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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서 서울에서 망년회를 하시고 돌아오신 다음날
늘 풀천지가 즐기는 (?) 아침겸 점심 식사를 하며 하루의 일과를 의논하다가
연말 연시이기도 하고 이래저래 일머리도 어중간하고
겸사겸사 즐겁고 기쁜 시간을
그간 오래 못뵈었던 외갓집 식구들과 보내기 위해
서울 여행의 여세를 몰아
가족 모두 전라도 고창의 외갓집으로 떠나기로 하였다.
서울 살때에는
자주 외갓집에 가서 친척 형들과 재밌게 놀고
외할머님의 정성이 담긴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한보따리씩 싸서 올라오곤 하였는데
이사온 뒤론 형편상 온가족이 오랫동안 집을 비우기가 힘들고
거리도 무지 멀어서 1년에 한번 정도
부모님께서만 힘들게 다녀오시곤 하였었다.
그런 이유로,
평소 외할머니 께선 부모님이 외갓집에 가신다는 연락을 받으시면
손주들 보고 싶다며 같이 데리고 오라고 늘 성화 이셨지만
몇년동안 한번도 외할머니를 뵙지 못했었다.
우리랑 가끔 왕래하던,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시는 친척이 포항에 사시는 막내이모이시니
그야말로 친척분들 한번 만나뵙는 길은 멀고도 험한 길이다...^^
그렇지만 이번엔
평소 외가에 대한 정이 깊으신 엄마와
늘 큰딸과 손주들에 대한 내리사랑이 깊으신 외할머니께
온 가족이 꼭 찾아뵙기로 깊은 약조를 하신지라
전라도 여행길에 오르게 된 것이었다...^^
서울여행을 하신 여독이 채 풀리시지 않은 아빠께서
또 하루종일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현실이 죄송스러웠지만
먼 여정을 순조롭게 이끌어나갈 적임자가 아빠 밖에 없는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행을 하다
휴게소에 들러 쉬다가 TV 를 보니 프라이드 격투기 경기를 하고 있었다.
헌데 그 TV 뒤쪽으로 무료 당구 코너가 설치 되어 있었다.
그러니 선수가 얻어맞아 실신하거나,
조르기 기술에 얼굴이 시뻘개지며 기브업을 선언하는 긴박한 순간에
당구대엔 즐거운 웃음꽃이 만발하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니
문화생활에 대한 상업적인 감동이 밀려왔다...^^
차에서 보내는 긴 시간동안
가족들과 즐거운 대화도 나누고
우리의 미래나 청춘의 시간의 중요성에 대한 보석같은 대화도 나누고
고래고래 노래도 부르고 하며 7 시간 넘게 걸린 긴 여행 끝에
드디어 추억속의 반곡 외갓집에 도달할 수 있었다.
밤늦게서야 도착했는데 가장 먼저 방죽안댁이신 외할머니가 반겨 주셨다.
오랜만에 뵙는 외할머니는 다행히
내 어린시절 기억속의 건강한 모습 그대로셨다.
부모님께서 외삼촌이 집을 튼튼하고 넓게 잘 지어놨다고 하셔서
멋진 한옥집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회색 양옥집이었다.
먼곳에서 볼때부터 무슨 모텔 같더니
집안으로 들어서자 우리집에 비하면 호텔 수준이었다...^^
새삼 부러운 일은 아니지만
젊은 나이에 농사를 선택하고 고향을 지키며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스스로의 손으로
이토록 훌륭한 집을 지은 외삼촌이 참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흰머리카락 뽑아드리고 용돈 벌었던
외삼촌도 뵙고
단짝처럼 즐겁게 놀았던 사촌형들도 만나고
포항에 사셔서 올라오지 못하신 막내이모를 제외하고는
이모, 이모부님 들도 만났다.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분을 뵐 수 있었다.
어린날, 담배를 많이 피셨던 외삼촌을 빠빠삼촌이라 부르며
설빔을 입고 새해 인사로는 꼭 " 삼촌 ! 올해는 꼭 장가 가세요 ~ ! "
하면 해년마다 " 오냐, 임마! 알았다. 올해는 꼭 가도록 하마... "
하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는데
새해 인사의 좋은 레파토리 였던 결혼 얘기를 더이상 꺼낼수 없게 만드신 분,
바로 외숙모 셨다...^^
생각보다 미인이셨고
무엇보다 외삼촌과 너무 잘 어울리셨다.
