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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솟은 봉수산 푸른 기슭에-금마초등학교 제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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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지식인 스크랩 칭기즈칸 : (10) 테무진 라이징
미루나무 추천 0 조회 225 12.04.28 00: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테무진 to the 칸

 

 

 

 

(10) 테무진 라이징

 

 

 

1

 

(전편에 이어)날이 밝았다. 그러자 저 멀리서 일군의 사람들이 말을 달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 혹시 자무카가 일탈을 응징하기 위해 보낸 돌격대일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테무진에게 귀순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게르마다, 밤새 잠 못 이루는 격론이 벌어졌을 터. 테무진을 지지하기로 한 사람들이 짐을 싸들고, 가축을 몰고 테무진 무리가 이동하면서 남긴 말발자욱(더 정확히 표현하면 풀이 누운 자국)을 따라온 것이다.

 

가장 먼저 온 사람들은 잘라이르 씨족의 '토고라온' 삼형제였다(이름에 모두 토고라온이라는 별칭이 들어간다.). 잘라이르 씨족은 드릴루킨이었다. 잘라이르는 원래 독립 부족으로써, 옛날에는 몽골족과 피튀기는 혈전을 벌인 사이다. 이들은 몽골족의 귀족을 단 한 명만 남겨둘 정도로 몽골족을 처절하게 약탈한 적도 있다.

 

이후 세력을 불리는 데 간신히 성공한 몽골족은 잘라이르 부족을 드디어 물리친 후, 다시는 반항하지 못하도록 각 씨족에 흩트려놓았다. 그렇게 패배한 노예로써 몽골족에 흡수, 드릴루킨이 된 지 백년 가량이 흘렀다. 이들의 지위는 드릴루킨 중에서도 가장 낮았다. 전사이자 사냥꾼로서 활을 쏘는 삶을 누린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토고라온 삼형제는 테무진이 노예 출신의 젤메를 2인자로 대우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역시 드릴루킨인 바야우트 족도 토고라온 삼형제를 따라 테무진에게 왔다.

 

몽골족 내의 드릴루킨만 테무진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 몽골족은 아니지만 생존을 위해 자무카의 무리에 소속되어 있던 '타르쿠트'족을 이끌던 오형제가 부하들과 자기네 소유의 가축을 이끌고 테무진에게 왔다. 자무카를 따르던 다른 외부 부족들 일부(혹은 상당수)가 테무진의 진영으로 속속 넘어왔다.

 

자무카 입장에서도, 이탈자들을 막을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이들을 반란자로 간주하고 야영지 내에서 '내전'을 벌인다... 그때 만약 테무진이 쳐들어와 반란을 지원한다면? 자무카가 공들여 성취한 권력과 부, 지위는 순식간에 붕괴할 수 있었다.  

  

타이치우드가 데리고 있던 하층민 '솔두스 씨족'도 테무진을 지지했다. 이들은 지난밤 테무진의 복수를 피하려는 타이치우드를 따라 자무카의 진영으로 이동했었다. 테무진을 도와주었던 '소르칸 시라'도 솔두스족이었다. 솔두스족 일부가 타르구타이의 감시를 피해 탈출, 테무진에게 왔다. 테무진은 자신에게 온 솔두스족 사람들 중에 소르칸 시라 가족이 왔나 싶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소르칸 시라 가족을,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밤에는 꿈속에서, 낮에는 가슴에 그리며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했다."

 

그러나 테무진은 그립고 고마운 소르칸 시라 가족과 재회하기 위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하층민뿐만 아니라 몽골족의 니르운 씨족도 일부 떨어져나왔다. 분열된 몽골족, 그 가난한 부족에서 조상의 혈통때문에 명목상으로만 니르운이란 것... 어차피 평민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자무카 편에 있던, 테무진 편에 있던 상황이 같다. 니르운들 일부가 테무진을 선택했다는 점이야말로 테무진이 약탈과 사냥에서 많은 이들의 신뢰를 얻었음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다.

 

 

 

 

 

성공과 실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점진적이지 않다. 자고 나니 성공해있더라는 말이 있다. 테무진이 딱 그 경우다. 9살 때부터 10년간, 그는 갖은 고생을 다하며 연명하고, 적들로부터 목숨을 부지했다. 그런데 하룻밤만에 수많은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보스가 되어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2

 

이제 갓 거칠고 비열한 초원에서 생존해나가야 할 신생집단이 생겼다. 집단을 불리기 위해 테무진의 친구들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보르추는 사촌동생인 우굴렌을 테무진 조직에 불러들였다. 원래 보르추는 초원의 재벌 '나코' 아저씨의 외아들. 나코가 소유한 가축은 과장 좀 섞어서 밤하늘의 별처럼 많았다고 한다. 이 재산의 유일한 상속자인 보르추는 우굴렌 뿐만 아니라 필시 신생집단을 먹여살릴 가축떼도 상당히 몰고 왔을 것이다.

