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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격장 사로(射路) 아래 교장에서 사격술예비훈련(PRI)을 받고 있는 예비생도들.(이하 사진=한명섭 기자) |
이들은 2014학년도 육군사관학교 사관생도 모집에 최종합격한 315명의 74기 ‘예비생도’들이다. 육·해·공 사관학교와 국군간호사관학교, 경찰대학 등 군·경 특수목적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은 입학전에 거쳐야할 관문이 하나 더 있다. 저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군·경 초급간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질을 검증하기 위한 ‘기초훈련’이다.
육군사관학교는 매년 1~2월 경 최종합격생들을 대상으로 ‘기초군사훈련(이하 기훈)’을 실시한다. 올해는 설 전인 1월 27일 소집해 입·진학식 하루 전인 2월 20일까지 4주 일정으로 육사 교내·외에서 진행 중이다.
■ 훈련강도 세고 일정 ‘빡빡’…매일 4km 구보도 = 훈련은 생각보다 강도가 세다. 다만 군사훈련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의 낯섬과 체력을 감안해 주(週) 차가 더해갈수록 점진적으로 훈련 강도를 높인다.
1~2주차에는 주로 실내교육이 이뤄진다. 기본적으로 규율이 강조되는 생도생활에 적응력하게 되며, 국가관·역사관·안보관·군인정신 등 사관생도에게 요구되는 가치관 재정립 교육을 받게 된다. 이 기간 앞으로 있을 야전훈련에 대비한 맞춤형 체력관리 프로그램이 육사 체육처의 전문 교관들에 의해 진행된다.
3~4주차에는 힘든 훈련이 줄을 잇는다. 군인으로서 필요한 기본 전투기술을 익히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세부적으로 3주차는 개인화기 사격, 각개전투, 제식훈련, 20km 행군, 육사생도 1·2기 6·25참전기념비 참배 등이 실시되고, 4주차에는 육사정신·육사혼 교육, 생도생활 적응교육, 체력단련 및 측정 등이 이어진다.
각개전투 훈련을 담당한 박지원 소령은 “각개전투의 경우 전체 14시간 가운데 13시간이 실습 숙달 훈련으로 짜여 있다”면서 “생도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훈련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각개전투는 생도들이 개인화기를 지니고 산 정상 목표진지까지 총 10단계의 장애물을 극복하며 ‘뛰고 달리고 굴러야’ 하는 훈련이다.
생도들의 평소 체력관리를 위해 기훈기간 내내 아침구보를 실시하는 이유다. 박 소령은 “첫 주에는 3km를 달리고 2~3주차가 되면 매일 4km를 달린다”며 “쉽게 말해 기훈은 일반 병사를 대상으로 하는 신병교육훈련보다 훨씬 강도가 세고 일정도 타이트하다”고 말했다.
예비생도들임에도 이처럼 훈련강도가 센 이유는 장차 초급장교가 되어 강한 리더십으로 제 나이보다 같거나 많은 일반병사들을 이끌어야하기 때문이다. 박 소령은 “육사에 지원하는 학생들 중에는 단순히 제복에 대한 환상을 갖고 오는 경우가 있는데, 기훈을 통해 이 같은 환상을 벗고 진정한 사관생도로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다. 특히 체력의 경우 기훈 입소 당시 2km도 간신히 뛰던 예비생도들이 4주차 이후엔 4km도 거뜬히 뛸 정도로 크게 향상된다.
■ 여자생도와 외국인 수탁생도도 똑같이 훈련 = 육사 훈련은 남생도와 여생도, 외국생도 모두에게 공평하다. 육사는 전체의 10%를 여생도로 선발하고 있다. 여자생도의 경우 육사에 합격하기 위한 체력 기준만 다를 뿐 이후 훈련의 내용과 강도는 동일하다.
각개전투 교장에서 훈련 중이던 박선영 생도는 “야전지휘관으로 활약하는 여자장교가 되기 위해 육사에 지원했다”면서 “여자가 남자에 비해 체력이 약할 수는 있지만, 성실성에서 만큼은 최고가 되겠다는 각오로 훈련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육사는 최근 2년 연속 여자 수석 졸업생을 배출했을 정도로 여풍(女風)이 거세다.
▲ 동기의 존재는 생도들이 기훈기간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된다. 왼쪽부터 나라 위윗원(태국 육사 수탁생도), 박선영, 최승현 생도. |
언어도 익숙치 않은 낯선 나라에서 훈련받는 외국인 수탁생도들도 예외는 없다. 이번 기훈에는 태국, 몽골, 베트남, 터키, 필리핀에서 온 5명의 ‘외국인 수탁생도’가 참가하고 있다. 이들 외국인 수탁생도들은 각개전투에서도 완벽한 삼색 안면위장을 실시하고 누구보다 진지하게 훈련에 임했다.
