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사기를 위한 투맨쇼 <나쁜 녀석들>
작은 관심에 흔들리는 여자들을 젠틀하고 고상한 ‘수작’으로 자극하는 로렌스, 반대로 모자라 보이는 이미지로 모성애를 자극하는 프레디. 이 두 사기꾼이 자존심을 걸고 벌이는 내기와 그 사이에 끼어든 ‘크리스틴’이 엮어가는 코미디 뮤지컬이다. 브로드웨이의 원작을 번안한 공연으로 음악, 춤, 연기의 디테일까지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꽉 차 있다. 20대 후반 여성 관객으로서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12만원 주고 본 <맘마미아!>보다 낫다는 인상. 버디 무비처럼 두 주인공의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서브 스토리로 익살스러운 조연 앙드레와 뮤리엘의 러브 라인, 이중인격인 석유 재벌 아가씨 졸린의 이야기 등이 등장해 스토리가 매우 탄탄하게 느껴진다. 보여주기가 주목적인 뮤지컬은 연기가 과장되고 내러티브가 생략되기 때문에 종종 스토리의 헐거움이 느껴지곤 했는데, 이 작품은 그런 아쉬움이 없었다. 물론 ‘화려한 쇼와 볼거리’라는 뮤지컬 본연의 목적도 잊지 않고 차곡차곡 풀어낸다. 재벌가의 휴양지가 배경이라 앙상블들이 입고 나오는 턱시도와 드레스, 호텔 유니폼, 메이드 복장까지도 아름답다. 어릴 때 바비 인형 세트를 받고 느꼈던 환상적인 행복감과 유사한 기분을 선물하는 앙상블들의 연기와 군무도 놓치지 말아야 할 감상 포인트. 그러나 <나쁜 녀석들>의 가장 큰 미덕으론 프레디 역을 맡은 김도현의 재발견을 꼽아야겠다. 송강호의 전매 특허 같은 천연덕스럽고 다혈질인 소시민 연기를 무대 위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져도 좋다.
나쁜 녀석들 감상 포인트- 1 재즈, 팝, 발라드, 컨트리뮤직을 다채롭게 넘나드는 23곡의 노래.
2 "원래는 한국인인데 지금은 미국인 역할을 하고 있어요"라는 대사처럼 한국 무대라는 점을 재치 있게 활용한 각색.
3 배경 세트를 바꾸는게 아니라 여행 가방 같은 소품 하나로 장면을 전환하는 연출 아이디어.
관객에게 피 뿌리는 발칙한 컬트 <이블 데드>
영화 <이블데드> 1, 2편을 믹스한 좀비 퇴치 스토리? 전기톱으로 팔과 머리를 자르는 장면을 무대 위에서 보여준다? 코믹 호러 뮤지컬을 표방한 <이블 데드>는 반박의 여지없이 특이한 작품이다. ‘줄거리는 몰라도 된다’, ‘모든 걸 포기하고 미친 듯이 웃겨주마’라는 도전적인 카피처럼 내러티브나 스토리보다는 눈요기에 충실한 작품. 캐나다 토론토에서의 벼락같은 성공으로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서울에서 공연되는 이 작품은 딱 B급 컬트 영화 같다. “조낸 퐝당해”, “방울 달린 너희(남자) 놈들~”처럼 ‘헉!’ 소리 나는 비속어가 대사와 가사에서 들려오고, 클리비지 라인을 심하게 강조한 여주인공 ‘셸리’와 남친 ‘스콧’은 끊임없이 성적인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이 모든 게 불편한 것이 아니라 통쾌하고 코믹하게 다가온다는 게 이 작품의 신기한 매력이다. 좀비를 죽일 때 튀는 피를 맞을 수 있는 특별석 ‘스플래터 존’은 한국으로 와서 진화했다. 좀비들이 객석으로 내려와 친히 관객의 옷과 머리에 피를 발라주는 것. 관객과 마구잡이로 뒤엉킨 배우들을 멀찌감치서 지켜보면 ‘다음엔 흰 티셔츠를 입고 스플래터 존에 한번 앉아볼까?’란 유혹이 뭉실뭉실 피어오를 것이다.
이블 데드 감상 포인트- 1 잘 지워지는 글리세린 피를 개발한 도전 정신! 총 110회 공연에 들어간 피값만 8백만원이라고.
2 <지킬앤하이드><맨오브라만차><미스 사이공> 등 뮤지컬 마니아들은 다 아는 명장면을 곳곳에 패러디했다.
3 원작자도 반한 연출력. 패러디나 커튼콜 때 배우끼리 노래를 바꿔 부르는 아이디어는 한국 제작진이 제안한 것. 브로드웨이의 프로듀서들도 응용하겠다며 캠코더에 담아갔다는 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