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는 법, 크게 달라졌다
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부자를 가리키는 말은 ‘만석꾼’이나 ‘천석꾼’이었다. 천석꾼이 되려면 20만평의 땅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부자가 되는 길은 땅을 많이 소유해 쌀 생산을 많이 하는 게 거의 유일했다.
1970~1980년대 경제개발기를 거치면서 부자가 되는 길이 새로 탄생했다.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부동산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지금 한국의 대표적 부호인 재벌들이 이 시기에 탄생했고 ‘개발의 떡고물’이 어디서 생길지 예측한 사람들은 짧은 기간에 부자로 변신할 수 있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엔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실적과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중시하는 분위기로 변모하면서 경영자 스톡옵션, 고액 연봉을 받거나 영업 등을 잘해도 부자가 될 수 있게 됐다. 2000년대엔 부자가 되는 또 다른 길이 생겼다. 벤처 창업이었다. 코스닥 시장 거품이 빠지면서 환상이 어느 정도 깨지긴 했지만 기술만 있다면 주식 상장을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부자 되는 길이 많아지면서 부자도 증가하고 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메릴린치와 컨설팅회사인 캡제미니의 ‘2005 세계 부 보고서(World Wealth Report)’에 따르면 2004년 한국의 부자는 7만1000명으로, 전년의 6만5000명보다 9.2% 늘었다. 2004년 한국의 경제성장률(4.6%)보다 2배나 높은 수치다.
2006년 한국의 부자는 어떤 모습일까? 지식과 정보를 무기로 벤처 회사를 창업하거나 월급쟁이 최고경영자(CEO)가 되어 주식 상장과 고액 연봉으로 돈을 모은 부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가 확대되면서 경영기술과 영업기술로 무장한 지식 전문가들도 속속 부자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들을 한국의 21세기형 부자라고 이름붙여도 좋을 것이다.
이는 이미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 목도됐던 현상이다. 자본주의 역사가 긴 선진국의 부자 연구에 따르면 당대에 재산을 모은 부자가 80%에 이른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등 세계 최고 갑부 10위권 중 7명이 당대에 지식과 기술을 활용해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다. 이는 시장경제가 발전할수록 정정당당하게 부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당하게 부자가 되는 길에 대한 국내의 연구는 초보적이다. 부자를 경시하는 분위기 때문에 먼저 경험한 부자들이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주간조선은 한국의 21세기형 부자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이 부를 쌓은 방법을 소개한다.
전문가형 부자 전문가형 부자란 자신이 가진 전문적인 지식과 경영 기술을 활용해서 부자가 된 경우다. 우리나라 최대의 벤처 갑부인 김정주(38) 넥슨 사장은 대표적인 전문가형 부자다. 넥슨은 ‘바람의 나라’ ‘카트라이더’ 등 인기 온라인게임을 운영하는 업체다. 김씨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와 카이스트 전산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작년 6월 포브스코리아에 따르면 김씨가 보유한 넥슨의 지분 가치는 3500억원에 이른다.
김씨는 1994년 넥슨을 자본금 6000만원으로 창업했다. 온라인 그래픽 게임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지만 처음에 수익 모델이 없어 웹페이지 구축 등으로 회사를 연명했다. 1996년 ‘바람의 나라’ 유료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현금 장사를 시작, 외환위기 이후 인터넷·PC방의 붐과 더불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넥슨은 현금을 바탕으로 다른 벤처기업과 달리 주식시장 상장이나 대규모 외부 투자 자금의 수혈 없이 성장했다. 넥슨의 경쟁력은 온라인 게임이라는 한 우물을 파는 동시에 압도적인 기술력을 유지한 것이다. 처음에는 수십 명 정도가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기술이었지만 현재는 3만명 이상이 동시에 접속해도 온라인 게임이 무리 없이 작동된다.
김씨는 외부에 자신의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한 고등학교 동기는 “동문들도 전혀 연락이 안 될 정도로 워낙 베일에 가려져 있는 친구”라고 말했다. 개발자로 10년간 경영 일선에도 나서지 않다가 작년 6월 최고경영자로 취임했다.