그리고 처음 보는 조카들은
활발하기도 하고
잘 먹는지 적당히 통통한 것이 썩 귀여운 편이었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친척들과
즐거운 인사를 나누고
오랜만에 외갓집에서의 식사를 하였다.
반가운 음식들로 즐거운 저녁식사를 하고나서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사촌형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고
여전히 아빠는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의 반가움을
특유의 입담으로 즐거움을 나누셨다.
전에 우리가 서울에서 바쁘게 살 때를 생각하게 되는
24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모님의 바쁘기만한 생활의 여파로
많이 아픈 딸을 데리고 와 안타까움을 주었던 이모님은
얼마 있지도 못하고 이모부님의 차를 타고 아쉬움만 남기고
금방 헤어졌다.
잃어버린 건강을 위하여 바쁘기만한 생활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모님의 쉽지만 않은 진정한 사랑의 선택이 못내 아쉬웠다.
사촌 형들과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재미있게 놀고 싶었는데
새벽 늦게까지 수없는 이야기(노가리?) 는 풀어 냈지만
아쉽게도 TV 보는 것 외에는 딱히 놀 거리가 없었다.
외삼촌이 결혼하시기 전
고창 시내 아파트를 얻어 생활할 때 놀러간적이 있었는데
그래도 그땐 오락실 가거나 슈퍼에 가서 불량식품을 즐겼었는데...^^
자정이 되어가자 TV에서 카운트 다운을 하기 시작했다.
사촌형들과 씨익 웃으며 이제 2007 년이라고 하며 웃었고
외할머니께 온 가족이 새해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나서 새벽이 밝을때까지 형들과 이야기를 하다 잠이 들었다.
늦은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형들과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엄마의 부름에 나가보니
외할머니께서 엄마와 함께
배추며, 떡이며, 쌀이며 심지어 손수 담그신 맛있는 막걸리까지
한창 우리에게 주실 물건들을 챙기고 계셨다.
그만 됐다는 엄마의 말씀에도
" 아나, 더 가져가그라이 " 하시는 외할머니의 말씀을
참으로 오랜만에 들을수 있었다.
식전에 부모님과 형이랑 주변인사도 다니고
사진도 찍고 했는데
마침 멀리서 상여가 나가고 있었다.
처음 보는 풍경이었는데
나중 아빠께서
" 죽은 사람은 산 사람에게 좋은 복과 기운을 주고 가는것이니
새해 첫날부터 그걸 본건 좋은 징조다 ! "
하셨는데
나도 그리 생각한다...^^
아빠께 우리 마을에서 하던것과 똑같냐고 여쭤보니
약간 다르다고 하셨다.
아침식사로 외갓집의 정성이 담긴 육개장과
각종 생선, 젓갈 등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외갓집의 넓은 베란다에는 별것이 다 있었다.
냉장고, 이불장, 옷걸이들, 막걸리, 굴비, 장난감 등등...
아침에 먹은 굴비도 이곳에서,
요즘 맛있게 먹고 있는 막걸리도 이곳에서 맛있게 익었다.
사진속의 외할머님은 곧 떠나야 할 딸에게
자꾸만 마음을 건내신다.
어영부영 마음만 바쁘다 보니
벌써 외갓집을 떠나야할 시간이 되었다.
그제서야 방 구경을 한답시고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외할머니 방에서 외할아버지 사진을 보았다.
처음 보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에 미묘한 슬픔이 들었다.
그런데 그 뒤로
결혼 전에 부모님과 외할머니가 찍은 사진 한장이 있었다.
긴 세월동안 외로움만 불러 일으켰을 외할아버님의 빈자리를 생각하노라니
웬지 왈칵 울음이 날것 같아 얼른 나오고 말았다...
슬픈 겨울비가 내리는 바람에
먼길 떠날 길이 걱정되어서 이기도 하지만
요즘 한창 좋으신 분들을 알게 되어
주문량이 늘어나는 행복한 고민 때문에 외국으로까지 나가야 되는
약속날짜를 맞추기 위해 더 일찍 오게 되었다.
전날 밤 우리보다 늦게 오셔서 정담을 나누시다가
연말연초에도 쉴수 없는 피곤한 직장 때문에
일찍 주무시고 아침 일찍 나가신 이모부의 아들들과 이모님을
우리가 태워드리기로 하고
아쉬워하시는 외할머니와
외삼촌, 외숙모와 조카들에게
애틋한 석별의 정을 나누고
길을 떠났다.