 

 

 

 

젤메는 젤메대로, 고향인 북쪽 숲 속으로 들어가서 노예신분인 자신의 두 동생을 꼬셨다.

 

"야, 테무진 형님은 출신계급같은 거 안 본다. 나 지금 2인자야."

 

대장장이 노릇을 하며 쇠를 두드리던 두 아우는 풀무를 집어던지고 테무진에 합류했다. 한 아우의 이름은 '차오르칸'. 나머지 하나가 '수부테이'였다. 이 이름 꼭 기억해두자. 밑줄 쫙.

 

수부테이는 전쟁의 신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테무진이 역사상 가장 성공한 군주라면, 수부테이는 지구역사상 가장 성공한 장군이다. 그가 남긴 기록은 인간의 상상을 간단히 뛰어넘는다. 그는 32개(오타 아니다)의 나라를 정복하거나 멸망시켰으며, 역사에 정확히 기록된 것만 61번(역시 오타 아니다.)의 회전에서 승리했다.

 

회전(會戰, pitched battle)이란 수컷 고딩 두 마리가 옥상에 올라가 제대로 각잡고 싸우듯이, 두 군대가 적당한 장소에 결집해 '모 아니면 도'식의 총력대결을 펼치는 전투를 말한다. 보통 회전은 그 특성상 국운을 건 모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뛰어난 장수도 일생동안 5번 이상의 회전을 경험하기 힘들다. 그런데 61번이라니...

 

 

 

중국 화가가 표현한 수부테이 

 

수부테이는 평생동안 그가 만난 금나라, 송나라, 서하, 유목부족 및 국가들, 십 수 개의 이슬람 국가들, 러시아, 불가리아, 폴란드, 헝가리, 그루지야, 아르메니아의 군대를 격파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테무진은 그토록 넓은 땅을 정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테무진과 수부테이의 만남은 두 사람 모두에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흐름이라는 게 있다. 테무진은 상승세였다. 척박한 초원에 사는 유목민들은 상시 생존과 번영의 문제에 예민한 촉수를 드리우고 있었다. 자무카-테무진 조직에 속해있지 않았던 주변의 독립 부족/씨족들도 테무진에게 모여들었다.

 

일단 근처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몽골의 니르운 씨족, 드릴루킨 씨족들이 테무진에 합류한 상황. 거기에 헐룬의 친정인 올쿠누트족의 일부 씨족이 부족에서 떨어져나와 테무진에게 귀순했다. 이들은 아마 헐룬을 보고 모였을 게 분명하다. 바아린 씨족도 왔는데, 바아린에는 '코르치'라는 재미있는 양반이 있었다. 코르치는 테무진에게 충성맹세를 하면서 손발이 오글거리는 아부를 작렬시킨다.

 

"우리는 원래 자무카의 자다란 씨족과 더 가까운 친척관계인 거, 테무진 나으리도 아시잖아요? 그러니 사실 제가 자무카님에게 갔으면 갔지, 테무진님에게 온 게 좀 이상하긴 하죠... 그게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신령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 글쎄 갑자기 눈앞에 환상이 펼쳐지더니... 웬 암소가 와서 자무카를 들이받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다가 소뿔 하나가 부러졌어요. 소는 화가 났는지 계속 자무카를 갈구더군요. 내 뿔 내놔 쉽새야...

 

그런데 수소 하나가 테무진 나으리께 오더니, 우렁차게 소리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늘과 땅은 힘을 합쳐 테무진에게 큰 나라를 줄 지어다! 테무진이 나라의 주인이 될 지어다~ 허허... 어떤가요?"

 

"그야, 그 소가 예언한대로만 된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자 자, 만약에, 만약에 잘 나가는 대왕님이 되신다면 어떻게 절 행복하게 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이런 멋진 예언을 했는데 말이죠."

 

"뭐... 그럼 1만 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장군으로 만들어 주겠소."

 

"저기 나으리, 저는 대박이 나는 예언을 했다니까요, 예언을. 1만명을 지휘하는 장군이 되어서 뭐가 그렇게 즐겁겠습니까? 일이나 실컷 하지... 좀 약소하지 않나요? 인생이 즐거우려면 뭔가 확실히 화끈한게 있어야죠."

 

"아니... 대체 원하는 게 뭔데?"