대우자동차판매의 이동호(48) 사장은 월급쟁이 전문경영인으로 죽어가던 회사를 되살려 부자가 됐다. 이씨는 2000년 대우차의 부도로 위기에 빠진 대우차판매의 구원투수로 채권단의 지지를 받아 전무에서 사장이 됐다. 당시 주가는 한때 주당 720원을 기록하기도 했었다. 2002년 대우차판매는 워크아웃을 졸업했고 그 공로로 2003년 5월 이사회는 이씨에게 8660원에 40만주의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줬다. 주가는 주당 8900원대였다. 지난 3월 3일 대우차판매는 이씨가 스톡옵션을 행사해서 40만주를 주식으로 받았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이씨가 보유한 대우차판매의 주식은 69만여주로 늘었다. 현재 주가는 주당 2만5000원대로 주식 평가액은 170억원 정도다. 죽어가던 회사를 살렸더니 부자가 된 것이다.
이씨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으로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인 이씨는 대우그룹 입사 후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 초 유학 후 대우차판매로 복귀한 그는 경영학 박사 출신으로 영업소장인 영동지점장을 맡아 단일지점 자동차 최다 판매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대우차판매 사장 자리에 오른 후에는 건설 부문을 강화하는 등 수익원의 다각화를 통해서 적자였던 회사를 6년 연속 흑자로 바꿔놨다.
자수성가형 부자
▲ 송공석 와토스코리아 사장
국내 양변기 부품의 70~80%를 공급하는 와토스코리아의 송공석(54) 사장은 전라남도 고흥 빈농의 아들이다. 송씨는 21살 때인 1973년 양변기 부품을 만드는 1인 기업인 남영공업사(와토스코리아의 전신)를 5만원을 빌려 창업했다. 작년 11월 와토스코리아의 상장으로 송씨가 보유한 회사 지분 171만주(49%)는 시장 가치로 약 150억원으로 평가받게 됐다. 30여년간 회사를 키웠더니 150억원대의 자산가가 됐다. 송씨는 재산의 원천은 회사 지분 외에도 매년 회사에서 받는 월급과 배당금이라고 했다. 하지만 송씨는 정확한 개인 자산의 규모를 밝히기는 꺼렸다. 다만 송씨가 작년 7월 대림요업 주식 20억여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가 9월 12억원어치만 남기고 팔았던 것으로 미뤄 상당한 규모의 주식 투자도 하고 있음을 가늠할 수 있다.
송씨는 “돈을 벌기 위한 부동산 투자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1980년대 후반 살림집인 목동의 아파트를 3000만원에 구입해 아직도 살고 있다. 쉰이 넘은 나이에 고려대 경영학과 05학번으로 늦깎이 공부를 시작한 그는 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공장 근처인 김포에 아파트를 한 채 더 사서 현재 아파트 2채를 보유하고 있다.
송씨는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않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누구보다 먼저 깨쳤다. 16살 때 무작정 상경해서 잡았던 첫 직장인 K사는 당시 양변기 부품 시장을 독점했는데 갑자기 부도가 나서 시장에 부품 품귀 현상이 일었다. 송씨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창업을 했다. 송씨는 “양변기 부품은 화장실이 있는 한 영원히 돈을 벌어다 주는 사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88년 올림픽을 즈음해서는 수요가 급증해 양변기 품귀 현상이 일었다. 송씨는 국내 생산이 달린다는 걸 간파하고 양변기를 수입했다. 목동의 공터에 매일 컨테이너 5개를 풀었는데 다 팔려나갈 정도로 대박이 났다. 외환위기 때는 하루아침에 거래처가 5억원의 부도를 냈다. 송씨는 오히려 100% 현금 결제를 요구하고 재료 가격 상승을 반영해 가격을 올렸다. 일부가 거래선을 바꾸면서 위기감도 있었지만 “손해 보고는 팔지 않겠다”며 몇 달을 버텼더니 결국 마지막에 살아남았던 송씨의 회사에 물건을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 후론 성장 일변도였다. 1998년 매출 33억원에서 2005년 매출 148억원에 순이익 28억원을 기록했다. 빚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무차입 경영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부채비율은 20%에 불과하다. 송씨는 “개인 돈과 회사 돈은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고 회사 돈으론 접대비도 한푼 안 쓴다”라며 “접대성 골프는 개인 돈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떳떳하게 벌고 깨끗하게 써야 부자를 시기하고 멸시하는 풍토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영업으로 부자 되는 시대
▲ 보험설계사 오순자씨
지난 3월 1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앙드레김 의상실에서 생명보험 설계사로 10년 동안 30억원을 벌었다는 오순자(56)씨를 만났다. 후덕한 얼굴이었다. 오씨는 “보험만 파는 ‘보험 아줌마’가 아니라 정보를 주는 종합 금융인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삼성생명 제주지점 백록영업소 소속인 오씨가 1996년 보험설계사를 시작한 이후 작년까지 올린 일반 사망보험 계약고는 850억원이다. 올해는 1000억원까지 올린다는 목표다.
