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라 히바리는 역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개인적으론 매우 굴곡진 인생을 살았는데,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듯 1989년 '강물의 흐름처럼(川の流れのように, 카와노 나가레노 요오니)'이란 자전적 명곡을 남기고 쇼와시대를 마감했다.
당시 일본정부는 그녀에게 국민영예상을 수여하고 또 수상이 조의를 표할 정도로 일본열도가 슬픔에 잠겼다고 한다.
향후 위의 곡을 소개할 때 그녀의 일생을 심층적으로 다루기로 한다.
미소라 히바리는 한국계 아버지(김해 출신)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한국계라는 사실을
끝까지 밝히지 아니한 채 52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녀는 사후 30년이 지난 2019년경 인공지능(AI)을 통해 부활하였는데,
AI음성으로 [사후 신곡]을 발표하였을 뿐만 아니라 홀로그램으로 공연무대에 등장하여 관객들을 울렸던 것.
AI기술의 급성장에 발맞춰 더욱 완벽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히바리(雲雀, 운작)는 종달새를 말하는데, 그녀는 히라가나로만
이름을 표기하였다.
생명줄 한 가닥에/ 芸道 이 한 길
이기든 지든/ 할만큼 하는 거야
여자의 검은 머리/ 단단히 졸라매고
어슴프레 바라보는/ 어슴프레 바라보는
달빛이여/ 저 달빛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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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혼자서/ 살려고 했을 땐
밟히고 차이는 건/ 각오했던 일
제 모습을 숨긴 채/ (슬피)우는 두견새야
여자의 마음을/ 여자의 이 마음을
그 누가 알아주나/ 그 누가 알아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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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은 몸집에도/ 종다리란 새는
울면서도 힘차게/ 푸른 하늘 오르네
저 보리밭의/ 작은 둥지에는
나를 보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엄마가 있네/ 엄마 새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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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条八十 作詞/ 山本丈晴 作曲/ 美空ひばり 唄/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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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운율을 고려하여 일부 첨삭함.
가요무대에서
자신의 굴곡진 인생을 소개하는 사회자의 멘트에 눈물을 떨구고 있는 미소라 히바리.
미소라 히바리는 여덟 살 때 가수로
데뷔한 후, 성우 영화배우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다.
美空ひばりは永遠に...!!!