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노동운동. 광장이 던진 메시지에 주목해 체제 전환의 목소리 높여야.
한상진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정책기획국장)
들어가며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대부분 윤석열 탄핵, 파면과 조기 대선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친위 쿠데타’라니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많은 이들이 황당해하면서도 절차적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해 낸 노동자, 시민을 위시한 제도정치권에 많은 지지와 응원,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드러나는 윤석열과 윤석열들의 치밀한 준비와 계획이 속속 드러나며 정말 이것이 실행되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위기와 절망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몇 차례의 크고 작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투쟁을 경험하며 쌓인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요구는 높아졌고 여기에 더해 시대의 가치가 결합해 그야말로 역동적으로 흘러가는 정세와 투쟁, 참여를 바라보자. 광장이 던지는 메시지에 주목하고 더 많은 상상력과 직접 민주주의의 실천으로 옮겨 체제 내적 개혁을 넘어 근본적인 체제 전환의 목소리를 내자.
촛불을 넘어 응원봉으로. 그들이 던진 요구는 더욱 본질적인 전환의 목소리다.
광장을 가득 메우는 사람들의 구성이 2016, 2017년 투쟁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이전 박근혜 퇴진 촛불을 민주노총의 철도 등 공공부문 노동자를 선두로 한 다수의 조직노동자에 시민이 결합해 진행됐다면, 윤석열 퇴진투쟁에선 민주노총 간부, 활동가 일부에 다양한 가치를 지향하는 말 그대로 이념과 가치의 바다를 만든 응원봉 참가자들이 있다.
박근혜 퇴진 투쟁을 노동자가 주도하며 최저임금, 비정규직 등 노동현안이 제기되고 광장에서 동의를 받아 전체의 요구로 전환되는 과정이 있었다면, 윤석열 퇴진 투쟁에서 외치는 소리는 ‘민주주의, 차별 없는 세상, 정의, 다양성, 평등’으로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한 체제가 가져오는 오류를 지적하고 이를 바꾸는 ‘연대’의 목소리가 중심이다. 이 중요한 가치를 가로막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윤석열의 탄핵, 파면을 넘어 윤석열과 윤석열들 없는 세상. 그들이 가진 기득권을 빼앗아 일상을 살아가는 노동자, 시민에게 돌리는 것을 요구한다.
염려되는 지점은 조직노동자들이 여전히 판을 주도하지 못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 등장 이후 가장 치열하게 윤석열 퇴진 투쟁을 전개했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광장에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의 투쟁에서 너무 지쳤나?
광장의 연단에 오른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민주노총이 불러서 왔다.”“민주노총 감사하다.”“민주노총이 안전해야 시민이 안전하다.”라고 말한다. 심지어 중고장터에선 ‘민주노총 집회 굿즈’가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은 헌신하는 민주노총 가맹, 산하 간부, 활동가들이 열어 놓았다. 움직이지 않는 현장을 추동하며 ‘친위쿠데타‘ 이후 하루 매시간을 마다치 않고 헌신한 결과 과분할 정도로 민주노총에 대한 지지와 연대가 이어진다. 국회 앞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헌법재판소 앞에서 한남동으로 이어지는 투쟁과 연대의 흐름에 주목하자.
광장과 연단에 나서 자신의 주장과 요구를 정리해 차분하거나 때로는 격정적으로 말하는 시민의 대다수는 노동자다. 소수자다. 누구나 한 번쯤 차별을 겪었거나 지금도 구조적인 틀에서 차별받고 있는 소수자다.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고 받는 우리 시대의 을(乙)들이 가장 든든한 조직노동자와 함께 가치를 실현하고 존중받기 위한 투쟁의 대열에 나섰다.
광장의 주인이 체제요 요구할 ’광장 청구서‘.’응원봉 청구서‘를 작성하자.
박근혜 퇴진투쟁 이후 문재인 정부 시절 수구 언론이 가장 극악스럽게 물고 늘어진 부분이 바로 ’촛불 청구서‘다. 광장을 가득 메운 변화의 목소리와 이를 요구하고 국정에 반영해 제대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는 노동자, 시민의 목소리를 교묘하게 감아 기득권‘으로 몰아세우며, 안 그래도 기회주의 속성을 가진 제도권 정당을 개혁 세력과 분리시킨 일등공신이 바로 ’촛불 청구서‘ 프레임이다.
시대가 바뀌어 ’촛불은 바람에 흔들리지만 응원봉은 흔들리지도 꺼지지도 않는다‘라며 가지각색,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광장을 춤추게 한다. 저 응원봉의 요구는 이후 수구 언론이 어떤 프레임으로 어떤 공격을 해오든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프레임 공격쯤은 웃어넘기며 당당하게 세상을 바꾸자고 요구할 것이다.