오씨의 연소득은 2년 전부터 10억원이 넘어 웬만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보다도 많다. 오씨는 “절반은 선물 구입 등 고객 관리를 위해 쓴다”며 “연봉이 많다는 것은 고객의 위험 관리에 대해 조언해 주고 수수료로 받는 것이므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씨는 설계사를 하기 전까진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제주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했던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중산층 정도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1996년 오씨는 친한 친구의 남편이 간암으로 갑자기 사망한 것을 보고는 보험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 오씨는 “당시만 해도 보험사에 제 발로 찾아온 사람은 거의 처음이라는 말에 ‘내가 할 일이 이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보험이나 팔러 다닌다고 처음엔 가족의 반대가 심했지만 도전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씨의 첫 고객은 수의대를 갓 졸업한 이웃집 아들이었다. 그 후로도 오씨의 타깃은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 자영업자였다. 고객은 꾸준히 늘어 현재 1500명이다. 오씨는 수시로 전화를 걸고 만나 투자 정보를 준다. 오씨는 고객에게 보험만 소개하는 게 아니라 부동산·주식·펀드 등을 망라한 도움을 준다. 지식과 정보를 필요로 하는 고객을 골라 틈새 시장을 공략한 것이다.
오씨는 “부동산에 20억원, 보험에 5억원, 주식·채권 등 다른 금융자산에 5억원 정도 배분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매년 억대인 설계사 수입 외에도 부동산 수익이 꽤 괜찮았다고 했다. 서울에서 공부하는 아들과 딸을 위해 2000년 말에 산 18평짜리 강남의 아파트는 1년 만에 1억원이 올랐다. 다시 3억200만원을 주고 26평 아파트로 옮겨줬더니 현재 시세가 5억원대다. 용인에 투자를 위해 계약금 3500만원을 내고 사둔 미분양 아파트는 현재 프리미엄만 2억원이 붙었다. 오씨는 제주의 땅에도 일부 투자해 놓고 있다.
오씨의 부자 되기 핵심은 정보다. 평소에는 회사에서 주는 정보를 숙지하고 주말이면 최고의 재테크 전문가를 찾아 다니며 강연을 듣는다. 오씨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선저축 후소비’의 원칙을 지키면서 종자돈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며 “1억원만 모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4~5년이면 2억원을 만들 수 있고, 그 후로는 더 쉽게 불어난다”고 말했다
“금융자산만 10억원 이상 돼야… 한국은 7만여명”
부자의 기준과 수
어느 정도 재산을 가져야 부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메릴린치와 캡제미니의 ‘세계 부(富) 보고서’는 금융자산이 백만 달러(10억원) 이상인 사람을 HNWI(High net worth individual·고액 순자산보유 개인)로 정의하고 있다. 보고서는 세계에 830만명의 부자가 30조8000억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의 부자를 7만1000명으로 추정했다.
우리나라의 부자 연구에 있어서도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사람을 부자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상 전체 자산의 30% 정도를 금융자산으로 보유하고 있으므로 부동산까지 포함해 30억~40억원의 순자산을 보유한 사람을 부자로 본다.