 

"남자의 인생에 낙이라는 게 뭐있겠습니까? 여자지요! 물론 아름다운 여자 말입니다. 만약 대왕님이 되시면요, 제가 30명의 미녀와 결혼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저는 테무진님이 지도자 생활을 갓 시작하는 이때에 나으리에게 인생을 베팅한 겁니다. 그러니까 일이 잘 되서 터지면, 당첨금도 세야지요. 아, 물론 병사 1만을 지휘하는 장군, 그 자리도 따로 주시는 거 잊지 마시구요.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미쑴미다!"

 

 

"지는유, 인생의 목표가 확실해유..."

- 영화 <방자전> 中

 

테무진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 순결할 지경의 솔직함에 기가 막히기도 했을 테지만, 테무진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그 자신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르치는 욕망에 충실한 인간이었지만 이후 테무진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했다.

 

심지어 자무카의 자다란 씨족 일부도 테무진에게 넘어왔다. 테무진의 가장 가까운 친족집단인 타이치우드가 자무카에 귀순한 것과 함께 생각해보면, 초원의 지각변동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당시엔 지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지하 깊은 곳의 멘틀운동이었다.

 

반대급부라는 게 있다. 테무진의 급작스럽게 세력을 불렸지만, 테무진을 지지하지 않는 몽골씨족과 다른 군소 씨족들은 이미 타이치우드라는 거대씨족을 삼켜버린 자무카에게 달려갔다. <테무진+자무카>의 세력은 둘로 쪼개저버렸지만, 두 사람 각자의 추종자들은 더 많아졌다.

 

 

3

 

몽골에는 '쿠리엔'이란 말이 있다. 쿠리엔은 '고리'를 뜻하는 말인데, 보통 초원의 전통적인 '진영', '대형'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쓰였다.

 

초원에서 어떤 부족이 야영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지도자-칸(부족의 보호자이자 왕), 세첸(현자. 이장님, 어르신), 베키(기득권을 가진 지배층 귀족), 바하두르(용사. 즉 사냥과 약탈의 실력자)-의 게르가 무리의 한 가운데에 있다. 그 주변에는 당연히 지도자의 가족과 친척들의 게르가 있다. 그 주변은 더 먼 친척들, 즉 귀족들 - 귀족들의 가족, 그 가족들의 구성원... 여기에 속한 남자들이 엘리트 전사집단을 이룬다.

 

 

 

 

이 주변을 다시 평민층이 감싸고 있고, 이 계급에서부터 목동이 직업인 사람들이 배출된다. 하인들은 귀족들의 게르에서 잡일을 한다. 테무진의 2인자(보르추가 2인자였을 수도 있지만)인 젤메의 집안 정도 되는 노예층은 아예 숲 속에 짱박혀서 가족을 노예로 상납하거나, 대장장이나 잡일꾼 정도의 일을 한다.

 

쿠리엔 주변에는 가축이 풀을 뜯는다. 경비견은 쿠리엔 내부나 경계선에 있다. 몽골 쉽독(목양견. '바하르'라고 한다.)은 초원 벌판에서 양떼를 몰고, 늑대로부터 가축을 지킨다. 염소는 양과 같이 이동한다. 기타 소와 야크, 낙타가 있다. 가축 중 귀족에 속하는 말은 가장 안쪽, 즉 쿠리엔 내부나 근처에 있다. 말치기는 평민 이상이다. 이중 시라가말, 즉 승용마나 군용마로 가장 탁월한 거세한 수말 떼를 관리하는 것은 소수의 귀족만 가능한 일이다. 군사력을 소유하는 것은 곧 권력이다. 몽골에서 사람과 말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시라가말도 어엿한 '군사'인 것이다.

 

 

 

 

이렇게 지도자를 중심으로 혈통관계가 점점 옅어지고, 동시에 계급이 점점 낮아지며 퍼져나가는 구조인 것이다.

 

두 개의 쿠리엔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각자 확고한 중심을 가진 두 쿠리엔이 하나로 합쳐져 적당히 섞인다는 게 얼마나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전세계에서 '씨족연합부족'이나 '부족연합국가'가 발생해온 과정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 '연합'이란 넓은 의미에서 바로 쿠리엔들의 연합일 수밖에 없다.

 

자무카가 해치운 메르키트족도 곧 세 개의 대형 쿠리엔으로 이루어진 3개 씨족 연합부족이었다. 유목민인 유대인들도 12개의 지파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을 먹었던 청나라의 정예군인 '8기군(八旗軍 : 각자 스스로를 상징하는 깃발을 보유한 8개의 군대)'도 원래는 만주족(여진족) 8개 지파의 전사집단을 뜻한다. 이 지파의 원시적 형태를 우리는 '쿠리엔의 중심과 그 주변'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듯하다.