■ 포기하고 싶을 때쯤 ‘사자굴·재구·명예의식’으로 동기부여 = 제아무리 자발적으로 지원한 예비생도들이라고 해도 고된 훈련에 한두 번쯤 위기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때문에 육사 기훈기간에는 예비생도들의 열정을 고취시키기 위한 세 가지 대표적인 행사가 전통으로 굳어져 있다. 사자굴행사와 재구의식, 명예의식이 그것이다.
사자굴행사는 보통 2주차에 열린다. 집에서 편하게만 생활했을 예비생도들이 고된 기훈에 참가하고 첫 위기가 찾아올 때쯤, 선배 사관생도들이 베푸는 야간행사다. 1~4학년 생도들은 예복을 갖춰 입고 생활관 앞 화장광장에 이르는 캄캄한 길 위에 길게 도열한다. ‘아기사자’로 비유되는 예비생도들은 ‘어미사자’들이 만든 사자굴을 통과하면서 선배들의 환호와 격려에 취한다. 이어 도착한 곳은 낮은 조도의 엄숙한 조명이 깔린 화랑광장. 이 자리에서는 연대장생도가 ‘아기사자’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한다.
▲ 육사 1~4학년 생도들과 예비생도들이 '사자굴행사'를 위해 화랑광장에 집결해 있다.(사진=육사제공) |
재구의식은 4주차 초에 진행된다. 재구는 육사에서 강재구 소령(육사 16기)을 친근하게 부르는 이름으로 육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강 소령은 65년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맹호부대 훈련장에서 부하가 실수로 떨어뜨린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장병들의 생명을 구하고 순직한 인물이다. 예비생도들은 강 소령의 동상 앞에서 추모의 제를 올리고 묵념하면서 가슴 뜨거운 경험을 한다. 이건호 육사 정훈공보실 소령은 “육사 각 중대에는 역사 속 호국인물의 이름을 딴 별칭이 있다”며 “그 중 ‘재구중대’로 불리는 2중대 생도들은 특별한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고 전했다.
마지막 명예의식은 예비생도들이 처음으로 예복을 착용하는 행사다. 육사 생도들에게 예복은 비를 맞히지 않을 정도로 신성한 의미를 갖는다. 이날 예비생도들은 육사에 합격한 이래 처음으로 신성한 예복을 착용한 채 선배생도로부터 육사의 명예와 전통을 전수 받게 된다. 명예의식은 1984년 이래 지금까지 지켜온 육사 생도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가슴 벅찬 행사다.
■ 중도탈락 비율 약 10% ‥ 후회않도록 충분히 상담 = 기훈기간은 사관생도가 되는 관문인 동시에 자신의 적성을 탐색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기훈기간 보통 10% 내외의 예비생도들이 육사 진학을 포기한다. 포기하는 이유는 적성이 맞지 않다고 판단하거나, 중복 합격한 타 대학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반대로 서울대에 중복 합격하고도 육사에 남는 경우도 있다.
예비생도들은 기훈기간 언제라도 원치 않는 경우 퇴소할 수 있지만, 육사는 충동적인 결정을 방지하기 위해 하루 내외의 숙려기간을 두고 있다. 숙려기간 동안 퇴소를 신청한 생도들은 충분한 전문상담을 받게 되는데 그래도 원하는 경우 퇴소조치 된다. 기훈기간 퇴소한 인원에 따른 추가 충원은 이뤄지지 않는다. 육사는 애초에 기훈 중도포기자와 정식 입교 이후 이탈하는 인원까지 예측해 기훈 대상자를 발표한다.
문양호 육사 평가관리실 대령은 “기초훈련 기간은 육사생도에게는 어쩌면 가장 힘든 시기”라면서 “누구나 한번쯤 고비가 오게 마련인데, 한 순간의 충동으로 포기한다면 학생 스스로에게도 불행한 일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각개전투 훈련교장에서 만난 강현우 생도는 육사에 오기 위해 삼수를 했다. 그는 “그렇게 오고는 싶었지만 막상 부딪혀 보니 장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 같다. 힘든 순간마다 ‘힘들 때 우는 건 삼류, 참는 건 이류, 웃는 건 일류’라는 1분대장의 조언을 가슴에 새긴다. 일류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훈련을 마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한국대학신문 201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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