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작가의 또 다른 모습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푸른숲, 1998.
발자크(1729-1850년)는 블란서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격동하는 19세기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를 겪었으며 나폴레옹제정, 7월 혁명을 체험했다. 돈을 숭배하는 시대가 오면서 부르즈아 계층이 생겨나자 발자크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학으로 귀족계급을 사려했던 발자크는 화려함과 초라함을 동시에 경험한다. 겉모습은 화려한 살롱을 드나들었지만 언제나 빚에 시달리며 궁핍한 삶을 살았다. 발자크는 출판사에 제목만 넘겨줘도 원고료를 받는 특권을 누렸지만 그는 사치스러웠다. 엄청난 몸치장과 가구구입으로 평생 부채를 안고 살다 파국을 맞는다. 발자크는 끊임없는 상류층 여성부인들과 스캔들을 뿌렸고 귀족계층에 편승하려는 열광에 사로잡혀 있었다.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은 발자크의 문학작품에선 볼 수 없는 작가의 삶을 폭넓게 관찰하고 있다. 츠바이크 평전의 특징은 생애를 연대순으로 편집하지 않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애 이슈별로 나열했다는 점이다. 총 6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린시절과 첫 시작’, ‘작업하는 발자크’, ‘삶으로 쓰는 소설’, ‘소설가 발자크의 영광과 비참’, ‘마지막 환상의 시간’, ‘완성과 최후’다. 저자는 발자크의 작품 <인간희극>, <고리오 영감>,<크롬웰>,<나귀가죽>의 문장을 곳곳에 배치시켰다. 여러 증언과 사료를 보여주고 발자크의 생을 찾아다니며 작품과 연결해 그를 말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발자크는 엄격한 기숙사에서 외로웠던 경험을 추적한다. 이때 느낀 결핍은 훗날 발자크의 연애관에도 영향을 미쳐 아이를 아홉이나 낳은 마흔다섯의 로르 드 베르니 부인과 첫사랑에 빠진다. 발자크는 베르니 부인과의 사랑을 이렇게 말한다. '한 여자의 마지막 사랑이면서 한 남자에게는 첫사랑을 이루어주는 것에 견줄 만한 것은 세상에 다시없다.'(p.126) 둘은 10년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평전은 발자크의 인간적 사생활과 함께 문학적 위대성을 동시에 말한다. 귀족을 숭배하며 자신의 삶을 파괴했던 과정이 담겨 있는 반면 밤새워 문학을 집필했던 집념도 보여준다. 발자크의 집필과정은 그야말로 치열한 전투상황처럼 묘사되어 있다. 나폴레옹을 보며 “그가 칼로 시작한 일을 나는 펜으로 완성하련다.”(p.163)며 문학이 세상을 지배할 것처럼 정열적으로 쓰기도 한다. 발자크는 작가의 길을 결심하고 차가운 방에서 커피에 의존해 <크롬웰>을 완성하지만 명성을 얻는 데 실패한다. 그러나 그는 단념하지 않고 천재적인 창작욕구를 불태운다. 파리를 끊임없이 연구해서 결국 위대한 작품 <인간희극>을 탄생시킨다. 이 작품안에는 프랑스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틀로 구상해 파리의 삶, 파리의 시간, 파리의 사상을 방대하게 보여준다. <인간희극>은 총 137편의 작품을 포함할 예정이었으나 97편정도 완성했고 2천명에 이르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저자는 발자크의 이중생활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성공, 돈, 여자, 정치권력을 바랬던 생활은 그를 허풍쟁이, 낭비가, 거짓말에 능수능란한 인물로 만들어 버렸다. 츠바이크는 “발자크의 최후의 비밀을 모르다면 인간 발자크를 이해할 수 없다.”(p.426)라고 했다. 사치와 허영은 그를 극단적인 곤궁상태로 옭아맸다. 독촉장, 계산서, 소송, 비난, 재촉, 끝없는 노동(p.482)에 시달렸지만 속이고 감추고 도망다니는 행위에 그는 탐닉했다. 그런 뻔뻔한 욕구가 창작작품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빚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그는 감옥에서 <잃어버린 환상>을 쓰기도 하고, 빚을 내 창녀의 방처럼 꾸민 뒤 <금빛 눈을 가진 아가씨>를 집필하기도 한다. 예술작품에서 모든 상황을 빈틈없는 눈길로 조망하고 꿰뚫어보던 그 두뇌가, 현실에서는 어린애처럼 믿기 잘하고 순진하기 작이 없어진다는(p.473)는 츠바이크의 평가를 보면서 위대한 발자크의 이중성을 보게 된다.
발자크 평전에서 한스카는 주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1832년 <나귀가죽>을 비판한 편지한통으로 연을 맺게 된 한스카와 사랑에 빠지지만 둘은 이루어지기가 어려웠다. 오랜 기다림 끝에 구애에 성공한 발자크는 1849년 한스카와 51세에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발자크는 눈을 감는다. 그가 떠나고 한스카는 마흔 여섯 작품의 유작을 출판한다.
인간의 한 생애를 한 권의 책에 담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인물생애와 함께 시대적 배경까지 입증해야 하며 그가 쓴 작품까지 분석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은 가장 큰 공을 들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학적 거인이라 불리는 발자크의 생(生)을 완벽에 가깝게 서술할 수 있었던 건 츠바이크의 깊은 애정이기도 하다. ‘발자크’의 모든 것을 담은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서평-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