 

쿠리엔의 중심을 '오르도'라고 부른다. 오르도는 지도자가 사는 중심 게르와 그 가족이 사는 지휘통제실이며, 권력의 중심이다. 물론 규모가 큰 쿠리엔이라면 지도자의 가까운 친족들도 오르도에 포함된다.

 

칸의 후손이자 잘 나가는 아버지의 아들, 고아이자 노예이자 포로생활을 모두 경험한 테무진에게 신분과 계급은 무의미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인생이란 게, 그저 운때가 좋으면 귀족 소리를 듣고 운수가 사나우면 노예취급을 받을 뿐 아닌가. 테무진은 오직 능력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대우했다. 보르추는 테무진과 혈통상 아무런 상관이 없고, 젤메는 노예인데도 테무진 오르도의 당당한 일원이었다.

 

 

 

 

테무진을 중심으로 구성된 쿠리엔은, 모든 구성원에게 오르도로 가는 길이 열려 있었다. 이는 단지 성공의 기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원시적 형태의 거친 민주주의, 소통과도 연관이 있다. 테무진은 신분과 혈통을 따지지 않는 자유로운 회의를 중시했으며, 말단 병사의 의견까지도 전투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테무진은 지배자 몇 사람의 결정만으로 다수의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일을 싫어했다. 이건 아이큐가 아니라 태도다. 즉 책임감이다. 어떤 책임감이냐 하면, 바로 의리다. 의리하면 뭔가 대단해 보이지만, 여기서 의리란 일종의 '계약관계 준수'를 뜻한다. 서로 지켜야 할 것, 지키기로 한 것을 지키는 것 말이다.

 

보통 <친구사이의 의리>라고 하면 성문화되거나 구두(口頭)로 언어화되지 않은 감정적/무의식적 계약을 뜻한다. 하지만 테무진의 조직은 함께 어떻게든 먹고 살아 보자고 모인 집단이다. 내게 충성을 바쳤으면, 나는 그들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게 의리인 거다. 

 

테무진은 불행을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막상 고생을 하게 되면 그때마다 뭔가를 배웠다. 테무진은 아직 10대의 나이였음에도 <자신의 욕망>과 <집단 구성원의 입장>을 분리해서 생각할 줄 알았다. 이건 매우 조숙한 태도다.

 

테무진은 성인남자 1인분의 노동력이 너무나 간절했던 가난한 시절을 보냈다. 귀한 인력을 목동으로만 쓰는 건 비효율적이다. 게다가 의리의 문제도 있다. 자신에게 운명을 건 사람들이다. 하층민의 삶을 선사하는 건 배신행위였다. 그래서 테무진 무리 내의 모든 성인남자는 기본적으로 전사가 된다. 이들은 전투에 참여할 수 있기에, 약탈에 성공하게 되면 자기 몫을 챙긴다. 무기를 상시 휴대하기 때문에 남에게 함부로 무시받을 소지도 적어진다.

 

테무진은 친족관계에 있는 기득권 귀족들에게는 여러번 배신당했다. 하지만 계약, 즉 의리로 맺어진 '타인'에게는 단 한 번도 배신당한 적이 없고, 그 자신도 배신한 적이 없다. 이는 역사에 기록된 영웅담 중에서도 매우 특이한 케이스다.

 

 

4

 

19세에 독립한 테무진은 이후 8년 동안 무리를 이끌며 세를 불리기 시작한다. 이 8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역사는 자세히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사실이 세가지 있다.

 

첫째, 테무진 조직과 자무가 조직의 사이는 점점 나빠져서, 나중에는 철천지 원수가 된다. 두 무리는 서로의 가축을 계속해서 약탈했고, 그 와중에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전면전을 벌이지는 않았다. 무리의 생존이 더 급했으리라. 무리의 운명을 건 본격적인 전쟁을 하기에는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몽골족은 약했다. 어부지리라는 게 있다. 동쪽의 타타르-중앙의 커레이트-서쪽의 나이만이 테무진과 자무카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두 사람이 싸우다가는, 승자도 패자도 초원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많았다.

 

둘째, 테무진의 세력은 계속 성장한다.

 

셋째,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테무진의 세력이 성장하는 만큼 반대편에 있는 자무카의 세력도 강해진다. 테무진 조직은 <반 자무카 연대>, 자무카의 조직은 <반 테무진 연대>의 성격을 띄게 된다.

 

 

 

 

그런 와중에 몽골족에서 가장 혈통이 잘나간다는 귀족들, 즉 '뼈가 가장 흰' 사람들은 자무카와 테무진 중 과연 누구를 지지해야 할 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일군의 몽골 귀족, 아니 왕족들이 '변심'을 했다. 그 옛날 금나라 황제의 수염을 잡아당겼던 카불 칸의 증손자들인 '사차 베키'와 '타이초', '코차르 베키', 그리고 이들의 삼촌뻘인 '알탄'이 고심 끝에 자무카를 떠나 테무진에게 왔다.

