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방송화면 연출 |
앤디 머레이의 윔블던 우승을 계기로 과거 윔블던 주니어 결승에 진출했던 전미라 선수의 교훈에 대해 서의호 교수의 칼럼을 조심스레 꺼내 봅니다.
한국테니스 수장을 뽑는 선거가 7월 30일에 있습니다. 출마하시는 분들은 한국테니스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많은 공약을 내세울것입니다. 당선 뒤 이리저리 해보다 안되면 그저 그렇게 지냅니다. 테니스를 위해 존재한다고 하고는 테니스가 회장을 위해 존재하는 형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초심잃어 갈 길을 찾지 못합니다. 한국테니스의 기준선은 명확합니다. 윔블던 우승자 배출, 올림픽 출전, 월드그룹 우승 등등. 많습니다. 근 20년 전에 한 교수가 적은 글이 이시대에도 맞는 것 같아 독자에게 소개합니다. 정말 한국테니스는 왜 안될까요?.
한국테니스는 왜 안될까요?
전미라 선수의 교훈(서의호 교수 칼럼)
94년 16세의 나이로 윔블던 주니어 결승에서 힝기스(스위스, 현 세계랭킹 1위)와 대결하고 준우승을 차지하였던 전미라 !
그 전 해인 1993년에는 15세의 나이로 ITF서킷 1차대회에서 쟁쟁한 선배 실업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하여 국내 테니스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녀. 1995년에도 윕블던 주니어 8강에 오르며 안나 쿠르니코바(러시아, 현 세계랭킹 12위) 와 1:2의 호각지세 경기를 가진 바 있다. 전미라가 세운 주니어 기록은 아마도 당분간 깨지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왜 전미라는 주저 앉았는가? 삼성팀 소속으로 다시 재기의 의지를 다짐하고 있는 그녀에게 격려를 보내지만, 그에 앞서 세계 100위권에 충분히 들 수 있었던 그녀의 오늘날의 모습에서 우리는 한국테니스의 도약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배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테니스 선수에게는 한 번의 결정적 찬스가 온다. 공이 잘 맞고 감이 잡히고 매 경기마다 이기는 순간이 온다. 이러한 기회가 왔을 때 이 기회를 잡아 치고 올라가야 한다. 1994년 윔블던대회였다. 그러한 기회가 왔었다. 그러나 그 기회를 놓쳤다. 그러한 기회는 보통 단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일반적으로 여자는 17세 이전, 남자는 19세 이전에 온다.
한국 여자 테니스는 역사상 3번 100위 안에 들어갔다. 국가대표 출신 이덕희 선수가 20여년 전 홀홀 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혼자 당시 세계적인 선수였던 버지니아 루지치, 버지니아 웨이드 등을 이기면서 50위권에 들어갔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 미국 교포였던 1968년생의 귀여운 소녀 Grace Kim은 미국 전국 주니어 챔피온 대회인 전미 14세부(1982년), 16세부(1983년, 당시 15세)를 연속 석권하고 프로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하여 50위권에 들어갔다. 그녀의 주니어 기록은 아직도 미국에서 전설로 남아 있다.
당시 세계 1위 크리스 에버트에게 이기겠다고 기자회견을 하고 당당히 도전장을 내었다. 그러나, 그녀는 US Open 3차전에서 에버트에게 크게 패한 후 학교로 돌아갔다. 그리고 오랫동안 한국여자 테니스의 기수 역할을 하고 있는 박성희. 오렌지볼 14세에서 준우승하고 95년에 57위까지 가는 대업을 달성했으나 100위권에서 오래가지는 못했고, 그러나, 아직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 전미라 ! 한국역사상 4번째, 그리고 장기간 세계 100위에 들 수 있었던 그녀...
