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聲明書
▶수신:
- 전국 각 언론사(신문사).
- 각 방송국.
- 모든 작가 및 각종 한국문화예술 단체 및 개인
문단 권력의 장기 집권과 권위 있는 문학상이나 신춘문예 심사에 있어서 동일인의 지속적인 장기 심사를 강력히 큐탄하고 마땅히 개혁되길 바란다!
한국문인협회(사)강원특별자치도 지회장
남진원
[1]
“ 야, 문학의 단체장이나 예술 단체장이 권력기관이냐? 뭐 그런 걸 가지고 트집을 잡고 그러느냐?”
하고 이의를 제기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학 단체장의 장기집권과 심사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장기 심사, 특히 문학회나 예술 분야에서 개인의 장기 집권 현상, 문협 지회장이나 지부장, 그리고 특히 신춘문예 심사자의 장기 심사는 문단 권력 내지, 문화 권력의 중심에 서서 자유로운 상상력과 새로움의 가능성을 막고 선 암적 존재요, 부패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함유(含有)하고 있는 독소라 하겠다.
권력을 한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쓰인다.
권력(權力) : 남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힘. 남을 알아듣도록 타일러서 어떤 일에 힘쓰게 함.
이 중에 국가 권력, 정치 권력은 사전적인 의미가 다음과 같다.
▪국가 권력(國家權力) - 국가가 통치를 위해 행사하는 권력
▪정치권력(政治權力) - 사회의 여러 기능 가운데, 특히 정치적 기능을 행하기 위한 권력
그렇다면 문학이나 예술 역시 단체장이나 심사위원들은 권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문학단체의 수장(首長)이나 심사위원 역시 문학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을 가진 사람으로 단연코 ‘문학 권력’ 내지 ‘문단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2]
이제부터 장기집권이나 장기 심사를 할 시, 부정적인 영향을 들어 보이겠다.
굳이 문학이나 예술 방면에서 예를 들지 않아도 좋겠다. 대한민국의 정치사를 보면 장기집권이 얼마나 큰 패악인지 여실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현재는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인 대통령도 5년 단임을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한국문인협회에서도 이사장 임기는 4년 단임으로 전 회원의 직접 우편 투표이다. 그런데도 우리 문단에서는 아직까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작태들이 이곳저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어떤 이는 회장이나 문협 지부장을 10년 20년을 했다고 자랑을 한다. 그게 자랑인가? 후배들을 키우지 못한 중죄인이지. 역사 앞에 석고대죄할 일이다.
대한민국은 오늘날 선진국의 수준에 들어섰다고 한다. 일부 긍정되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오늘날은 젊은 세대들의 활동이 제도적으로 막혀 있다. 젊은이들을 튼실한 문학인이 되게 하는 것은 기존 문학인의 의무이며 권리이다. 그러함에도 자기의 자리에 연연하여 그 자리를 내려놓지 못하고 후배들의 문학에 대한 길을 열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한심한 일은 오히려 기한 없는 연임을 부추기어 장기화로 가고 있는 짓거리를 하고 있다. 만약 대통령 단임제를 없애고 영원무궁하게 임기 제한을 두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문학의 장기 집권도 다른 정치 집단처럼 부패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문학 단체가 왜 1회에 한해 연임을 하게 정관에 못을 박아 놓았을까? 회원들은 회장보다 더 지혜롭고 현명하다. 내가 회원으로 있는 강릉문인협회 역시 2년 임기에 1회 연임이 가능하다. 또 내가 지금 지회장으로 있는 강원문인협회 역시 2년 임기에 1회 연임이 가능할 뿐이다. 임기 동안 열심히 지혜롭게 문학 발전을 위해 일하다가 그 일의 연속성 때문에 잘 할 수 있도록 회원들이 한 번의 기회를 더 준 것이다.
혹자는 이의를 제기한다. 그렇게 좋은 사업을 현재 회장이 언제까지 계속해야 한다고(?), 그렇기에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독재와 장기 정권 수립을 할 때 찾는 명분과 비슷한 것이다. 임기 동안 좋은 사업을 하고 나서 자리를 내려놓고, 남은 사업은 그 일이 성공적으로 되도록 새 회장을 잘 도와주면 될 것이다. 그러면 인품도 추앙받고 명망도 높아질 것이다. 요즘 문인들은 능력이 많다. 회장보다 뛰어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지 못하나 보다.