 

지난 기사들을 충실히 읽은 성실한 독자들은, '베키'가 기득권 귀족 뒤에 붙는 별호라는 걸 알고 있을 터. 또 '알탄'은 황금이란 뜻이다. 이름만으로도 으리으리한 혈통을 알 수 있는 인간들인 셈.

 

아, 그리고 예수게이의 동생인 다리타이 삼촌도 왔다. 다리타이... 그는 타이치우드족이 테무진 가족을 버리고 떠날 때, 매정하게도 형님의 가족들 대신타이치우드 편에 섰었다. 이후 자무카를 따라다니다가, 조카 테무진이 잘 나가게 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찾아온 것이다.

 

오랜만에 재회한 시동생의 얼굴을 보는 헐룬의 기분은 묘했을 것이다. 다리타이, 그는 형 예수게이를 도와 자신을 납치한 인물 중 하나였다. 신랑 칠레두와 강제로 이별하고 울고불고 있을때, 다리타이는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어딨지? 어이쿠, 안 보이네...? 당신이 아무리 외쳐도 이제는 듣지 못 해. 찾아도 찾을 수 없어. 다 끝났다고. 운명을 받아들이시지? 슬픈 건 알겠는데, 이제 적당히 좀 하슈."

 

이런 전형적인 악당의 멘트를 날리며 헐룬을 끌고왔던 것이다. 그런 주제에 형 예수게이가 죽자 남은 형수님과 조카들을 홀랑 버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잘 봐달라며 찾아온 것이다. 인간 참...

 

다리타이와 귀족들은 왜 자신의 수하들을 데리고 테무진을 찾아왔을까? 테무진이 자신들과 매우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이다. 자무카 캠프에서 그들은 '오르도'에 속할 수 없었다. 자무카를 중심으로 권력구조가 재편되었으니까. 이제 자다란 씨족은 몽골에서 가장 잘 나가는 씨족이었다. 전통 귀족들은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리타이와 귀족들은 테무진 캠프의 오르도에 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온 것이었다. 테무진 조직의 성격과는 정 반대의 생각을 한 셈이다. 그러나 테무진은 테무진대로, 일단은 귀족들의 지지를 필요로 했다. 정치란 관습을 완전히 배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 자체는 혁신적이었지만, 조직 외부에서까지 인정을 받으려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지받아야 했다. 즉 귀족들의 지지선언이 필요했다.

 

테무진에게 귀순한 귀족들은 그들대로, 예전의 지위와 영향력을 되찾으려면 테무진이 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칸의 '주변'이 될 수 있을테니까. 그래서 사차 베키와 코차르 베키, 알탄은 테무진을 칸으로 추대하기로 결정한다.

 

세 왕족은 테무진에게 충성선언을 한다.

 

"전쟁과 사냥, 약탈의 지도자가 되시오! 우리는 그대를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앞장서며, 약탈한 사람과 물건을 그대 눈앞에 갖다 바치리라."

 

(참고로 모든 걸 바친다는 뜻이 아니다. 칸이나 세첸 등의 지도자에게 이익의 약 10%를 바치는 게 오래된 관례였다.)

 

테무진은 정치적 판단이 완숙해지고 있었다. 그는 먼저 세 사람에게 돌아가면서 거꾸로 칸이 되시라고 제안한다.

 

"내가 칸은 무슨... 코차르 베키, 그대가 칸이 되시오."

 

"싫다구...? 그럼 사차 베키, 그대는?"

 

"아니 왜 다들 싫다고 하지? 그럼 알탄, 그대가 칸이 되시오! 아앗... 당신도 싫다고?"

 

테무진도, 세 귀족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세 귀족은 무리의 우두머리가 될 수 없었다. 테무진 캠프는 테무진 개인의 능력에 의해 구축된 세력이다. 초원의 전통적인 관습으로는 귀족들의 지지가 있어야만 칸으로 선출될 수 있지만, 테무진 캠프 내에서 이들 귀족 셋은 '굴러온 돌'에 불과했다. 굴러온 돌에게 가장 유리한 생존법은 박힌 돌 중 가장 큰 돌인 테무진의 주변을 차지하는 것이다.

 

테무진은 테무진대로, 몽골의 왕족들에게 칸 자리를 권했다가 사양받는 모양새를 잊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적법한 선거'에 의해 선출된 칸임을 분명히 했다.