1994년 16세의 나이로 윔블던 주니어 (18세부)에서 준우승을 한 선수. 당시 결승에서 맞붙었던 힝기스는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데... 힝기스는 그 후 바로 프로로 전향, 수 많은 프로 대회에 참가하여 경쟁력을 쌓았다. 탐파에 있는 새들브룩, 브레이든튼에 있는 닉볼리티에르 등의 유명클럽에서 다양한 상대와 훈련하며 야생의 쌈탉으로 성장되었다. 반면 전미라는 당시 계속 주니어 대회를 맴돌고 한명의 코치와 지루하게 공을 치고 연습하면서 점점 힘 없는 집닭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게 어려운 윔블던 주니어 대회의 준우승에 빛나는 전미라가 왜 성공 할 수 없었나 ?
우리는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한다. 이 두 가지가 우리가 전미라로부터 배운 것이다.
첫째, 전미라의 실패는 주니어 경기에 너무 집착한데 있다. 1994년 윔블던 결승에서 붙었던 힝기스는 14세의 나이로 이미 시니어 100위권에 있었고 1995년 20위권으로 도약했다. 필자의 “15-17-19”이론에 의하면, 여자는 15세에 프로에 입문하여 적어도 17세까지는 100위 안에 들어가야 하며 남자는 17세에 프로에 입문하여 적어도 19세까지는 100위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30세까지 안정된 세계 랭킹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세계 랭킹 100위에 진입한 시기를 보면 이를 금방 알 수 있다. 아가시 17세, 샘프라스 17세, 리오스 19세, 힝기스 14세, 다벤포트 17세, 윌리엄스 17세, 셀레스 15세, 쿠르니코바 15세 등이다.
100위권 안에 진입하면, 각종 메이저 대회와 그랜드슬램에 자동 출전한다.
이러한 끊임 없는 동기 부여와 자극이 선수들을 계속 높은 랭킹에 머물러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프로로 가기 위한 준비 기간을 3년으로 본다면 적어도 여자는 12-14세, 남자는 14-16세 사이에 과학적으로 훈련하면서 수준 높은 국제 주니어 시합에 집중적으로 참가하여야 하고, 여자 15세, 남자 17세에는 본격적으로 프로 대회에 출전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여자는 17세, 남자는 19세 이전에 100위권 진입이 가능한 것이다.
둘째, 전미라의 문제점은 훈련에 있었다. 한 명의 코치와 연습하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졌다고 전미라는 회고하였다. 테니스는 고립 상태에서 절대 실력이 늘지 않는다. 다양한 상대와 연습하여야만 실력이 늘 수 있다. 현대가 수억원을 쓰면서 그녀를 지원한 것은 세계에서 유래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후한 지원이었다.
그러나, 왜 안되었는가?
훈련장소가 문제였다. 기업의 지원을 받는 선수들은 많은 돈을 들여 연간 15-20 개 정도의 해외 대회에 참가하는 반면, 훈련은 한국에 돌아와서 자체적으로 실시한다. 물론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훈련도 해외에서 투어를 돌면서 투어를 쉬는 중간중간 외국 선수들과 해야 하며 닉볼리티에리 아카데미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해야 한다. 아예 해외 유명 테니스 학교에 캠프를 차려 놓고 훈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테니스는 상대에 의해 나의 실력이 늘어가는 경기이다. 절대로 우리들끼리 연습해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테니스는 국가대표 훈련소인 태능선수촌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마라톤과 같은 기록 경기가 아니므로 항상 다양한 상대방, 자기보다 나은 상대방과 훈련해야 한다. 테니스는 상대방의 볼을 받아쳐야 하므로 상대방에 의해 나의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체육 강국이면서 테니스 후진국인 중국은 최근 주니어 선수 캠프를 부분적으로 미국으로 옮겨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
사실상, 우리는 한국테니스 발전을 위해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전미라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전미라로부터 우리가 아직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아직도 수많은 주니어들이 실패로 가는 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그리고 낭떠러지로 가는 그 길을 그냥 보고만 있는 감독, 코치 그리고 한국 테니스계가 정말로 안타깝다.
왜? 왜 우리는 실패로부터 배우지 못하는가?
실패는 그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만, 실패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때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첫댓글 사진 포즈가 어색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