 조금 나누었다. 그이는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인데 사진이 취미라며 둘레 사진을 찍다 갔다. 오소영을 좋아하는 사람들 까페의 닉네임은 일레그린. (아참, 엉겅퀴 선생님도 그 까페 회원이라 한다. 아, 깜짝이야.)
인터뷰
인터넷 대안 언론 민중의 소리에서 나온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거의 늘 같은 이야기이지만 비슷한 얘기를 하니까 나도 말이 더 조리 있게 되는 것 같다. 정말로 힘주어 이야기하고 싶은 얘기에 힘을 주고 한 말 또 하지 않게 갖추어 얘기하고. 하지만 기자들이 올 때마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한다. 이번에 민간인 두 분이 죽은 것도 결국 파병 강행의지를 보이는 한국 정부에 대한 응징이 아니었냐고? 늘 이렇다고, 전쟁이든 파병이든 그러한 일을 벌이는 자는 힘 있는 자들이고 그 결과로 죽거나 다치는 이들은 힘없는 약한,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라고. 그것은 전쟁 속에서 죽어간 이라크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고, 전투에서 죽은 미군 또한 마찬가지. 언제나 죽는 것, 빼앗기는 건 힘없는 이들. 그래서 지금 이 길바닥으로 우리 보통 사람들이 나서서 절실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거라고. 우리 군인들 보내지 마라, 우리 군인들이 죽이러 가서도 안 되고, 우리 군인들이 죽어서도 안 된다. 부디 우리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 죽어가는 것 또한 끝내 우리 몫인데…….
민중의 소리 인터뷰를 마치자 마자 성대 학보사 기자라는 학생이 찾아왔다. 거의 삼십 분 가까이 기를 다해 얘기했는데 바로 같은 이야기를 물어보니 힘이 빠졌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한 번 더 힘주어 이야기했다.
유랑극단 - ‘평화바람’
평화바람 차가 왔다. 컨테이너 짐칸이 있는 트럭이다. 자동차 겉도 알록달록 미술하는 이들이 그림을 넣어 눈에 아주 잘 띈다. 무슨 음향하는 기계를 꺼내고, 영상 시설을 꺼내고 이리 저리 준비가 분주했다. 문정현 신부님은 오늘 부안에 내려가셨다 해서 신부님 말고 엊그제 이라크에서 돌아온 김제복 수사님이 왔다. 그리고 평화바람 단원들. 단원들은 모두 유쾌하고 흥이 넘쳐 보이는 분들이었다. 금세 소망나무 둘레 터가 들썩들썩 했다.
평화바람에서 준비한 것, 그리고 소망나무에서 준비한 것으로 해서 그 자리에서 프로그램을 짰다. 워낙 평화바람은 유랑극단이니 흥겨운 공연들을 주로 하고, 소망나무에서는 이야기를 몇 개 맡았다. 누가 하면 좋을까? 아까 집회에서 한 것처럼 동훈이가 그 편지를 한 번 더 읽으면 좋겠다 했고, 오늘 하루 단식을 하러 온 기차길옆 작은학교 상범 삼촌이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했다. 그리고 또 누구 한 분 했으면 좋겠는데 하던 중, 풀무질 책방의 은종복 선생님이 왔다. 오늘로 <<맨발의 겐>> 열권 째. 은종복 선생님에게 얘기 좀 해달라 부탁했다. 지난번에도 서명대 앞에서 “이 앞을 지나는 민족 성대 학생 여러분, 저는 풀무질 아저씨입니다~~” 하고 짧은 연설을 한 일이 있어서 그 부탁이 어렵지 않았다.
평화바람에서 부르는 노래. 우와, 웃음이 절로 아주 신이 났다. <아빠의 청춘> 노랫말을 바꾼 파병반대 노래인데 그냥 웃음이 껄껄걸. 노래하는 분들도 아주 좋았다. 노래하는 구성진 목소리에 마치 탈춤사위를 보는 듯한 몸짓, 공연이 다 끝나고 나서 혹시 전문 연극패가 아니냐고 물어보았을 젖도였다. 풀무질 아저씨가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하고, 동훈이 동민이 형제와 어머니인 nan 느티나무 님이 나가 동훈이의 편지도 읽고 이야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준비한 노래도 했다. 그리고 영상, 강산에의 <<STOP THE WAR>>. 아프가니전쟁 때 인터넷에서 처음 보고 마음이 무척 저릿하더 거였는데 그것을 커다란 화면에 놓고 길에서 틀었다. 오가는 사라들도 걸음을 멈추어 보곤 했다. 전쟁은, 그렇게 끔찍한 거, 그렇게.
공연이 계속 되고 있을 때 <<고래가 그랬어>>를 만드는 회사 분들이 다녀갔다. 책을 몇 꾸러미나 갖다 주었는데, 잘 되었다 싶었다. 이거 토요일날 작은 문화제 할 때에 오시는 분들 한 권씩 나누어 주면 좋겠네.
조금 더 어두워진 뒤, 퇴근하고 오는 은조님이 왔다. 은조 님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좋겠다면서 쵸코파이 커다란 상자에 가득 가져왔다. 쵸코파이를 그냥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소망의 나무 스티커를 만들어 붙여주자면서, 그 스티커도 손수 만들어왔다. 와아, 사람들 정말 좋아하겠다. 쵸코파이도 내일 모레 작은문화제 때 나누어주면 그날 정말 잔치처럼 풍성해지겠네. 은조 님은 퇴근 뒤에나 와서 일을 많이 함께 못한다고 그걸 미안해하시더니 그렇게 멋진 작품을 준비해왔다.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마음인지.