 

이윽고 무진은 "그럼 어쩔 수 없지"하며 칸의 지위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사차, 코차르, 알탄은 잘못 생각했다. 그들은 귀족 대접을 받았을 뿐, 권력의 심장부에 가까이 할 수 없었다. 테무진은 자신의 친척들이자 출신부족의 왕족들을 그저 자신을 지지해준 유권자로서 존중했을 뿐이다.

 

 

5

 

테무진은 죽기 얼마 전에 유언 비슷하게, 이런 말을 했다고 알려진다.

 

"다시 태어나면 평범한 집안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다. 평범한 게르에서 평범한 재산을 갖고 평범하게 살다가 죽고 싶다."

 

테무진은 평생 '평범한 행복'에 목마른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는 사치를 하지 않았다. 일반 병사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었으며, 특별할 때가 아니면 누더기 가죽옷을 입고 생활했다. 훗날 대성공하고 나서 굴러들어온 막대한 재산은 국가운영이나 복지정책에 썼다.

 

테무진의 상황을 복기해보자. 먼저 아버지가 죽고난 후, 그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타이치우드족에 붙잡혀 고초를 겪은 후에는 자신과 가족을 지킬 최소한의 방어력을 지니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가 빼앗긴 아내를 되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군사행동을 하게 되었다. 한번 군사행동에 나서고 나자, 이제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자무카와 공동운명체가 되어 함께 무력집단을 이끈다.

 

... 자무카와 결별한 테무진. 두 사람 모두 몽골족이었고, 이제는 몽골 외의 외부집단까지도 부하이자 피보호자로 끌어모으고 있었다. 두 세력은 확장되는 중이었다. 명백한 경쟁상태였다. 그는 가족과 부하들에게 가장으로서, 지도자로서 책임을 져야 했다. 이제는 성공한 군사지도자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테무진이 '권력에 대한 의지'를 타고났거나, 스스로 권력을 선택한 면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흘러가는대로 자연스럽게 -혹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측면이 강하다고 보는 게 옳다.

 

그래서인지 테무진은 권력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 인간이었으되, 권력을 잡는 것만이 목표인 인간은 아니었다. 이 시리즈를 계속 읽다보면 알겠지만, 그에게 권력은 목표가 아닌 수단이었다. 이 차이는 매우 크다. 테무진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권력을 필요로 했다.

 

 

 

 

1189년, 테무진의 나이 27세. 그의 무리는 '검은 심장'이라는 뜻의 '카라 지루겐' 산 밑, '쿠쿠 초스(푸른 호수)' 물가에 모였다. 십여년 전, 테무진과 그의 가족이 작은 동물들을 사냥해서 연명했던 곳이다. 그곳에서 테무진은 칸으로 추대되었다. 초원에 새롭게 등장한 뉴페이스 칸.

 

- 그 칸의 명칭은 '칭기스칸'이었다.

 

 

6

 

'칸'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대체 '칭기스'는 무슨 뜻일까? 당시의 몽골인들은 거의 100% 문맹이었고, 특정 어휘에 엄밀한 '사전적 정의' 따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현대를 사는 우리는, 칭기스라는 말의 정확한 뜻을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딴지스인 만큼, 웬만큼은 디벼보자.

 

몽골어에서 늑대를 '치노'라고 한다. '칭-' 혹은 '친-'으로 시작하는 단어의 어두(語頭)는 늑대를 뜻하는 것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지난 글에서 이미 설명했지만, 몽골인들에게 늑대는 중요한 토템이다. 늑대는 지혜롭고 끈기있으며 용맹하다. 또한 초원에서는 가장 강력한 동물이다(뭐, 시베리아 숲으로 올라가면 호랑이가 있긴 하다...).

 

 

몽골 늑대 

 

따라서 칭기스칸은 어쩌면 '늑대 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늑대는 남성의 모든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살짝 의역해서 '강력한 싸나이 칸' 정도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늑대라는 뜻의 '치노'라는 발음 때문인지, '칭' 혹은 '친'은 강력하고 견고한 성질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사책에는 칭기스칸이 '사해(四海)의 지배자', 즉 '동서남북의 모든 바다가 있는 곳까지를 지배할 군주', 즉 '궁극의 정복자'란 뜻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당시의 몽골인들도 칭기스칸이라는 용어를 그렇게 이해하고, 또 어필했다.

 

- 칭기스칸은 말이여, 이 세상의 킹왕짱 두목이라는 뜻이여~

 

그런데 말이다. 몽골인들은 <칭기스 + 칸>이라는 어휘가 왜 그런 뜻이 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 왜 '칭기스칸'이 킹왕짱이라는 뜻인데?

 

- 그건 나도 모르겠고... 말하기도 귀찮고... 아 척하면 알아 들어야지~ '칭기스칸'하면 감이 딱 안오남?