이모님 가족이 김제에 사시는지라
이모의 안내를 받으며 김제로 향했다.
가는 시간동안 우리가 가져온 악보를 보며
한사람씩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첫 테이프는 풀천지의 장남인 형이 끊었다.
지역방송 라디오 프로에 출연하여 선전했던
윤형주의 어제 내린비 를 불렀다.
우리가족은 워낙 많이 들어서 질려버린 노래였다...^^
그 다음은 사촌 형중 큰형이 조규만의 다줄거야 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발라드에 어울리는 좋은 목소리로 아주 잘 불렀다.
그다음 작은 형이 윤도현의 사랑two 를 불렀는데
평소 멀미가 심한 편이라 몸상태가 안좋은 탓이었는지
부르다 포기해 버렸고
나는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란 노래를 불렀다.
어느덧 차안이 무반주 노래방이 되어
약간 어색하면서도 즐거운 분위기 속에
우리 형이 또다른 애창곡인 마법의 성을 불렀고
사촌 큰형이 윤도현의 너를 보내고란 노래를 나랑 같이 부르고
나는 YB 의 나는 나비 라는 노래를 부르고
사촌 큰형이 소주 한잔을 부르고 하다 보니
어느새 김제에 도착했다.
형들과도 이별을 하고 나니
웬지 허탈한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빠께서 이번 여행이 어땠냐고 가족들에게 소감을 물어 보셨다.
나는 보고싶었던 그리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어서 기쁘긴 했지만
친지들끼리 오랜만에 모였는대도 불구하고
웬지 너무 심심하고 어영부영하게 보낸 여행이었다고 말씀 드렸다.
다음엔 좀더 즐겁게 보낼 수 있었으면 어떨까 싶었다.
사촌형들과 음주, 바둑, 장기, 카드, 컴퓨터, 축구 등등 무얼 하려고 해도
전혀 껀수가 되질 않았다...^^
착한 형아는 옛날에 단짝처럼 지냈던 나에겐 형이 되는 사촌 동생들을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지만 너무도 많이 아픈 사촌 동생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 하였고
엄마께서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
아쉬움이 남는 반가움 만이라도 가슴에 소중히 안으셨다.
언제나 지나치게 솔직한 아빠께서는 너무도 착하기만한 외갓집 식구들이
오랜만에 만난 즐거움을 속시원히 나누지 못하는
재미가 없는 처갓집 식구들의 답답함을 토로 하셨다.
오랜만에 만나 인사 하고 밥 먹자마자 빨리 자니까...^^
결국 언제나 맨 나중에 남는 사람과 아빠만이
반가움의 술잔을 늦은 밤까지...^^
아빠께서도 매우 피곤하셔서 오다가 휴게소에서 한숨 눈 붙이며 쉬었는데
그 휴게소에서 얻은 한가지 교훈이 있었다.
휴게소 식당에서 실망스런 따로국밥을 먹고 내려오는 길에 보니
다른 휴게소와는 달리 호두과자 굽는 직원이 매우 바삐 종종 거리고 있었고
호두과자를 사려는 사람들이 열명정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가려다가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그러나 하여
한봉지 사서 먹어 보았는데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빨리빨리 주려다 보니
너무 덜익히는 바람에
2,000 원 짜리 호두과자가 아니라
100 원 짜리 풀빵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줄을 선다고 해서
가끔은 그 심리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해 맞이 가족여행을 하고나니
기분 좋은 2007 년이 되었다.
올해는 황금 돼지의 해라는데
다신 오지 않을 귀하디귀한 청춘의 시간으로
마음 속에 꿈돼지 한마리 키워
날개를 달아 줘야겠다.
첫댓글 가족들과 새해 첫 시간 부터 뜻깊은 여행을 하셨네요 올해도 재미 있고 또 좋은 글로 풀천지를 좋은 곳으로 만들어주세요 가족 나들이가 참 부럽습니다
여울님도 나들이 한번 하시는건 어떨까요 ? ^^ 여울님 말씀처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전부터 외할머니께서 재현이 재홍이 많이보고 싶어 하셨는데..좋아하셨겠다*^^* 이모도 대려가징~~지혜도방학해서 가고싶어 했는데...이모부가 시간을 못내셔서 가질못한다. 막내이모가 갔으면 우리재홍이 심심하지 않았을 거인디~..아쉽당...
가는 날이 장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