또 어느 분들 천막 앞으로 와 인사를 하시는데 바로 얼굴을 기억하지는 못했다. 한겨레아동문학작가학교 16기에서 공부하는 선생님들이라 한다. 정경순 선생님, 황은영 선생님. 오늘도 강의를 들으러 가는 길인데 그 전에 들렀다 한다. 황은영 선생님은 나뭇잎이 아니라 아이들 손도장을 물감으로 찍어 그것을 예쁘게 코팅해 왔다. 어린이집을 하신다는데 그곳 아이들과 같이 만든 거라며 말이다.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 모른다. 아기들 손, 무엇보다 예쁜 소망 잎사귀였다.
공연이 계속되는 사이에도 천막에서 찾아오신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하느라 상범 삼촌이 앞에서 하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어느 새 차례가 지나갔고 마무리 하는 노래 공연들이 이어졌다. 평화바람 단원들은 아주 신나게 잘 놀았다. 우리도 그만 슬슬 천막을 걷어야 할 때. 담요를 개고 천막 안 작은 물건들부터 치우고 있는데 천막 앞에 여러 선생님들이 와 섰다. 아, 김옥 선생님? 어린이문학 공부를 하는 교사들 모임인 숲속나라 선생님들이 한 데 찾아오셨다. 이름이랑 얼굴을 아는 건 김옥, 유영진, 김영주 선생님들이다. 다른 선생님들 한 분 한 분 이름을 묻지는 못했다. 선생님들하고 오래 얘기 나누지는 못하고, 막 천막을 걷어야 해서 선생님들도 천막 걷는 일을 같이 했다.
손을 잡아요.
파니 누나의 거리 공연. 유랑극단 단원들에 소망 식구들에 기본 관객이 다른 날보다 훨씬 많았다. 게다가 평화바람 단원들은 그냥 서서 손뼉만 치는 게 아니라 정말 놀 줄을 안다. 노래 분위기에 따라 나오는 춤사위도 제각각이다. 마치 마당놀이에서 보는 것처럼 아주 재미있었다. 나중에 무슨 노래였더라, 조금 조용한 노래였나, 그걸 부를 때는 모두 손을 잡고 빙글 둘러섰다. 평화바람 단원들도 숲속나라 선생님들도 소망나무 식구들도.
평화바람 분들은 가기 전에 한 번 더 우리 소망나무가 있는 곳에 와서 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되기만 하면 주말이면 더욱 좋겠는데, 그건 어렵다 하고 평일 중으로 한 번 오겠다 했다. 아무렴 어떤가. 오늘 못오신 분들, 다음에는 꼭 와서 함께 하세요.
뇌에도 에너지가필요한 데 에너지공급이 없으니 그럴만도 하지요. 빈 텐트 지키고 서 있다가(말 그대로 그냥 서 있었지요) 광화문서 돌아온 사바하고 늦은 점심을 먹고 반성하면서 왔습니다. 점심사주러온다던 친구가 펑크내서 핑계김에 한 끼 단식해볼라 했는데....불발이 되었잖아요.
동치미 선생님 어머니랑 이지상형 콘서트 갔다가 밤 11시 30분 기차타고 집에 오니 새벽 두시가 넘었어요. 간식은 서울역에서 11시에 햄버거 먹었어요. 햄버거가 되게 맛있었어요. 기범이 형은 얼마나 배 고플까요. 기범이 형 날씨가 많이 추워요. 어머니께서 면역성이 중요하대요. 그럴려면 밥 많이 먹어야 한다고
첫댓글 난 마음만 함께 한 줄 알았는데, 언제 몸까지 거기 갔디야? 굴뚝같은 마음이 요술을 부렸나? ^^
어, 어떻게 하지? 비단물 님이 아니라 동치미 선생님이었어요. 왜 헷갈려서 잘못 썼을까 몰라. 으잉.
뇌에도 에너지가필요한 데 에너지공급이 없으니 그럴만도 하지요. 빈 텐트 지키고 서 있다가(말 그대로 그냥 서 있었지요) 광화문서 돌아온 사바하고 늦은 점심을 먹고 반성하면서 왔습니다. 점심사주러온다던 친구가 펑크내서 핑계김에 한 끼 단식해볼라 했는데....불발이 되었잖아요.
동훈이는 맨처음 와서는 기범아저씨 기다린다면서 결연한 얼굴로 "나도 한끼 단식할거에요." 그랬어요. 그런데 좀 있다 보니까 꼬치 사먹고 와플빵사먹고 광화문 집회다녀와서는 같이 분식집가서 국수인가를 먹었어요. 동훈이 엄마가 너 점심안먹기로 했잖아 물었더니 이건 저녁이에요. 그랬어요. 아 귀여워.
동훈이는 아마도 4시에 저녁먹었으니까 집에 가서 8시에 밤참 먹을거 같았어요. 그래도 대견했어요.
동치미 선생님 어머니랑 이지상형 콘서트 갔다가 밤 11시 30분 기차타고 집에 오니 새벽 두시가 넘었어요. 간식은 서울역에서 11시에 햄버거 먹었어요. 햄버거가 되게 맛있었어요. 기범이 형은 얼마나 배 고플까요. 기범이 형 날씨가 많이 추워요. 어머니께서 면역성이 중요하대요. 그럴려면 밥 많이 먹어야 한다고
했는데 형이 많이 걱정되요. 형 이름이나 사진보면 엄마는 막 울어요. 엄마도 안 울고 형도 빨리 식사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전쟁도 싸움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모두 사랑해요.
ㅜㅡ ㅠ 동훈아 - 나도 너 사랑해도 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