 

역시 미스테리다.

 

이에 대해, 몽골사의 권위자 우르게네 오논 박사는 '칭기스'가 일종의 사투리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칭기스가 '텡그리'의 사투리, 내지는 변형어(語)라는 것이다 :

 

<텡그리 ⇒ 팅기리 ⇒ 팅기스 ⇒ 칭기스>

 

텡그리는 하늘을 뜻한다. 그냥 하늘이 아니라, '영원한 푸른 하늘'이다. 텡그리라는 단어가 가진 뉘앙스를 더 파고들어가보면, 이 말은 '어떠한 것이 넓게, 끝없이 평평하게 퍼진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텡그리라는 말은 하늘에만 대고 쓰지는 않는다. 드넓은 아름다운 호수, 바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평평한 초원도 텡그리의 뉘앙스에 포함된다.

 

 

몽골의 호수

 

당연한 말이지만, 몽골인들에게 '땅'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초원이다. 초원은 끝없이 평평하다. 즉 우르게네 오논의 견해를 받아들이면 칭기스칸은 이 세상의 동서남북 끝까지를 관장하는 절대적 칸이라는 뜻이다. 물론 텡그리(칭기스)가 어디까지나 하늘을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칭기스칸은 <하늘 밑 모든 것의 지배자> 정도가 되겠다. 

 

결론은 없다. 칭기스칸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사실 - 이 호칭은, 개념상으로는 굉장한 사이즈를 자랑하는 극존칭이라는 거.

 

대체 테무진에게 왜 이렇게 거창한 호칭이 필요했을까? 가난한 초원 한구석에서 세력을 모으느라 분주했던 27살의 젊은이에게 말이다. 테무진도 20대의 혈기왕성한 마초라, 소위 '가오'잡는게 싫지만은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테무진은 성공하고싶은 조급한 마음에 칸이 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칭기스칸이라는 단어가 정치적으로 매우 정확한 호칭이었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

 

보통 칸이라고 하면, 관습적으로는 이름 뒤에 단순히 '칸'자를 붙이면 된다. 즉 '테무진 칸'하면 그만인 것이다. 테무진 무리보다 훨씬 강성한 커레이트족의 수장 토그릴도 그냥 '토그릴 칸'이었다('옹 칸'이라는 유명한 이름은 훗날 금나라 조정이 토그릴에게 하사해준 것이다.).

 

분명, 칭기스칸은 오바라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칭기스칸>은 '확장 지향적'인 이름이다. 이미 테무진은 몽골족뿐만 아니라 외부 부족/씨족 사람들도 이끌고 있었다. 집단의 물리적인 크기가 아무리 작아도, '개념적인' 사이즈는 일개 부족의 크기를 넘어선다.

 

황제와 왕의 차이는 무엇일까? 동서고금 수많은 국가들이 황제국이거나 왕국이었다. 역사를 통계학으로 털어버리면, 당연히 황제국의 평균 국력이 왕국의 평균 국력을 훨씬 상회한다. 황제국 왕국보다 강하다 - 대체로 그렇다. 그런데 이는 '일반적인 현상'일 뿐, '원칙'은 아니다. 그 원칙이란 것 중, 중요한 한 가지를 끄집어내보자.

 

껄끄럽지만, 거칠게 일반화를 시켜보겠다. 그저 왕국보다 강한 나라가 아니라,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포함하는 나라가 황제국으로 불리는 패턴이 있다. 베트남이 오랫동안 황제국이었던 것은 조선보다 국력이 강해서가 아니라, 주변 이민족들(시암족, 크메르족 등등)을 행정/지배체제에 편입시켰기 때문이다(베트남을 무시하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한 나라의 최고권력자가 자신과 모국어가 다른 백성들도 지배하고 있다면, 그는 왕이 아니라 황제-엠퍼러, 카이저, 짜르 등등-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한 나라의 최초의 황제는 정복자인 경우가 많다. 어쨌든 역사에는 황제국보다 강한 왕국, 왕국보다 별볼일 없는 황제국이 수없이 많이 등장한다.

 

(우리 역사를 예로 들어보자. 고려는 한때나마 황제국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국이었던 조선이, 백성들의 평균적인 삶의 질은 훨씬 높았다. 고려가 황제국이 된 건 국력의 크기를 자로 재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고려라는 국명은 고구려를 계승한 것이고, 여기엔 태조 왕건의 치밀한 정치적 계산이 있었다.