윤석열 탄핵, 파면 이후 실시 될 조기 대선에서 윤석열을 끌어 내리고 오늘의 정세를 만든 노동자, 시민이 광장의 요구를 명확히 하고 당당하게 사회대전환의 과제를 제시하고 싸워야 한다. 또한 지난 문재인 정권 시기 광장의 요구에 대한 답변 중 가장 많은 것이 ’나중에‘였다. 이제 우리에게 나중은 없다. 차별이 일상화되고, 구조적인 착취가 기승을 부리며, 개개인을 극한의 경쟁과 이기심으로 내모는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골든타임을 실기하지 말자. 거기에 더해 ’나중에‘가 아닌 ’지금 당장‘을 요구하자.
광장이 쓰는 ’청구서‘
차별이 일상화된 세상. 노동자라고 예외일 수 없다. 사업장의 규모에 의해 차별받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도 당연히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근로기준법‘,’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을 청구하자.
일하는 사람 누구나 단결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고 누릴 수 있도록 노조법을 개정하자. 윤석열에 의해 막힌 노조법 2조, 3조 개정을 넘어 노동조합의 자주적 활동을 훼방하는 노조법 전면 개정을 청구하자.
자본의 요구를 단순화하면 ’더 많이 일 시키고, 더 적게 주고, 자유롭게 해고하고.‘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반노동 악법을 철폐하고.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생활임금 대폭 인상, 해고 여건 강화와 함깨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청구하자.
자본이 공격하는 귀족노조 프레임에 맞서 현재 노동조합이 체결하고 있는 단체협약의 효력 범위를 동일한 산업, 업종에 확대할 것을 청구하자. 이를 위해 산별노조의 산별교섭 실제화를 청구하자.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에 완성차가 들어와야 한다.
민중 복지와 관련 국가 책임, 공공성 강화를 청구하자. 신자유주의 유입 이후 노동자, 시민의 삶이 나락을 향해 달려간다. 신자유주의 정부에 의해 알짜 기업은 민영화 명목으로 ’재벌 사유화‘되었고 이로 인해 통신, 교통, 전기 등 노동자, 시민의 삶을 영위하는데 필수요소들이 개인의 책임과 부담으로 돌아왔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재국유화, 재공영화, 국가책임 강화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 시민의 노후가 위태롭다. 국민연금 믿지 말고 개인적으로 능력껏 알아서 노후를 준비하라는 윤석열 정부의 개악. 건강보험 보장성을 약화시키고 개인의 의료정보를 의료재벌에게 넘기며 의료민영화를 추진한 윤석열 정부의 개악을 되돌릴 것을 요구하고 차제에 무상의료 등의 현실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자.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많은 차별을 철폐하고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사회와 일터를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청구하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송을 자기 발아래 두고 싶어하는 권력의 속성을 방지하기 위해 윤석열에 의해 막힌 방송법 개정에 나서자.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힌 대안으로 이민, 이주노동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민자, 이주노동자는 우리 사회의 약자다. 이주민, 이주노동자도 정주노동자와 같은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고 그 출발은 고용허가제 폐지와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이다.
개혁이 아닌 전환의 요구를 내밀어야 배가 산으로 가지 않는다.
글 머리에서 ’현장의 조합원들이 광장에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 답은 수십 차례 현장을 드나들며 들은 현장의 목소리에 있다. “윤석열 끄집어 내린다 쳐. 그럼 그 다음은 누군데? 이재명이야? 또 민주당이야?” 우리는 지난 시기 뼈저린 경험을 했다.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등장한 문재인 정권에 의해 광장의 요구와 목소리가 어떻게 왜곡됐는지 경험했다. 투쟁을 접고 기다려보자며 결과적으로 보수 정당에 투항한 노동조합 지도부를 경험했다. 이러한 사례들이 쌓이고 쌓여 조합원의 진출을 제약하고 있다.
결국 윤석열 퇴진을 넘어 내 삶과 현장,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한 상상력을 발현시켜야 한다. 아마도 조기 대선의 결과로 등장하는 정권은 일정 부분 개혁적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어쩌면 조직 노동이 준비하고 요구하는 것보다 더 앞서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결국 한국의 보수 정권이 가지는 계급적 기반과 속성에 의해 체제 내적인 개혁은 일정 부분 가능할 수 있어도 ’노동 중심 평등공화국‘이라는 지향과 가치는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
한술에 배부를 수 없으나 끊임없이 체제를 전환하고 사회를 대전환하려는 도전과 시도가 중단되면 안 되는 이유다.
나오며
해마다 연초가 되면 다양한 정세분석 자료들이 나온다. 난 그 정세분석이 제대로 들어맞는 걸본적이 없다. 그 분석이 맞았다면 우리 세상이 이렇게 지옥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굳이 거창하게 정세분석이라는 것에 무게를 두지 않고 그저 참고만 하는 이유다.
조직된 노동자가 정세를 주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광장에서 터져 나오는 변화, 전환의 목소리를 어떻게 잘 융화시킬 것인가?라는 과제를 받는다. 그리고 이 투쟁의 성과를 다시 거대 보수 정당이 독식하는 역사의 되풀이를 보고 싶지 않다.
광장에 나와 노동조합에 대해 궁금해하고 애정을 표하는 많은 노동자, 시민에게 누구나 쉽게 문을 두드리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열린 노동조합이라도 제시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