자리에 연연하는 게 제일 추한 인간이다. 가까운 우리 강원문인협회의 과거를 들추지 않아도 정치사에서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3]
금년에도 이곳저곳에서 신춘문예 공모가 시작된다. 그러나 신춘문예 심사의 장기 독재 체제는 문학성을 폐쇄성으로 몰아가기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훌륭한 언론사도 많이 있다. 그런 신문사나 잡지사는 존경한다.) 이제 그 문제를 짚어보기로 한다.
현대 한국문학사를 1920년대로 본다면 벌써 100년이 지난 셈이다. 그런데도 아직 일부 신문사에서는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신춘문예 심사가 구태적이라고 독자들이나 신춘문예 응모자들이 많은 말들을 이구동성으로 한다. ,
“아니, 신춘문예 심사를 할 사람이 그 사람밖에 없나? 한국문학 100년이 훌쩍 지났는데 말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 문단에는 뛰어난 시인, 수필가, 아동문학가, 평론가, 소설가 들이 기라성처럼 포진되어 있다. 그들을 잘 초빙하여 심사에 임하게 한다면 그야말로 한국 문단을 빛낼 신예 작가들을 배출할 것이다. 심사도 공정하고 투명성도 보장되어야 한다.
요즘은 상금도 꽤 많은 문학상도 전국 공모가 많다. 그래서 유능한 분들에게 공모를 해 보라고 권유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 시큰둥한 답변이 돌아왔다.
“문학 공모상? 그거 다 뻥이야. 즈 끼리 다 짜놓고 겉으로만 공모라는 형식을 취하는 거야.”
‘ 문학상 공모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무너졌으면 저런 말을 할까.’ 내심 세상을 개탄해 마지않았다. 그렇지만 모든 문학상이 그렇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신춘문예 이야기를 하다가 문학상 공모 쪽으로 말이 빗나갔다. 신춘문예 심사자가 장기간 3년에서 5년 이상 심사를 지속된다면 응모자들은 모두 그 사람의 성향, 취향, 문학 세계에 편중하여 그 입맛에 맞는 작품만 쓰길 골몰할 것이다. 문학이야말로 자유와 상상력을 기본 전제로 창조성을 바탕으로 하는데 그렇게 되면 미래 한국문학은 기형아요, 절뚝발이가 될 것이다.
심사자의 눈치를 보면서 작품을 끄적거리게 만드는 응모자들! 그 책임은 응모자들인가, 신문사인가, 아니면 장기 독재적 심사위원들인가? 심사위원 교체는 신문사에서 결단만 내리면 곧 해결될 문제이지만 거기에 무슨 정실이나 이익이 걸려 있는지 잘 되지 않고 있다.
[4] 맺는말
지금까지 한 말은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문단이나 예술 단체의 장기 집권 자리 유지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정관을 고쳐 장기 연임을 하지 못하게 하면 될 것이다.
“문학회와 각종 예술 단체 회원들이여, 부디 깨어있으시길 바랍니다. 총회에서나 모임의 자리에서 분연히 일어서서 발언하십시오. 이것은 문학에 대한 충정이며 한국문화예술발전을 위한 그대들의 의무와 동시에 권리입니다. 그리하여 부패의 온상이 될 수 있는 장기 집권을 막아야 합니다.”
둘째, “언론사에 부탁드립니다. 각종 신문사에서 실시하는 신춘문예 심사는 매년마다 권위 있는 새로운 심사위원으로 교체하십시오.”
셋째, “문학과 문화예술단체 작가 회원들이게 강력히 호소합니다. 눈앞의 혼돈을 바라보면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그게 바로 자신의 무능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문학과 예술이 살아있는 정신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목소리를 내어 새로운 문학의 세기를 열어가십시오. ”
감사합니다.
첫댓글 남진원 회장님의 의견에 공감하며 적극 지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