금융자산 10억원이면 연 금리를 4%라고 할 때 금융소득이 4000만원이 된다. 연간 금융소득 4000만원을 초과하면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자가 된다. 국세청이 집계한 작년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자는 2만3184명이다. 전년(1만9357명)에 비해 19.8%나 늘었다.
30억원의 자산에 연 4% 금리면 연간 1억2000만원의 금리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연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사업주나 직장인은 9만6500여명이다. 이들은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한 부자와 비슷한 생활 수준은 누릴 수 있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는 세계 억만장자의 순위를 매기고 있다. 억만장자는 자산을 10억달러(1조원) 이상 보유한 사람이다. 포브스 순위에 든 사람은 20년 전엔 140명이었지만 올해는 793명으로 늘었다. 올해 포브스 순위엔 한국인이 4명 들어 있다.
백만장자의 80%는 당대에 재산 모아
미국과 일본의 부자 연구
미국의 부자 연구는 관세를 둘러싼 정치적인 논쟁에서 출발했다. 1892년 뉴욕 트리뷴지는 취재를 통해 세계 최초로 4047명의 백만장자 순위를 발표했다. 수입품에 관세를 매겨 3만여명이나 되는 사업가가 백만장자가 됐다는 자유무역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부자 연구가인 토머스 스탠리는 1996년 1000여명의 백만장자에 대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쓴 ‘이웃집 백만장자(The Millionaire Next Door)’란 책에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밝혔다. 미국에서 상당한 부를 지닌 사람의 대다수가 부자 동네에 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부자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소비는 많았지만 재산을 많이 축적한 경우는 드물었다.
또 80%의 백만장자가 당대에 부를 축적한 사람이었다. 특히 백만장자의 50% 이상이 “1달러도 상속 받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는 과거도 마찬가지였다. 1892년 스탠리 레버곳은 ‘미국의 경제’란 책에서 “4000여명의 백만장자에 대한 연구 결과, 84%가 재산을 상속 받지 않은 신흥 부자였다”고 적었다.
현직을 갖고 있는 백만장자의 3분의 2는 자기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 75%는 기업가였고 25%는 의사나 회계사와 같은 전문직 자영업자였다. 사업이라고 해도 용접업, 경매, 농부, 이동주택단지주인, 해충퇴치업자, 수집용 우표·동전 판매업자, 도로포장업자 등 평범한 일이었다. 스탠리의 연구 결과는 ‘대부분 부자는 부를 상속 받았을 것’이라는 통념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도 당대에 부자가 된 비율이 높았다. 일본의 부자 연구가인 혼다 켄(本田健)은 순자산이 1억엔(10억원)을 넘는 고액 납세자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2004년 ‘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는 책에서 밝혔다. 일본의 백만장자 중 80%는 맨손으로 시작해서 현재의 부를 일궜으며 유산과 사업을 물려받아 부자가 된 경우는 20%에 불과했다. 사업체를 키워서 부자가 된 경우는 27%,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으로 부자가 된 경우는 24%였다. 대기업이나 외국인 투자 기업의 임원도 24%나 됐다.
한국의 부자연구가인 서울여대 한동철 교수는 ‘부자학개론’에서 자영업자 등 자수성가형 부자가 60%, 전문직 종사자·벤처사업가 등 전문가형 부자가 35%라고 주장했다. 재벌 2·3세나 재산 300억원 이상인 부유층의 자녀인 상속형 부자는 수천 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전체 부자(7만여명)의 5% 정도라는 것이다.
한편 영국의 경제 잡지 이코노미스트지는 2001년 ‘신흥 부자(New Rich)’ 특집에서 1990년대에 세계적으로 부자가 증가한 현상에 대해 심층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1990년대에 대기업 경영자에 대한 스톡옵션이 증가하고 가족형 기업의 주식시장 상장이 늘어나는 등 주식시장의 작용이 개인의 부의 증가를 부추겼다”고 보도했다. 세계적으로 신기술 개발, 글로벌화의 진행, 시장경제의 확산 등으로 인해 실적이 좋은 기업이나 개인에 대한 보상이 커진 것도 부자의 증가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