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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전례원 - 韓國典禮院 - ( jeonyewon ) 원문보기 글쓴이: 壯圃 김창호
우리 옷의 우임(右袵)과 좌임(左袵) |
우임(右袵:오른섶)과 좌임(左袵:왼섶. 겉섶과 안섶이 반대방향)이다. 중국의 많은 사서에 오랑캐의 대명사로 좌임(左袵)을 사용한 흔적이 그득하다.
여기에서 우임은 무엇이고 좌임은 무엇인가. 이 용어가 생소한 독자를 위해서 우임(右袵)과 좌임(左袵)을 잠깐 설명해보면 우임과 좌임은 옷깃을 여미는데 오른쪽으로 여미는가, 왼쪽으로 여미는가를 가리킨다. 즉 왼쪽 옷섶이 위로 올라가고 단추는 오른쪽 옷섶에 달려있고 슬쩍 오른쪽으로 치우쳤다. 전통복장에서는 이것이 더욱 뚜렷하다. 저고리 고름을 오른쪽으로 당겨다 맸다. 왜 현재에 와서는 오른쪽으로 중화와 같이 되었을까. 상식적으로 왼쪽에 고름이 있어야 하는데… 위만조선에 대한 사기의 기록에서도 ‘좌임 즉 왼쪽으로 옷고름을 맨 차림으로 동쪽으로 표연히 사라졌다’고 위만의 무리를 묘사하고 있다. 한복전문가들은 중시를 돌리지 않고 있으며 그에 대한 전문적으로 저술한 저서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현재 발견된 고대 벽화 같은 곳에 그려진 그 옷고름의 방향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실마리가 약간 보인다.
<당염립본왕희도(唐閻立本王會圖)>에서 보면 삼국의 사신들은 모두 우임이다. 그리고 옷소매 등도 중화스럽게 퍽 널찍해졌다. 물론 당나라황제는 제후국의 사신이나 제후들을 부를 때 반드시 자기 민족의 옷을 그대로 입도록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마도 사신들은 중화스럽게 보이려고 일부러 우임이나 널찍한 옷소매 등으로 자기 자신을 치장했다는 말인데 좌임은 언제부터 우임으로 바뀌게 됐을까. 우임과 좌임이 혼잡해 있는 모습을 일부 찾아볼 수 있다. 즉 삼국시대부터 우임이 삼국에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말이 될 수 있는데 벽화로서는 도저히 귀족계층이 우임을 먼저 접수하고 민간인은 그대로 좌임을 고수했는지를 알 수 없다. 즉 벽화에서 그 신분계급을 정확히 구분이 안 된다. 옷고름을 우측에 맸는가, 좌측에 맸는가 하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고 단서가 될만한 그와 같은 벽화나 사료들을 제공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삼가 먼저 뭇 누리꾼들의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