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초에서는 다파라군이라는 말을 안쓰고, 다파나군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상장돈장에도 탈해의 아버지를 다파신으로 기록하고, 후대에는 수황의 남편을 다파왕으로 기록했습니다. 다만 환단고기 중 고구려국본기에 다파나국을 다파라국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신라에서는 다파나국, 고구려에서는 다파라국으로 발음하기가 좋았다고 보입니다. 결국 상장돈장에는 '다파신'' 다파왕'이라고 했지 다파라군이라고 기록해놓지는 않았던 겁니다.
그 나라 왕이 여국(女國)의 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임신한 지 7년 만에 커다란 알을 낳았다.<삼국사기> 적녀국의 왕녀를 맞이하여 왕비로 삼았는데 오래도록 아들이 없어서 아들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후 7년이 지나 커다란 알 하나를 낳았습니다<삼국유사>
첫댓글 9쪽에 수황의 지아비로 다파왕이 있습니다.
9페이지에 水皇의 남편으로 다파왕이 있네요. 눌지왕과 항렬이 같네요.
신라사초에서는 다파라군이라는 말을 안쓰고, 다파나군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상장돈장에도 탈해의 아버지를 다파신으로 기록하고, 후대에는 수황의 남편을 다파왕으로 기록했습니다.
다만 환단고기 중 고구려국본기에 다파나국을 다파라국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신라에서는 다파나국, 고구려에서는
다파라국으로 발음하기가 좋았다고 보입니다. 결국 상장돈장에는 '다파신'' 다파왕'이라고 했지 다파라군이라고 기록해놓지는 않았던 겁니다.
그 나라 왕이 여국(女國)의 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임신한 지 7년 만에 커다란 알을 낳았다.<삼국사기>
적녀국의 왕녀를 맞이하여 왕비로 삼았는데 오래도록 아들이 없어서 아들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후 7년이 지나 커다란 알 하나를 낳았습니다<삼국유사>
이 구절은 결국 탈해가 7살에 왔다는 겁니다.
阿達羅紀(아달라기) 4년, AD216년
4年 四月 多婆那以迎烏郞爲君
4년(216년) 4월, 多婆那(다파나)가 迎烏郞(영오랑)을 君(군)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