 

고려와 고구려는 어차피 동의어다. 고려는 고구려의 옛 땅과 그 땅의 주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여기엔 고구려 유민의 후손인 발해 유민 뿐 아니라 거란, 말갈, 돌궐 등 다양한 민족이 섞여있었다. 고려가 황제국을 자임했던 것은 고구려 땅을 수복하겠다는 의지와 깊은 관계가 있다. 이는 당시 혼란스럽던 동북아 정세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포석인 동시에, 장기적 외교전을 각오한 '선빵'이었다.)

 

테무진은 출신부족만의 칸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칸 이상의 호칭이 필요했다. 역사는 칭기스칸이라는 호칭을 테무진 본인이 만들었는지, 아니면 주변에서 만들어 그에게 헌정했는지 밝히지 않는다. 다만 "칭기스칸으로 추대했다."라고만 나와 있다.

 

... 어쨌든 테무진은 이 거창한 호칭에 동의했다. 이는 다양한 혈통의 사람들의 하나의 체제 안에 포섭하려는 테무진의 야심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초원을 통일하려고, 혹은 적어도 그와 비슷한 과업을 이루려고 했다는 거다. 훗날 자신이 완성한 사회시스템의 성격을 당시의 테무진도 알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제 테무진은 야심가가 되었다.

 

 

 

 

7

 

그러나 아직, 테무진은 칭기스칸이 아니었다. 얼씨구 이게 뭔 소리냐...

 

역사는 당시의 테무진을 칭기스칸으로 불러주지 않는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다. 아직 칭기스칸은 테무진이 이끄는 무리 안에서 통용되는 애칭일 뿐이었다. 예컨데 내가 어느 야산에서 똘마니 수백 명을 거느리고 나는 황제임을 선포한다고 해서 주변왕국의 조정이 조공을 보내지는 않는다는 거다. 칭기스칸 정도 되는 이름은 무리 바깥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어느정도 인증을 받아야 비로소 공식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테무진은 성공했다. 그러나 칭기스칸이라는 이름은, 테무진이 훨씬 더 성공하기 전까지는 사(私)적인 별칭에 불과했다. 무리 내에서야 칭기스칸으로 불렸겠지만, 바깥에서는 본명에 '칸'자를 덧붙이는 오래된 관습대로 그냥 '테무진 칸'으로 불렸을 게 거의 확실하다.

 

이제 테무진은 칸으로서 초원에서 인정을 받아야 했다. 그는 가장 먼저 커레이트족의 토그릴 칸에게 사신을 보내 이 빅뉴스를 알렸다. 참으로 영리한 행동이었다. 이는 토그릴에게 당신을 해칠 의도가 없으며, 따라서 안심하라는 뜻이다. 또한 칸의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토그릴이 '다른 칸을 인증하는 칸' 즉 초원의 최고 권위자라고 테무진이 대신 선언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적으로 거절할 수 없는 베팅을 한 셈. 커레이트족과 토그릴의 권위는 올라가고, 테무진은 명실상부한 칸이 되는 것이다.

 

이쯤되면 뭐 당연한 말이겠지만, 토그릴은 테무진과 테무진의 무리를 한껏 축복해준다.

 

"거 참 잘했다~ 흐뭇하도다! 어찌 칸 없이 살겠는가? 테무진은 내 안다의 아들이고 내 양아들이야. 어찌 훌륭하지 않겠는가? 이제 그대들은 테무진을 칸으로 모셨으니 그에게 충성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 껄껄~"

 

몽골족의 귀족 선거인단에 의해 칸이 된 테무진. 그는 칸이 되고나서 조직을 개편한다. 새로 탄생한 오르도에 귀족들의 자리는 없었다. 모든 무리를 통솔하는 참모는 젤메와 보르추 듀오였다. 두 사람은 가장 오래 테무진과 함께했으며 머리회전이 빠르고 전투능력도 뛰어났다. 특히 상속받은 노예인 젤메에 대한 테무진의 태도는 참으로 진실하다.

 

"내가 꼬리 말고는 채찍이 없고, 그림자 말고는 친구가 없을 때 ... 그림자가 되어준 친구."

 

뭐, 아름다운 장면들의 연속이다. 헌데 말이다. 테무진은 토그릴 뿐 아니라 자무카한테도 사신을 보내 자신이 초원의 '정치적 레이스'에서 자무카를 추월했음을 알렸다. 

 

"형제여. 내가 칭기스칸으로 추대되었네."

 

자무카의 기분은...

 

 

 

... 몹시 좋지 않았다. 그리고 테무진은 결코 자무카를 추월하지 못했다. 테무진은 마침내 성공했지만, 이제 '과속 성공'의 처절한 대가를 받을 차례였다.

 

 (다음 편 '13익 전투'에서 계속)

 

 

 

 

 

 

 

http://www.ddanzi.com/news/571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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